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 보기엔 야릇한 자세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던 도중 내 밑의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시현님…”


“응?”


“아…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가 내게 말을 하려던 그녀는 골목에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자 말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걸까?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내가 왔던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깐깐해 보이는 여자가 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그녀의 주변엔 작업복을 입은 안드로이드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후우…후…후우…”


마치 장거리 마라톤이라도 달린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 거친 숨소리만 들어도, 나까지 힘들어질것 같은 그녀는 대비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안드로이드에게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마도 저 여성이 김리아 박사인것 같았다. 저들이 회수반일테니 이제 해결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괜찮으십니까?”


“흐얍!…내 딸한테서 떨어져 이 변태새끼야!”


뻐억, 갑작스런 여성의 뽀족한 외침과 그녀의 목소리보다 뾰족한 구두 끝이 안그래도 멍이 든게 아닌가 고민하던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어어억!!”


원래라면 발에 얻어맞은 충격으로 나는 옆으로 굴러가야 했겠지만 지금 여성 안드로이드의 팔이 내 등을 감싸고 있었다. 그대로 같은곳을 맞을수밖에 없단 말이었다.


“하악…안 비켜? 후우욱…안 비켜??”


“억…억...”


퍽퍽,  내가 뭔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구둣발에 내장이 찌르르 울려, 나는 억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방금전까지 숨을 몰아쉬던 사람이라곤 생각할수 없는 힘이었다.


‘무슨 여자 발길질이 아까 남자들보다 더 아파…’


정신을 잃기전 내 마지막 생각이었다.


내 밑의 안드로이드가 뭐라고 소리치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듯 했다.


정신을 차렸을때 새하얗고 낯선 천장이 나를 반겼다.


“아 낯선 천장이다”


“생긴거랑 다르게 엄청 구식이잖아? 21세기쯤 사람인가?”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을 보자, 예의 나를 발로 걷어차던 깐깐한 여성이 앉아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리아 박사라고 합니다”


“아…무차별 발차기녀?”


분명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손이 구두로 향하려다 멈칫한것 같았다.


“호호 그건 제가 시현씨를 오해해서 벌어진 사고였어요”


“두번 오해 하면 장례식 치뤄주시겠습니다?”


분명 웃고는 있지만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며 거기서 조금 더 깐죽거리면 2회차 발차기를 먹여주겠다. 하는 살기가 느껴져 나는 깐죽거림을 멈추기로 했다.


“이미 제 이름을 알고 계신것 같지만 이시현입니다.”


“네 시현씨, 우선 오해해서 죄송해요. 안드로이드를 노린 범죄가 요즘 워낙 많아져서 제 신경이 날카워져서요. 하지만! EFA-07 그녀는 제겐 딸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요. 소중한 딸아이가 반라가 되채로 외간 남자한테 깔아 뭉개지고 있는데 어느 부모가 오해 안하겠어요?!”


“그건 변명…”


“그래서! 시현씨가 입으신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저희 연구소에선 시현씨에게 보상을 해드리기로 했답니다”


“치료는…”


“당연히 무료죠! 그리고 소정의 위로비도 드릴 계획이랍니다!”


치료만 무료로 받으려고 했는데 옆구리를 차인덕에 돈도 받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김리아 박사는 내게 보상을 위해 필요한거라며 주소와 인적사항을 적고 몇개의 서류에 서명하게 했다. 서명을 받자마자 편히 쉬라며 나가버렸다.


“아참, 밥 이야기를 안했는데…밥 정도는 무료로 주려나? 아으으으윽”


침대에 앉으려고 했더니 내 옆구리가 칼로 쑤셔진듯 아파왔다. 아니 옆구리뿐 아니라 그 전에 맞았던 온몸이 구석구석 비명을 질러댔다.

*****


이시현이 있는 병실을 나서자 나름 긴장했는지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람한테 그것도 무고한 사람한테 그렇게 발길질을 해댔는데 형사는 물론 민사 소송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일이 잘풀렸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일에 대해 연구소에 책임을 묻지 않겠단 서류, 주소와 인적사항을 활용하는데 동의한단 서류에 사인을 받아내는걸 쉽게 진행했으니까.


“후우 입은것도 생각없이 서명하는것도 그렇고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우리 딸은”


“박사님, 대화는 잘 되셨습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조수 안드로이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방금 일어나서 정신 못차릴때 끝내버렸지, 손에 들고 있는 그게 그거야?”


