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게임 채널

때는 옛 몇십년 전의 일.
내가 8살도 안될 무렵의 이야기다.
한창 호기심에 눈을 뜰 나이였지.

나는 어머니와 어느 쇼핑몰에서 장을 보며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밥을 먹고, 옷을 사고, 장난감을 사고, 전자제품 코너 앞에 전시되어있던 체험용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순진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고, 빠른 손가락을 가지기는 커녕 두더지 잡기 게임도 어리버리하며 아무대나 두들길만큼 동체시력도 평범했다.

어머니께 장난감을 사달라며 바닥을 뒹굴며 울고있었다.
어머니는 "너는 거기서 계속 울고있어, 나는 먼저 갈거야."를 시전하시고,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의 헤드스핀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던 와중, 내 눈에는 어느 한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운명의 이끌림이라도 느껴지는 듯 무의식적으로 그 무언가를 향해 초점이 고정되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오락실 게임기.
크고도 가슴을 웅장하게만든 북 두개.
나를 이 바닥으로 끌고내려온 금기.

『태고의 달인.』

처음에는 저게 도대체 뭐고 무슨 게임인가 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있었다.
겉보기에는 도당체 영문모를 게임기의 모습.
버튼도 보이지 않는다.
뭐 저게 젖탱이도 아니고 왜 두개가있는거지 하고 게임기를 내 나름대로 분석하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학생쯤은 되어보이는 사람 한 명이 그 앞에 멈춰서는게 아닌가.
당연하다는 듯 카드 한장과 동전을 꺼내들어 게임기에 삽입.

그러다니 그 남자는 곧 크고 웅장한 두 막대기를 꺼내들었고, 젖탱이 하나를 막대기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헉! 하고. 나는 놀랐다.
뭐지? 부술 생각인건가? 저거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건가? 그러면 사례금 받을 수 있나?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젖가슴처럼 부드럽지는 않은가봐?

하지만 이내 보이게 된 풍경은 가히 절경!
북을 두드리자 화면이 움직이고, 다양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남자는 한참동안 북의 태를 내려치며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을 그리도 갈등하는 것일까.
저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저리도 신중한 것일까.
나는 어느샌가 그 남자의 뒤로 다가가 화면을 바라보고있었다.

화면이 옆으로 넘어갈때면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노래, 이상한 노래, 몬가...몬가 모르겠는 노래.

뭔놈의 노래가 이렇게 많은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20초정도 흘러, 남자는 결정했다는 듯이 북의 중앙을 내리쳤다.

『夏祭り』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화면의 오른쪽에서 붉은 무언가가 왼쪽으로 움직이고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지? 하고 바라보고있었지만, 이내 판정선이라 불리우는 동그라미와 그 붉은 무언가가 겹치게되었을때 남자가 북을 내리쳤다!
그 광경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붉은 무언가가 동그라미와 겹치자 남자가 북을 내려치고, 또 다시 그 남자는 붉은 무언가와 동그라미가 겹치자 북을 내려쳤다.

아하! 대충 이런 게임!
나는 그 게임을 이해해버렸다.
아니, 이해하고있다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곧 음악의 잔잔한 빌드업파트가 끝나고, 내 완벽했던 「이해」는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붉은 무언가에 푸른 무언가.
갑자기 느닷없이 빠른 속도로 동그라미가 겹치고 겹쳐, 또 겹쳐지고있었다.
저, 저딴게 게임? 어떻게 하고있는건가 싶었다.

그렇게 나는 쯧 하고 혀를 차고 뒤를 돌아섰다.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둥둥...)

소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히 고개를 돌렸던 그 게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왜이러는걸까.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즐거움.
분명 지금의 내게서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무엇에 이리도 기쁘고, 심장은 더욱 더 쿵쾅거리고 있는걸까.

고개를 돌렸다.
내 눈동자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그 게임기.
남자는 여전히 북을 내려치고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북을 내려치는 것이 뭐가 저리도 재밌는걸까.
그런데, 왜 저렇게나 재밌어보이는걸까.

(두두둥 두두둥 두두두두둥 둥...)

...!
나는 깨달아버리고말았다.
이 게임의 진면목을.
노래다.
노래에 맞춰 북을 내려치는 것이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악기를 만져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에 관한 영상을 접하기에는 간단했다.
그래. 이 두근거림의 정체를 알았다.
이것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볼때 느껴지던 그 두근거림이다!

어느새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 게임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렇게 또 다시 어느새.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는 만족했다는 듯 자리를 비웠다.

공석.

다음에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드는 것.





"에잉 이게 머야. 똥망갬이내."

