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이 정보글은 공작이라는 책에서 나온 정보들이며 오늘 먹물이 돼지아조씨들을 털었다는 얘기듣고 삘받아서 소개할까합니다. 정보사령부는 국방정보본부 소속이며 휴민트를 담당하고 대북 정보수집을하는등 꽤나 유능한 정보기관이지만 여느 정보기관이 그러하듯 뻘짓과 대실패 사례들이 있고 실패사례들은 기록되는법입니다 그니까 씨의불 인도네시아특사망무새마냥 좆지랄하는새끼들은 뒤지십셔.


 공작책은 1990년대의 대한민국 첩보사를 미친듯이 상세하게 밝혀주는 개꿀잼책입니다 본내용은 모두 공작의 내용이며 꼭 사서 읽으십셔.





 1. 무분별하게 덤비다가 실패한 공작


 정보사는 1992년 8월 한중수교를 계기로 중국에서 적극적으로 대북공작을 수행해 초기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타성에 젖어 보안에 실패한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규정상 정보서 공작관은 적진에직접 침투할 수 없습니다. 침투할 마땅한 방법도 없으며 주로 중국 현지에서 포섭한 공작원에게 임무를 주고 투입시킨 뒤 해당 공작원이 받아온 첩보를 본부에 보고하는 형식입니다. 필드에서 뛰는 대북공작관의 최고 직급은 대개 현장 팀장을 맡는 중령까지입니다. 대령 승진을 하면 본부에서 지휘,감독하는 일종의 '데스크' 역활을 수행합니다.

 공작에사 보안은 생명줄입니다 아무리 공작계획을 잘짜서 여건과 성과가 좋다해도 노출될 경우 그 공작은 즉시 중단됩니다. 그리고 보안누설을 할경우 반드시 보안누설의 원인을 찾아내 규명을하는것이 원칙입니다. 허나 정보사는 기밀 누설의 원인을 찾아내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은폐하기에 급급하며 책임회피와 은폐의 결과는 다른장교의 납치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2. 정보사령부 장교 납치 미수 사례 



 당시 95~96년동안 공개적으로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북한은 공공연하게 중국 내의 한국인들을 월북시키겠다고 떠들어대었고 실제로 당시 안승운 목사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 리철의 소개로 단둥에서 만난 북한 인민군 소장(준장)은 박채서에게 대뜸 박XX 중령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채서는 그가 알고 묻는 것임을 직감하고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박중령은 박채서와 3사 임관동기였으며 지휘관 생도여서 생도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국방대학원에 응시 할 때도 먼저 입교해 재학 중인 박중령이 입시정보와 관련 자료를 제공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대학원 재학중 같은 군인아파트 단지에살며 가족끼리 교류하며 가깝게지내었고 공교롭게도 그가 정보사 공작부서에 먼저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대 인민군 소장은 박채서에게 "박중령을 공화국으로 데려가겠다." 라고 말하며 한국군 장교를 데려가면 한국국방부가 중국당국에 해명하는걸 보고싶다(국제법상 현직장교는 상대국의 허가가아니면 장기체류를 할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사실상 납치통보였으며 그들은 아마 박 중령을 데려가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박중령은 당시 단둥에 임가공 공장을 차려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의류제조업을 하는(주)쌍방울 단둥지사의 이사로 위장근무를 하고있었고 북한 정보당국은 이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역공작을 하려하였고 무력팀도 준비하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시간문제였기에 박채서는 당시 김영수에게 납치하면 자신이 의심받는다며 시간을 늦추고 귀국과 동시에 상부에 보고하여 박중령은 안기부의 조정-통제하에 귀국 조치를 당했습니다. 정보사에서는 박중령이 단둥에 위장 근무하는 사실을 박채서가 북측에 노출시켰다고 보고하였고 안기부는 정보사의 보고를 믿지않았습니다. (혹은 위장보고,,)




 




