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스턴 개새끼"

"또 욕하시는 거에요?"

"이런 곳에 불러놓고 무책임하게 도망친 놈인데 매일매일 욕해야지."


나름 3대독녀에 집안의 유일한 기대주였다고. 공부도 나름 그럭저럭했었고.

뭐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 안하셨던거 같지만.


"맨날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면서 노셨다고 하지않았어요? 침대에서 맨날 뒹구셨다고 했는데"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덮어 몸을 편안하게 한채로 세상에 대해 사색을 즐겼다고 말했던거로 기억하는데."

"그게 그거죠 뭐."


아리엘 이녀석. 눈치가 좀 빠르다. 그리고 명색이 부하인데 나에 대한 존경심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모범스럽지 못한 부하다 정말.


"저 정도면 나름 충실한 부하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한데요.."

"생각 좀 그만읽으라니까?!"

"아 실수. 습관이라서요."


정말 마음에 안드는 부하다 정말.


"주인님! 파티하나가 더 오고 있습니다!"

"봐봐 아리엘, 내가 많은걸 바래?렉스의 반정도로만 대하면 된다니까?"

"상당히 어려운데요? 저걸 어떻게해요."

"내가 너에게 뭘 바라겠냐... 렉스, 파티 구성은 어떻게 되는데?"

"전사 하나에 비숍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적당히 놀아주다가 죽은척하고 보상 던지는거 이제 익숙하지? 나머지에게도 전달하고."

"네 알겠습니다!"


키르스턴이 검은마법사를 소환하려다가 실수로 소환되고 도망친치 10년째. 

돌아갈 방법은 아직도 모른다. 그냥 부하들과 함께 우릴 사냥하겠다고 오는 파티들과 적당히 놀아주고 당해주는 척하면서 보상을 적당히 만들어서 던져줄 뿐. 아마 그들은 우리가 계속 리젠되는 몬스터정도라고 생각할거다.

이번 파티도 그렇겠지. 그냥 적당히 놀아주고 보상 던져주면 돌아갈거다.


"너네가 그 애들이구나?"

"대적자님, 지성없는 몬스터에게 그렇게.."

"아니야. 얘들 지성있는 얘들이야. 대화도 가능할걸?"


... 이번 파티는 좀 특이한 거 같다.


"얘들아, 나혼자만 말하는 건 좀 뻘쭘한데 대답해주면 안되겠니?"

'...어떻게 해야해요? 일단 대화를 할까요?'

'... 잠깐만 나도 좀 생각해보고. 그냥 이상한 파티일수도 있잖아?'


10년째 이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귀여워 보인다고 잡아가려고하는 놈들도 봤고, 우리가 파티원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그냥 하소연하러 와서 벽보듯 말하다 가는 파티도 봤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파티는 단언컨데 처음이다. 그냥 정신이 좀 이상한 파티인가. 옆에 있는 비숍은 정상적인거같은데. 


"아, 뒤에서 보고있는 너도 나와서 같이 대화하는거 어때?"


... 이 녀석. 이상한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세히 알고있다.


"... 아리엘. 내가 직접 얘기해볼게."

"오 직접 얘기할 수 있겠네. 한번 직접 얘기해보고 싶었어. "

"우리가 지성이 있고 대화가능하다는걸 어떻게 알았지? 10년동안 티를 낸적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키르스턴의 일지를 찾았거든. 거기서 너 이야기가 나오더라."

"아"

"혹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 돌아갈 수 있다면. 당연히 돌아가고 싶지? 가족이랑 10년째 생이별 중인데."

"돌아갈 만한 방법을 알 거 같은데. 생각있어?"

" 돌아갈 만한 방법이 있다고?"


10년 간 시간의 신전에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나름 여러가지 알아봤는데, 방법이 없는 거 같아서 포기했었는데?

아리엘도 방법은 모른다고 했고, 륀느도 힘들거같다고 했었는데?


"... 어떤 방법인데?"

