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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게시▉▉

-매일같이 진화체 유희.

-, 열차 내부와 같은 안전한 곳에서의 이용을 권장드립니다.-

퍼지는 진화체 정보는 신 숙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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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게시판 생



핸드폰이 망가졌다, 액정이 파편이 떨어질 정도로 부서진 건 대수도 아닐 정도로.

오래 쓰긴 했지.

하늘에서 엄청 떨어지고...구르고...극단장이나 테라피스트와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안 부서진 게 용한가.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부서지지 그랬냐....여기 할 것도 존나 없어서 죽겠는데..."


바다와 남부의 탑의 경계에 위치한 출입 검문소.

인공 바다에 조성된 열기가 이곳까지 닿아서 그런가, 이곳은 꽤 따뜻했고, 조용했고.

우리에게 대기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고로 나는 이곳의 컴퓨터, 문서 수.

커피포트에서 떨어지는 커핏 방울, 박제인지 모형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생선의 대가리.

아라무스와 수녀원장이 조용히 무기를 다듬고 있는 소리까지.

눈이 감겨왔다, 서서히, 가끔 악몽의 두려움에 눈에 힘을 주는 때가 있어도 그것도 잠시.


지금 자면 죽으려나, 아니...그 정도의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보다 더 많은 피를 흘렸을 때도 어떻게든 살았으니.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악몽이 보이려나, 배경이 일그러지고 현실이 뒤틀리고, 가라앉고, 내가 또 많은 기억을 잃고.


그렇게 되면, 또 다시 누군가가 '다가오지 마' 라고 속삭이려나.

그 목소리의 정체는, 투사일까.


삐걱삐걱,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

시원한 바람 소리에, 흔들리는 들풀의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바람이 하도 부는 것이, 이 숲의 너울이 들려주는 소리는 아까 전 들었던 인공 파도와 비슷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하...하하...하하..."

와 시발, 악몽 아니야.

그 사실만으로도 어린아이같이 들뜬 내 몸은 붕 떠오를듯 가벼워져 어딘가로 걷고, 걷고 또 걷게 되었다.

달빛과 별빛도 오염 없이 탁 트인 것이, 서부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장엄한 장관을 연출해 주었다.


정신을 차려 보면 숲 깊숙한 곳의 툭 튀어나온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별, 미완성된 별.

내가 할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별보다도 더욱 미완성된 그것이었다, 애초에...모양도 달랐다.

이런 부품이 여기 들어가진 않았던 걸로 알았...


누군가 다가왔다, 붉은 눈의 아이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 밖의 나머지 아이들도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호기심을 띈 노란 빛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는 아이, 벌써 특이한 나무 열매, 금속 조각 등을 수집해 목에 걸어놓은 아이.

자상한 눈으로 피리에 손을 가져가는 아이, 평범한 아이.


붉은 눈의 아이는 벌써 다쳤는지 곳곳에 붉은 색이 선했다.

그래서 쓰다듬으면, 움찔거리다가도 이내 빙긋 웃으며 그 손까지 부여잡았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지도, 어느새 꽤 되었구나."

내 목소리가 이렇게 가늘었던가, 어릴 때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떠나올 때 남겨뒀던 것들,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 모든 것이 섞여 정신이 아릿해."

나한테 달려 있는 이거, 백퍼 여자 가슴이잖아.


"허나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우린 언젠가 다시 섞일 수 있을 거야."

이젠 내가 말하고 있지도 않잖아, 저기요? 뭐하고 있니 내 몸뚱아.

아니면 옛날에 겪었던 것처럼, 누군가의 일을 체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죽어도, 너희들 중 누군가 죽어도, 몇 번이고 실패를 겪어도...결국 언젠가는."

"..."

"...그래서 있지, 기똥찬 계획을 하나 세워놨어, 어쩌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

"너희가 나중에 되살아난 뒤에도 이 계획을 기억할진 모르겠지만...일단 들어볼래? 동쪽의 용에게도 협조를 약속받은 일인데."



뭐?

"...그리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한순간, 그 몸에서 내가 떠난다.

유체이탈에 가장 가깝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현상.

허공에 둥실 떠올라, 다시 어딘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


내가 들어가 있었던 몸의 주인은,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뭐?"




"...예? 그대여?"

누군가 답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엑스트라였다.

