붉은 여신을 달래기 위해 그 이름을 따왔다던 이멘 마하의 평화로운 오후, 도시의 타일 위에서 쉴새없이 노니는 참새들에게 싱긋 웃으며 허공을 쓰다듬는 시늉을 하곤 호숫가 벤치로 발걸음을 옮기는 오하드가 있었다.



꿈 속에서나 무기력하게 봐왔던 어머니가 힘겹게 걷던 거리, 아버지와 앉아 시간을 보내던 벤치. 오늘은 이상기후로 발생한 환자의 치료를 위해 방문했지만 때때로 휴일마다 찾았기에 처음에는 모든게 낯설었던 그에게 이젠 친숙하기 그지없는 거리다.



평소라면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호수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겠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하다. 무려 콜헨님이 심부름꾼을 써가며 이멘마하까지 배달해준 사탕주머니와 함께 였으니까.



호수에서 이따끔씩 튀어오르는 송어를 보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부지런히 사탕주머니에 손을 넣던 그는 이윽고 단 하나만 남은 사탕에 아쉬움을 담은 볼멘 투정을 뒤로하며 입 안에 마지막 남은 사탕을 털어넣었다.



어디에서 만든 사탕인진 모르겠지만 전달 받을 때부터 주머니 밖으로 풍기는 달달한 냄새에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사탕을 옆에 두고 하나 둘 꺼내먹었던 탓이었을까?



그 냄새에 이끌린 여신을 구출하고 빛의 기사면서 에린의 수호자이자 드래곤의 감응자로서 그림자의 영웅이 비로서 반신이 된 이계의 신격으로 시골 대장장이에게 물려본 주신의 기사인 밀레시안이 인형가게서부터 종이상자에 뭄을 숨기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오하드에게 다가오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밀레시안, 송어찜을 한달 내내 가져오더니... 요즘은 뜸하네. 바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한 적 없었던 것 같지만 어디서든 정보를 긁어모아 카웬나에게도 자신에게도 갖가지 선물공세를 해오던 밀레시안을 떠올리며 오하드는 몸서리를 쳤다.



그간 많은 일을 겪었던 탓인지 그녀에 대해 끝없는 신뢰를 내리는 에레원 왕마저 '예전엔 그 정돈 아니었는데' 라고 난색을 표할 정도로 짗궃기로 유명했다. 오하드가 좋아하는 송어찜을 제 손으로 만들어왔다며 오하드 앞에 둔 그녀는 기대에 잔뜩 부풀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그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선물이냐는 그의 말에 대뜸 그릇을 물리며 능청을 떨었었다.



"응? 아냐~ 그냥 내가 만들었으니까 보라구 갖고 왔지~"



세상에 음식으로 장난치는 놈이 제일 더럽고 치사하다던가. 오하드가 울먹이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그 밀레시안이 오하드를 안아주고 더듬고 어르고 달래며 송어찜을 직접 떠먹여주면서 일단락이 됐었다.



온갖 쁘락치를 당해왔던 그녀는 귀마저도 밝아졌고,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지만 사과의 의미라며 한달간 송어찜을 배달한 그녀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럼에도 자신을 떠올리는 오하드를 보며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 박스에서 나와 오하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오~하~드~ 여기서 뭐해?"


"으아아아악!"



엘프도 아니면서 하이드처럼 나타난 그녀의 간드러진 기습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란 오하드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소리의 근원지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콜헨의 사탕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사탕가루를 다른 손가락으로 찍어 핥아먹는 금빛 눈동자의 밀레시안이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손인사를 해보이고 있었다.



"이거 벨바스트에서 파는 솜사탕사탕사탕이잖아. 나도 줘 오하드!"


"그게... 방금 봤잖아. 이젠 없어."



그러자 그녀의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오하드의 죄책감에 호소하듯 목소리를 떨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하네... 난 널 위해 여기 앉아서 비가 와도 낚시하고 비린내 참아가면서 손질도 하고 따뜻하게 조리해서 매일 같은 점심시간에 가져다줬는데..."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나도 어쩔 수 없다구... 아까 전에 내가 먹은게 다란 말야... 이거 봐."



