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토끼귀 없긴 한데 문장만 한 번 봐줘


"뭐하십니까."

담배를 꼬나물었다. 다 무너져가는 도시 한복판의 편의점에는 한 번도 본적 없던 담배가 진열되어 있었다. 호기심에 가져왔고, 라이터는 후임의 것을 빌렸다. 그러고서 멍하니 저 먼 풍경을 보고 있는 선임의 곁으로 왔다.

"저거 봐."
"예?"
"저기 말야. 저기. 머리에 토끼귀 달린 애들 줄지어서 가는거."

선임은 저 멀리. 포로 사이에서 분리한 토끼귀 소녀들을 가르키고 있었다. 옆 중대 아저씨한테 듣기로는 사실상 노예처럼 굴려지던 녀석들이라고 했다. 오늘 첫 투입인 나에게는 처음 보는 모습의 아인에 꽤나 흥미가 동했다. 선임도 그런 모양이였고.

"노예들 아닙니까?"
"정확히는 해방된 포로지. 포로수용소로 갈테니까. 대충 세봤는데. 트럭에 쑤셔넣어서 간 포로만 아마 수백이 넘어. 우리 사단 수용소에서 임시수용하기엔 너무 많던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헌병들 일 아닙니까?
"난 여기 와서 그 새끼들이 성실하게 일하는거 못 봤어."

무표정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인상을 팍 쓴 선임은 피던 담배를 물이 고인 자리에 비볐다. 픽하고 죽어버린 불꽃을 보더니, 인생 살 맛 안 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보기엔 전역도 몇개월 안 남은 양반이 뭐 저러나 싶었다.

내 앞에는 방금 전까지 선임이 보던 풍경이 남아있었다. 다 무너지고 죽어가는 도시는 아주 바빴다. 수십대의 트럭이 줄지어 가고, 총소리가 울리며 귀를 자극한다. 열기가 넘치는 도시는 아직 제 수명을 다 하지 않은 것처럼,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사람이 나왔다. 다들 두려움에 잡혀먹인 얼굴이었다.

개중에도 아직 두려움이 뭔지 모르는 고양이귀 소녀가 내 앞으로 와서 손을 내밀었다. 인간으로 친다면 대충 5살 남짓으로 보이는 소녀는 내게 분명한 발음으로 "초코"라고 했다.

고과서에서 보던 흑백사진을 떠올리며 건빵주머니에서 과자 한 줌을 손 위에 올려줬다. 보물이라도 되는 양 가슴에 품고 가족들을 향해 쪼르르 튀어가는 모습이 눈에 깊게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