악몽이었나 방금 건? 개꿈이라고 했어야 했나?

손을 몇 번이고 쥐었다 폈어도, 방금 그 순간의 장면은 너무 선명했다, 아니면 혹시 지금도 꿈인가?


"흉부의 상처는 이제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손을 대자, 따가우면서도 가려운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분명 나아 있었다, 보기 흉한 흉터가 날 거라 확신했는데도.

분홍빛 흔적만 남긴 채, 이렇게 깔끔히.


"...부상을 입으신 걸 느끼고 올라왔나이다, 올라올 때 함께 올라갔던 분들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함께? 아, 겟탄..."

"아마 분명 게시판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 때문이겠지요, 테라피스트란 진화체의...아무튼 그건 그렇고."


꼬옥, 안겨 오는 엑스트라의 머릿결에 먼지 낀 창문의 햇살이 슬쩍 드리운다.

이곳에 오는 동안 한껏 태양빛을 맞은 것일까, 이불과 비슷한 제법 포근한 향기가 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소란조차 잠시 동안 정적이 되어, 나는 차가워진 내 몸을 그녀의 온기로 달궜다.


"...보고 싶었나이다, 그대여. 그리고 이제 움직이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신원을 보증했으니."

"너가 어떻...아, 명목상으론 분명 극단은 협회와 협조관계긴 했지."

"그렇다고 제약과 협조관계는 또 아니어서, 증명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곤란했다는 듯 아하하, 웃는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 기지개를 쭉 펴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극단장."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시에 제...반려를 지켜주시어 감사하단 말씀도."

그녀의 호의가 오히려, 그에게는 마음에 부담을 주는 듯 했다.


"눈이 어떻게 됐나? 가슴팍이 베었잖나, 그건 내 실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를 부디 저주하지 마시길, 다음에 더 분발하면 되지 않습니까?"

"마트로랑 똑같은 말을 하고 앉았군, 그래서?"

"예?"

"오는 길에 돌은 안 맞았나?"


구겨진멈멈미는 수통의 물로 목을 축인 후, 입을 병에서 떨어트렸다.

"남부의 범생이들이라면 너흴 흥미 반, 호기심 반으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이 바다는 사정이 다를 텐데."

"아, 편견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셨습니까? 저는 또 자객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고."

"어쩌면 더할 지도 모르지, 동부에서 너희는 거하게 벌려놓은 전적이 있잖나? vip들이 워커를 불러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거라면..."


그녀는 스윽 고개를 돌려 창 바깥을 가리켰다.

나는 뻐근해진 목을 돌려 창 바깥을 바라보았고, 그곳에서...


"...죽은 자의 시취와 썩어가는 삶 속에서도 그대를 찾아 이곳에 돌아왔어요, 부디 그 악취를 이길 향기를 주세요, 내 사랑!"

"딜라! 어찌 산 자가 규칙을 깨고 이곳으로 돌아왔단 말이오! 나와의 사랑이 신에게 저주받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좋단 거요?!"


한바탕 일어나고 있는 연극을 보았다.

극작가가 책을 펼쳐 피의 환영으로 무대를 구성했다, 고대의 신화, 전승.

그 모든 것을 각색하고 뒤틀어 인간과 진화체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무대.


그곳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주역, 평소의 능글맞고 여유로운, 동성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 같은 모습과 달리.

지금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참하고 퇴폐적이며, 그렇기에 처절할 정도로 섬뜩한 차이를 주었다.


그리고.

겟탄 너 연기 진짜 못하는구나.

목소리는 좋은 것 같은데 진짜 그것도 못 쓰고 앉았네, 잘 하는게 열차 박살내는 거 말고 또 뭐가 있냐.


허나 그 정도는 어느 정도 허용 범위 내인지, 모래밭에 앉은 vip들은 흥미롭게 그 연극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마 제약에서 특별 이벤트로 준비한 뮤지컬쯤으로 보고 있겠지.

그래 뭐, 나 같아도 색안경을 낄 시간 있으면 저렇게 하늘에 떠오른 핏빛 고래와 언데드 군대를 더 보고 싶긴 해.

개쩔잖아, 남자의 로망이잖아, 이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처연한 사랑의 비극이 아무래도 저분들에게도 잘 먹히는 모양입니다."

"아, 그런 내용이었니?"