여지껏 본 적 없는 밀레시안의 반응에 당황한 오하드는 안절부절하며 사탕이 없단 사실을 그녀에게 어떻게든 알리고자 입 안에 든 사탕을 보이며 말했다. 그의 의도는 분명 마지막 사탕을 자신이 먹었으니 방법이 없다- 라고 전하고자 했지만. 오하드의 입 속, 침이 잔뜩 묻은 사탕이 눈에 들어온 밀레시안은 금새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 옷소매로 맺힌 눈물을 훔치며 기쁜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아직 '하나'가 남아있잖아?"


"뭐? 아니, 없다니까?"


"아냐, 아직 여기에 하나 있어."



오하드는 순식간에 감정을 다잡고 알 수 없는 소릴하는 밀레시안에게 바로 반문했다. 하지만 금새, 벤치 너머에서 자신보다 긴 팔을 뻗어내리며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은 그녀의 눈이 풀려있었다.



"오하드, 네 입 안에 아직 하나가 '남아'있어."


"미, 미쳤어?! 으으... 저, 저리가!"



왕국의 수호자1지만 벤치너머에서 그를 잡은 불안정한 손 정도는 뿌리칠 수 있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이멘마하 골목으로 정신없이 도망쳤다. 타라만큼 넓은 이멘마하와 도시개발자의 기획이 겹쳐 유난히도 골목이 많은 거리를 뛰던 오하드의 머리 속은 갖가지 생각으로 뒤엉켰다.



'경비병에게 갈까? 아니... 아냐, 밀레시안은 에일레흐 영웅이라구. 인망으로든 힘으로든 나한텐 불리해. 그렇다고 계속 뛰어다닐 수도 없고... 그래, 일단은 숨자.'



오하드는 아직 시간이 일러(?) 출근하지 않은 베안루아 옆 골목 뒤로 작은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멘마하 문양과는 다른 기사단 같은 문양이 벽에 박힌 공터가 나왔다. 숨을 작정으로 들어왔는데 이러면 그녀에게 잡히는 건 순식간이다.



"오...ㅎㅏ드..."


"힉..."



오하드의 이름을 부르며 배회하는 밀레시안이 베안루아 앞을 지나자 오하드는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곤 쓰레기통 너머 골목으로 숨어 쪼그려 앉았다. 그녀가 아까 걸음을 옮길때마다 신고 있는 힐로 구두소리가 들려왔고,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바람소리만 들리며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오하드는 밀레시안을 따돌렸다고 생각하며 실눈을 뜨며 안도의 숨을 내쉴려는 찰나... 그의 옆에는 맨발로 쪼그려앉아 오하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자신의 힐을 다른 손으로 흔드는 그녀가 있었다.



"아..."



"마치 어릴 적에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었어. 너무 오래된 기억인데... 고마워 오하드. 그리고... 잘 먹을게."



밀레시안은 자신의 신발을 가지런히 내려놓곤 조용히 하란 듯 작은 바람소릴 내며 오하드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고 그의 입술을 훔쳤다. 오하드는 그녀를 뿌리치려고 밀치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의 손 끝에 닿는 건 밀레시안의 말캉한 우유 디스펜서였고 오하드는 처음 겪는 느낌에 놀라며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밀레시안의 리드에 따라 애처로운 소리만 낼 뿐이었다.



"으아... 잠, 밀레시안...! 잠까... 흡... 하읍... 읏..."



"하... 역시 벨바스트제야. 솜사탕사탕사탕 넌 내꺼야!"



오하드의 입 안에서 사탕을 뺏은 밀레시안은 난생처음 겪는 아찔한 체험에 힘이 풀려 상기된 표정으로 주저앉은 그를 뒤로한 채 깨는 소릴 당당히 외쳤다. 그래, 깨는 소리.







"아아ㅏㅏㅏ 밀레시안!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낯선 천장이다. 아르카나 협회에 협력하기로 한 뒤로 제공받은 숙소의 천장. 카르웬과 인사하고 쓰러지듯 잠든 내 침대.


온 몸은 식은 땀으로 가득하고... 다리사이가 이상하리만큼 축축해. 설마... 지려버렸나? 아니, 아닌데. 침대보는 멀쩡한데...


이게 뭐야. 끈적한...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비려!!


이거... 일단 씻어서 숨겨야겠어...


이게 뭔지는 나중에 콜헨님께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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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발꿈

글은 몇년만에 다시 쓰는거라 오탈자가 많을거야 근데 지쳐서 수정은 못하겠음 ㅎㅎ;;

오하드는 숫컷이야 정신차려 게이게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