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과외선생님은 항상 현관문을 열 때 고개가 들어갈 정도만 연다음 빼꼼히 머리를 들이밀어 두리번 거린 다음 집으로 들어선다. 어머니와 가볍게 목인사를 나눈 후 내 방으로 총총거리며 들어온다. 마른몸매에 웨이브를 약간 넣은 검은머리를 하고 항상 입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잘 지냈냐고 말했다. 요즘 내 인생의 활력소이면서도 궁금증의 원천인 그녀는 볼 때마다 신비로운 느낌이다.


두 달전이었다. 성적이 차츰차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니 어머니께서는 하루종일 호들갑이셨다. 이래가지고 대학은 갈 수나 있겠니, 이래가지고 커서 뭐가 될래 등등의 잔소리 폭탄이 나에게 매일같이 이어져 왔고 참다 못한 나는 지금 다니는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성적 올리는데는 학원 만한게 없지만 난 삭막한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부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처음에 헛소리한다고 나를 타박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나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어머니는 부녀회에 나가서 주변에 과외 잘하는 사람을 수소문 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지금 내 눈앞에 앉아있는 선생님이 우리집에 일주일에 두번씩 오게되었다.


처음 집에와서 어머니와 과외비를 협의 하던 날만 제외하면 그녀는 두 달째 보라색 원피스를 고집하고 있다. 간간히 헤어스타일이나 악세서리, 화장, 향수 같은건 조금씩 바뀌는게 느껴지지만 보라색 원피스만은 절대적인 예외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만은 철저히 지키는것 같았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는것이긴 한데 물어볼때 마다 그녀의 답변은 항상 똑같았다.


'난 보라색이 좋아서~' 라고 가볍게 흘리듯 말하지만 왠지모르게 네가 뭘 알겠느냐 하는식으로 날 무시하는 뉘앙스가 강해서 저 한마디로는 절대 내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의 쓸데없는 집착이 시작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 일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과외선생님이 오는날을 제외한 날에는 그 궁금증을 풀어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 자고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감하게 과외선생님이 집에 꼭 가져가야만 하는 물건 하나를 몰래 숨겨놓은 다음 직접 집에 찾아가 전달해줄 생각이다. 물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무책임한 계획이기도 했다.



며칠 뒤 과외선생님은 어김없이 한점 구김없이 깨끗한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내 앞에 앉았다. 수업내용은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선생님이 자리를 잠시 비울틈만 노렸다. 선생님은 나의 이런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과외에만 집중했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갔다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기회는 바로 지금이렸다. 방에서 나가자마자 잽싸게 그녀의 핸드백을 열어제꼈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속은 텅텅 비어있고 달랑 핸드폰만 하나 들어있었다. 그 흔한 화장품 하나 안들어 있었다. 보통 외출할 때 화장품이니 거울이니 하는 잡동사니들이 잔뜩 들어있는것이 여자들의 가방이 아니었던가? 난 가방을 연채로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누가봐도 티가 날법한 핸드폰을 꺼낼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그대로 주저 앉을것인가.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티비를 보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분명 과외선생님은 집에서 나가자 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려 했을것이고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챘을것이다. 헌데 세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예전에 미리 정보를 캐려 물어봤을 때는 분명 과외를 하는날에는 우리집에 오는것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고 했었다. 머릿속으로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어머니한테 몰래 말한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왜 그런 일을 벌여서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기다릴까... 번뇌에 휩싸이려는 도중 내 핸드폰으로 처음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보는 순간 이거다 싶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그녀였다.


핸드폰을 두고 간 것 같은데 지금 집에 갈 만한 상황이 아니니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이게 왠일인가? 구태여 그녀의 집까지 갈 핑계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졌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갈 채비를 하고 어머니한테는 친구집에 다녀온다고 흘리듯이 대충 말하고 집을 뛰쳐나갔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세차게 뛰어오른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는 육상선수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주택가랑 약간 떨어져 있는 1층짜리 단독주택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이 우리집에 들어오듯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핸드폰을 건내자 고맙다면서 눈을 귀엽게 씽긋거리며 문을 더 열었다. 마치 병원에서나 입을법한 흰 티셔츠에 흰 반바지 차림이었다. 왠지 모르게 생소한 차림을 보니 낯설면서도 더욱 더 신비감에 휩싸여 보였다. 그냥 여기서 돌아서면 안되는데 하고 싶은 말은 입에서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그녀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묻는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내게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집은 생각외로 소박했다. 아니 소박했다기 보다는 삭막하기 이를때 없었다. 집에 있는거라곤 침대 하나와 내 키만한 책꽂이 하나가 전부였다. 집에서 뭘 하고 사는지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집이었다. 난 거실 가운데에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선생님은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 했다. 이따금씩 나를 흘깃 쳐다보는 듯 했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무시했다. 그래 이 정도면 선생님도 내가 뭘 했는지 알법했다.


숨막히는 어색함이 온몸에 내려 쬐고 있던 그 잠깐 동안은 실로 지옥불에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지옥불은 열기를 저항하려 온몸을 휘저어 볼 수라도 있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내가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핸드폰만 살피던 과외선생님의 눈동자는 단 1mm 도 움직이지 않은채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다. 자그마한 LED 패널에서 발광하는 약간의 빛만이 선생님의 얼굴에 비춰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선생님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를 정면에서 지긋이 쳐다보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할말이 있지 않을까?"




