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반이상 분해되어 내부의 부품들을 드러낸채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봤다.


다른 안드로이드일거야, 그녀랑 무척이나 비슷하게 생긴 안드로이드, 여긴 안드로이드를 연구하니까…다른 안드로이드여야 만 해…아니..아니지 그녀와 닿아보면 알수있을거다.


그 보드라운 입술에 닿아볼수 있다면, 그녀에게 내 손이 한번만 닿는다 하더라도 그녀인지 아닌지 알수 있을거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유리는 거의 벽이라 할만큼 두껍게 보였다.


“유리를 깰땐 정중앙이 아니라 바깥쪽을 때려야 깨진다고 했었지?”


어디선가 들었던 유리 깨는 법이 생각이나 유리의 끝부분을 향해 걸어간 나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쿵, 쿵, 쿵 주먹의 뼈와 유리가 맞닿았다. 주먹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머리까지 짜르르르 울렸지만 유리엔 흠집하나 생기지 않았다. 유리엔 내 주먹이 닿았던 흔적이 지문처럼 남아있었다.


“맨주먹으론 안돼…뭔가 도구가 있을거야”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화재대비로 배치된 소화기가 보였고 나는 지체없이 소화기를 들고 유리벽을 향했다.


머리 위로 높게 든채 그대로 내리쳐려고 했다. 하지만 내려치지 않았다. 한가지 생각이 내 행동을 막아냈다.


‘저 안은 클린룸이고 그녀는 거의 완전 분해되어 있는 상태야, 이걸 부순다 하더라도 나로 인해 그녀의 부품이 오염된다면?’


동시에 손과 손목이 시큰시큰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당장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다. 결국 난 허접한 해킹툴이나 만들어 파는 조무래기 범죄자에 불과하니까.


엘리트가 아니었더라도 졸업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런 생각에 자괴감이 날 감쌋다.


방을 나서 소화기를 원래 자리에 둔 채,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내 발걸음은 쇳덩이를 달고 걷는듯 했다.


돌아와 침대에 누운 내게 배고픔 같은건 이미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저 내일 아침 그녀가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었다.


“시현님…이시현님…”


누구지? 설마? 여성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자 온몸의 통증이 있단 사실조차 잊은채 몸을 일으켰다.


“끄아아아악”


“이시현님 갑자기 일어나시면 안됩니다. 괜찮으신가요?”


고통속에 바라본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기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보는 간호사 복장의 여성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용 안드로이드 EFA-03 입니다 정밀 검진이 있으실거에요.”


“하아…그렇군요”


내가 실망한 기색을 너무 티냈던걸까? EFA-03이라고 밝힌 여성 안드로이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김리아 박사님을 기다리신건가요?”


내가 날 발로 찬 사람을 왜 기다린단 말인가? 그녀에게 내가 궁금해 하던걸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혹시 EFA-07호에 대한 소식을 들을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지난 새벽에 본 그녀가 정말 EFA-07인지 아닌지 말이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수 없는 사항에 해당하네요, 김리아 박사님께 직접 여쭈어보시길 권유드릴께요”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말이지만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나 보고 김리아 박사를 기다렸냐고 물어본걸까? 김리아 박사를 언제 만날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하던 때였다. 꼬르르륵, 본능에 충실한 내 배가 울려댔다.


“식사는 검진 이후에 드릴께요. 어제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주무시고 계셔서 말씀 드리지 못한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누군가 본다면 술이라도 마셨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검진이 시작되고 나는 종합검진이라고 해야 어울릴 만한 검사를 다 받게 되었다.


몸의 상처들은 물론이고 CT에 MRI, 청력에 시력 검사까지 혈액검사도 진행됐는데 비타민이 전체적으로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식단 조정이 시급하단 결과를 받았다. 


그 직후엔 온몸에 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거의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가 감겼고 마지막으로 퉁퉁 부은 오른손목에 깁스를 받게 됐다.


“어제 임시 검진 땐 이상이 없던 부위였는데 다치셨나요?” EFA-03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모른척 하는수밖에 없었다.


“어 글쎄? 모르겠는데요? 배고픈데 밥은요?”


“네 식사하러 가시죠”


다행스럽게 EFA-03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지 나를 식당으로 안내해주었다.


왼손으로 먹는 밥은 무척이나 불편했지만 어제부터 한참을 굶어서인지 이곳의 음식이 워낙 훌륭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게눈 감추듯 첫 식판을 비우고 두번째 식판을 또 요청했다.


김리아 박사와 만남을 요청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내 이성을 위장의 본능이 이겨버린 순간이었다.



*****


“좋은 아침입니다 박사님”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보니 조수 안드로이드가 창문의 커튼을 걷어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별로 좋지 못해 꿈속에서 왠 들개 한마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구소를 들쑤시고 다닌데다 쿵쿵 거리는 소음까지…최악이었어”


“식사 하시겠습니까”


“아니 난 이걸로 충분해”


난 조수에게 영양바를 흔들었다.


“그런건 제대로된 한끼 식사가 아닙니다 인간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모두 보충할수 없습니다”


“잔소리 그만! 딸내미가 그렇게 되어있는데, 밥 넘어가는 부모가 어딨어?”


뭐라고 반박하려는 조수 안드로이드의 입을 막고 클린룸으로 향했다.


깨끗한 클린룸의 한가운데 엔 내 아이가 자고 있었다.


검사와 파츠의 추가를 위해 분해된채로 누워있는 아이…역시 어제 철야라도 해서 끝내둘걸 하는 후회가 몰려든다.


“…휴면 모드 종료”


“응 좋은 아침이야 딸 기분은 어때?”


“좋아요 그리고 기분 좋은 꿈을 꾼것 같아요”


“응 꿈이라 좋네!”


“네 시현님이 나오셨어요”


하아, 아무래도 내 딸에겐 콩깍지가 아주 심하게 낀것 같아…부모가 되서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 영 마음에 안든다는 내색을 할순 없어서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응 파츠들은 전부 정상이야. 네가 걱정하던 팔도 정상이란다…그런데 정말 이 파츠들 장착해야겠니…?”


“네 어머니께서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지금이 분명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더니…혼자 중얼거리며 조립을 시작했다


몸과 팔 다리가 이어지고 


“하아, 이제 신규 파츠 차례네…”


내 소중한 아이에게 인공성기 모듈을 달아준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들뜬 채 새 파츠를 바라보고 있는건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모듈이 장착되었습니다. 장치 인식 중…앗 아응…아아앙”


주르르르륵, 새로 부착된 파츠의 틈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리며 내 딸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애썻다.


“괜찮아 정상 작동 반응이니까”


내 말에도 얼굴을 가린 손은 치워질 생각이 없는듯 했다. 추스릴 시간을 주기 위해 클린룸과 연결된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통 고위급 인사들이 클린룸 내부를 볼수 있게 해둔 공간과 이곳을 가로막는 유리 그 창문에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주먹으로 때린듯한 흔이 말이다.


“최근에 저쪽 방을 사용한 일정이 있었어?”


내 옆의 조수 안드로이드가 바로 답해왔다.


“아니요 없었습니다”


“즉시 CCTV 확인해 왜 저기 손자국이 남아있는지 알아내, 아니 내가 직접 CCTV실로 갈거야”


여전히 어쩌할바를 모르는 딸에게 내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서 덮어준 채 CCTV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