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토눌라의 난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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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트릴랑의 결심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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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제자와 답답한 스승 篇:

26화 27화



베르토눌라는 요술로 구름을 입고, 산트릴랑이 있는 곳을 향해 번개만큼 빠르게 날아갔다. 주변이 온통 바다인 곳에서 출발해서 육지가 보이는 곳에 이르자, 웬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베르토눌라야! 베르토눌라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이가 주변을 둘러보다 무심코 고개를 젖히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르토눌라는 이전에 자신을 제압했던 이를 알아보고 성을 내며 말했다.


"당신은 나자렛의 예수가 아니오? 당신을 만난 뒤로 기분이 상쾌한 적이 없었소! 오백 년씩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풀려났건만 답답한 여자를 스승으로 삼게 되지 않았소! 당신이 이런 횡포를 저지른 이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당신 꽁무늬를 핥아 대며 귀에 진물이 나도록 당신 얘기만 하니,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소! 그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양반!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줘서 만족했소? 나에게 더 바라는 게 있느냔 말이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오백 년이 지나서 잊었느냐?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너를 풀어 준 여자에게서 영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의 곁을 떠나 위험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며 이곳에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느냐?"


베르토눌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역정을 내며 고함을 쳤다.


"지금 다시 그의 곁으로 가는 중이 아니오! 당신이 막아서는 바람에 더 늦게 도착하게 되었소! 하면 될 거 아니오, 그자의 제자 노릇! 이 지긋지긋한 걸 끝내도 내가 배운 게 없으면, 당장 당신에게 복수하러 오겠소! 각오하시오!"


그는 오백 년이나 벌을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듯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실언을 내뱉은 뒤 산트릴랑이 있는 쪽으로 다시 날아갔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말씀하셨다.


"그래, 가라. 그리고 다시는 잘못된 생각을 품지 마라!"


베르토눌라는 쏜살같이 날아가 산트릴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수녀는 베르토눌라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양쪽 무릎을 꿇고 손에 웬 잡동사니를 든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봐, 스승이여. 당신 여기서 뭐 하시오?"


수녀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 '어맛!' 하고 한 번 외치고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왜 왔어? 나를 스승으로 삼기 싫다고 하지 않았니? 내가 노숙하다 병을 얻든, 짐승에 물리든 신경 쓰지 말고 네 갈 길이나 가지 그러니?"


베르토눌라가 이를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도자가 뭐 저리 오래도록 꽁해가지고... 그렇게 내가 내 갈 길이나 가길 원한다면 다시 떠나 드리지요."


"자...잠깐! 가지 마렴! 그땐 내가 잘못했다. 어쨌든 도적에게 겁탈당하고 죽을 뻔한 걸 구해준 너에게 고맙단 말은커녕 악인이란 비난만 내뱉다니,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지!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산트릴랑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전에 버렸던 제자에게 비굴하게 사과하니, 그 제자도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정말 저게 한 나라가 보낸 순례자가 맞나. 뭐 됐소. 나도 겁만 주면 될 녀석들을 굳이 죽여버린 건 심했던 것 같소. 미안하오."


수녀는 그 사과를 듣자 눈물을 닦지도 않고 환하게 웃으며, 타우리노룸에서 마련한 식량을 나누어 주며 마음 놓고 휴식을 취했다. 베르토눌라는 녹인 치즈를 얹은 빵을 씹다가, 문득 산트릴랑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보았다. 그것은 자기가 떠나기 전에는 짐 중에 섞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스승이여, 그게 뭐요?"


제자가 묻자, 산트릴랑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을 들고 설명했다.


"이것들은 네가 없는 동안에 만난 형제님께서 내게 봉헌해 주신 거야. 그분의 따님은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가 견습으로서 날마다 산에 올라 장작 패고 나물을 캤는데, 고생하는 것을 차마 못 보겠어서 이 튼튼한 신발과 긴 양말을 마련했다는구나. 이 베일도 따님의 것이었대. 그런데 따님께서는 피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는지 정식 수녀가 되자마자 사흘 만에 그분 곁으로 떠나셨고, 형제님께서는 그 유품을 챙겨 가시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만나고 이것들을 봉헌하셨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니? 뭐, 나는 이미 베일과 신발이 있으니, 이게 필요하진 않지만."


베르토눌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지겨운 느낌이 들었다. 보아하니 수녀를 자처하는 게으름뱅이들이 떠넘긴 궂은 일들을 꼬맹이 혼자 다 해치우다가 과로로 죽은 이야기인데 뭐가 아름다운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위에 갇히기 전에 월계관을 쓰고 좋은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바위에서 나온 뒤 곰가죽 옷만 걸치고 머리와 발에는 착용한 것이 없어 쭉 허전한 느낌을 얻었었다. 이에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스승에게 말했다.