"후후, 물론 당신같이 중간부터 착석한 분들을 위해서 저런 것도 연출을 위해 집어넣은 것도 있습니다, 보람이 되는군요."

"그러게..."

"그리고..."


엑스트라는 내 귀에 입과 손을 가져다 대곤, 속삭였다.

"...이러면 확실히 vip 분들도, 여러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너그러워질 것입니다."

"아..."

"물론 위에서 병력을 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스폰서 분들에게 워커를 밀고 들어올 정도로 그들이 비합리적이겠습니까?"

"...할 수도 있겠지, 테라피스트가 있는데...걔가 하는 걸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들면 안 되더라고."

"그렇다면 그들을 지키면 될 일이니, 가능하면 그럴 때 맨 앞에 서 계십시오. 당신을 지켜줄 지지자들을 얻을 것이나이다."


지킨다.

그녀는 극단을 끌어안고도 또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안고 있다.

진화체이기에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는 편견어린 시선을 받고 있으면서도.

화 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그저 묵묵히.


"...그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올라온 건가?"

"그렇나이다, 용병 분들도...자매회의 분들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바다를 구경하는 건 아이들의 오랜 소원이었으니."


바다로 향하는 유리문 쪽으로 걸어가 흘깃 엿보니, 확실히 잘 놀고 있었다.

심지어 어린 견습 수녀들이 더 잘 놀고 있는 듯 싶었다, 서로 던지고 담그고 숨 참고, 그 또래에 맞게 논다고 해야 할까.

프래자일과 바스티오는 그저 그런 아이들을 지키듯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다, 나와 시선이 맞았다.

...

그녀는 비웃고 있었다, 상처 꼬락서니 보고 비웃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해골세개와 근성의 권, 해골세개에게 기대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는 재버워크.

사방을 둘러 보니, 딱히 구분도 거의 가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들이...


"왜 워커가 없지."

"없으면 좋은 거 아냐?"

"아니, 없어도 너무 없다. 보통은 vip 경호용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게 워커일 텐데."

"...그러게."


주변을 둘러보니 실제로 그렇다.

드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 이곳에 있어야 할 직원도, 워커도, 심지어 그 안전 요원도.

왜 저 용병들도 안 놀고 안전요원 일을 대신하고 있었나 했지.


그리고.

"...거미 어디 갔어?"

"그녀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니, 본체의 이야기야...분명 우리랑 함께 있던 게 본체였는데 본체가 없..."


똑똑,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부 쪽으로 통하는 문에서 들린 소리였다.

멈멈미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검에 손을 가져갔고, 수녀원장은 깍지 낀 손을 놓지 않은 채 시선만을 그쪽으로 돌렸다.

"방랑자, 뭔가 강한 상대가 뒤에 있다."

"알아."

"한껏 숨기려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드러나, 조심해라. 에딧이 기척을 감춘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하아...진짜 설마 여기까지 칼을 들고 왔겠..."


그리고선 끼익, 문이 열린다.

장신의 누군가,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야 햇살 좋네, 남부가 드디어 하늘의 날씨까지 다루게 된 건가? 아니면 그냥 오늘 운이 좋은 건가."

푸른 머리, 밤에 보면 더 아름답지만, 낯에도 그 빛이 자연스러운 머릿결.

전에 비해 살짝 더 피곤해 보이는 안색이지만, 그럼에도 그조차도 흠이 되지 않도록 구성한 적절한 스타일링.

어깨에 들쳐맨 통기타, 묘하게 열받는 디자인의 선글라스.


"...그 호랑이 양반 말 무시하고 온 보람이 있네, 딱 놀기 좋은 날이잖아?"

미리내.

동쪽에서 봤고, 서부에서 봤고, 이번으로 세 번.

...어떻게 볼 때마다 패션이 바뀌십니까 댁은.


"미리내...님...."

"응! 오래간만이네 내 두 제자님들, 그동안 잘 지냈어? 꿈은 잘 지키고 있고?"

"그 꿈 여기 제 손에 박살났는디요."

"아하하핳ㅎ핳핳하?!! 저거 왜 이렇게 됐어? 아니 그보다 진짜 사이는 저렇게 됐네? 왜 별은 또 끌어안고 있어? 귀여워!"

"음...아? 아 이 목소리는...미리내인가! 정말 간만이구만, 악수라도 해 줘야 하는데 유감이야!"


