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탁.

 

탑처럼 쌓인 책위에 다 읽은 책을 올려둔다.  책으로된 탑은 이미 내 앉은 키랑 맞먹을 정도로 꽤나 높게 쌓였다.

 

“그래도 세 쌍둥이 탑보다는 낮네.”

 “세 쌍둥이 탑?”

 

언제부터 있었는지 옆에 리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예전 방에서 지낼때, 먹고 나서 용기들이 쌓여서 똑같이 생긴 탑이 3개 생겼었어요.”

 “안치웠어?”

 “밖에 못나가니까… 버릴 공간도 따로 없고, 공간차지 하니까, 그냥 냄새 안나도록 닦아서 쌓아뒀었죠. 나중에는 닦을 티슈도 없어지고.. 닦지도 못하고 그대로 쌓아만 뒀네요.”

 

내 말에 리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냄새 안났어?”

“그럴리가요.”

“...미안. 그런 공간에서 더 빨리 꺼내줬어야 하는데, 괜히 내가 반대해서..”

 

나는 손사래 치며 사과를 거절했다.

 

“그게 무슨소리예요? 리타와 탈레스님이 못 찾았으면 지금 제가 이렇게 대화하거나 즐겁지도 못할텐데요. 고마워요 리타씨”

 

잠시 정적이 있으며 나와 리타는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리타를 보며 웃었고, 리타는 어두웠던 낯빛이 조금은 밝아진 듯 보였다. 그때 마치 새가 날아가듯 탑으로 쌓여있던 책들이 일사불란하게 날아간다.

 

 ‘이것만 봐도 그 작은 방 보다는 몇배는 좋네…’

 

 “후우…”

 

사서가 되기로 마음먹고 사서가 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앞으로 한두권만 더 읽으면 될 거야.”


평범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시간, 평소에 화면 속 캐릭터를 움직이던 일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채 벌써 2일 가까히 지났다.

 

“...듣던 말 중 반가운 소리네요.”

 

아직 내가 너무 약하기도 했고, 나에 대한 정보를 도서관이 더 수집해야 했기에, 잠시 독서를 하며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곧 달라지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다.

 

“안먹었는데도 배고프지는 않네요. 보통 이렇게 며칠동안 안먹으면 한번씩 눈이 감기던데. 신기하네요.”

 

“...그건 배고픈게 아니라… 혹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들어 보긴 했지만 실제 밥은 아니잖아요.”

 

“너희 세계와 달리 이곳에는 마력이 가득찬 공간이기 때문에, 빈 위장이 아파할 뿐 몸을 움직일 에너지가 부족해서 못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어.”

 

“... 그런가요? 진짜 제가 하던 게임 속 캐릭터 같네요.”

 “그 화면 속 세상도 여기를 본따 만든 것이니까.”

 

 ‘밥을 굳이 안먹어도 된다니…’

 

동경하던 세계에 왔음을 실감하고 있었으나 리타는 내게 현실이라는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해. 보통 실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위장이 아프다고…”

 “...위장이 아파요?”

 “네가 너무 금식에 익숙해서 그런거야. 보통 위장은 음식이 안들어오기 시작하면 아프고, 오랜기간 안먹다가 먹으면 또 아파.”

 “...”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리타를 바라보고 있자 리타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런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있지 마… 네가 지금 힘들지 않은건 위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거라고. 이현 너의 몸 상태는 그정도인거야.”

 “심각한 건가요?”

 “바로 병원에 가야할 정도?”

 “아…그럼 어떻하죠?”

 “지금 너를 분석하면서 회복도 시키고 있어.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

 “...고마워요.”

 “그렇게 매번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당연한거라고. 널 학대하던 사람들이 잘못하던 거야.”
“....고맙..”

 

그녀는 빠르게 깃털로 내 입을 막으며 말했다.

 

“금지.”

리타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리타는 감사 표현에 약한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고마워서 계속 말이 나올것 같았기에 나는 대화의 화제를 돌려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정확하게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그때 그때 다르지.”

 “저번에는 책을 읽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럼 계속 이렇게 읽고만 있으면 되는건가요? 이거 거의 판타지 소설들인데요?”

 “그야 그렇지. 지금 읽고 있는건 그냥 평범한 책이니까. 나중에 진짜 책을 읽게 될 거야.”

 “진짜 책이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책 빙의. 알고 있어?”

 “소설 속 인물에 빙의되는 것 말인가요?”

 “잘 알고 있네. 그것 처럼 네가 한 역사 혹은 기록 속의 인물이 되어서 그 상황을 체험하게 되는 책. 그게 이 도서관의 진짜 책이야.”

 “지금은 못 보나요?”

 “응.”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이유는 안 궁금해?”

 

“음…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아직 시기 상조거나, 준비를 해야한다거나.”

 “정확하게는 너 아직 몸에 에너지의 총량도 모르고, 레벨도 몰라서 그래. 게다가 네 몸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고, 책 선정도 해야하고 할 게 산더미 같지.”

 “오…”

 “미안.. 사실 이세계에 초대장을 보내본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사서까지 된 것도 처음이라 도서관 안에서도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

 “이 세계의 모든 지식이 모여드는 곳인데도요?”

