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냉전 체제가 시작된 이래 소련군에 있어 미군은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뛰어 넘어야 할 벽이자, 뛰어넘지 못할 벽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5대양을 제패한 천하제일의 미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에 대항하기 위해 소련이 꺼내 들려 했지만 안타깝게 묻히고 만 전투기, 이름만은 자유로운 Yak-141 프리스타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많은 이들이 잘 알다 시피, 항공기는 본래 이륙하기 위해선 주익과 동체에서 발생하는 양력을 이용하기 위해 고속으로 활주로를 내달리며 이륙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항공모함이나 공습 받은 뒤 긴급 복구한 간이 활주로 처럼 면적이 제한적인 곳에선 운용이 제한적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냉전기는 탄도미사일의 발달로 인해 자신들이 항공기를 굳이 띄우질 않아도 적의 비행장에 강력한 핵탄두 하나를 떨어뜨려 활주로고 뭐고 아주 풍비박산 내 버릴 수 있는 시대 였기에, 이런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서방에선 영국이 그 유명한 VTOL 공격기 해리어 시리즈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를 미국이 AV-8 이라는 이름으로 면허 생산 하여 좁은 곳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미 해병대가 대형 상륙함에 함재 공격기로 탑재하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미군의 천하제일 항모 전단을 못잡아먹어 안달이 난 소련 해군에게도 모티브가 되었고, 항모를 잡고는 싶지만 항모를 뽑을 수는 없었던 소련을 위해 미그와 수호이에 가려졌지만 2차 대전 부터 소련 공군에 전투기를 공급한 잔뼈 굵은 설계국, 야코블레프는 일단은 키예프급 항공순양함에서 운용할 수 있는 해리어 같은 VTOL 전투기인 Yak-38 포저를 개발한다.

그런데, 이건 사실 말이 좋아 소련판 해리어 였지, 실상은 위조꾼이라는 코드명 값 조차 못하고 해리어와 단순히 비교하는 것 부터가 모독 그 자체였던 이용 불가 수준의 불량품 이었다. 해리어와 비교하면 엔진 출력이 턱없이 낮아 엔진 만으로 뜰 수가 없어서 엔진 앞에 리프트 엔진을 별도로 설치해야 했는데 이게 안그래도 떨어지는 비행 성능과 무장 능력을 더욱 까먹어서 출격시 장착 가능한 무장이 공대지, 공대공 무장 몇 발과 외장 포드형 23mm 기총 한 정이라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게다가 비행 능력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전방의 리프트 엔진은 수평 비행시엔 추가 추력을 내지도 않는 주제에 무게만 잡아먹어 기동력도 처참한 수준에 신뢰성 또한 막장이라 더운 날엔 아예 뜨지도 못했고 고장은 밥 먹듯이 일어나서 해군 전투 조종사들 사이에서 "뜨기 전에 고장나면 다행이다" 라는 말 까지 돌아다니는 건 물론 대기 중인 기체들이 모조리 고장나 뜨지 않자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회식 까지 열었는데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을 정도로 심각했다.

물론 소련군 수뇌부도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니라 대체 기종 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야코블레프사는 기본적인 주 엔진-리프트 엔진의 동력계 구조는 비슷하게 유지하되, 새롭게 설계된 모델인 Yak-141 프리스타일을 개발한다. 이 전투기는 엔진 부터가 기존의 포저와 비교하면 기본 출력만 2배 이상 강력한데다 일반적인 전투기에 달릴 법한 애프터 버너 까지 장착되어 VTOL 전투기 중에선 특이하게 초음속 비행 까지 가능했다. 당연히 늘어난 엔진 출력 만큼이나 비행 성능과 항속 거리는 월등히 향상되었고 장착 가능한 무장양도 2배로 늘었다. 게다가 전작과는 달리 MiG-29와 동급의 레이다도 장착 되어서 단거리 적외선 유도 공대공 미사일 뿐만 아니라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도 갖추어 BVR 전투도 어느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플랭커 시리즈 처럼 FBW 시스템도 탑재 되어 조종 안전성도 대폭 향상되었다.

이제 소련 해군은 더이상 언제 떨어질 지도 모르는 전투기를 전쟁 동안 50회 출격 시키는 수모도 겪지 않고 우수한 공대공/공대지 성능을 가진 전투기로 언제든지 폭격, 공중전 등 다양한 임무를 뛸 수 있는 함재 전투기 다운 전투기를 드디어 굴릴 수 있게 되었다. 당시 NATO 진영의 해군은 여전히 미국이나 프랑스 등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항모도 없었고 그나마 있는 쪽도 여전히 정규 항모도 아닌 초음속 비행도 못하는 해리어나 굴리는 경항모 급 물건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이제 소련 해군은 더 이상 제대로 된 항모도, 함재기도 하나 없는 유명무실한 상태를 넘어 NATO 진영 해상 전력에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준 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정은 Yak-141이 실전 배치되었을 때를 상정한 이야기였다. Yak-141이 첫 비행에 성공했을 당시, 소련은 이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아프가니스탄 에서의 전쟁과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 참사로 인해 재정이 황폐해져가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에어쇼에서 첫 공개를 했을 당시는 소련이 해체된 이후라 나라 상황은 막장 그 자체였다. 러시아는 프리스타일을 서방과 협력해 판매처를 어떻게든 확보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도 사지 않는 물건으로 남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련이 재정이 황폐화 되며 해체되지 않았다 하면 소련 해군 전투기로 채택될 수 있었을까?

안타깝지만 애초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소련 해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리어나 잡을 수 있는 VTOL기 따위가 아니라 당대 최강의 전투기였던 F-14와 F-15를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전투기 였기에 그들에게 있어 VTOL 전투기 도입은 글자 그대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소련 해군은 함상에서 운용할 수 있는 플랭커 패밀리 전투기인 Su-33 플랭커-D를 실전 배치했고 항공모함이라 "부를 수 있는" 아드미랄 쿠즈네초프급(단, 이쪽은 설계는 Yak-141에 더 적합하게 되어 있었다.)에 이어 (모두 취소되긴 했지만) 오렐급과 그를 계승한 울리야놉스크급 항공모함의 건조를 계획했을 정도였던지라, Yak-141이 아무리 날고 길어봤자 Su-33에 미치진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탓에 이를 기반으로 계획되던 파생형과 개량형들 까지 모조리 개발이 취소되며 흐지부지 되는 비극을 맞이하며, 야코블레프의 야심작은 그렇게 코드명 과는 달리 소련 해군에서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 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국이 JSF 사업을 진행하던 시절, 이 전투기는 전혀 뜻하지 않게 중요한 기여를 하나 하게 된다. X-35를 개발하던 록히드 마틴과 노스럽 그루먼은 러시아에서 비행 불가 상태의 Yak-141을 3대 인수해 자신들이 개발 중이던 전투기의 새로운 VTOL 시스템 개발에 데이타로 사용한 것이다. 사실 X-35 팀은 이미 Yak-141과 비슷하게 TVC가 하방 90도로 꺾이는 VTOL 시스템을 개발했던 전적이 있었지만 해당 계획이 취소 된지 오래라 손 대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쉽게 기술을 실증하기 위해 Yak-141을 인수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정작 고향 땅에서 버림받은 전투기는 자신의 철천지 원수이자 라이벌의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요긴한 데이타가 되었다는 것과 하필 Yak-141과 함께 취소된 후속 프로젝트 중 VTOL 스텔스기가 있었으니, 정말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는 역사가 되었다. 자신의 코드명 처럼 미래를 망친 소련과 러시아에 대한 프리스타일 보복이라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