머리 위에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사이를 얹고 웃음꽃을 피우던 미리내는 곧 사이를 내려 주며 말했다.

"응, 별이 박살났다는 건 나도 게시판 좀 봐서 알고 있지!"

"일 할 시간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럴 짬이 나십니까!"

"얘는 날 아직도 모르네, 난다니까? 어...일주일에 한번 꼴이긴 하지만, 요즘 좀 바쁘거든."

"그래 보입니다."

"나 아오류레코드 사장이잖아~세프테트리아랑 루루 컨텐츠에 음반에 합방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니까?"


킥킥 웃으며 그녀는 내 어깨를 두드려 준다.

"악몽은 여전해?"

"...오늘은 그나마 나은 꿈을 꿨습니다."

"얼마나 좋은 꿈이길래 그걸 설명할 땐 안색이 밝아질까?"

"적어도 악몽보단 낫지 않습니까."

"물론, 엑스트라는 어때? 꿈은 잘 꾸고 있어?"

"저기 보시는 바 대로...연극도 잘 진행 중입니다, 잠에서의 꿈은...방금 옆에서 잘 잤습니다."

"아직도 안 했니? 루루가 대신 물어봐달라더라, 다 하는데 너네가 왜 안 하냐고."

"그건..."


엑스트라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그 말랑한 볼따구를 자신의 손으로 붙잡는다.

"우리 루루, 너희 웨딩복까지 맞춰놓은 거 아니? 결혼만 한다면 아주 세프테트리아까지 데려와서 축가 시킬 얘야 걔는."

"...농담이었으면 좋겠건만."

"...."

"왜 하필 그런 건 또 농담이 아닙니까, 스승님아...아무튼."

"응?"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 말했다.

"여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기타 치러, 노래하러인데? 왜 그럴까? 가수가 기타도 못 쳐?"


능글맞게, 동쪽의 푸른 용은 웃는다.

지긋이 감은 눈에는 슬쩍 다크서클이 피어 있지만, 그녀는 아랑곳않고 얼굴을 가까이한다.

나는 상관없으니, 예전과 같이 스승과 제자로 돌아가 보자- 라는 느낌으로.


"또 자신 스스로 해답을 찾으라는 그 느낌...어디 보자."

"응."

"당신까지 이곳에 있으면 정말 에딧이라도 쉽사리 워커를 보내진 못 할 테니까?"

"또?"

"그런데 그 이유라면 차라리 호 선생이...여기 있다고 했으니 여기서 그 양반이 바비큐를 굽는 게 더 빠르겠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거의 다 왔다는 거겠지.


"...호 선생이 뭔가 움직였군요, 이유가 있어서."

"너희, 거미 찾고 있지 않았니?"

"아."

"그 친구...의욕은 좋은데 말야? 가끔 넘어지는 경우도 잦더라고, 알지?"

"아 예...그녀도 인정했다시피 전투 쪽으론...그녀는 거의 젬병이니까...잠깐만."

"응?"

"붙잡혔습니까 혹시?"

"아니."


"그걸 막기 위해 그가 가는 거야, 그러니 너흰 여기에서 뒷방 늙은이랑 같이 노가리라도 까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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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91]

동쪽 게이트 문제없음 확인, 위에서의 오염물질이 내려온 것을 빼면 문제없다고 다시 알림


[00014]

알았다고 알림, 곧 해결되서 비상소집 해결될 것 같은지?


[01300]

문제는 많지만 곧 해결될 것 같다고 알림

그녀가 대다수의 직원을 잠입해 쉽사리 색출할 수 없도록 기만한 것은 좋으나

이곳에 침입한 이상 그녀의 능력은 곧 무효화되어 만들어놓은 분신도 사라질 것으로 추정


[00200]

그럼 우린 그때 에딧 비서님에게 능력이 해제된 본체를 넘기면 되는지?


[00014]

에딧 비서는 본체를 투사 옆에 앉혀 놔도 상관없다고 알렸음

그러니 제압한 뒤엔 우리가 맞은 앰플 주사를 똑같이 주입한 뒤에 앉힐 것을 알림


[00015]

우리랑 똑같은 액체를 주입한단 건...그래도 좀 너무한 안건이 아닌지?

그래도 음료수도 사 줬고, 이곳에 온 의도도 그냥 그 남부의 영웅의 유품을 회수하러


[00014]

...십오번, 투사한테 주입할 고통 액기스의 채집방 다음 순번 끊고 싶음?