"검은마법사가 곧 봉인에서 깨어나려고 한다더라. 검은 마법사를 소멸시키면 그가 소멸할때 메이플 월드의 차원이 뒤틀릴 텐데, 그때 몇몇 차원이랑 엮이게 될 가능성이 높아. 아마 그때 너도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 그가 초월자인건 알고있는 거지? 봉인되기 전에도 그는 다른 초월자와는 격이 달랐어.  다른 초월자인 알리샤도 실종 상태고, 륀느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을텐데?난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힘의 상당수를 잃었어. 내가 본래 힘을 다 가지고 있고 다른 두 초월자들이 멀쩡했더라도 메이플 월드의 힘을 전부 모아야 높게 쳐줘도 반반이야.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그를 소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높게 쳐줘야 재봉인하는게 한계일텐데?"

"난 가능하다더라. 대적자라서 그를 소멸시킬 수 있는 운명을 타고 났다나?"


... 비숍이 한 말은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대적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었구나. 실제로 대적자라면 그를 처치할만한 가능성이 있긴하다. 애초에 다른세계에서 넘어왔다보니 메이플 월드의 한계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으니, 초월자의 새로운 자리로 각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확실히 너라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긴 하겠네. 하지만 그게 나를 찾아와서 이런 사실을 말해줄 만한 이유는 못되는데?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렇게 높은 확률도 아니야. 그리고 나는 너를 도와서 검은 마법사를 잡으러 갈 수도 없고. 여기까지 발걸음해서 나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것보단 동료들을 더 찾고 메이플월드의 규합을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두는게 더 효율적일텐데?

설마 알량한 동정심을 가지고 말해주려고 온 건 아닐테고. 그런 물렁한 마음가짐을 가지고서는 검은 마법사를 소멸시키려는 건 너무 그를 우습게 보는 거라고."

"물론, 너 정도면 검은 마법사가 소멸했을때 넘어갈 방법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겠지. 사실 다른 용건도 있어서 온거라"

"무슨 용건인데?"

"아무리 내가 가능성이 있다곤 해도. 지금은 택도없이 약하단 말이야. 그래서 너의 가호를 받아두는게 좋을거같아서. 기왕이면 동료에게도 해주면 좀 좋고? 가호도 좀 괜찮은거로 주면 좀더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

".... 참 색다른 목적이네. 좋아, 나에게도 나쁠건 없는 제안이니까. 둘 다 가까이 와봐."


... 대적자가 참 가벼운 성격이네. 아니, 머리가 안 돌아가는건 아닌거같으니 그렇게 보이는 건가?


"나름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것중에선 괜찮은 가호로 줬어. 뭐 시간나면 너희가 성공하기를 한번씩 빌어줄게."

"고마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꼭 성공할게! 리아도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감.. 감사합니다. 꼭 성공하도록 할게요."

"감사 인사는 됐어. 앞으로 바쁠 텐데 어서 돌아가고. 1초 1초가 소중할텐데."


비숍의 이름이 리아였구나. 예쁜 이름이네. 말하면서 대적자를 힐긋힐긋 보는거보면... 저렇게 대놓고 티내는데 모를 거 같은 눈치는 아닌데. 모른척 하는건가.


"알았어. 우린 이만 가볼게. 리아야 우린 이제 가보자."

"저흰 이만 가볼게요. 감사했습니다.."

"그래, 잘가라. .... 대적자, 충고하나만 하겠는데, 너무 오랫동안 고민해서 선택하는게 안 좋을때도 있어. 너무 오래 모른 척 하는것도 좋지는 않을거야."

"... 충고 고마워. 진짜 가볼게."


대충 말뜻은 알아들은 거 같네. 뭐, 시간날때 앞날을 빌어주는 것 정도야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파티들이 안 오는 심심한 타이밍에 한번씩 빌어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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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자님. 방금 만난 자가 도대체 누구길래 직접 가호까지 받은거에요? 키르스턴의 일기를 보고 그냥 바로 찾아왔잖아요."

"아. 내가 리아에겐 제대로 설명을 안했구나. 미안,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다보니. 제대로 설명할 생각도 못하고 급하게 찾아왔네.

한번 직접 읽어볼래?"

"네? 네!"


