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계속 이상한 꿈을 꾼다. 또다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꿈인데, 저쪽의 내 모습은 온몸에 피와 붕대가 흥건한 만신창이이다. 겁에 질려 움직이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 마침내 나의 앞에 다다른 그는 내게 "어머니와 형을 소중히 여겨줘"라고 말하고, 그와 얼굴이 마주치기 직전 꿈에서 깬다. 아니, 형은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인데다 어머니는 멀쩡히 잘만 계시는데 무슨 소리래?


사실 이런 이상한 꿈을 꿀 수 밖에 없는게, 요즘 들어 정말 좋지 않은 일이 겹겹히 있었던 영향이 없지 않은 듯 하다. 전학 온 학교에서 밴드팀을 결성하여 게릴라 밴드 공연을 진행한 지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아 왠 미친 새끼들이 우리들보다 더 락에 취해서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원치도 않는 과격한 팬덤의 등에 떠밀려 이사장과 좀 친한 녀석들이 꾸린 어설픈 밴드와 락 배틀을 한 결과 깔끔히 패배했고, 그 뒤로 학교에서 있었던 기이한 일들이 마치 우리 책임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나인하트에게 전달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내에서 헤비메탈 락 금지, 무허가 게릴라 공연 금지, 구관 무단 점거 금지, 풍기문란한 헤어스타일과 화장 및 악세사리 금지, 기타 등등 여러가지. 정 음악을 하고 싶다면 최소 동아리 인원으로 6인을 모은 뒤 심사를 받아 정식 동아리로 승인을 받고, 정해진 교실을 배정받은 뒤에 하라는 말을 끝으로 나인하트는 우리를 학생회실에서 내쫓았다.


"아니, 애새끼들이 술취한 것마냥 얼굴에 분칠하고 교실 벽에 스프레이 뿌려대면서 피스피스 거린 게 우리 잘못이야?"


"대장, 표정이 좋지 않네. 괜찮아?"


"난 괜찮아. 오히려 너네야말로 나 때문에 괜한 일에 엮인 것 같아서 미안해."


"교외 연습실을 빌려 쓰는 건 어때?"


신수국제학교 앞 거리로 나가면 널린 게 편의시설이고, 직접 지도 어플에 검색해보니 대실할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교내에서 공연을 이어간 건 뭐 다름이 아니라 결국 돈 때문이다. 아버지와 형이 홀연히 떠난 후 제대로 된 양육비조차 못 받은 채 꽃집을 운영하며 날 키워낸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포대를 나르고 떡볶이를 휘저으며 번 돈으로 밴드를 운영했다. 대부분 악기 구매나 수리, 그리고 우리의 컨셉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악세사리와 퍼포먼스 준비 비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실을 하려면 결국 어머니에게 손을 빌려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학교로 전학을 온 계기도 결국 장학금, 그리고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이 가능한 학교라 들어서였는데 이제와선 학비 말고는 아무 메리트가 없게 되었다.


"됐어, 매달 나가는 돈이 얼만데 뭘 더 빌리긴 빌려. 차라리 한 명 더 모아서 6명이 심사해서 정식으로 승인 받는 게 낫지, 안그래?"


동료 녀석들의 반응이 그리 밝지 않다. 나도 안다, 아마 그 단 한명조차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다. 저번 사건 이후로 전교생에게 우리 밴드는 완전히 찍혔다. 학교 이미지를 더럽히는 양아치 중의 양아치라는 인식이 박혔고, 마침 오늘 학교에 오는 길에도 수많은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설령 아직까지도 우리의 음악에 감명받은 녀석들이 있다 한들, 그들을 멤버로 영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까지 이미지가 더럽혀질까봐 그렇겠지. 멍청한 쓰레기들, 니들이 먼저 눈깔 돌아가놓고 우리한테만 지랄하기 있냐?


"보니까 우리도 이사장네 애들처럼 음악 스타일을 바꾸면 이미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 장르 자체를 버리자고? 차라리 해체를 하자고 하지 그래?"


퀸 녀석과 삐에로 녀석이 싸우기 시작했다.


"됐어, 됐어! 그만 싸우자. 우리끼리 싸우면 결국 아무 대안도 찾지 못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노을이 지는 저녁, 매일 보는 익숙한 현관문의 도어락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꽃집의 화초를 관리하러 이 시간이 되면 나가신다. 책가방과 기타 가방을 내 방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도우려 나가는 찰나, 오늘따라 좁은 거실 한쪽에 걸린 가족사진과 액자가 눈에 박힌다. 아버지, 당신은 왜 어머니와 날 버리고 떠나셨습니까. 형, 형은 왜 아직도 연락 한번을 안하고 전화도 받지 않는거야?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뉴스와 기업 정보 사이트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찾아볼 수도 없다. 혹시 조직폭력배마냥, 이름이 알려지면 안되는 곳에 몸을 담고 계신 것일까? 그렇다면 아랫 사람을 시켜서라도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살지 않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버지와 형을 찾기 위해 나는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한쪽 눈이 선천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나는 책을 읽기 버거웠고, 그렇게 내 어린시절은 자연스럽게 공부와 멀어졌다. 그런 내가 성공을 위해 택한 또다른 길은 유명한 스타가 되는 것. 우연히 집에 굴러다니는 주인 모를 CD를 통해 접한 음악을 계기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유명해지고,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난 성공해서 형과 아버지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엄마, 저 왔어요."


전셋방 바로 아랫 층 상가의 꽃집에 들어서자 낯선 여학생이 지나갔다. 돌돌 말린 긴 금발머리, 그리고 나와 같은 신수국제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였다. 비싼 꽃다발을 사서 가게를 나서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지금 신수국제학교 학생이라면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든 미친 락커의 면상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근데 그녀는 그런 내가 가게 문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텐데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홀연히 떠났다. 


"엄마 지금 영업 끝난 거 아니었어?"


"어머 데미안 왔어? 꽃 관리하려고 잠깐 문을 열어뒀는데 저 아이가 와서 꽃이 이쁘다며 사가고 싶다고 하질 않니."


"뭐에 쓸거래? 지금이 무슨 졸업 시즌도 아니고, 고백이라도 하나?"


"얘는 무슨. 그런 걸 어떻게 아니? 그나저나 오늘 학교는 어땠니? 얼마 전에 공연도 있었다면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고?"


"어... 응. 잘 지내고 있죠. 공연 하고 나서 아는 사람들이... 좀 많아지긴 했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 지금 왕따 현재 진행형이에요.







뒷내용 귗낳은데 더 써야해 말아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