여태까지 잘 해왔으면서 왜 그럼, 이 액체가 주입된 이상 돌이킬 수 없음, 실행해야 함


[00015]

알겠음, 발견했음

거미의 흔적이 근처에 남아 있음, 자매회가 있는 지하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면밀히 살피라 알림


[00014]

명심하셈, 그녀가 이곳에서 본 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우리도 싹 다 줄초상임


[01022]

알겠다고 알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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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안 쳐ㅈ...아악...알겠다고, 알림!"

무겁다, 워커 이거 존나 무겁다.

거미의 정신을 꽉 채운 고통의 단어는 그 한마디로 축약되었다.

무겁다, 존나 무거워,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어디로 가야, 이곳에서 벌어진 것들을-

"어이, 천이십이!"

"...! 아 예!"

"거미의 흔적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라고 알림! 도대체 지난번부터 몇번 길을 잃는 거임!"

"미안하다고 알리임!"

"이제 보니 워커도 느릿느릿하고...연습 안 함? 왜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임? 채집방 가고 싶음?

"수리를 깜빡했다고 알...하아..."


땀 찬다, 거미는 생각했다.

땀이 폭포수처럼 흐르네, 분명 그분에게 모래주머니 받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배려해준 건가? 하하하...갑자기 그 분이 막 다시 좋고 그러네, 돌아가면 한껏 응석부려야지.

돌아갈 수 있다면의 이야기지만.


"왜 아직도 안 보이는 거야! 환풍구 기어올라간 놈들은 다 찾았어?"

""안 보입니다!!"

"그 녀석은 몸이 약하니 어딘가로 은닉해 숨어 있을 거라고 했단 말이다! 아니면 연구원으로 변장했을 수도 있고!"


예, 그럴 것 같아서 워커로 변장했습니다, 예.

이거의 원래 주인은 지금쯤...아마 그분 식당에서 인생 상담이나 하고 있겠죠.

생각해보니 질투 나네 또.


"연구원이라고 봐주지 말라고 했다! 한번씩 채혈 바늘로 찍어서 피 색깔 확인해! 그게 아니면..."


"...거기까지 해, 십사번."


검은 머릿결을 휘날리며, 방금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에딧 수녀.

그녀가 가까워지자 거미의 온몸에서 소름이 일며, 알 수 없는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변장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다는 것을.


"! 에딧 비서님...여긴..."

"내 방에 거미줄이 끼었다는 보고는 방금 들었어, 그래서...어디에 숨었다고?"

"지금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만..."

"샅샅이...? 내가 보기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시늉만 하고 있잖아."

"절대 아닙니다! 연구원 한 명 한명 모두, 채혈바늘로 찔러보고 있으며..."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의 변장이 풀려, 검은 머릿결과 노란 눈이 드러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면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은 그 이상으로, 훨씬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니까.

십사 번, 아마도 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일했던 것 같은 이곳의 워커는.


지금 그녀가 내지른 나이프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학......왜..."

"왜 너희들끼리 스스로 검진을 하지 않았지? 안 본 사이 스스로 우정이라도 쌓은 건가?"

"그건 절대 아님..."

"왜 말대답을 하지? 게다가, 냉정하게 조사하라 했지 누가 내 방까지 뒤집으라 했지? 채집방에 가기 두려워지기라도 했나?"

"..."

"...테라피스트의 연주가 벌써 너희들의 마음까지 뒤틀어놓기라도 했나? 그런 거, 없을 때가 훨씬 아름다운 건데."


쑥 뽑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ss급, 투사의 피를 견딘 자들이다. 극단의 주역 라인과 마찬가지로 그녀들 또한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거겠지.

나을 때까지, 고통받을 뿐이다.


"...나와, 거미."

"..."

"이곳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너가 그 방랑자들과 같이 몸을 던졌어도...이곳에까지 그물을 드리우고 있단 것 정돈."

"..."

"회장이 네 분신 능력과 변장 능력에 갖는 관심이 아주 크거든, 이 참에 한번 기여 한번 하지 그래?"

"..."

"그걸 사람들이 받게 되면 네 말대로...세상의 지식과 정보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날 텐데 말야, 예를 들어..."


389번.


