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이 들어온건 김우진 디렉터 시절이다.

황선영 시절 마비노기 마비시키기 이후에 게임을 넘겨받아 다클라가 만연하여 8클라가 게임의 기조였던 시기.

심코상, 룬다 세이렌을 제외한 모든 던전이 8인 입장 가능이던 시절.

가장 좋은 돈벌이가 크리스탈까고 섀위에서 머리 박던 그때 그 시절이다.

언팩으로 유물지도, 그림자 구슬 지도를 전부 파악하던 그때의 그 광란의 시절.


2013년에 무슨 마비노기로 8클라를 돌려~ 하겠지만,

당시에는 브라우저 로그인이 아닌 클라 실행-로그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클라 실행이 엄청나게 쉬웠고(멀티노기 안써도 되었음),

프로세스의 캡을 설정하여 컴퓨터의 부하를 최대한 죽여버리고 플레이를 하는 식과 함께, 컴만 좋았으면 뭐든 가능했었다.


(14년 만우절 클라이언트 실행 화면-예전에는 이곳에서 패치노트와 이벤트 썸네일링크로 들어가고는 했다.)



(10주년, 민경훈이 기획한 마비랜드 업데이트 시절 클라 실행 화면, 생활의 효자인 플로라가 이때 처음으로 한정판매)


(몽라 업데이트 직전 클라이언트 로그인 화면)


민경훈이 개발팀의 중추에 있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역대 패치노트를 짚어보며 다클라를 죽인 역사를 보도록 하자.


1. 심연의 던전 시리즈.


 당시에는 레노베이션 시즌 1도 이뤄지지 않았고, 당연히 켈틱 무기도 없었으며, 채속 구파완 5채캐 파볼트 난사, 제로거리 바펠 매그넘 난사, 버그(라고 주장)로 풀린 속성 세공 듀얼건이 울라와 그림자의 메타의 정점이었던 시기다.

물론 샤말라 업데이트로 나왔던 로드미션-스카하,벨바인질,아브호위-부터 속성 세공이 적용되지 않았던, 저격성 너프를 감행했었지만, 체지 이중 계수를 기반으로 한 미친깡뎀 때문에 여전히 쓰는 사람들은 많았다.

타우네스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코상은 1인이니 패스하고, 심폐상을 보도록 하자.

이 시점 이후로 마비노기의 개발팀의 던전 디자인 기조는 "솔로 플레이 불가능"을 기반으로 한다.


특성, 디바인 링크는 커녕, 추장슬도 없던 시기.

즉시인식, 순간이동, 자폭, 근 활 마 3팅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정신나간 던전이었기 때문에, 초보시절에 멋 모르고 들어갔다가

'시발 이게 괜히 8인 던전이 아니구나' 했으며, 폭저가 대중화되었던 지금과는 달리 방 한번 쓸고 나면 시체로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사람 살리는데 피깃값이 무지하게 드는건 물론이거니와, 수틀리면 8인 전부 전멸하여 길드 채팅에 어깃좀 부탁하던 그런 던전이었다.


그때 말로는 '굇수' 들이 골드 받고 헌혈마 타이틀 따주는 그런 때였다.


보스의 기믹도 이때부터 바뀌기 시작하는데

반턴제 전투의 근간을 조까버리는 레이드 식 풀슈아.

무한 잡졸, 사냥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기믹이 여기서 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이사 듀크가 관짝 열었다가 딸깍 한번에 다시 관짝으로 들어가지만, 기존에 나왔던 잡몹 소환, 포션러쉬 하게 만드는 출혈, 때리면 사라지고, 나타나면 즉사 박고, 자체 무적 걸고 단체 라이프 드레인, 매혹 스킬로 강제 춤추게로 채널링, 버프 스킬 시간 날리는, 별 지랄같은 기믹 떡칠로 허구한날 누워서 나영석 러쉬를 하던 그 때의 듀크 공략법은.


"죽은척" 이었다.

보스방이 열리자마자 듀크에게 돌 던지고, 오른쪽 구석으로 죽은척을 한 다음, 보스를 폴링해서 잡는,  썩 유쾌한 플레이 방식은 아니었던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죽척 없는 자이는 배우기 드럽게 어렵거나 비쌌던 위탈을 강제로 배웠어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6랭짜리 회피 스킬로 이리아를 횡단하였으나 위탈이 안뚫렸다는 미친 소리가 전설로 내려온다)


물론 솔플이 안되었느냐?

당연히 아니지.

듀얼건과 구파완만 있으면 3팅몹도 제낄수 있었다.

당시의 크로스 버스터는  "근거리" 판정이었기 때문에, 활팅 몹에게 하나하나 크버와 윈드밀을 갈기면 슈터의 미친 이중계수때문에 머리를 개작살내는것이 가능했다.


2편, 알반 기사단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