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하게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무적인 군대라 하면 지금 당장 그 누구라도 바로 미군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그 세계 최강의 미 육군의 힘을 떠 받들고 있는 전력을 떠올릴 때 걸프만의 학살자 M-1 에이브럼스 보다도 더 먼저 생각날 무기는 아마 저공의 사신 AH-64 아파치 공격 헬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아파치 같은 공격 헬기가 무장량은 비슷한데 레이다에 잡히지도 않으면서 훨씬 빠르고 민첩하다면, 적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오늘 소개할 무기, 바로 RAH-66 코만치의 이야기다.


2차 세계 대전 부터 전쟁에 투입 된 헬기는 냉전을 거치며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2차 대전기엔 독일 크릭스 마리네가 소수의 헬기만을 투입할 때 미국 육군은 천재 항공 공학자로 손 꼽히는 이고르 시코르스키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양산형 헬기인 R-4를 대량으로 양산해 투입하며 중-면-인 3국 전역에서 고정익기가 뜨고 내리기 어려운 정글 한복판에 들어가 부상병을 구출하거나 연락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아는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헬기는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완성 된다. UH-1 이로쿼이, 통칭 "휴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다목적 헬기는 피스톤 엔진을 장착한 H-19와 같은 이전의 헬기와는 달리 제트 엔진에 가까운 터보샤프트 엔진을 장착하며 신뢰성과 엔진 출력을 크게 향상 시켰고 그 덕에 이 전보다 더 많은 완전 무장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전장의 택시"로써 차량이 지나가기 힘든 빽빽한 정글에서 보병 사단의 빠른 발이 되어 주었고 심지어 M-134 미니건이나 70mm MRL 같은 무장 까지 장착해 화력 지원 까지 해 주는 미 육군의 마당쇠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로쿼이 무장형은 방어력과 기동성이 낮아 월맹군이 중기관총으로 가하는 대공 사격에 대한 생존성이 부족해 본격적인 지상 공격과 기동헬기 콘보이 호위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엄연히 한계가 있었고, 그리하여 미 육군은 이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전문 공격 헬기인 AH-1G 코브라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다. 피탄 면적과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여 적의 대공 화망 사격에 최대한 맞지 않으면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제까지의 헬기와는 달리 좌우가 아닌 앞뒤로 좌석을 배치한 탠덤 시트를 도입해 달고기 처럼 좌우로 얇은 동체를 만들었다. 거기에 기수 하단에 M-134 미니건을 기총으로 장착하고 좌우 스텁 윙에 무장 장착용 파일런을 달아 70mm 하이드라 MRL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66년 부터 배치 된 이 헬기는 구정 공세 당시 월맹군의 T-55 전차를 하이드라 로켓탄으로 때려 잡으며 대전차전에서의 잠재적 가치를 증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코브라도 기총으로 M-197 3연장 20mm 벌컨포가 장착되고 BGM-71 TOW 대전차 미사일 운용 능력도 확보했으며, 해병대 용으로 쌍발 엔진 버전도 나와 더 큰 이륙 중량을 확보해 이전 보다 더 많은 무장을 장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발전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근본적으로 중/소형 헬기 였던 탓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고, 방탄 장갑이 부족해 내탄성이 그닥 좋지도 않았고, 무장인 토우 미사일도 사거리가 2.75km에 불과한데다 탄속이 느리고 반능동 SACLOS 유도라 사격 후 유도하는 동안에는 그대로 정지비행을 하고 있어야 하는 탓에 맨패즈 같은 대공화망에 그대로 노출되어 격추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렇게 80년대 이후 미군의 지상 공격을 책임 질 공격 헬기로 맥도널 더글러스사(훗날 보잉으로 인수)의 AH-64A 아파치가 선정 된다.


