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놈들이 이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천진난만한 살인병기를 회수하는데까지 장장 일주일이라는 짧다고 하기 어려운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그 동안 일 나가는건 엄두도 못냈고, 집안에 틀어박혀서 쟁여놓은 냉동식품과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며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정부기관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이 녀석의 행선지를 제 때 파악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물밑에서 회수 주체가 누가 되냐를 정하느라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려버린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녀석을 회수하러 온 녹색 머리의 서큐버스 사무원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어쩐지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심신에 조금의 여유도 없어보이는 너덜너덜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위험한 아이라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셨을텐데 침착하게 잘 대응해주셨군요. 


이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하루빨리 이 저주받은 생체병기 놈에게서 해방되고 싶었던 나는, 대충 손을 털어서 성의 표시는 됐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놈을 데려가라는 답을 돌려주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그녀의 7일간의 나들이' 때문에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아무래도 좋았는지, 집에서 떠나는 프리즌 서큐버스의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게 아주 때깔이 고와서 저만한 상팔자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었으면 아마 5키로 정도는 찌지 않았을까 싶었다.


참고로 난 이 년 때문에 5키로 쪘다.


어떻게든 놈을 집 안에 붙들어놓느라 여러모로 깨나 신경을 썼던데다, 


또 이 놈 자체도 서큐버스년 답게 집 안에 틀어박혀서 생활하는데 그다지 거부감이 없어서 다른 소란으로는 번지지 않았다는 점만은 참 다행이었다.


둘쨋날 즈음 아랫집에서 집안에서 구두라도 신고 다니냐고, 또각또각 거리지좀 말라며 쿠사리를 준 것 만이 유일한 오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차피 곧 떠나보낼 년인데 이웃집에서 뭐라 하든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눈치채고 있으면 바닥 장판이 놈의 동선따라서 씹창이 나있있었기에 눈물을 닦으며 재빨리 집을 나와서 놈의 발굽에 순간접착제로 적당한 실리콘패드를 사서 붙여놓았다.


나중에 이거 떼느라 고생할놈들은 알빠노? 하고 붙여놓은거였는데, 어쩐지 사무원은 내가 진심으로 이 년을 아껴서 달아줬다고 생각했는지 깊은 감명을 받은 듯 했다.


프리즌 서큐버스 놈이 현대 문물에 익숙했다는 점도 놈을 다루는데 있어 편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 청소기, 등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도구도 쓸 줄 모르긴 했지만, 


알려주면 금방 배웠고, 또 몇몇 기구들은 스스로 만져보면서 금방 적응했다.


추정컨데 이 곳의 생활에 대해 매체로만 접해서 그런 게 아닌 가 싶었다.


최신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들을 적당히 제공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주의를 끌 수 있었다.


하나뿐인 눈의 시력이야 조금 나빠지겠지만 그거야 말로 '알빠노?'다.


처음엔 눈치 잔뜩 보면서 내가 뭐 쥐여주기 전까진 안절부절 못하면서 두리번 거리던 녀석이, 


오늘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제 것인양 자연스럽게 게임기를 꺼내서 TV에 연결하고 자리를 잡더니, 


공략을 보겠다면서 노트북을 가져가서는 옆에다 펼쳐놓고 과자를 세 개나 까놓고 자빠졌었다.


내가 과자 부스러기 흘린거 다 닦고 컨트롤러에 과자 기름 묻지 않게 하라니까, 


비싼 물티슈를 음식점 티슈마냥 북북북 뽑아서 대충 슥슥 닦고는, 어디서 비닐봉지까지 찾아서 가져와서는 쓰레기통이랍시고 지 앞발에 걸어두는 꼴이란…….


그래도 그런 방약무인한 점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성가신 편은 아니었다.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얌전히 있었고, 대개는 자기가 하고 있는것에 집중하느라 처음 몇일 외에는 나를 자주 부르지도 않았다.