“네 박사님, 손상 됐지만 이게 현재 N-31 섹터에 돌고있는 해킹툴이 분명한것 같습니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거야, 내 소중한 딸내미를 저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서 경찰 업무를 하게 만든 주범의 긴 꼬리를 말이야 잡으면 차라리 경찰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겠어”


내 딸이 그런꼴이 되게 만든걸 반드시 후회해줄거다 반드시


*****


아 귀가 가렵다. 아마 나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 그 남학생들이 내 욕을 하는걸지도 모르겠다. 아참 그리고보니 뭐라고했지? E…E…뭐라고 그랬더라? 아! EFA-07라고 했다.


“…그녀는 괜찮을까?”


내가 내뱉고도 놀라서 입을 닫을수밖에 없었다. 아니아니 안드로이드잖아? 괜찮겠지 얻어맞은것도 나고, 내 해킹툴이 안드로이드의 몸에 주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박사가 도착할때까지도 팔을 풀지 못했잖아 내 탓인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까 괜찮냐고 물어볼껄 그랬나?”


정신차려 뭐 하는짓이야. 하며 팔을 들어 내 뺨을 때리려고 했다.


“으아아아아악 팔이 어깨가 등이…!!!”


내 몸이 정상이 아니란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을 뿐이지만.


그녀와 입맞춤이…아니 입맞춤이라고 할수도 없던 입술박치기가…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날 바라보던 놀란 눈이 왜 계속 떠오르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너무 쳐맞아서 뇌에 이상이 생겼나? 여기 뇌 CT도 있으려나?”


나는 그녀에겐 적이나 마찬가지다. 싸구려 해킹툴이나 만들어서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 어쩌면 21세기에 전세계에 유행했다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갔지, 나는 그냥 소소하게 먹고 살고 싶은것 뿐인데? 내가 뭐 이렇게 될줄 알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잠이 들었고, 어느 새하얀 공간에 서있었다. 그 공간을 헤매고 있던 중 누군가 내 곁에 있단걸 알게 됐다. EFA-07 그녀였다.


속옷만 입고선 내게 한발씩 한발씩 다가오는 모습에 놀라 나도 한걸음씩 물러났다.


하지만 곧 등 뒤에 딱딱한 벽이 닿아 더이상 물러설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계속 다가오며 새하얀 브래지어를 풀어 헤치고 팬티까지 내려버린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이 내 몸에 와서 닿으며 잠에서 깻다. 아래쪽이 축축했다.


“하 시발…”


다행히 내 침대 옆쪽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자 예비용 환자복과 속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샤워였다.


“으그그극…”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씻어내고 더러워진 옷도 처리해야만 한단 의지가 통증을 이겨냈다.


끼이이익, 내가 여는 문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복도는 비상등만 몇개 켜져있는채 텅 비어있었다. 아마 내가 깬 지금은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인것 같았다. 나는 고통과 어둠 속에서 다른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한마리의 고독한 늑대 같이 걷던 나는 샤워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깨끗하게 씻고 몸을 닦을땐 너무나 상쾌해서 내 몸의 고통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상의를 입기전 거울에 비춰본 내 모습은 울긋불긋하고 시퍼렇게 물들어 누가 낙서해놓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것 같았다.


김리아 박사의 구둣발에 차였던 옆구리는 특히 심해서 시퍼렇다 못해 검게보일 정도였다.


“역시 그냥 사인해주지 말고 조금 튕겨볼껄 그랬나?”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꼬르르륵, 그리고 보니 여긴 밥도 안주나? 아니면 내가 잠들어서 그냥 간건가? 내 배는 요즘엔 꼬박꼬박 잘 먹어서 그런지 계속 울어대며 밥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마 분명 연구소니까 어딘가에 자판기든 탕비실 같은게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의까지 마저 입고 음식을 찾아 다시 한마리의 고독한 늑대가 되어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빛이 세어나오는 문을 하나 찾았다. 월척이다 누군가 당직이나 야근이라도 하는게 분명할테니까. 컵라면이라도 하나쯤 얻어먹을수 있을거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열어젖힌 문안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따뜻한 온기 대신 입김이 나올것 같은 차가운 냉기가 나를 맞이했다. 커다란 유리창이 설치된 방 그 반대편엔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클린룸이 들여다보였다.


여러 최첨단 기계들이 보이고 온갖 전선들이 어지럽게 이어져있었다. 그리고 클린룸 한가운데 존재하는 차가운 금속 테이블엔 EFA-07 그녀가 누워있었다.


그녀의 몸은 명치 위쪽 상체 부분을 제외하곤 팔과 다리 배 할것 없이 모두 분해되어 가지런히 놓여져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흑요석 같은 눈은 잠든듯 감겨져있었다.


쿵, 순간 내 가슴에 바위가 내려앉는것 같았고 내 머리속은 클린룸의 불빛보다 더 하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