키르스턴의 일기

...(중략) 차원문을 열어 과거에서 초월자를 데려온다는 계획은 거의 완벽했다. 실행 역시 완벽에 가까웠고, 결과물도 어떻게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검은 마법사님을 불러오는데 실패했다. 그란디스와 메이플 월드를 제외한 다른 세계가 있을 줄은, 그리고 그 세계에 초월자가 있을 줄은. 전혀 다른 세계의 초월자를 불러왔다는 걸 깨닫자마자. 급하게 차원문을 닫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도망쳤다. 다행히 넘어오면서 대부분의 힘을 봉인당한거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월자다. 다시 돌려 보낼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
(중략) 실패했다. 그날 차원문을 지워서 흔적을 없애버린게 치명적인 실수다. 그녀가 살고있던 세계의 좌표를 도저히 알 수 없다. 안정적으로 차원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좌표가 필수적인데, 그때 차원문에서 좌표라도 알아냈었어야 했다. 이제 방법이 없다. 검은 마법사님의 계획이 성공하셔서 차원이 흔들리게 된다면.. 그때 알아서 돌아가리라 믿는게 낫겠다. 힘 대부분을 잃어버린 상태니까, 직접적인 방해는 배제하고 계획을 진행해야겠다...


"그럼.. 그녀는..?"

"여기도, 그란디스도 아니고 전혀 다른 세계의 초월자라는 거지. 그렇기에 보자마자 가호를 받으러 간거고, 생각보다 큰 설득 없이 호의적으로 반응해줘서 다행이야. 에레브에가서 여제에게 이 일기는 전달하는 편이 낫겠지. 여제랑 나인하트도 바보가 아니니 아마 굳이 건드리려고 하진 않을꺼야. 그런의미로 다음 행선지는 에레브겠네. 리아, 어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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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들에게 가호를 준 이유는 뭐에요? 검은 마법사가 부활하면 그의 계획을 빠르게 돕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게 낫지 않아요? 그게 훨씬 더 빠르고 편한길일텐데."

"아리엘, 초월자가 아무리 타락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의 원천인 세계를 이유없이 부수려고 하지 않아. 아마 그가 노리는게 따로 있겠지. 거기에 내가 개입하는 것보단, 그냥 방관하는게 나아. 아니면 그냥 대적자가 그를 무찌르는 걸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에게 가호를 주는게 더 나았다는 거지."

" 그럼,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무슨 뜻이에요?"

"글쎄?"


나는 일어나서 신전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려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


"뭐, 사실 그를 도와주는게 앞에 있던 이유만은 아니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서."

"... 재미있다니요?"

"그가 만약 검은 마법사를 잡는다면, 나 말고도 그도 선택해야겠지. 메이플 월드의 인연을 버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아니면 원래 세계에 대한 인연을 포기하고 여기에 있는 새로운 인연들을 더 소중히 생각할지..  그 선택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을 거 같거든. 그런데 그가 죽으면 그런 선택은 못 보잖아?"

"... 핑크빈 님은 얼굴만 보면 천사신데, 참 악질 같다니까요. 여기서 변해있는 모습은 귀엽고, 원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다우신데, 속은 아주 악질이에요."

"예쁘다는 칭찬은 고맙네. 하도 오랫동안 큼지막한 햄스터로 변해있다보니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되게 오랜만에 듣는 예쁘다는 말인거 같아서."

"그럼 평소에도 그렇게 지내시던가요. 변해있는 모습도 귀엽긴 한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보는게 좀 더 좋을 거 같기도 한데."

"에이, 그럴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그리고 변해있는 모습이 힘 소모량이 적어. 나름 효율적인 모습이라고? 아, 도착했다."


이 세계에서 좋은 거는 하늘이 원래 세계보다 더 예쁘다는 것이다. 특히 밤하늘이. 별들이 훨씬 많아서 보는 맛이 있거든.


"아리엘, 이리 와서 옆에 앉아. 밤하늘을 보면서 과연 그가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지, 한번 같이 예상해볼래?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옆에 두고 애써 모른척 하고 고민하고 있는 우리의  고민 많은 대적자님이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핑크빈님은 악질이 맞아요."

"글쎄, 그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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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짧은 단편쓰려고했는데 왜 5천자가 넘었지 3천자만 쓰려고했는데.)

(핑크빈 이세계인것만 나오고 다른 설정이 없는 것 치고 너무 강한거같은 설정이라 초월자 설정 임의적으로 덧붙임. 대적자도 다른세계 출신인 공식설정인데 정작 자기 세계는 언급 안해주는거 좀 섭섭한데. 스토리팀들 뽑은 다음에 좀 정리해줬으면 좋겠음.)

(한시간이면 쓸줄알았는데 갑자기 중간부터 막혀서 여러번 고침. 시험기간에 쓰는거라 재밌게 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