"이 친구들은 오류가 생기면, 고쳐 쓰지 않아도 될 거고."


71번.


"문제가 생긴다 한들, 다시 만들면 그만인 세계가 될 거고."


2034번.


"쓸데없는 감정과 광기, 어줍잖은 허세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차분한 세계를 만들 발판이 될 거야."


쓰러진다, 쓰러진다, 쓰러진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에게, 겨역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거미의 눈 앞에, 수 많은 것들이 겹쳐진다.


강철선로에서 보았던 것들, 수많은 곳을 떠돌며 보았던 것들.

쌓여가는 저 자들 큰 경중은 없다, 어느 하나가 안 소중한 것이 없듯.

그리고 이것보다 더 많은 것도 봤지 않은가, 산처럼 쌓인 순간도 보았다.


이를 악물며, 억눌렀다.

어차피 아랫입에서 흐르는 검은 피 정도야, 헬멧 안에 있으니 보이지도 않을 테니.


"..."


"너 테라피스트를 싫어한다며? 나도 그렇거든, 아주 증오하지. 그런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니까 너한텐 딱 좋지 않아?"

"..."

"다음, 15번. 넌 지혈 후에 알아서 그 방에 가 있도록."

"...사, 살려주세요 에딧 비서님. 채집방은 제발, 채집방만큼은 제발...제발..."

"많이 겪지 않아서 그래, 한 스무 번 정도만 더 겪다 보면 어차피 조용하게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

"제발, 제발...."

"아니면, 신이라도 믿어 볼텐가? 아니, 그건 해 봤자 무리야...이 땅에 신은 어디에도 없어.'


빙긋 웃으며 그녀는 특별히, 몸을 떨고 있는 그녀에겐 더 깊숙히 꽂아 넣었다.

"신도 없고, 우상도 없지. 너희들이 믿고 있는 남부의 총잡이, 서부의 호랑이, 동부의 용 모두 다."

"악....제발...제발 빼 주세요..."

"그들이 대단한 활약을 하긴 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존경 같은 쓸데없는 감정은 버려야 해."

"아..."

"일을 마친 개는 도살한다, 그거야말로 효율적인 이..."


거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미쳤네.

봐, 워커의 주먹조차 제대로 꽂아넣지 못했잖아요.

오히려 저쪽이 저 긴 검으로 이쪽의 슈트를 향해 찔러넣는 게 훨씬 빠르고.

그래서, 그래.


열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존나 답답했거든요.

거미는 몇 번을 구르고 구르며, 단검에 박힌 소녀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충격을 흡수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뻗었다, 단검을 빼고 그것을 가져다 대자 다시금 격한 신음이 그 뒤를 뒤따랐다.


"제 육체를 조금 써서 환부를 꿰맸어요...빨리 아무 곳이나 가서 지혈해요, 그리 오래 가진 못하니까 이거."

"전...저는..."

"팔에 주사된 것 때문에요? 괜찮아요, 가서 지하에 있는 극단장을 찾아요, 마네트 자매회에 있는 극단장, 알겠죠?"

"...예."

"뛰어요, 넘어지면 걷어찰 테니까."


그녀는 달려갔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듯 했다.

거미는, 변장조차 풀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몇 번이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능력이 풀려가고 있다, 방금 전 그녀를 꿰맸던 실 모양의 형상조차 유지하지 못할 만큼.

왜지? 뭐 사춘기라도 다시 왔나? 아닐 텐데.


그렇다면...

"왜 방랑자가 아까 기습을 허용당했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어."

"진화체의 힘을 무효화시키는 뭔가, 제약이 기어코 개발했나 봐요?"

"상용화는 까마득하게 멀었지, 회장이 뒷배가 있으니까 한 사람 분만 쓸 수 있는 정도?"

"...알려줘도 괜찮아요 그거? 심지어 전데?"

"너 분신도 다 없어졌잖아? 그리고 지금은..."


또다, 별의 방랑자를 습격했을 때처럼 징조조차 없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기술.

검을 흩날리며 수없이 많은 상흔을 만들고, 특히 허벅지 쪽엔 격하게 움직이면 벌어지는 상흔들을 새겼다.

검은색이 제 피 색이라 다행이네요, 안 그랬으면 조금 저도 스스로 질겁해서 가뜩이나 안 움직이는 몸이 더 굳었을 텐데.