 “네가 이 모든 세계에 있는 사례 중 첫 번째니까.”

 

그때 내게로 책 한권이 날아와 부딪혔다. 

 

퍽! 

 

마치 자아를 가진 책처럼 내 옆에서 계속 표지를 팔랑 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잡아달라고 외치는 것 처럼 보였다.

 

“괜찮아!?”

 

리타가 당황해서 내게 소리쳤지만, 약간 욱신거리는 정도였다.

 

“괜찮아요. 리타씨. 여기 책들은 자기 의지로 날아다니며 정리되는 건가요?”

 “그럴리가. 보통 책은 이 도서관의 의지가 움직이는 거라고.”

 “아샤가요?”

 

“아샤는 정리해주는 도서관의 의지 중 일부분이야. 우리랑 소통하기 쉽게 만들었을 뿐이야..”

 

보라색 표지에 아무런 제목조차 담겨있지 않은 한 책. 책은 내 주변을 맴돌며 계속 소리치는 것 같았다. 물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리타가 격양된 목소리로 아샤를 불러냈다.

 

“이게 무슨짓이야!? 아샤?”

 “죄송합니다. 리타.”
“아니 내가 아니라 이현한테 사과해야지!”
“죄송합니다. 사서 이현.  책의 의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약간의 제어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책에 의지가 강해요? 책에도 의지가 있는건가요?”

 “그렇습니다. 억울함을 토로하며 죽은 책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며, 혹은 무언가를 바라는 책은 산더미처럼 많죠.”

 “그럼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의지가 강했던 건가요?”

 “여러가지 특수성이 겹쳤다고 보입니다.”

갑자기 아샤는 말을 멈추었다. 아샤의 인터페이스 안에 보이는 수많은 글자들이 전부 원인으로 추측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

 “동일한 마력파장입니다.”

 “동일한 마력파장? 그건 불가능해!”

 

리타는 당황한채 이상하다는 듯 손가락질 했다. 

 

“그게 뭐죠? 동일한 마력파장?”

 

리타는 나와 아샤의 인터페이스를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약간 마력의 지문같은 거라고 보면 돼. 절대 겹칠리가 없는 거라고.”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는…건가요?”

 

내 말에 리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샤에게 물었다.

 

“원인으로 추측되는게 있어?”

 “아직 명확하게 추측되는 원인은 없습니다.”

 

리타는 아샤에게 거의 쏘아붙이듯 말했다. 물론 그저 책일뿐인 아샤가 당황하거나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사서 이현.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 이유는?”

 

“보통 마력 파장이 비슷한 책일 수록 적응도가 더 높습니다. 당신이 책 속에 들어가서 적응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나와서의 적용도 간편할 것입니다.”

“들어가서 적응? 나와서 적용?”

 

내가 아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옆에있던 리타가 끼어들었다.

 

“그건 한번 들어왔다 나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다시 아샤를 쏘아붙였다.

 

“그런데 아샤? 아직 이현이 독서를 경험하기에는 이르지 않아?”

 “그것까지 감안했을때 마력 파장이 같은 이 책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우려사항으로는 심한 레벨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

 

뒤에는 어느새 다가온 도서관장 탈레스가 서있었다.

 

“이현 군의 재능은 보통 재능이 아닐세. 저 정도면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정도이지.”

 

탈레스는 내 재능을 매우 고평가하고 있었다. 내 재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확신이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기대된다고도 볼 수 있지.”

 

“하지만 탈레스님! 아직 동일한 마력 파장일때의 독서의 결과에 대해서는 검증된 것이 없어요!! 게다가!”

 

“게다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리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추고는 말을 돌렸다. 탈레스는 이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다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독서를 시작할 때가 다가왔네. 이현 군.”

 “...사서로서의 첫 임무인가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네. 우선 자네가 어느정도 강해져야 하니 말이네.”

 “제가…강해지는게 이 도서관에, 리타씨에게, 그리고 탈레스에게 도움이 되나요?”

 “물론이네.”

 

나는 각오를 다졌다. 리타의 말을 들어볼때 그리 순탄하기만 한 독서는 아닐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대로 멈춰 있기만 하는 것도 싫었다.

 

‘우선 은혜를 갚는다.’

 

나는 공중에서 계속 날갯짓하던 책을 붙들었다.  책은 기다렸다는 듯 접히며 내 손에 안착하더니 마치 얌전한 책처럼 가만히 있었다.


“앉아서 편하게 책을 보면 되네. 어느새 주변은 바뀌어 있을것이네.”
“....”

 

“문제가 생기면 리타가 자네를 꺼내줄테니 걱정하지 말게.”

 

리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책 위에 앉은채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말했다.

 

“리타씨. 다녀오겠습니다.”

 “이현… 미안해.”

 “또 미안하다 그러시네. 리타씨도 미안 금지예요..!”

 “....하지만!”

 “고마워요!”

 

리타에게 급하게 말하고는 책을 펼쳤다. 리타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가 이내 사라졌다. 

 

 짙은 보라색의 책은 열리며 주위를 침식하기 시작했고, 내 눈은 작은 방에서 지내다가 배고팠을 때처럼 스르륵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