게임하는게 좀 질렸다 싶으면 알아서 만화책이나 잡지 등을 찾아다녔고, 난데없이 종이랑 펜을 가져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잘 그려서 조금 놀랐다.


놀면서 자연스럽게 어지르는게 과하기는 했지만, 일단 어지른 것들을 치우라고 하면 순순히 치우기는 했기에(그 방법은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말이다) 크게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놈이 성가신 테러병기(추정)였다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이가 약간 어린 친구가 생긴 듯 해서 조금은 즐겁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놈은 이쪽 세계 문물을 잘 알고 있던데다, 그 조차도 어쩐지 20년 정도 옛날, 


내가 이세계에 가기 전에 유행했던 것들에 치중해 있었기에 이야기가 잘 통하기도 했고, 취향도 그런대로 잘 맞아서 나름대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녀석이 머무는 동안 딱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놈의 주재가 일주일 가까이 되어가면서 슬슬 특유의 밑바닥 없는 식욕으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마력에 대한 갈망을 눈에 띄게 내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리즌 서큐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를 자신의 몸 안에 밀어넣고 직접 정기를 섭취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이 놈이 어떤 식으로 키워졌는지 대충 알 것 같아서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놈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서큐버스란게 자칫하면 흡정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것도 맞고,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 부단한 훈련을 거친다고 들었으니 만큼, 


잘 알지도 못하는 서큐버스에게 몸을 맡기는 것도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것일진대, 하물며 프리즌 서큐버스의, 


그 괴물들이 가엾은 인질을 끔찍한 학살극을 위한 생체 마력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한 품 안에 '날 먹어 줍쇼' 하고 안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신히 갈증만을 달릴 정도의 가벼운 경구접촉만을 허용하기로 했고, 


그마저도 놈이 조절을 잘 못하는 바람에 어젯밤에는 정말 죽을 뻔 했다.


기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몸 안쪽 내장 깊은곳까지, 간장게장 등딱지에 밥이라도 비벼먹는 꼴로 모조리 빨아들일 기세로 달려들었기에, 위기감을 느낀 내가 주먹질까지 하고 말았고, 


그제서야 간신히 나를 놓아주었으니 말 다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더욱 빨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대놓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 이놈 이놈 하니까 그제야 단념했는데, 이 놈 부류가 얼마나 물마 양면으로 연비가 나쁜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건에 대해서 서큐버스쪽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피해보상과, 정밀 건강 검진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니 문제삼지는 않았다.



집을 나서는 프리즌 서큐버스 녀석을 배웅할때 놈이 말했다.



"저기, 저 아저씨랑 지내면서 이제껏 살아온 중에 가장 즐거운 나날을 보냈던 것 같아요. 


이것이 진정 행복이란 걸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매일같이 놀았으면 당연히 즐겁기는 하겠지만, 그것 만으로 행복한 삶이라니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놈이 여기서 한 것이라곤 기껏해야 고작 배부르게 먹고, 매일같이 오락 삼매경인 나날을 보냈던 것 뿐이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짝을 만났던 것도 아니었고, 삶 동안 남에게 내세울만한 위대한 뭔가를 이룬 것도 아니었다.


꼭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거나, 꼭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지만 행복한 삶인 것은 분명 아니겠지만, 


단순히 놀고 먹고 자고, 당연히 충족되어야 할 의식주, 그나마도 충족된 건 일부 뿐으로,


그것만으로 진정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한다면, 녀석이 이전에 살아왔을 삶은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제, 사실 애시당초 처음부터 놈은 생판 남이었고, 이 후의 귀찮은 일은 나와는 별 관계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별달리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어정쩡하게 대답도 뭣도 아닌 인사를 건넸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녀석은 서큐버스 사무원과 호위로 따라온 몇 덩치(역시 서큐버스겠지만)를 따라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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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서, 놈에 대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놈에 대한 소식을 들은것은 그 날로부터 2주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라서 대충 받고 끊어버리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귀동냥이 있었기에 끊으려든 손을 간신히 멈췄다.