새롭게 선정된 공격헬기 아파치는 코브라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1100마력 엔진을 단발로 장착하는 대신 1700마력 엔진을 쌍발로 탑재하며 토우 보다 더 멀리 빠르게 날아가는 레이져 반능동 유도식 AGM-114 헬파이어가 장착되어 맨패즈와 대공포 사거리 밖에서 표적을 공격할 수 있었고, 설사 대공포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23mm 대공포에 대한 내탄성을 지닌 아파치에겐 기총으로 장착된 M-230 30mm 체인건이나 하이드라 70mm 로켓탄으로 적 대공포를 박살내면 될 일이었다. 추가로 야간전 능력도 크게 발전했다. 표적을 포착하는 눈이라 할 수 있는 TADS는 이제 낮 뿐만 아니라 밤과 악천우에도 적외선으로 훤히 볼 수 있어 전천후 작전 능력도 얻었다. 이 장족의 발전은 드디어 걸프전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잠깐 동안 투입된 아파치 헬기는 500대에 달하는 전차, 500대의 장갑차 외에도 대공포 사이트 30곳에 포병 사이트 120곳, 심지어 지상에 주기중이던 전투기들과 레이다 기지 까지 저공 비행 공격으로 박살내며 그 M-1A1과 함께 어마무시한 학살 대기록을 세워 미군 최고의 금자탑을 세운다.


그리고 이에 영감을 받은 미 육군 수뇌부와 시콜스키사는 아파치 조차도 몇 수 접을 강력한 공격헬기를 준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RAH-66 코만치 헬기였다. 코만치 헬기는 기존의 아파치와 OH-58 카이오와 정찰 헬기로 이루어진 편제를 아예 통합해 혼자서 정찰과 공격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정찰공격헬기로 계획 되었고 그를 위해 기존의 아파치를 뛰어넘는 성능의 전자 장비를 장착해 훨씬 멀리서도 표적을 찾아내고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고, 이중에는 TADS 보다 더 먼 거리서도 표적을 포착해내는 로터 마스트 위의 밀리미터파 레이다도 포함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코만치와 이제까지의 공격헬기를 구분짓는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저피탐성과 생존성이었다. 전파를 흡수하는 복합 소재로 동체를 제작하고 F-22 처럼 내부 무장창과 각진 형태의 스텔스 설계로 RCS를 최소화 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적외선 감지를 피하기 위해 통상적인 헬기들과는 달리 길쭉한 엔진의 배기구를 테일 붐 안에 매립해 저소음 페네스트론 테일로터가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바람에 배기가스를 섞어버리는 방법으로 냉각시켜 적외선 감시/조준 장비나 IR유도 단거리 미사일을 피할 수 있었다. 더불어, 복합소재로 제작 된 덕에 내탄성도 아파치와 동급인 23mm 급을 유지 하면서도 무게를 대폭 줄여 최대 순항 속력을 기존 아파치의 265km/h 보다 빠른 306km/h를 달성하고 느린 후진/측면 비행 속도 조차 120km/h를 초과 달성했다. 그 덕에 코만치는 최대 6발의 헬파이어 미사일만 탑재 가능한 스텔스 모드로 정찰 하며 대공포는 물론 맨패즈와 SA-13 고퍼와 같은 야전 방공용 단거리 SAM 사이트를 격파해 육군 항공대가 활동 하는데 거치적 거리는 방공망을 단숨에 격파하고 최대 14발의 헬파이어 미사일로 무장 가능한 비스트 모드로 소련의 기갑 웨이브를 소리 없이 삭제 해버릴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세상은 코만치를 받아주지 않았다.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 버렸다. 91년, 적으로 상정했던 제 2세계의 두목인 소련은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산산히 찢어졌고 동유럽 국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들도 이미 탈공산화, 민주화 바람 앞에 스러져가며 당장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던 냉전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린지 오래였고 2세계는 그와 함께 전면전을 수행할 능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미국의 수뇌부는 9.11 테러 이후 복수심에 미쳐 있던 희대의 안보 포퓰리스트 네오콘 정권 시대였고, 당연히 국방 장관은 신무기 이야기만 나오면 보청기 건전지가 나가는 "그 미친 늙다리"였다. 