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한때 런던과 함께 유럽,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자 관대한 황제의 통치하에 세상 만민이 모이던 번영의 상징이었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한적하고 한물간 옛 도시일뿐이었으며, 옛 영광에 빌붙은 내륙국의 수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는 과거의 망령들이 남아있었다. 가장 번창하던 시절을 살아왔던 수백년 묵은 망령들이 고풍스럽지만, 관리가 안되 낡은 건물 지하에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합스부르크의 황가에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어둠속에서 제국을 지켜오던 그러한 존재들이었다. 카발라를 익힌 유대인 신비주의자, 자동기계를 연구하던 기술자, 현자의 돌을 찾던 연금술사들. 이들은 제국과 함께 죽어버리기엔 너무나도 지독한 망집의 존재들이었으며, 아직도 K&K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부활을 도모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자들이 왜 모였을까? 보통때라면 그저 지나간 세월 이야기를 하거나, 다뉴브강을 따라 제국의 부활을 논의하는 늙은이들이 모이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수많은 옛 영토의 봉신들이 오랜만에 모인 것이었다. 그들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앉은 테이블 가운데에는 한사람의 주교가 서있었고, 그의 손에는 두개의 열쇠와 삼중관이라는 교황의 상징으로 봉해진 한장의 친서가 들려있었다.



정 가운데 앉은 가장 높은 자리의 가장 젊어보이는 청년이 오래된, 고풍스러운 라틴어로 교황의 사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신의 종복의 종복께서 황제의 종복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자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자들도 모인 무리. 우리가 오직 충성하는건 합스부르크의 황제이시며 신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으신 분 뿐이다. 지금 이 유럽을 지배하는 미천한 백성들이 뽑은 광대들의 의회조차 우리를 굴복시키지는 못했을지니."


그 소리에 주교는 정중하나 거만한 행동거지로 느릿느릿 봉서를 열고 대답했다.


"나 교황은, 신의 종복으로써 신앙을 수호하고자한 신성한 로마제국 황제의 맹세를 지금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대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연금술 학술회는 합스부르크 황제의 종복으로써 그대들의 주인의 맹세를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청년 또한 당당히 말했다.


"나, 학술회장은 거부한다. 400년간 황제께 봉사하며, 오직 황제의 직접적인 명령 이외에는 따라본 적이 없으며, 내가 발견했던 현자의 돌조차 그분의 명령으로써 찾아냈던 것. 지금은 비어있는 주인의 직위를 들먹이며 함부로 우리를 굴복시키려 하지 말라. 나는 연금술사로써 수백년간 신비를 탐했으며,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현명한 자이니."


주교는 이미 그 답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시 봉서를 읽어내려갔다.


"그대들이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제국의 땅을 지켜온 봉신으로써 그대들의 봉토를 위협하는 외적에 대항할 것을 요청한다. 남 슬라브의 흡혈귀들과 불가리아의 흡혈귀, 루마니아의 흡혈귀들이 그대들의 땅으로 올라와 이 유럽의 신실한 신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그대들의 땅을 시체로 더럽히려 하니, 이들을 막을지어다. 나 신의 종복은 충실한 종복이자, 흰 독수리의 후예들인 폴란드의 늑대인간 보야르들을 그대의 동맹으로 붙일지어니."


청년은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열려 했지만, 옆에 앉아있던 긴 수염의 늙은이가 벌떡 일어나 욕설을 퍼부었다.


"거짓된 쓰레기 자식들. 이단자들과 야합을 하는 천한 놈들의 자식이 잘도 입을 여는구나! 슐레지엔의 개새끼들, 수백년간 기른 주인의 손도 물어뜯는 잡종 똥개들을 함부로 우리와 붙여주려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땅을 우리의 손으로 지킬것이니, 너희들의 도움을 필요없다!"


그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자였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고전파 연금술사였다. 그는 물 한방울로 상대를 녹여버리고, 바실리스크와도 눈싸움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악명이 자자한 흉폭한 늙은이었다.


그런 그를 제지한 건 학술회장이었다. 그는 연금술사를 제지하고 알아차리기 힘들게 겁먹은 교황의 사자에게 친서를 계속 읽게했다.


"또한, 구원받기 힘든 죄인들로 이루어진 외인 사단을 그대들에게 보내주고자 한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 아닌자가 섞여있으나 주님께 충성하며, 가장 뛰어난 부대이니 그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을 이끄는 사령관 또한 그대들을 배려하여, 한때 그대들과 함께했던 자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구성원들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거나, 분노하거나, 증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빅토리아 폰 겔프 공작부인, 한때 이 학술회의 주요한 간부를 배출하던 겔프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100년전 죽었다고 알려졌던 자. 학술회를 배신하고 흡혈귀에 붙었으며, 자신이 속했던 흡혈귀클랜을 배신해 자신이 전부 '잡아먹어' 버렸고, 이윽고 나치에게 빌붙어 권세를 회복하고는 나치마저 배신하고 세계를 전전하며 소식이 끊긴자. 그녀가 이번엔 교황청에 붙은 모양이었다.


"나는, 만약, 여러분이, 저들의, 제안을, 거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내가, 간부로써, 지닌, 거부권을, 행세하겠소."


침묵속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한 음울한 해골같은 랍비였다. 눈에는 빛을 잃고 쾡하게 움푹 파인 눈두덩이를 지니고, 수염은 정리되지 않아 마구 기른 초췌한 몰골의 남자. 그는 70년전만 하더라도 누구보다 유쾌하며 긍정적인 인간이었지만, 옛날에 겪은 사건은 그를 완전히 바꾸어버렸고, 그는 이후로 생존해 돌아와 오직 골렘과 자동인형만을 만들며 자신의 할일 이외에는 아무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조용한 자였다. 그가 입을 연 것은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일이었다.


학술회장은 그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더 말을 할 것도 없군. 우리는 우리 독자적으로 싸울것이다. 신의 종복의 종복에게 전하라. 황제의 종복은 배신자들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T-62 전차와 AK 소총으로 무장한채 몰려올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산과 신비로 그들이 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넘지 못할 이 방파제를 수호할 것이라고."



교황의 사자이자 주교는 '후회할거요' 한마디만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문체 등을 돌려 나갔고, 학술회장은 손짓 한번 까닥여 그가 나가고 열린 문을 닫았다. 그들은 오직 황제가 내린 명령에 따라 그들의 영토에서 다른 마법사들이나 세력들을 들이지 않고, 이 유럽을 수호할 어둠속의 방패로써 고고히 버텨나갈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명령이었기에.



그냥 어반 판타지 삘 와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