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평범한 중동 국가였다

영국과 프랑스 보호령이었다가 독립했고 공화 독재정권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스라엘한테 깝치다 털리는 평범한 20세기 후반 아랍국가들의 역사를 밟아왔다.


그런 이라크를 본격적으로 폭주시킨 이는 사담 후세인이다.

부통령 시절 후세인은 석유 국유화를 통한 성공적인 경제정책으로 윤택한 국가를 건설해 인기를 얻었고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리고 취임 다음해인 1980년 후세인은

이란을 공격한다


이란-이라크전 결과 이라크는 무려 800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얻었고 이라크군은 지나치게 비대해져 예산먹는 하마가 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군축을 하겠지만, 이란을 견제할 전력이 필요했던데다 군부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된 후세인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었고


이럴때 독재자들이 공통적으로 택하는 선택지가 바로.....

"따서 갚기" 되시겠다


누구한테서 800억 달러를 뜯을지 고민하던 후세인의 눈에 들어온 나라가 바로 이웃 소국 쿠웨이트였다


저 조그만 땅에는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9%가 묻혀있고, 이라크의 11%와 합치면 사우디의 25%에 거의 육박한다


1990년 7월, 후세인은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이 OPEC기준보다 더 석유를 생산해 이라크가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는 연설을 하며 쿠웨이트를 비난한다

이라크의 루마일라 유전은 쿠웨이트 영내까지 이어져 있는데 쿠웨이트가 이 석유를 훔쳐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0년 3월부터 이라크군 참모본부는 쿠웨이트 국경 집결계획을 작성하고 있었고 동년 5월에는 쿠웨이트에 150억달러의 자금지원과 영토 1/3의 할양을 요구했다. 당연히 쿠웨이트 국왕은 이를 거절했고 후세인은 "초대도 외교 절차도 없지만 3개월 후 가겠소"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990년 7월 중순, 후세인은 공화국수비대 사령관 알라위 중장을 호출해 쿠웨이트 침공준비를 명했다


여기서 잠깐 이라크 군사조직을 알아보자


이라크군은 두개의 조직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평범한 이라크군이고

하나는 정예부대인 공화국 수비대였다


공화국 수비대는 본래 수도경비부대로 2개 여단 규모였으나 독재자들은 자신만의 사병을 원하는 법

후세인은 공화국수비대를 무려 8개 사단 15만명 규모로 늘리고 이라크군의 몇배의 봉급을 주며 차별대우했다.


공화국 수비대는 크게 2개 군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1기갑사단 "함무라비"


2기갑사단 "메디나"


3기계화보병사단 "타와칼나"


위 3개 사단을 중심으로 4보병사단 "알 파우" 가 추가되어 1군단을 구성했고 이들이 공화국 수비대의 주력이었다


2군단에는 5보병사단 "바그다드", 6보병사단 "네부카드네자르", 7보병사단 "아드난"이 편제되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덤으로 코만도여단과 해군보병여단이 편제된 8특수전사단, FROG-7 로켓을 장비한 로켓여단, Mi-8/17과 Mi-24를 장비한 항공여단과 포병여단 등을 가지고 있었다


공화국수비대 기갑부대는 T-72M1이나 이를 라이센스 생산한 아사드 바빌(바빌론의 사자) 전차와 BMP-1/2 보병전투차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T-72는 M1 에이브람스나 챌린저 전차의 호적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또한 모든 보병사단은 차량화, 기계화되어 있었다


1990년 7월 16일, 함무라비 사단을 시작으로 공화국수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독제 파운HZ 전차수송차 중심으로 3천대 이상의 전차 트레일러를 보유한 이라크는 단 3일만에 함무라비, 메디나, 타와칼나 3개 사단을 쿠웨이트 국경 50km 이내로 집결시켰다(참고로 당시 미군이 보유한 트레일러는 750대였다)


7월 31일,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는 8개 사단 14만명, 기갑차량 1700대를 집결시켰다

단 2주만에 8개 사단을 5~700km를 이동시키는 것은 절대 쉬운일이 아니며 당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능력을 입증하는 한 예시이기도 한다


8월 1일,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는 남하를 시작했다.

기습을 위해 탄약배급조차 최소한도로 축소한 이들은 미군마저 속이는데 성공하고 진군을 개시했다


함무라비 사단과 타와칼나 사단은 주공으로서 6번 고속도로를 따라 자하라를 거쳐 수도 쿠웨이트시티에 진입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타와칼나가 아니라 네부카드네자르 사단이라는 말도 있다)


메디나 사단은 서부지역으로 진입해 사우디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다(타와칼나가 이 임무에 동행했단 말도 있다)


후속부대로 알 파우, 바그다드, 네부카드네다르, 아드난 사단이 유전과 비행장, 군사시설과 정부시설 등을 점령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이라크 공군은 Su-20/22 2개 비행대, Su-25 1개 비행대, MiG-23B 2개 비행대와 미라주F1 1개 비행대를 투입해 제공권을 장악하고 지상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우선 제공권 확보 후 비행장을 무력화하고 지상군을 지원하는 순서로 작전에 임했다

B727 여객기를 개조한 전자전기도 투입되어 전자전도 진행되었다(사진은 민항기)


8월 1일 밤, 후세인은 최종 침공명령을 하달했다


8월 2일 새벽 1시, 중동에서는 다시 전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