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라 하면, 전격전으로 대표되는 성공적인 기갑군 운용 능력으로 전통적인 지상전 강국이자 기갑 강국의 지위에 올라간 나라로써 냉전기 동안 나토의 육군력을 담당하는 강철 주먹이었던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리듯, 차세대 보병 전투차 하나가 내외부의 문제로 어긋나며 그간의 이미지를 모조리 깨부숴 버리고 말았다. 바로, 오늘 소개 할 무기, SPz 푸마의 이야기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패배라는 결말로 막을 내린 후 나치 독일은 전면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뒤 동서로 분할 되었던 시절, 서독은 재무장을 거치며 소련군의 무시무시한 기갑 웨이브를 막아낼 기계화부대의 창설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독일은 기계화 부대에서 가장 필수적인 보병 수송 장갑차를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스페인의 이스파노 수이자와 함께 SPz HS.30을 개발하여 운용하게 되었다. 이 차량들은 20mm 기관포에 20mm 기관포탄을 방어 가능한 전/측/후면 장갑을 지니고 무장 보병 5명을 태우고 다닐 수 있었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들은 구형 M-47/48 패튼 시리즈와의 합동 작전은 할 수 있었지만 당시 신형이던 2세대 전차인 레오파르트 1과의 합동 작전은 불가능한데다, 내부 공간은 협소했고, NBC 방호 기능과 수륙 양용 기능도 없었다. 심지어 조사 결과, 대규모의 방산 비리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HS.30은 순식간에 독일 연방군의 흑역사이자 교체 대상으로 낙인이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그렇게 이를 대체하기 위한 후속 장갑차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데, 1970년 부터 배치 된 이 장갑차는 20mm 기관포에 밀란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 포탑과 더불어 서방 최초로 보병의 하차 전투만을 상정한 M-113 같은 APC에서 한단계 진화하여 보병이 탑승한 채로 전투를 치룰 수 있는 보병 전투 차량, IFV로써 SPz 마르더 라는 제식명칭을 달고 전력화 되었다. 사통장치는 비슷한 시절에 나온 소련제 IFV 였던 BMP-1보다 우수했으며, 차체 정면 장갑은 처음엔 20mm 정도만 막는 정도였지만 이후에 나온 개량형은 추가 장갑으로 30mm를 방어할수 있게 되었다. 동시기 서방의 장갑차량 보다 무겁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강을 도하할 수 있는 도하 장비의 도움을 받으면 될 일이라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이젠 마르더도 오래되어 교체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여기서 독일은 더 화력과 중량이 늘어난 고중량 IFV인 마르더 2를 개발해서 배치할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이 끝나면서 이렇게 너무나 비싼 장비를 살 필요가 있냐는 반발에 다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냉전 종식과 독일 재통일 이후 전차, 대공장갑차등과 공유하는 50톤급 공용 차대를 사용할 신형 IFV 개발 계획을 세우던 중, 9.11 테러로 촉발 된 비정규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당시 32톤의 페이로드로 개발 중이던 A-400M 아틀라스 수송기로 항공 수송과 해외 파병이 가능한 IFV로 요구 사항이 변경 되었다. 

본래는 독일 연방군도 그냥 이미 존재하던 스웨덴의 베스트 셀러 IFV인 CV90을 사려고 했지만, 이미 마르더를 만들며 달달한 수익을 올리던 독일의 크라우스 마파이사는 크게 반발하며 자신들도 충분히 저렴하고 성능을 충족 시킬 수 있는 장갑차량을 개발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그렇게 2002년, 외산 장갑차량 도입 대신 자국산 신형 보병 전투 장갑차의 개발이 시작되고 고작 4년 만에 시제품이 튀어 나왔고 2009년 부터 양산이 시작 되었다.

이렇게 개발이 빨리 진행된 비결은 바로 새로운 부품의 개발을 최소화 하고 이미 개발해 놓은 차기 표준 궤도나 암 외장형 유기압 현수 장치 (HSU) 등 기존에 개발해 놓은 부품들을 대거 활용하여 원가 절감을 시도한데에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많은 준비가 이뤄졌는데, 정면에서 30mm 기관포탄과 RPG-7 방어가 가능한 상태의 기본 중량만 31.45톤이라 K-21 보다 6톤 가량 더 무겁고, 측면까지 정면과 같은 방어력을 낼 수 있고 궤도로 10kg의 대전차 지뢰를 밟아 터뜨려도 방호할 수 있는 추가 장갑을 붙이면 무려 43톤 까지 늘어나 (중량만으론) 일본의 10식 전차와 맞먹을 만큼 무거워졌다. 거기에 추가로 돈을 내면 옵션으로 제논 램프 적외선 재밍 장치와 연막탄 발사기 등을 포함하는 MUSS 소프트 킬 APS를 장착할 수도 있게 되어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기반의 나메르 장갑차, 러시아의 T-72/90 기반의 BMPT-I/II, T-14 기반의 T-15 BMP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방호력을 가진 장갑차다.

