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툭 툭 툭 툭


책상을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게 지속적으로 울려퍼진다.


“흠….”


고민뿐이었다.


탈레스와의 산책을 마친채 자리에 앉은채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내가 있는 곳은 꿈이 아니라 이세계다. 아마도 내가 플레이 하던 그 게임이 맞는듯 하다. 다만 게임을 하면서 차원의 도서관이라는 것은 경험해 본적이 없다. 


‘내가 놓쳤던 걸까? 아니면…’


두번째로 내게 사서를 할 재능이 있고, 탈레스에게는 이 재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긴한데…’


그닥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여기 있으나 원래의 작은 방에 있으나,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삶따위 별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잖아… 자신의 필요에 의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


지금 필요해 보일때는 내게 간절하게 부탁하지만 점점 부탁이 명령이 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것만 같았다. 마치 그들처럼


그때 내가 내게 물었다.


“돌아갈 거야?”


“아니. 그럴 수 없지.”


문득 떠오른 질문이었지만, 핵심이었다. 결국 돌아가는 것에 비하면 사서를 하는게 더 나았다.


그때 리타가 빈 접시를 들고는 날아와 책상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티타임을 다 즐긴 모양이었다.


“리타. 이름이 리타 맞나요?”


“...응 리타 맞아. 네 이름은 이현이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내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사서... 할 거야?”


아이 컨택과 함께 질문이 날아왔다. 당황한 나머지 눈길을 피했지만 그곳에 또 다시 따라와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


“사서… 안할 거야?”


새의 지저귀는 소리는 다시 귓가에 닿았다.


“.... 하는게 좋을까요…?”


“아니.”


거의 아무 생각없이 물었던 질문에 부정의 답이 돌아오자 나는 처음으로 리타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사서. 하지마. 내가 그 지옥같은 방이 아니라 다른곳으로 꺼내 줄테니까. 하지마.”


그녀의 결연한 표정에서는 무언가 담겨있었고 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요?”


“힘든 일이야. 한번 받으면 쉽게 끊을 수 없을 뿐더러 단순하게 책만을 보는 자리가 아니야. 너라는 존재가 점점 흩어지고, 그 와중에 남은 너의 의지는 점점 고난 받기만 하는 자리야.”


“... 탈레스는 그런 자리를 왜 나에게 제안한거죠?”


리타는 내 말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는 한숨 쉬며 말했다.


“후우…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도서관장님의 생각을 내가 어찌 알겠어.”


한숨을 연거푸 쉬는 그녀였다. 


문득 든 생각은 내가 동경하던 메이플 월드에서 그냥 모험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 내가 메이플 월드에서 그냥 살아갈 수 는 없는걸까요?”


그러나 리타는 이 제안 또한 부정으로 답했다


“... 안돼. 너는 너무 약하고 밖은 너무 위험해.”


“제 죽음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내 말에 리타는 또 다시 한숨쉬고는 말했다.


“목숨은 소중히 하라고…무엇보다도 이 도서관의 규칙과 어긋나기 때문에 너를 이대로 밖에 내보내 줄 수는 없어.”


“그건 아쉽네요. 그럼 이세계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사서 뿐이지. 아이러니 하게도.”


‘이 세계가 내가 동경하는 세계인 메이플 월드라고 한다면…

내가 부러워하던 화면 속의 내가 이곳에서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사서… 해보고 싶어요.”


내 질문에 리타는 발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런 간단한 각오로 이루어져도 될 직업이 아니야!”


눈에서 안광이 보일만큼 진심 어린 그녀의 말에 내 어렴풋한 각오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내게 사과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어중간한 각오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게는 남은 선택지가 크게 없었다. 게다가 하나 추측되는 것이 생겼다. 나는 리타의 검은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리타도 도서관장님이 저를 탐색할때 보고 있었나요? ”


“... 맞아. 네가 감금되어 사육당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지. ”


“....감금…사육… 맞을지도요.”


“아니 맞아. 그건 감금 사육이야.”


“리타가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 속이 시원해 지는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라면, 내 상태를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닥 비밀도 아니었다.


“사실 저는 제가 3인칭으로 멀리서 보여요. 마치 제가 자신이 아닌것처럼요.”


내 말에 리타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그건 병이야.”


“아마도요. 그런데 저를 볼때 리타는 무슨생각을 했나요?”


“...불쌍했어. 꺼내주고 싶었지. 근데 방법이…”


“저는 이미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아니 했었어요. 나갈 방법은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도 제 몸은 따라주지 않았거든요.”


“....”


“이곳에 와서 지금 리타와 대화하고 있는것도 사실 기적에 가까워요.”


“.... 미안해.”


“아뇨. 무슨소리예요. 저에게 사서를 권하는게 마지막 남은 구제책이었던 거잖아요?”


