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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마르크


철혈 공방의 문틈으로 망치 소리와 나사 돌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문을 열자, 산더미처럼 쌓인 기계 부품과 금속 소재 사이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비스마르크: 누구지? 아, 잠깐만. 맞춰볼게….


비스마르크: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으니 U-556은 아니겠고. 발소리로 추측컨대 체펠린이나 그나이제나우도 아니야.


비스마르크: 이렇게 늦은 밤에 혼자 찾아온 걸 보니 후보는 한 명으로 좁혀지는군.


비스마르크: 어서 와, 지휘관. 지금 손이 비질 않아서 환영인사는 못 하지만, 편하게 있어.


소리의 근원은 비스마르크였나. 그녀는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만드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비스마르크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아 지켜보기로 했다.


크르르릉!


비스마르크: 진정해. 지휘관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자, 착하지.


비스마르크: 흠. 미세 조정이 필요한데. 나중에 프리드리히에게 말해봐야겠어….


비스마르크는 연장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방 한구석에 놓인 커피메이커로 향했다. 그녀는 종이컵 두 개를 꺼냈다.


비스마르크: 커피 마실래? 상등품은 아니지만, 공방에서 즐기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지.


비스마르크: 나는 블랙인데 지휘관은 어때? 설탕이나 크림을 원하면 말해줘.


비스마르크: …됐다. 여기 있어.


비스마르크: 마지막 리필이야.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내일 업무에 지장이 올 테니까.


비스마르크: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 이 시간에 온 걸 보면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겠지?


갓 갈아낸 원두의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커피 향을 음미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첫 번째는 단순하다. “모항 시찰”이다.


비스마르크: 시찰? 뭐 보는 대로, 별거 없어.


비스마르크: 하지만 우리 철혈이 비밀이 많은 진영인 건 사실이지. 만약 내가 너라면 좀 더 주기적으로 점검해 보겠어.


비스마르크: 그야 나처럼 차갑고 포커페이스인 여자가 수장인 진영이니까.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겠지.


비스마르크: 그래…. 예를 들면, 저녁으로 뭘 먹을까 하는 계획 말야.


우스갯소리로 넘기긴 했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진지한 의도로 말했을 거라고 믿을 이유는 없었다.


비스마르크: 수장의 위치에서 밑 사람들을 돌보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야.


비스마르크: 너도 어떤 기분인지 잘 알 테지만. 명령을 내릴 때의 고양감부터,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의 불안감….


비스마르크: 내 경우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렸을 때의 공허함까지…. 나는 비스마르크인가? 아니면 철혈의 기함인가?


비스마르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염려하는, 엄격한 의무감을 가진 수장이다.


그 의무감으로 인해 그녀는 인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할 테지. 비록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초래된다 할지라도….


비스마르크: 당연히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만을 위해 이곳을 만들었어.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고, 공부할 수 있는 곳.


비스마르크: 네가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궁금하다면….


비스마르크: 네가 서 있는 이곳, 네 주변에 보이는 것, 그리고 지금 네 앞에 있는 사람. …이것들이 바로 해답이야.


검은 정장을 입은 철혈의 수장이, 작업대 위에 컵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비스마르크: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해야겠지.


비스마르크: U-556이나 티르피츠, 다른 철혈 동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거야.


비스마르크: 그러니, 고마워 지휘관. 모든 게 다, 고마워.


비스마르크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오늘 비스마르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이라도 그녀의 어깨의 짐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비스마르크: …미안. 계속 내 얘기만 했구나.


비스마르크: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기 왔다고 했지? 남은 하나는 뭐야?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오페라 티켓 두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비스마르크: 아아, 그래…. 곧 시작하는구나. 응.


비스마르크: 완벽한 타이밍이네. 오늘 저녁 커피는 아까가 마지막이라고 하기도 했고.


커피는 참으로 맛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뒷맛이 깔끔했다.


비스마르크: 그냥 물어보는 건데…. 오페라를 볼 때까지도 검은 옷을 고수할 필요는 없겠지?




● 래피


Zzz….


Zzz… Zzzzz… Zzzzzzzz….


???: 지휘관….


???: 일어나…. 일할 시간….



아얏!


얼른 정신 차리라는 듯이 손가락 두 짝이 내 뺨을 꼬집었다. 대체 누구야? 나는 범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래피: 지휘관…. 항상 죽은 듯이 자…. 콕콕….


래피는 내가 깨어났는지 확인하려고 손가락으로 나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


래피: 응…. 일어났어?


→ 일어났어.


→ 5분만….

래피: 정신 차려…. 일해야 돼….


래피는 다시 한 번 내 뺨을 꼬집었다. 뺨이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래피: 됐다…. 그럼 이제 래피 차례…. 잘래….


래피는 즉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꿈나라로 갈 준비를 했다.


갑자기 그녀가 왜 내 집무실에 왔는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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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 지휘관. 낮잠 자기 좋은 곳… 알아…?


래피: 아늑한 데… 알고 있으면 가르쳐줘….


언제부터인가 모항에 “낮잠부”라는 동아리가 생겨났다. 말 그대로 낮잠 자는 걸 좋아하는 함선들을 위한 동아리였다.


그런데 래피는 왜 새로운 곳을 찾는 걸까? 이미 학교 뜰, 도서관, 극장 등지에서 충분히 자고 있지 않나?