화력과 기동력 또한 강화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마르더나 미군이 사용하던 M-2 브래들리 IFV등과 비교하면 더 강화된 30mm 기관포를 주포로 탑재하고 있으며 SACLOS 반능동 유선 유도를 사용하는 1.5km 사거리의 밀란 대전차 미사일 대신 4km 사거리에 탠덤 탄두와 F&F 유도 기능을 갖춘 스파이크 LR 미사일을 2발 탑재한다. 엔진도 T-72B3와 비슷한 1090 마력의 출력을 내는 신형 MTU 892가 장착되어 기존의 마르더 보다 출력이 높아져 무거운 중량을 갖고도 레오파르트 2 전차와 합동 작전을 무리없이 해내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엄청난 성능으로 안팎으로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던 장갑차인 푸마는 또 다시 독일 명품 기갑의 역사를 변함 없이 써 내려갈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과 실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실푸마는 애초부터 문제가 많은 차량이었다.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도 장갑이 너무 무거워서 구동 계통과 서스펜션에 무리가 심하게 가는 수준이었고, 그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이미 생산에 들어간 차량의 설계를 뜯어 고치며 로드휠을 1쌍을 추가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결함이었고 엔진의 무게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때 장갑을 경량화 시키는 것 까지 검토할 지경이었다. 그럼, 뭐 나머진 그나마 괜찮았냐고?


그런 거 없었다. 애초에 유럽에서 지상전 벌이는 걸 상정하고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급선회해서 항공 수송을 통한 해외 파병으로 비정규전에서의 민사 작전에도 써먹겠답시고 허겁지겁 개발한 후유증으로 인해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괴작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프간 파병에서 써 먹겠답시고 RPG와 IED 방호 능력을 추가한 것 까진 용인해 줄 수 있었지만, 냉전기에 유럽에서 지상전을 벌이는 데에나 필요할 주력 전차와 맞먹는 우수한 야지 기동력과 NBC 방호 능력 따위는 그저 가격만 잡아먹는 쓸모 없는 요소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항공수송을 한답시고 무게에 제한을 걸어 놓은 상황에서 장갑에서 무게를 엄청나게 잡아먹은 탓에 작고 협소한 무인 포탑과 30mm 기관포만을 달 수 밖에 없었고 그 탓에 30mm 보다 구경이 큰 기관포로 업건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사실 푸마도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는게 외적인 문제, 즉 독일 연방군의 자체적인 문제도 있었다. 초반 개발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던 데 비해 계속해서 배치는 뒤로 밀리고 생산도 지지부진하며 물량이 줄어들며 처음 의도와는 달리 가격 역시 3.5세대 전차 이상으로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에겐 돈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사실 독일은 통일 이후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독 지역의 재건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야 했고, 이 때문에 예산 소모가 큰 군대는 대규모의 군축을 하게 되며 소수의 고급 인력 위주로 구성된 인력 구조에 구형 전력을 대량 퇴역 시키고 신형 전력만 남겨둘 소수 정예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실상은 제대로 된 계획 하나 없이 무턱대고 예산만 줄여대는 군대의 빈곤화나 다를 바 없었다. 2001년엔 아프간 전쟁이 발발하며 전력을 소수 정예화 할 여력도 없이 막대한 군비를 해외 파병에 써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급 인력 양성에 필요한 비용도, 신형 전력을 인수 하고 유지할 비용도 부족했고 신무기는 커녕 구형 무기 조차 없어서 없는 기관총 대신 빗자루에 흑철색 페인트칠을 하고 훈련에 나갔다가 조롱 당하는 건 기본에 신형 전력은 도입 시기도 늦어지는 건 물론, 물량도 대폭 줄어들고 유지 보수가 부실해져 유명무실한 전력으로 전락했다. 당연히 훈련도 못하는 마당에 양성에 많은 돈이 드는 고급 인력 역시 계속 손실이 이어지며 결국 확충 속도가 퇴역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푸마 역시 탈냉전기에 맞춘답시고 벌여댄 군축 열풍과 나치를 핑계로 자국 군대와 안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정치권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만다. 해치에서 물이 새면서 NBC 방호가 안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 되었는데도 독일 국방부는 이를 묵살했고, 예산이 없어서 비싼 운용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종수 훈련도 벤츠 스프린터 승합차 운전으로 대체하고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아 2022년엔 보유 물량 중 18대에 기능 이상(단 17대가 간단한 고장이었다.)이 생겨 도입을 일시 중지하고 NATO 연합 훈련에도 투입하지 않는 등 2015년에 도입을 시작한 이후로도 상황은 여전히 나쁜 편이다.


그렇게 탈냉전으로 대규모 지상전 위협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에 취해 근 30년 가량을 군축이라 쓰고 군대 빈곤화, 안보 방치라고 불릴 만한 만행을 벌이며 미국에게만 안보를 의존하며 과장을 보태 "미국령 게르마니아 보호령"으로 만들어 버린 동안, 신냉전이 시작되며 중국과 러시아가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피고 군사적 행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독재정권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유로마이단 사태가 터지며 폴란드와 발트 3국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던 옛 연합국 멤버들이 독일에게 "제발 군비를 증강하라"라고 애원할 때도, 심지어 나치 독일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 조차 "독일군이 노보라씨야 반군 보다도 허약하다"라는 비판을 가할 때도, 독일은 여전히 녹음기 처럼 "푸틴의 위협은 그저 과장일 뿐이며, 유럽의 안보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라는 어이가 털릴 만큼 나태함이 묻어나는 답변만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이 무언가를 해 보려고 시작한 10년대엔 이미 때가 너무 늦어 군의 상태는 열악해질 때로 열악해졌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환상과 낙관이 깨어져 버린 20년대엔 독일군은 더이상 예전의 독일군, 아니 도저히 선진국의 정규군이라고 볼 수도 없을 만큼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군비를 증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군수 물자 생산 능력은 이미 오래전에 나락으로 떨어져서 복구 시키는 데에만 다시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은 뻔했고, 끝내 독일은 갖고 있던 무기 시장마저 이역만리에 떨어진 한국에 내줘야 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말 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게 된 이상,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