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한희정.

 

우주콜로니에 살게 된 지 몇 달이 지났다.


지구에서의 삶은 어렵고 억척스러웠지만


우연한 기회로 꽃피운 사랑의 결실 덕에 콜로니로 이주해와 행복한 삶을 시작했다.


 

남편이 된 사람은 일 때문에 지구에 머물고 홀로 살고 있지만


뱃속의 아기의 태동이 그런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오늘은 월요일, 검진이 있는 날이다.


출산 예정일까지 두 달이 남았기에 조심스레 배를 움켜쥐고


거실 소파에 몸을 살며시 뉘었다.



잠시 후 간호 로봇이 배꼽인사를 하고 검진을 시작했다.


 

"태아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불편하신 건 없으신가요? 이대로 건강을 잘 유지 해주세요."


 

나긋한 듯 무미건조한 말투의 간호 로봇이 물러나면서 진료가 끝났다.


흔히 말하는 '깡통로봇' 한테 어설프게 간호사 유니폼을 입혀놓았기에


그 위화감은 아무리 오랫동안 봐도 해소가 되질 않는다.



아침부터 느낀 불편함이었는지 뱃속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아기가 전해오는 태동을 느끼기 위해 배에 손을 올린 채


콜로니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윽고 따뜻한 인공태양빛에 나른해졌는지 졸음이 몰려와


소파에 몸을 뉘인 채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 로봇이 내는 차임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즉시 긴급진단을 시작하겠습니다."



별안간에 일어난 상황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간호 로봇은 차가운 기계팔로 내 다리를 벌렸다.



"뭐야 갑자기!"


"긴급진단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간호 로봇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밀어도 보고 때려도 보고 비명도 질렀다.


사람이면 말이라도 통하겠지만


간호 로봇은 요지부동이다.


"진단 결과 태아의 상태는 '위험' 단계입니다.


즉시 이송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야! 아기는 아무 문제 없어!"


"관리번호 00011057 이송절차 시작"


나긋한 듯 무미건조한 말투는 긴급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콜로니 바깥이 내려다 보이는 큰 전망창이 통째로 열렸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며 흙먼지가 거실로 몰려들어왔다.



하늘에서는 콜로니 관리청 로고가 그려진 비행선이


천천히 측면의 문을 열면서 내려왔다.


간호 로봇이 그대로 나를 들어서 비행선에 태웠다.


아니 태웠다기 보단 거의 던지다시피 했다.


"너! 아기한테 무슨일 생기면 박살내버릴꺼야!

내 남편이 누군지 알고..."


"관리번호 00011057, 콜로니 관리청에 인계완료"


"야!!"



나의 절규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비행선의 문이 닫히고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선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인으로 움직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람없이 혼자 움직이는 건 처음 본다.


마음이 점차 불안해진다. 그럴 수록 배를 움켜쥐며


행복한 상상을 끝없이 반복한다. 


지구에 있는 남편과의 행복한 기억들,


프로포즈를 받던 순간, 임신확인키트에서 초록색 불이 반짝이던 순간,


콜로니 이주 통보를 받던 순간...


지금 할 수 있는건 그것뿐이다.



한참을 날아간 비행선이 덜컹 하고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 시커먼 로봇 둘이 나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한 없이 넓고 칠흑같이 어두운 곳


콜로니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갑작스런 변화다


뱃 속의 아기가 걱정되지만 애써 두려움을 이겨보려 배를 더욱 더 꼭 감싸안았다.



로봇들은 기다랗고 어두운 복도로 나를 한 없이 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커다란 방에 밀어넣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여러명이 웅성거리는 소리


어두웠지만 어렴풋이 사람의 형상들이 보였다.



"이리와서 앉아요, 그렇게 서있으면 로봇들이 괴롭혀"



어둠속에서 손이 튀어나와 나를 이끌었다.


둥그런 방 안에 곳곳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벽에 기대 앉아있다는 것과


배가 충분히 나와 있는 임산부들이라는 것이였다.



"여긴 어디에요? 나 뭐 잘못한거 없는데, 도대체가..."


"울지 말고 잘 들어요, 다들 여기 끌려온지 몇 시간 안되었어요

 무슨일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요."


나를 데려온 여자가 글썽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렇게 울고 있으면 아기한테 좋지 않아요, 어서 여기 앉아서 쉬어요"


여자의 말에 벽에 등을 기댄채 주루룩 미끄러져 앉았다.


어딘지 모를 곳에 감금 되어 하염없이 불안에 떨어야 한다니...


지구에 있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엘시라고 해요, 지구에 있었을 땐 런던에서 살았지

 곧 출산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인지 참.."


"한희정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잠깐의 통성명 이후 엘시는 내 옆에 꼭 붙어 앉아 이따금씩 말을 걸어왔다.


저 앞에 있는 금발은 러시아에서 왔서 그런지 말이 안 통한다.


남편이 곧 콜로니에 돌아오는데 보고싶다.


나가기만 하면 임산부를 험하게 다룬 것들 언론에 전부 밝힐거다 등등


빨간머리 앤을 연상케하는 붉은머리의 그녀는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치 불안에 떠는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그렇게 수 시간이 지난 후


문이 열리고 로봇들이 들어와 몇 명을 데리고 나갔다.


울고불고 저항하는 사람, 고고한 자세로 로봇에게 따지는 사람

말없이 걸어 나가는 사람


다양한 반응들이 어우러지며 방 안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가


문이 닫히자 이내 조용해졌다.


그렇게 몇 명씩 짝지어 데려나가더니 로봇이 내 앞에 섰다.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천천히 일어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희정, 한눈팔면 안돼"


엘시가 어느새 옆에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쉿, 로봇들이 우릴 보고 있어"


엘시는 이 상황이 두렵고 불안하지 않은 모양이다.

 

복도의 곳곳에는 로봇들이 눈인지 뭔지 모를 빨간 라이트를 번뜩이며


임산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아직 누군가가 다치거나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로봇한테 강하게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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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조금 소프트 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