"그럼 그 신발과 양말을 내게 주시오. 베일은 칙칙하고 멋이 없으니 영 쓰고 싶지 않지만, 신발과 한 묶음이라면야 일단 써 보기나 하지요."


그러자 산트릴랑은 기뻐하며 양말과 신발을 직접 신겨 주고, 베일도 씌워 주려 했다. 하지만 베르토눌라의 머리는 뒷골이 높게 솟아 평범한 사람의 머리와 달라서 어떻게 씌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제자가 베일을 빼앗고 직접 머리에 쓰니, 평범한 여자가 뒤통수에 묶은 머리카락 뭉치를 천으로 덮은 꼴이 되었다.


"아주 보기 좋구나."


산트릴랑이 억지로 그 꼴을 칭찬하자, 베르토눌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마법으로 거대한 눈알을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윽, 역시 이런 낡고 시커먼 천쪼가리는 이 몸의 빛나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에 어울리지 않소. 찢어버려야지."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성물을 못난 제자가 벗어서 찢어버리려 하니, 화들짝 놀란 스승이 그를 막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읊었다.


"둑다 하카 무가예 수나 자레 타쿱반수..."


그러자 베르토눌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제자는 괴롭고 두려워 머리를 쥐어뜯었다. 쓰고 있던 베일이 갑자기 쭈그러들어 뒷머리를 졸랐기 때문이다. 그 힘은 베르토눌라가 살면서 보고 느낀 어떤 것보다도 강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뜯어내거나 벗어던지려 어떤 수를 써도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뭐야! 아파! 안 벗어져! 이 더러운 망뜨 년이 내게 뭘 씌운 거냐!"


분노한 베르토눌라가 산트릴랑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수녀가 주문의 다음 구절을 읊었다.


"수나 자레 바쿠나, 완난 시네 누나 마카민..."


"으아아아아아악!!!!!"


베일이 더 쭈그러들자, 제자는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몸통이 땅에 달라붙기 전에 겨우 양팔을 뻗어 지탱했지만,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숨을 헐떡거렸다. 주문을 읊은 산트릴랑도 그걸 보고 잠시 입을 다물고, 베르토눌라와 협상했다.


"그 베일을 훼손하지 마렴. 그리고 앞으로는 내 말을 들어서 함부로 죄를 짓거나 도망치지 말고. 그러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이에 베르토눌라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웃기지 마라! 이까짓 천쪼가리, 못 벗을 줄 알고?"


말을 마치자마자, 베르토눌라는 머리를 모래 알갱이보다도 작게 줄여 보고, 바위산보다도 크게 늘여 보고, 베일 뒤쪽에 손을 집어넣어 툴리코기툼을 꺼내 들춰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칙칙한 천은 처음부터 베르토눌라의 머리의 일부였던 것마냥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곳에서 날이 다 저물도록 온갖 술수를 부려도 베일을 벗지 못하자, 지쳐버린 제자가 헉헉대며 산트릴랑에게 물었다.


"야, 스승이여. 이거 누가 줬다 했냐?"


지켜보기만 하던 수녀는 그 질문에 답했다.


"지나가던 나이 지긋하신 형제님께서 주셨다. 그분이 현명하셔서 부족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기에 감사를 드리려는 찰나에 거룩하게 변모하시고는 그대로 사라지시더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베르토눌라는 진상을 파악하고 짜증을 엄청나게 부리며 외쳤다.


"이런 씨발! 이럴 줄 알았어! 또 그 나자렛 놈이구나! 뭐? 영생을 어떻게 사는지 배워? 좆까라 그래! 이 새끼는 그냥 나를 죽이려는 거야! 좋아, 내가 이 엠창새끼 면상을 조지지 못하면..."


그가 차마 수도자의 입에서 나올 게 못 되는 망언을 잔뜩 내뱉으며 천국으로 올라가려 하자, 산트릴랑은 제자를 말리며 말했다.


"그만해. 주님 곁에 가려는 이가 그런 심한 말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네 말대로 내게 그 베일을 주고, 그걸 쓴 이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을 가르쳐 준 분은 예수님이 틀림없어. 다시 말해, 내가 널 제압하기 위해 읊은 기도문을 그분께서도 아실 거란 말이지. 그러니 네가 올라가 봤자 그분께 손지껌을 할 수 있을 것 같니?"


베르토눌라는 그 말을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해 고함을 한 번 크게 지르고는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뒤 말했다.


"으으... 알겠다고. 알겠단 말입니다. 얌전히 말 잘 들으면 될 거 아니오. 이게 내 행동의 대가라면 달게 받아야지."


마침내 포기한 제자는 고분고분하게 노숙 준비를 마치고 스승을 편한 자리에 뉘였다. 둘은 날이 밝자 다시 제누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