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죽는다.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규모의 강도단에서 두목을 하고 있던 나는 부두목 일당의 배반으로 관아에 묶여서 넘겨지게 되었다.


재판을 받으면서 날아오는 멍청이들의 비난과 저주. 멋대로 떠들라지. 그런다고 내가 죽이고 겁탈한 놈들이 돌아오기나 할까.


재판 결과는 누구의 반대도 없이 사형이었다. 곧장 감옥에 처넣어져 목이 잘릴 날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내가 탈출하지 않은 감옥은 조선 팔도에 있 사형 날짜가 다가오기 전에 잽싸게 사라져주지!




"나으리. 그놈은 이미 수없이 많은 사형 선고를 받아놓고도 탈출한 영악하기 짝이 없는 녀석입니다! 이번에도..!"

"...알고 있네. 그래서 특별한 사형식을 준비했지. 협조는 이미 구해놓았네."

"예?"




아마 놈들도 내 악명을 알고 형을 빨리 집행할 지도 모르지. 서둘러 준비를 시작...


"어이! 나와라!"


해야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선고 받자마자 집행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간다. 장정 열 명이서 이리 묶고 저리 묶고 줄다리기하듯 당기고 지랄들을 한 덕분에 탈출은 커녕 피도 안 통한다. 손 끝이 점점 차가워지고 저려온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걸까. 관아는 커녕 마을에서조차 멀어진지 오래다. 호랑이 밥으로 주려는 건가? 절벽에다 떨어트리려고? 오냐, 그런 식의 사형이면 나한테 이득이다. 살면서 쓰러트린 호랑이가 기와집을 덮을 정도고, 절벽은 내 놀이터나 다름 없으니까. 날 죽이려던 높으신 양반 놈들, 내 옛 부하들, 전부 죽여버리기 전까진 난 죽지 않는다.



"앗, 그분인가요?"


오늘 놀랄 일이 여러 개다. 하다하다 물엿으로 된 여자라니. 아니 흙탕물인가. 소녀는 우물우물거리던 잎을 삼키고는 버선발로 달려왔다.


"그렇다네. 우리가...사또 나리가 이런 식으로 또 신세를 졌군. 항상 미안하네."

"당치도 않아요. 고을 분들께 따뜻하게 거둬들여진 은혜는 언제나 잊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도울 일은 돕는 것이 옳죠!"

"그럼 먼저 가보겠네. 곧 보상을 가져올테니 먼저 하고 있게."


대화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 물엿 꼬마가 사형집행인이라는 건가? 게다가 우리 둘만 두고 간다고? 진짜 머리가 빈 건가...


대단하신 사형집행인께서는 나에게 절부터 시작한다.


"소녀는 주향이라 하옵니다. 온 나라를 휘어잡은 대도 나리를 이리 뵈어요. 소녀는..."


멋대로 떠들라지. 나는 간다 이 멍청이ㄷ


콱!


"듣던 대로 성미가 솟구치는 용과 같으신 분이네요."


무슨 끈적한 액체가 다리를 꽉 묶었다. 기분 나쁘게 뜨겁고 질퍽하다. 젠장, 조그맣다고 앝봤더니 괴물은 괴물이었군!


"소녀는 어느 강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당연히 부모님은 모르죠. 이 고을 사람들은 온 몸이 물덩이였던 소녀를 아껴주시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숨겨주셨어요. 나랏님이나 조정에 알려지면 편히 살지 못할 것이라면서요. 그 은혜를 꼭 갚고 싶었답니다."


조금씩 비비적대니까 물기가 빠지면서 풀린다! 아가리 놀릴 때 빠져나가서 나머지는 다음에 생각하자!


"고을에는 자주 돌림병이 돌았었는데, 여긴 의원님이 나이가 팔순이 넘어가는 분 말고는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의원님의 제자이자 약이 되어서 고을 분들을 치료하게 되었어요. 제 몸으로 직접 약을 달여서 많은 분들이 병 없이 무사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근데, 그거 아시나요? 명약과 사약은 종잇장 차이라는 거."


풀려났다. 저 ㄴ은 반대쪽을 보며 떠들고 있고, 지금이다! 저 담장만 넘으면...


"어르신처럼 잽싼 분은 제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담장이 꼬맹이처럼 갈색 물엿같은 것으로 녹아내려 온 몸을 잡았다. 뭐야?! 이 집 전체가...저 괴물ㄴ과 같은 거였어?! 오지마, 오지마!! 그 반짝이는 눈깔은 뭐야! 오지 말라니까!!


"다음 생은 죄없는 삶이 되길."

세찬 주먹이 내 입술을 뚫고 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쓰다! 어떤 풀떼기보다도 쓴 맛이 난다! 이거 설마...사약인가?! 힘이...점점...빠진다...





여긴...저승인가?


"기침하셨어요?"


히이익! 왜 내가 이 괴물에게 무릎베개를..! 어어엌


"어르신처럼 가끔 사약이 잘 맞는 분들이 계시긴 하네요...걱정마세요! 새롭게 조합한 사약을 또 드릴게요. 와~잘 마신다! 옳지옳지!"


방금 마신...것보다...곱절은 쓰다...이번엔 냄새도...이 세상 것이 아닌 듯 고약하다...


"주무시는 동안 사약 조합법을 쉰 세가지는 생각해보았어요. 이 중에 하나는 제대로 먹히겠죠?"


싫...어.....정신이...다시 몽롱해진다...


"어머! 사약에 정기가 좋은 풀도 넣었는데 바로 효..."


(사형수는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고,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로 일주일간 있었다.)


(이후, 사형수는 쉰 세가지가 아니라 아흔 일곱 가지의 사약을 맛봤다는데, 약으로 죽었는지 배터져 죽었는지 다1른 일로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