네오콘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을 대규모로 개편하면서 공격 헬기 계의 F-22의 꿈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주목한 것은 초고성능의 스텔스 헬기가 아니라 조그맣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던 무인기였다. RQ-1 프레데터만 해도 헬기 따위 보다 훨씬 긴 항속 거리와 체공 시간을 자랑했고, 무엇보다 사람이 타지 않았기 때문에 파일럿의 생환을 고려하며 각종 생명유지 및 비상 탈출 시스템 따위로 돈을 잡아먹지 않아도 되어 당시의 비정규전 기조에 이보다 더 정찰에 적합한 기종은 없었다. 추가로 미군은 시험 삼아 헬파이어 미사일을 달고 투입한 공격 임무에서 프레데터의 엄청난 활용성에 눈을 뜨고 제식명칭 마저 MQ-1으로 바꿀 정도였고 미군의 입장에선 제대로 된 방공 무기 조차 없던 테러리스트 나부랭이들을 상대로 높은 하늘에서 장시간 체공하며 감시하고 있다가 헬파이어 미사일로 소리 없이 때려 잡을 수 있는 프레데터가 쓸데 없이 비싼 주제에 스텔스를 제외하면 AH-64D 롱보우 아파치를 개량하는 것 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었던 신형 정찰 공격헬기 보단 100 갑절은 더 쓸모 있어 보였다. 결국,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성능만 바라보고 달려온 코만치는 그렇게 계획이 통째로 취소되며 하루아침에 몰락해 버리고 말았고, 정말 이름으로써 빌려 온 아메리카 원주민 코만치족 처럼 점차 세상에게 잊혀져 갔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에서 코만치가 잊혀진 2011년, 세상은 9.11 테러의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작전이 이목을 끈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발견 된 정체 모를 헬기의 잔해였다. 꼬리와 일부분만 남은 채 폭파 처리 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한눈에 봐도 RCS를 줄이도록 설계 된 듯한 테일 로터 디자인과 "헬기가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가기 전 까진 하늘 위에 떠 있는 줄도 몰랐다"는 주변 거주민들의 증언은 이 헬기가 코만치의 스텔스 기술이 응용 되었다는 점을 암시하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코만치를 개발한 경험은 AH-64D 롱보우 아파치를 AH-64E 가디언 아파치로 개량하는데 십분 활용되었고, 그 결과 스텔스 기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성능을 압도하는 괴물을 탄생 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 2020년대, 미군은 신냉전으로 다시 변화해 나가는 국제 사회 속에서 마르고 닳도록 써오던 기존 헬기들을 교체할 FVL 사업을 진행하고 경량 헬기 부문의 후보중 하나로 제안 된 벨사의 벨 360 인빅터스가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페네스트론 테일 로터(단 실기는 일반적인 테일 로터다)에 깔끔하게 각진 스텔스 설계와 내부 무장창등 코만치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차기 경량 헬기 사업 FARA에서 인빅터스가 뽑힌다면, 비록 제조사는 다르지만 코만치와 같은 스텔스 헬기가 다시 배치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시콜스키(정작 이쪽 후보는 냉전시대 경쟁자였던 러시아의 카모프가 즐겨 쓰는 동축 반전식이다.)가 이루지 못한 꿈을 경쟁자가 대신 이뤄주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오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연인 것인지 이 FARA 역시 예산 부족과 현대전 전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정찰헬기는 무인기 전력 및 저궤도 소형 위성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취소되어 코만치와 정확히 같은 말로를 걸으며 유인 스텔스 정찰 공격 헬기의 꿈이 이뤄질 날은 끝내 없어지게 되는 파국으로 끝나게 되었다. 물론 코만치의 기술을 넣은 정찰 공격 헬기가 아예 안나오진 않겠지만, 그 시점에선 이미 생존성, 가격에서 압도적인 무인기일 테니. 그나마 인빅터스의 경쟁 모델이 나토의 차세대 헬기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