3. 실 정보사 장교 납치사례

 

 박중령의 납치를 실패한 북한은 98년 3월 같은 목적으로 중국에 나가 활동하던 정XX 중령을 납치하였습니다. 정중령은 중국 단둥의 한국 고려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해 근무하고있었습니다. 정보사는 중국현지에 비밀리에 수습팀을 파견했으나 연락이 닿지않자 임무 수행 중 납치돼 죽었다고 1차 결론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공작원의 소행인지 단순한 강도사건인지 미제사건에 빠졌고 정중령이 북한의 미인계에 빠져 자진월북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이후 정보사에서는 이 일을 쉬쉬하여 정중령의 이니셜을따 'CKW 사건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보사 수뇌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생겼으니 북한당국이 예상과 달리 정중령을 6개월만에 풀어주었습니다. 정중령이 풀려난 사실을 공작 라인을 통해 죽국에서 즉시 보고하자, 정보사 수뇌부와 공작부서 책임자는 납치되었다는 소식만큼 충격이었습니다. 정 붕령은 한국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곧장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건강검진후 관계당국의 신문조사를 받았으며 납북경위는 이러하였습니다.

 중국에서 '블랙'으로 활동하던 정 중령은 임무중 한 조선족 여자를 알게되었습니다. 그의 신분을 수상하게 여긴 이 여성은 오빠게에 정 중령이 '특무요원'인 것 같다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 오빠는 북한에ㅐ 중국산 물품을 반입해 파는 일을 하던중 북한세관측에 밀수혐의가 포착돼 붙잡히자 무마해주는 대가로 국가안전보위부에 정중령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정 중령의 신분과 위치를 추적한 보위부 요원들이 숙소를 급습해 그를 북한에 끌려갔습니다. 문제는 그가 어떻게 풀려났는가 였습니다.

 정보당국이 정 중령을 상대로 강도 높은 신문을 벌이자 정 중령은 충격적인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정 중령은 북심문관들이 고문하면서 가족의 신상까지 파악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자 버티기 어려워 베이징과 선양의 중국 내 우리 대북 공작망을 북측에 대부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정중령은 또 북한 당국에 충성맹세를 강요하는통에 북측공작원으로 활동하겠다고 약속한 뒤에 몰래 도망나온 모양새로 풀려났다고합니다. 또 우리 정보기관의 대북정보 활동을 월 1회 중국의 포스트에 보고하라는 임무를 주었다고합니다.

 정 중령이 납치된 가운데 그의 부인이 중앙일보에 제보하고 특별취재팀이 취재에 들어갔으며 당시 국방부장관인 천용택은 비록 과거정권에서 발생한일이라도 현역 장교가 중국에서 납치된 치욕적인 사실을 막아야했으며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될수있었으므로 그들을 설득해 취재를 막고 정 중령은 군무원2급으로 특채해 정보사에 계속 근무하도록 하였습니다.








4. 대만우회침투하다 뻘짓해 감금된 사례와 빚쟁이 사례


 그 뒤로도 97년에는 정보사 공작단의 이중령이 북한 군 당국의 초청으로 방북하는 타이완 첩보부대 방북단에 슬쩍 편승해 들어갔다가 현지에서 신원이 탄로 나 체포되자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중령은 대만 첩보부대의 협조를 얻어 방북을 성사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한 공작이었으나 준비가 부족한데다가 북한의 능력을 매우 과소평가하였습니다. 박채서가 수집한 북측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타이완 대표단 9명중에서 금방 이중령을 찾아내었습니다. 대표단의 안내를 맡은 북측요원은 어릴때부터 중국에서 자라고 대학까지 마친 반 중국인이었습니다.

 북측 요원은 어눌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이중령에게 주목하였으며 특히 식사할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밥먹을때 젓가락을 이용하니 이중령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걸보고 수상하게 여겼고 그는 신분이 발각되자 조사받는 중간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치료 및 보호시설의 부족과 타이완 첩보부대와의 교류및 우호 관계를 감안해 이중령을 석방했습니다.