새침한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말치고는 참으로 고상한 질문이다. 할말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입을 열까? 그저 장판에 그려진 무늬수만 새어보고 있을 지경인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한참을 갸우뚱하며 나를 주시하던 선생님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선생님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것, 내 보라색 원피스에만 신경쓰고 있었던거... 선생님은 다 알고 있어, 솔직하게 선생님한테 물어봤으면 차근차근 알려줬을텐데 왜 이런 행동을 했지?"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이미 펀치를 여러 번 얻어맞아서 비틀거리며 겨우 가드를 올리고 있는 권투선수 마냥 나의 멘탈은 낙다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나마 선생님에게서 풍겨오는 알듯 말듯한 비릿하면서도 이상한 향기가 나를 겨우겨우 버티게 해주었다. 새 옷처럼 보이는 하얀 차림에서 비릿함이 느껴지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이상한 위화감이 나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뭐라 말하기는 힘들겠지,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나누어 볼까?"



선생님은 자세를 고쳐 앉아 나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순간 놀랜 나는 그녀의 그 큰 눈망울에 놀라 몸을 급하게 뒤로 빼버렸지만 그녀의 손이 내 손목으로 뻗어나와 낚아챘다. 욱씬거릴 정도의 힘으로 나를 일으켜 책꽂이 앞으로 끌고갔다. 선생님이 책꽂이의 구석을 잡고 당기자 마치 탐정만화에 나오는 비밀문 마냥 스르륵 돌아가며 뒤에 공간이 생겼다. 선생님은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그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놀랄 새도 없이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말이다.


그 비밀공간에는 선생님이 매일 입고 오는 보라색 원피스가 주루룩 걸려있었다. 비밀문으로 밀봉된 공간 치고는 조금 평범할 수도 있겠지만 불을 켜고 다시 봤을 때 기절할 뻔 했다. 보라색 원피스는 옷걸이가 아니라 선생님이 옷을 입은 채 걸려있었다. 지금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그 선생님하고 똑같이 생긴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천장에 무수히 매달려 있었다.


"비오는 날에는 8호,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3호,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을 가야할 때는 19호... 전부다 선생님이야"


"어...........어.........."


소스라치게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소리를 칠 수도 없고 심장은 지금 당장에라도 입으로 튀어나오려고 요동을 치고 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다.


"잘 봐"


선생님이 구석으로가 무언가 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목덜미로 케이블 같은 것이 내려와 꽂히더니 선생님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스르륵 감기면서 고개가 아래로 축 쳐졌다. 천장에서 갈고리 두 개가 내려오더니 겨드랑이 쪽에 착 감겼다. 그리고 선생님은 천장으로 끌려 올라가 매달렸다. 잠시후 위이잉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나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보라색 원피스 선생님이 바닥으로 내려오고 목덜미에 꽂혀 있던 케이블이 슈우욱 소리를 내며 빠졌다. 잠시 후 선생님은 눈을 뜨고 날 보며 싱긋 웃었다.



"어때? 신기하지? 아직도 모르겠어? 좀 더 보여줄까?"



그와 동시에 선생님은 보라색 원피스의 뒷지퍼를 천천히 내려 벗었다. 안쪽에 속옷도 받쳐 입지 않았었나 보다 새하얀 여성의 나체가 내 눈에 들어온다. 난생 처음 눈으로 보는 광경이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윗 배 한가운데를 두 손으로 꼬집어 올리니 피부가 벗겨졌다. 선생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벗겨진 피부를 아래로 끌어내렸고 거기엔 안쪽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무언가가 연신 반짝거리는 기계장치들을 감싸는 듯 있었다.



"허억.............."



선생님은 계속 씽긋 웃던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고 다시 피부를 덮은 뒤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는 내 오른손을 덥썩 잡아 가슴에 갔다 대었다. 처음 느껴보는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선생님은 내 손을 자연스럽게 둥글게 돌리면서 눈을 감고 얕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손을 떼어 아래로 내려 음부에 가져갔다.



"자...잠깐만요!"



선생님은 반대 손을 들어 검지를 편 채 좌우로 까딱까딱하며 살짝 노려봤다. 그렇다, 내가 이제 저항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난 오른손에 주고 있던 힘을 모두 빼버렸다. 내 손은 선생님의 음부를 살며시 쓸어올리기를 반복 했고 선생님은 손가락 두개를 집어 축축하게 젖은 안쪽으로 슥슥 문질렀다. 아까보단 조금 더 깊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한참을 선생님의 몸 이것저곳을 탐식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내 손을 다시 잡아 떼어냈다.


"이런 건 처음보지? 선생님은 인간이 아니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너를 위해 공부는 물론이고 이런 것도 가르쳐 줘야 진정한 선생님이지. 어떠니? 조금 더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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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과외선생님의 도움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지금은 대학원까지 마쳐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연구하는 것은 청소년 교육을 위한 개인별 맞춤 안드로이드의 연구였다. 1세대로 개발된 퍼플 1.0은 모르고 보면 인간이라고 착각 할만큼 유사성을 보여주었지만 학생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응하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그 첫번째 사례가 바로 나와 선생님과의 일이었다.


이제는 가르치기만 하는 교육은 시대에 뒤떨어진 트렌드이다. 가르침 받는자의 심정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때로는 그 시기에 발현되는 수많은 호기심을 받아내어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세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있어서 퍼플 2.0 이야 말로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부모님이자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