이름은 대충 흘려들어서 기억나지 않았지만, 자신을 그 프리즌 서큐버스 사건의 뒷처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밝힌 그 서큐버스(안경을 쓰고있던 녹발의 사무원)는 감사인사와 함께 다시 한 번 피해보상의 내용과, 그 쪽에서 제공하는 검강검진의 날짜를 통보했다.


쭉 빨린거 외에는 별다른 일도 없었고, 이전에도 적대적인 서큐버스에게 홀려본 기억이 있던 만큼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 떨 일 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것일까, 그녀는 단순히 앞으로에 대해 통보하고 끝내도 될 것을 온갖 미사여구까지 붙여가며 그 날의 내 대응이 좋았다고 치켜세우면서 대화를 질질 끌기 시작했다.


귀찮아진 내가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통화를 끊으려고 하자, 그제서야 그 서큐버스는 머뭇거리면서 본론을 토해냈다.


그 때의 프리즌 서큐버스가 이번 주 주말이 지나면 앞으로 볼 수 없게 될건데, 마지막으로 보고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녀가 언급한 '마지막'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제쳐두더라도, 일주일간 같은 지붕 아래 머물렀던 상대가 조금은 신경쓰였던게 사실이라, 나는 적당히 그 주의 토요일 오전에 시설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일 주일 쉰 것 만으로 이전의 내 일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고 있었기에 당분간 할 만한 일도 없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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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던 주말이 되자, 서큐버스 담당자가 어쩐지 이른 시간부터 집 앞까지 와서는 나를 마중하려 했다.


그녀가 몰고 온 승합차를 보자하니 내 차를 타고가는게 더 승차감은 좋을거라 생각했지만, 


괜한 소리를 해서 성가시게 구느니 기름값도 아낄 겸 해서 군말없이 냉큼 올라타기로 했다.


승합차니만큼 안에는 나 외에도 다른 선객(전부 서큐버스)들이 있었는데, 어쩐지 담당자를 포함해서 전부 표정이 굳어있었다.


한참 국도를 따라 이동하다보니,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던 서큐버스들의 관공서? 비스무리한 역할을 하는 '전계 서큐버스 협의회'의 제법 규모가 되는 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 멈추자 동승했던 서큐버스들은 묘한 장비가 포함된 저마다의 짐을 내려서는, 본관 뒤 쪽의 숙소로 보이는 건물로 줄지어 사라졌다.


차에서 내린 담당자는 주차요원에게 차 키를 건네주고는고, 나를 본관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본관의 접수처를 지나쳐 안쪽에 있는 보안문이 달린 계단으로 향했다.


옆에서 대기하던 서큐버스 직원이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앞서가던 담당자가 귓속말로 무어라고 하는걸 듣더니 영 찜찜한듯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흘겨보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계단을 오르면서 담당자는 보안상의 문제로 엘레베이터 없이 8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며 뒤늦게 양해를 구했다.


뭐 나야 매일같이 하는 일에 비하면 별로 힘들것도 없는 정도라 그러려니 했는데, 정작 담당자 쪽이 점점 흐느적거리더니 목표 층까지 와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내가 잠시 기다리면서 바라봤더니 뭐가 그리도 찔렸는지, 자기는 운동부족이 아니라 단거리 전문 주자라 지구력이 별로라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8층은 층 전체가 가운데의 커다란 방을, 창문 하나 없는 복도가 둘러싸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계단이 있는곳과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방도 없었다.


중앙 방의 창살이 달린 차가운 강철 문 앞에 선 담당자가 이 앞에서 어떤 광경을 보게 되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지시에 따라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담당자가 품 속에서 로비에서 썼던것과는 다른 카드키를 꺼내서 방 입구의 리더기에 가져다댔다.


삐익 하는 전자음과 함께 철컥 하고 방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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