  그 사건에 앞서 95년경에는 박대위가 중국 선양에서 공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곤경에 빠졌습니다. 박 대위는 현지에서 기무사 수사관을 사칭하면서 선양의 조선족들과 접촉해 활동하였는데, 중국 공안과 북한정보요원들은 요란하게 반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그 의 신분을 모를리가 없었고 북측요원들은 그의 전화를 상시적으로 도청하게 하는가운데, 사업을 핑계로 접근해 고의적으로 막대한 빚을 지게하고 때로는 중국조폭을 시켜 채권 채무관계로 감금하고 집단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채서는 북측 요원들이 자랑삼아 들려준 도청녹음을 통해 그런사실을 알게되었고 박 대위가 한국의 지인들에게 국제전화로 돈을 빌리거나 가끔 중국여자와 그렇고 그런 대화내용을 나눈게 전부였습니다. 박채서는 도청녹음을 들려준의도가 궁금했지만 물어볼수 없었습니다.

 후일 박대위는 신분이 노출되고 린치까지 당했슴에도 육사출신이여서 그런지 2000년대초반 베이징주재 대사관 육군무관으로 근무하였습니다. 초급장교시절 북중정보요원들의 노리갯감이었던 그가 어떤정보활동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5. 북한의 미인계에 걸린 정보사 공작단 장교



 96년 초여름 김영수 반탐과장은 북경 량마허 호숫가에 자리잡은 위양판덴 바로 옆의 북한 그림 판매소에서 박채서에게 조선족 아가씨를 한명 소개해주었습니다. 박채서도 잘 아는 아가씨였습니다. 박채서가 북경에 오면 통역 겸 가이드를 해준 조선족 아가씨의 학교 친구였습니다. 김영수의 권유로 그녀가 근무하는 위양호텔 근처릐 아파트촌에 따라갔으며 아파트 출입문 바로 옆 책상위에 낯익은 흉상과 침실에서 골프백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조XX 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조XX소령은 박채서가 공작단 902정보대에 근무할 때 인간정보 담당인 공작단 공작2과에 근무하였습니다. 그가 북경에 조그만 오퍼상을 차려놓고 신분을 위장해 공작원으로 와 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오퍼상의 사무원으로 채용된 그녀는 조소령의 정보원이자 북한 정보요원들과 가까웠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 반탐과장 김영수는 조XX가 사무실 직원 겸 정보원으로 채용한 조선족 아가씨를 역포섭해 훤히 들여다 보고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할 즈음 조소령은 정보원 아가씨를 여행객으로 위장해 평양을 방문해 첩보를 수집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방법은 우스꽝스러웠으니  조선족 아가씨 정보원은 주위에 이렇게 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번 군사퍼레이드는 어떤 단위 부대가 참가하는지 새로운 무기들은 얼마나 참가하는지 김정일은 참가하는지 등등.

 군사지식이라고는 전혀없는 조선족 젋은여성에게 군사정보수집을 시켰으니 금방 스파이인게 들통나 정보기관은 그녀의 단체여행객에서 떼어내 1주일동안 안가에 연금을 하며 젋은 요원3명을붙여 매일같이 발정제 마약을 주입하고 밤낮으로 섹스 윤간고문을 자행하였으며 몰래카메라로 이를 녹화한뒤 그녀를 돌려보낼때는 적당한 군사자료와 선물을 주며 포섭하였습니다.