근데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려워서 관뒀다.
뭐 두드리는 건 재밌는데 언제 두드려야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잘모르겠고 파랑색은 어케하는건지 몰?륾......
결국 나는 어머니를 찾아가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몰랐다.
그 일이 후에 무슨 나비효과를 불러오게될지...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
나는 홀로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니고있었다.

오락실이 보였다.
마침 오늘은 주말.
최근에는 용돈도 남아돌아 가본 적 없는 오락실이라도 들려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인형뽑기기계가 널려있다.
펀치머신도 있고, 그 다음에는...

『태고의 달인.』

이야, 추억이다.
몇 십년 전 어렸을 때 했던 첫 오락실 게임이자 리듬게임이었지. 그 이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리운데 한 판 해볼까했다.
적어도 그때보다는 잘하겠지 뭐.
이제는 무능아가 아닌 저능아.
어느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지페를 동전으로 바꿔 기체에 삽입했다.
자연스레 북채를 들어올려 북을 내리쳤고.

(曲を選ぶドンー!)

UI가 상당히 변해있었다.
라떼에는 곡화면이 좌우로 스크롤했었는데, 이제는 상하로 움직인다.

그렇게 곡을 둘러보던 중. 어렸을 때의 추억도 있는 나츠마츠리를 선곡했다.

(難易度を選ぶドンー!)

그때 아마 내가 어려움 난이도를 했었던가?
했다가 탈탈 털렸었지.
하지만 나는 이제 성인이 되어 이 게임을 왼벽하게 이해했다.
어려움정도 쯤이야 껌이지.


...라는 생각으로 다사 했다가 또 클리어하지 못했다.
1000원 넣고 주는 3번을 다 했는데도 클리어를 못했다.

좌절감.
절망감.
고인물 좆망겜...!

그런데 왜일까? 한판만...한판만 더 하고싶다.

나는 또 다시 기체에 동전을 넣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그리고 해냈다!
클리어를 해냈다고!

나는 고작 클리어에 불과했던 결과에 크나큰 기쁨을 느꼈다.
좆밥쉑ㅋㅋ

그렇게 기쁨에 손발을 오므리던 도중, 남은 플레이 횟수를 보며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위 난이도의 존재.

태고의 달인에는 다른 게임들처럼 쉬움, 보통, 그리고 어려움 난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욱 더 어려운 상위 난이도가 존재했다.

곡 선택 화면에서 오른쪽 태를 여러번 두드리는 것.
그것으로 감춰져있었던 상위 난이도, 오니(鬼)가 나타나게된다.

꿀꺽.
남은 마지막 한판, 이걸로 마무리 지어보는건 어떨까.

나는 망설임 없이 나츠마츠리의 오니난이도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영혼까지 털렸다.
분하다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황당함 그 자체.

아니 이딴걸 치라고 만들었다고??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채보.

그렇기에 나는 인간을 그만두고 태고의 달인에 영혼을 팔기 시작했다.
판정선에 닿는 노트를 치고, 판정선에 달는 노트를 치고, 또 판정선에 닿는 노트를 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과정을 반복하였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오락실에는 크나큰 함성이 들려왔다.

깼다. 깼다고!
나는 신이다! 신세계의 신이다!
우흥흥 기뻐하며 제자리를 펄쩍펄쩍 뛰고있었다.

"저기 죄송한데 저 좀..."

갑작스레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앗...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인 모양이다.

남자는 자연스레 가방에서 북채를 꺼내들어 선곡을 하기시작했다.

『幽玄ノ乱』

남자 역시 난이도는 오니를 선택.
저게 도대체 무슨 곡인가, 하고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했다.
저정도면 나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개소리는 단 20초도 안가서 처참히 부서지고 절망적인 광경을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된다.

갑작스레 엄청난 속도로 몰려드는 노트들.
무려 BPM 300이라는 절망적 수치의 32분음표...!
남자는 아무런 미동없이 그 모든 것을 쳐내고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과연 인간이라 불리울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나는 도대체 뭐였던 것이지?
그저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하찮은 벌레에 불과했던 것인가!

열등감? 아니다.
저런걸 보면 열등감이 생길게 아니라 경외심이 생긴다.
아니 시발 저걸 도대체 어떻게치고있는거지?

다른 건반게임이면 몰라도 이건 존나게 무거운 북채를 들고하는 2버?튼 게임이라고...!

(フルコンボー!)

이내 들려오는 게임의 음성.
풀콤보...라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구나.

잠깐, 결국 사람은 사람이잖아.
나도 오랫동안 태고의 달인을 하다보면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해보는거야. 어차피 할 짓도 없는데 이거라도...!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태고.
지금은 그딴 말도 안되는 생각 버려두고 그냥 즐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