“....미안해. 그러지 않아도 돼.”


“사서. 힘든 일이군요? 그런데도 그 방법밖에 없었고, 그래서 저를 불러드려서 제안한다. 적어도 쉬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맞죠?”


“....나는 반대했어. 이곳은 그 어둡고 자그마한 공간과 반대인 것 같지만 지옥임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감금, 사육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너는 묶여있지 않지만 묶여있을 것이며, 사육당하는게 아니지만 강아지처럼 다뤄지게 될거야.”


“어휴… 무섭네요. 푸후후…”


“하지마…. 미안해.”


“저는 믿고 싶네요. 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온기를. 제가 잊어버렸던 사람의 온정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리타씨…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사서가 되겠습니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고 계속된 마주침에 그녀는 내 결심을 깨달은 듯 내게 말했다.


“알겠어.”


“...그럼 이제 탈레스를 찾으러 가면 되나요?”


“아니. ‘아샤’라고 불러볼래?”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녀의 말을 따랐다.


“아샤!”


그러자 도서관 가운데 보이던 큰 책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1

 

“사용자 확인. 불명. 새로운 사용자인가요?”


내가 대답하려고 하자 어느새 내 어깨에 앉아있는 리타가 말했다.


“아니. 초대장 목록 중 이현. 확인해봐.”


“초대장 발송 목록 9건 중 사용자 ‘이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용자 말고 직원.”


“직원 스카웃용 초대장 발송 1건 발견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해.”


“이 현, 나이 18세 성별 남, 신수국제학교 2학년, 부 모 현재 모두 사망, 동생 1명…”


“아니 프로필을 읽지 말고! 계약서 꺼내봐.”


“계약서를 확인합니다.”


거대한 책 안에는 수많은 조항이 가득 찬 계약서가 담겨 있었다. 조항은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이를 다 읽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 이거 혹시 다 하면 안되는 것들인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대부분 세부 조항들이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라, 너에게 지정되어있지 않은 조항이 많거든.”


“조항이 지정되어있어요?”


“과거엔 사서가 많았고, 지식을 탐한 자들이 세상에 벌인 일이 많았거든.”


“... 다 읽어야 되겠죠?”


“아니. 그럴리가. 정말 한세월 걸릴껄?”


그러고는 리타는 거대한 책에게 말했다.


“아샤! 이현에게 해당되는 것만으로 줄여!”


그러자 수많은 조항이 사라지고 조항은 간결하게 정리되었다. 


“중요한 조항은 여기 4개정도만.”


리타의 날개로 가리킨 조항은 간단한 것이었다.


xx. 도서관의 사서는 외부에 영향을 덜 미치게 활동하는 것을 권고한다.


xx. 도서관에서 얻은 지식을 외부에 유출하는 것은 금지한다.


xx. 도서관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범위를 제한한다. 제한은 다음과 같다.


이후 세부 범위 제한사항이 대략 한페이지 가량 적혀있었다. 요약하자면 가족이나, 연인, 식구정도의 거리만 가능하며 이외에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제한만 가득한건 아니죠? 보통 사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건가요?”


“자 여길 보면 알 수 있듯, 사서는 모든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자신에게 너무나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사서가 되어서라도 하려는 거군요.”


“그런 것도 있고, 명예직이기도 했어. 이제는 아니지만.”


“동의 하려면 어디에 사인해야하나요?”


“아니 너가 네 이름을 말하고 선언하면 자동으로 기록되면서 넌 사서가 될거야.”


“...그냥 선언만 하면 되나요?”


“이곳은 세상에 기록되고 남는 모든 것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곳이야. 너의 말이 그대로 계약서의 결과로 남게되는 거야..”


“어떻게… 선언을…”


그녀는 날개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원하는대로”


“.....”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으니 리타는 고개를 내게 치켜들고는 말했다.


“안해도 괜찮아 이현. 사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꼭 너일 필요는 없는걸?”


“아뇨. 저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구해준 두 분에 대한 온정을 위해서라도 사서가 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방 밖으로 보내줄 수는 있어.”


“의미 없어요. 다른 곳에 보내놓아도 다시 그들에게 감금되어있는 모습을 보게 될 거에요.”


“.....”


“이곳에서 강해지겠습니다. 그 후에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그들의 범죄를 선고하러.”

나는 선언한다.


“나 이현은 이 메이플 월드의 차원의 도서관의 사서가 되겠습니다.”


내가 말이 금색 빛이 되어 종이에 적혔고, 이는 계약서가 되었다.  

종이는 공중에서 두 조각이 되었고, 하나는 내 손에 나머지 하나는 거대한 책으로 날아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환영합니다. 이차원의 사서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