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아버지는 언제나 술을 마셨다.
 깊은 밤, 늦게 집을 들어온 소년이 본 것은 마루에서 안주도 없이 소주병을 들이키던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소년은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소년의 형이 그를 나무랐다.
 "아버지가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말할만큼 하찮은 삶을 살아오진 않으셨다."
 소년의 형은 수도에 위치한 대학교를 다녔다. 그것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소년의 형이 대학교에 입학한 날, 소년의 아버지는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그의 형을 증오했다.
 소년이 유일하게 증오하지 않았던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그의 형보다는 나이가 어렸던 그의 누나는 술만 마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부모의 역할을 맡았다. 불과 소년보다 두 해 일찍 태어났음에도.
 소년의 누나는 해가 뜨기 전 집을 나서 밤이 깊어지고나서야 돌아왔다.
 소년이 밤 늦게 집에 들어갈 때, 소년의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과 함께 소년의 누나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누나가 다니는 공장을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기침을 달고 살았다.
 소년의 누나는 늦게 돌아온 그에게 어디를 갔느냐 물으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국을 데우고, 밥을 해서 상을 차렸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밥상을 받고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곤 소년의 형이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좀 해라. 너는 한량처럼 밤을 새고있지만, 네 누나는 하루종일 그 좁고 먼지가 자욱한 공장에서 미싱질을 하고 있다. 미안하지도 않나?"
 소년은 수도에 집을 구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그의 형을 증오했다.
 그럴때 쯔음이면 소년의 누나는 소년의 형을 말렸다. 소년은 누나의 모습이 미련하면서도, 동시에 고마워했다.
 소년이 집을 떠난 것은 어느 겨울 날이였다.
 소년의 집에는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소년의 형이 있었고, 이틀의 겨울휴가를 받아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소년의 누나, 그리고 어김없이 술을 들이키던 소년의 아버지가 있었다.
 소년이 집에 들어서자, 늘 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축 처진 어깨는 초라했고, 볼품 없는 등은 힘 없이 굽었으며, 얼굴은 취기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소년은 그 모습이 오늘따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이 마루 위로 성큼 올라가 아버지의 술상을 걷어찼다.
 쨍그랑, 그리고 와자창.
 술병이 깨지면서 불협화음을 냈다.
 소년은 멍하니 앉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소년은 아버지를 한심하게 여겼다.
 소년의 어린 기억 속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빴다.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으며, 아버지의 친구들을 집에 불러 새벽까지 소리를 치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눴다.
 소년의 아버지는 집에 성히 들어오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았다.
 머리가 깨지던지, 무릎이 까지던지, 그보다 더 심하면 누군가에게 업혀 집으로 오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언제나 죽을 끓여 아버지에게 주었다.
 아버지는 그 죽을 받아 먹고는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시 다쳐서 돌아왔다.
 "엄마, 아빠는 도대체 뭘 하기에 매일 저렇게 다쳐서 오는거야?"
 어린 소년이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소년의 어머니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일을 하시는거란다. 너희들한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나가시는거란다."
 그럼에도 소년은 아버지를 미워했다. 돈은 벌리지 않았고, 언제나 어머니가 시장에 나서 나물 등을 팔고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
 가끔, 소년의 아버지가 어딘가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실 때에 어머니는 군말 없이 어딘가 숨겨둔 돈을 꺼내 아버지에게 주었다. 그런 날에는 온 가족이 굶어야만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랬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 힘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소년은 몰랐다.
 아버지가 이틀이나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날, 집에 제복을 입은 경찰이 들이닥쳤다.
 방에서 책을 읽던 소년의 형의 머리를 곤봉으로 치고, 소년의 누나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끈 후 그들이 소리쳤다.
 "너희들 엄마가 어디 있냐고!"
 그 때,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손에 든 짐을 풀썩, 하고 놓으셨다.
 그들이 소년의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무기로 어머니를 내리치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소년이 울면서 그들에게 매달렸으나 매질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되어 널부러지고나서야 그들은 소년의 어머니를 끌고 가 차에 태웠다.
 소년은 그 차를 한참을 쫒아가다 이내 넘어져 그 자리에서 울부짖었다.
 며칠의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소년의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자식들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소년의 아버지는 주저앉아 흐느꼈다.
 소년의 어머니가 작은 통에 담겨 온 것은 일주일 뒤의 일이였다.
 소년은 그때부터 아버지를 증오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후로 술을 마셨다. 술병은 줄기는 커녕 늘어났다.
 소년은 멍하니 앉아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눈에 초점을 잃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소년은 아버지를 마루 밑으로 밀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앓는 소리를 냈다.
 소년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쓰러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밤 하늘을 보고 계셨다. 손에는 눈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
 소년이 무언가 소리치려는 찰나, 소년의 형이 나타나 따귀를 올려붙였다.
 소년의 고개가 꺾이고, 소년의 형이 그를 노려봤다.
 "..한심한 놈."
 소년은 그 말에 격분하며 형을 밀쳤다.
 마루바닥에 쓰러진 형 역시 흥분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바닥에 널부러진 술병 하나를 손에 쥐고 그의 머리를 쳤다.
 소년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소년의 형이 소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멍청한 새끼..! 아버지는 너같은 놈이 무시할 삶을 살아오질 않았어!"
 소년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어떤 삶인데? 자식들 다 굶으며 살게 만들고, 일도 안하고 그 망할 놈의 데모나 하면서 살았는데!"
 "버러지같은 놈이..!"
 소년의 형이 주먹을 치켜들었다가 문득, 시선을 소년의 아버지에게 돌렸다.
 "아.. 아버지! 아버지!"
 소년의 형이 마루를 뛰쳐 내려갔다. 소년의 아버지의 뒤통수에서 선홍색의 무언가가 흘러나와 흰 눈을 물들였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소년은 소년의 누나가 뛰쳐나왔음을 깨달았다.
 소년의 누나는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곤 마루를 뛰쳐 내려가 소년의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 때였을 것이였다. 소년이 의지하던 하나의 세계가 무너져내린 것은.
 소년은 그 소란스러움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밤거리를 걸었다.
 그의 머리에서 무언가 뜨끈한 것이 흘러내려 닦아서 보니 무언가 붉은 것이 묻어나왔다.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거리를 걸었다.
 갈 곳 없이 걷던 소년은 가로등에 붙은 전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명월공화국이 당신을 원한다. 국군에 입대하라!'
 소년은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네, 군에 입대하려고 합니다.. 네."
 소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