 조소령은 자신의 정보원이 포섭된줄도 모른채 '성과 거양'으로 포장해 포상케하고 보름간 국내여행을 시켜주는등 극진한대접을 하였다고합니다. 조소령의 위장 사업 아이템은 북한산 농수산물을 국내에 수입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신원을 파악한 북한 당국이 농간을 부려 6천만원 가량 개인채무를 지게 만들었습니다. 현장 경험이 부족한 공작관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발생한 과오였으며 안기부에서 정보사에 지급되는 공작자금은 중간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빼먹는 것이 관행이던 시절에 소령봉급으로는 감당키 어려웠습니다. 훗날 그가 채무관계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몰라도 조소령은 대령으로 진급하였습니다.






 6. 산허우이와 정보사의 갈등 (보복살해 위협을 받은 국방무관)


 97년 5월경에 안기부,기무사,외교부,경찰 외사국의 베이징 주재원들이 각각 본국의 소속 기관에 긴급 보고를 타전하였습니다.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 육군무관보좌관 이XX중령의 신변위협에 대한 보고였습니다. 이중령은 초급장교시절에 홍콩유학을 다녀온 군대 중국통이었습니다.

 그는 북경주재 육군 무관보좌관을오 정보수집 공작 활동을 의욕적으로 하다가 중국의 대표적인 폭력조직 삽합회 산허우이와 북한당국간의 마약 거래선을 침범한 것입니다. 9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기부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회화난을 극복하기 위해 '슈퍼노트' 라고 불리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지폐를 찍어내고, '백도라지' 같은 위장 명칭을 사용해 양귀비 재배면적을 2천200만평까지 늘려, 해외공관이나 당 소속 무역회사가 당시 50개 조직 15만명에 이르는 삼합회 조직을 통해 밀매하였던것입니다. 이에 구역을 침범당한 삼합회 측에서 보복 살해를 공언하자, 관련 첩보를 입수한 각 기관의 주재원들이 본국에 타전한 것이었으며 각 기관의 정보를 접한 한국정부는 대사관에서 마련한 특별 비상루트를 통해 이중령을 긴급히 국내로 도피 송환시키며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05년 9월 초 박채서는 중국 허베이성 샹허의 한 골프장에서 산허우이 회주와 라운딩을 하다가 그로부터 다시 이중령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회주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한국대사관 무관 이대령을 죽이겠다."고 호언 하였습니다. 박채서는 그로부터 얘기를 듣기전까진 한국대사관 무관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에따르면 과거 자신들의 보복을 피해 도망간 자가 다시 베이징에 나타난것은 산허우이 조직을 무시하는 처사이므로 묵과할수 없다하였습니다.

  골프 핸디가 프로급인 박채서는 우연한 기회로 그를 알게 되었으며 그의 골프선생이 되었고 그가 산허후이 회주란 사실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뒤에야 알았으며 그의 보복의지는 삼합회의 생리와 과거의 유사한 보복살해로 헛소리로 치부할수없었습니다.

 96년경 귀국을 한 달 앞둔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 문화 참사가 새벽2시경 화두호텔 앞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당시 중국 공안 당국과 대사관은 단순 뺑소니 고로 간주하였지만 실상은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었습니다.

 문화부 참사는 북경에 근무하면서 한 중국인 여성과 교제했는데, 이 여성은 참사를 따라 한국에 가고싶어 했으며 ,이에 참사는 귀국을 앞두고 그녀에게 한국에서의 일자리를 약속하는등 실제로 수속을 밟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녀는 산허후이의 중간 간부 애인이었고 뒷조사를 통해 불륜의 사실을 알자 부하들을 시켜 뺑소니로 처리한 것이었습니다.