래피: 응. 그치만 래피는 혼자 조용히 자고 싶어….


래피: 그러니까…, 아는 데가 있으면….


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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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나는 결국 아무 곳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 결과 이런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래피: Zzzzzz…


물론 래피가 집무실에서 낮잠을 자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여기 놔둘 수는 없다.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와키: Zzz…. 그래서 여기가 새로 찾아낸 곳…?


니콜라스: 들어와. 난 신경 쓰지 말고….


쉬르쿠프: 후아암… Zzzzz….


시나노: …….


갑자기 낮잠부원들이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아마 노와키가 그 특유의 행운으로 래피의 위치를 알아낸 뒤, 이곳이 새로 찾아낸 낮잠 장소라고 판단한 것일 테지.


이미 내쫓기에는 너무 늦었다. 할 수 없이 낮잠꾸러기들을 위해 오늘만 집무실을 양보하기로 했다….




래피: 으음…. 일어날 시간….


노와키: 후암…. 왜 그래, 래피…?


니콜라스: 하으음…. 여기서 잘래….


쉬르쿠프: 흐응? 어라….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래피: 미안…. 여기는 래피 혼자만 있어도 꽉 차…. 다 같이 있으면 지휘관 일 못해….


시나노: …아아. 미안하구나….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깬 래피는, 낮잠꾸러기들을 한 명씩 집무실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래피: 이제야… 조용히 잘 수 있어…. 하아암….


래피: 잘 자…. Zzzzz….


래피는 이곳을 새 낮잠 장소로 만들 작정인 것 같았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 감기라도 안 걸리게 뭐라도 덮어 주자. 나는 코트를 집어 조심스레 래피에게 덮어 주었다.




● 아마기


 ~아침 꿈의 풍경

창문 밖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졌다.


눈이 감길듯 말듯 의식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을 무렵, 나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놀라 현실로 되돌아갔다.


아카기: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게 이해가 가세요, 아마기 언니? 어찌 이리 무례할 수가!


아마기: 어머나….


아카기: 아마기 언니 덕에 유니온과의 사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 문제가 터지고 있어요….


아카기: 하지만 이까짓 것으로 지휘관님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죠. 저는 그렇게 지각없는 여자가 아니랍니다.


아마기: 자, 아카기.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이번에는 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카기: 다시 또 화해하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아마기: 당신과 카가는 분명 잘 지낼 수 있을 거랍니다. 후후훗.


아카기: ……좋아요.


아카기: 어머, 곧 회의 시작할 시간인데…. 지휘관님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시나?


아마기: 지휘관님께서 쉬도록 내버려 두겠어요? 어제 업무는 꽤나 고됐답니다.


아카기: 언니께서 그렇다면야….


아마기: 그렇게 부루퉁하지 말고요. 자, 가세요. 카가와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


기억났다. 오늘은 비번이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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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기: 미소시루가 식지는 않았나요…?


늦은 아침을 준비해 준 아마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늦잠을 잔 바람에 아카기와 아마기랑 아침 먹기로 한 시간을 놓친 것 같다.


아마기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고소한 미소시루와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거침없이 흡입했다.


아마기: 후훗. 입에 맞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지휘관님.


아마기: 최근에 많이 바쁘시길래 제가 그만큼 건강을 챙겨드려야 되나 싶어서요.


아마기: 아니면 매일 아카기의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게 될 거랍니다. 아마기의 친절한 조언 한 마디어요~


바가지? 하긴 아카기라면 강제로라도 쉬게 하겠지….


그래도 일리는 있다. 아마기에게 수고를 끼칠 수는 없지….


아마기: 제 건강을 돌보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지휘관님께서도 스스로를 돌보셔야죠. 후후훗.


아마기: 그러고 보니 오늘은 비번 날이죠…? 잘 됐네요. 잠깐 산책이라도 하실까요?


아마기: 물론 피곤하시다면 좀 더 주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별 다른 계획이 없다. 산책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 너는 어때, 아마기?


아마기: 어머, 저를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괜찮습니다, 저는.


아마기: 보시다시피 말짱하답니다. 마음 놓으셔도 되어요 지휘관님. 후훗.




아마기: …"아~" 하세요~


아마기가 조심스레 내 입에 카와시모찌를 넣어 주었다.


아마기: …겉보기에는 만쥬와 비슷하지만 훨씬 맛있답니다~ 후후후.


아마기: 지휘관님. 입에 맞으시면 더 드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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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다 먹고 난 후, 아마기와 나는 방을 정리하고 같이 소파에 앉았다.


전장에서 사활을 걸고 결단을 내리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이런 순간은 꿈만 같다.


아마기: 이렇게 아카기와 함께 걸어가고, 당신 곁에 머물며 평화를 누릴 수 있다니…. 정말로, 마치 "꿈" 같지 않나요?


아마기: 아직 아득해 보이기만 하는 행복한 꿈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현실로 다가올 거랍니다. 지휘관님께서 바라시는 한….


아마기: 저희의 과거를 이해하고 운명을 초월하세요. 새로운 유대를 맺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세요.


그녀의 덧없는 존재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아마기: 부디 잊지 마세요, 지휘관님.


아마기: 당신께서 바라는 모든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아마기: 그것은 큐브가 아니라,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타이핑해서 올려주신 분들


근데 비슴 래피 스토리 제목 좀 알려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