 산허후이 회주는 태연하게 박채서에게 들려주며 처리하는건 일도 아니란식으로 얘기하였으며 박채서는 곧장귀국하여 국방정보본부 해외운영처장인 고영일 준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박채서는 왜 이런 장교를 중국에 보냈는지 국방부의 처사를 이해할수 없었다고 하자 당시 고영일 장군은 자신과 무관하며 중국에 나가려고 윗선에 손을 썻으며 무관관리책임자인 자기자신도 모르게 명령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여튼 산허후이라는 조폭조직에게 한국군장교가 죽는것은 개망신이라 판단한 당국은 정보본부 소속 장교를 베이징으로 보내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대사관 이외의 바깥활동을 일절 하지말라고 지시했으며 신변안전을 위해 이대령에게 귀국하라 하지만 이대령은 본국 소환을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고영일 장군은 그해 장군 진급심사에 정보병과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데 이미 청와대에서는 이대령을 장군심사에서 제외하라는 지침을 내렷으며 사유는 이대령은 산허우이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보복 살해 위협을 모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관 전역후 북경 현지에 사단법인 한중XX포럼 사무실을 차려 대표로써 활동했다고합니다






7.  정보사의 실패 금창리 핵시설 의혹

 정보사의 정보 실패와 빼놓을수 없는 것이 금창리 핵시설 의혹 사건으로 미 정부는 98년 정보사 첩보를 바탕으로 북한 금창리 핵시설 의혹을 제기하며 사찰단까지 보내었으나 지하시설이 핵시설이 아님을 밝혀 망신을 샀습니다.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은 98년 8월17일 뉴욕타임스가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되었고 사실이면 북한이 미국의 정수로 건설지원을 조건으로 핵동결에 합의한 94년 '제네바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것이라고 하였으며 당시 4차례의 회담끝에 북한은 아닐경우 '모욕에'대한 보상을 하라며 사찰을 허용하라 하였습니다.

 통상 군 관련 공작은 국정원이 직접 하지않고 정보사를 통해서 합니다. 금창리 핵시설 확인도 정보사가 포섭한 조선족 공작원을 투입해 금창리 부근의 토양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핵시설로 판명되었고 미정부는 한국과의 정보 협조를 근거로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시설로 확신하였으며 한국정부도 금창리 토양채취 공작을 수행한 정보사와 국정원 관계자들에게 훈장을 주고 포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역공작으로 흑금공작원 박채서가 북한에 침투해 파악한 바로는 북한은 국정원-정보사의 조선족 활용공작을 꿰뚫고 있었으며 북한은 한-미대북공작의 혼선을 주기위해 조선족을 역포섭 자료와 핵물질이 든 토양까지 제공해 역용하였으며 국정원-정보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대어를 낚은것처럼 반겼던 것입니다. 이일로 사찰후 식량30만톤을 제공하였다고합니다. 당시 공작단장은 이XX준장으로,역공작에 말려든 그의 부하들이 핵시설 의혹을 확인한 대북공작을 수행한 공로로 훈포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7줄요약

1. 정보사가 공작을 많이했는데 당시 경직적인 군문화로 보안실패가 일어났고 실패할경우 덮기 급급함

2. 당시 위장근무중이던 박중령의 존재를 알고 이새끼 데려감 이라면서 북괴가 떠벌려 박채서가 본국에 알려 귀국시킴

3. 박중령의 납치실패후 보안실패한 정중령의 숙소를 급습 뉴스에 의하면 치열한격투끝에 납치되고 죽은줄알았다가 귀국됨 천장관은 언론에 안새어나가게함

4. 대만우회침투하는데 짱개에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가짜중국인 행세못해 걸리는 뻘짓이 일어나고 박대위는 보안신경안쓴 등신짓하다 채무관계로 린치도당함

5. 훈련도 못받은 조선족여성을 이용하려다 오히려 그조선족이 약물윤간으로 역포섭되어 정보가 줄줄샘

6. 삽합회와 빨갱이 루트추적하다 건드려서 살해위협받음 공작이랑 연관없지만 실제 살해사례도 있었음

7.금창리 핵시설 사찰은 조선족공작루트를 먼저 알아챈 빨갱이가 역공작한거임



 3줄요약

공작 존나 재밌다

꼭 사서 읽어라

대한민국 첩보사의 유이한 책이다.



 빨갱이도 보안유지 못한건결국 똑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