"...널 제압해서 끌고 가면, 어차피 투사랑 똑같이 묶여 있게 될 텐데 뭐하러?"

"모든 ss급들을 거기 앉혀놓기라도 할 셈이세요?"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아? 테라피스트도 자꾸 명령을 어기면 그럴 셈이었기도 했고."

"남보곤 현실을 깨달으라는 말만 씨부려 놓곤...얼마나 현실감각이 없는 거죠." 

"게다가, 그래야지만이..."


그녀의 외골격에 빛이 들어왔다, 칼에 맞고 쓰러진 자들의 워커들이 강제적으로 움직였다.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은 마치 배터리를 갈아끼우듯 그토록 쉽게 땅바닥에 내던져져 구르는 채로.

그것들은 서로 결합하고, 엮여져서는.


"...내가 비로소 진정한 바다로 올라가, 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거든."

"이 미친..."


자세한 구조를 분석할 틈도 없이, 몇 배나 더 비대해지고 단단해진 주먹을 그대로 날렸다.

아프다, 분명 부러진 곳 두 자릿수는 될 거다.

몸 안에 집어넣었던 사이 님의 총이랑 백신을 담은 가방들은 부서졌나?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는데?!


땅 바닥에 구른다, 그 컨테이너가 다시금 구겨진다.

한번 더, 이번에는 그 안에 있는 것이 금 가는 소리, 가느다랗다.

그것이 안개 사건의 해독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안의 것이 파삭, 하면서 완전히 깨져버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서야 난 벽에 쳐박혀, 다시금 검은 피를 줄창 흘려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안으로 손을 뻗어 끄집어낸...그 분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 완전히 구겨져 버린 서류 가방.

그러나 아직, 가방 하나가 남아 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도.


거미는 쳐박힌 벽 근처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눌렀다, 고맙게도 엘리베이터 근처에 날려 준 에딧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리고선 심호흡을 고르고, 혹시나 할 상황을 대비해 가방을 문 근처로 발로 차 밀어넣었다.


그러고선, 자세를 취했다.

"...네 우상이 자주 취하는 자세인가?"

"하아...하아..."

"정말 힘든가 보네, 말도 없이 혼자 싸우고...그런데  안 좋은 소식 들려줄까? 그거 악수야."

"..."

"테라피스트의 소리 칼날은 받아치면 숨 돌릴 시간이 있었을지 몰라도, 이쪽은 한 번을 받아친다 한들..."


주먹이, 다가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부수면 되거든."

"..."

때린다, 때린다.


"나는 너가 스스로 체념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스스로 투사의 옆에 걸어가 앉을 때까지 계속 때릴 거야."

"..."

"못 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한테 시간은 아주 많아, 이곳이 지하란 점도 더 그렇고."

"..."

"자매회의 건물보다도 지하에 있는 이 곳까지 올 수 있는 수단이 엘리베이터 하나인데, 올 사람이 있겠어?"

"나는..."

"포기해 거미."


"...싫거든요? 저는! 그 분을 보고 싶어요! 나는 그 분이 사랑해,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직 듣지 못했어!"

"그거야 나도 말할 수 있는 단어지, 그거에 큰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해?"

"아직 겪지 못한 것도...하끅...보지 못한 것도 많아! 죽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런 반푼어치라도 버틸 거야! 계속해서 버틸 거야!"


거미가 손을 뻗어 주먹 하나를 붙들었다, 금새라도 으스러질 것 같지만, 가냘프게라도 버텼다.

그러나 에딧은 그게 무슨 대수라는 듯, 다른 손을 치켜들었다.


"그럼 그 손마저 으스러트려 줄게."

"...하아..."

"봐, 이 순간마저도 내 주먹에 가려져 넌 보이지 않는구나, 혼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벌레야."


압도적인 무게의 그림자가, 거미를 가렸다.


...




"워커라, 좋습니다. 강철선로의 기술력과 합한 것은 처음 봅니다만."



거미의 눈이 떠졌다, 그 목소리라면 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 안에는 익숙한 손바닥이 있었고, 팔다리가 있었으며.

여유롭게, 한 손으로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동작이 있었다.


"우상이라, 또한 그것도 옳습니다. 우리의 일은 기억해준다면 좋으나 되풀이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니, 영원히 과거에 남아야지요."

"너는...잠깐만, 분명히 엘리베이터는 내가 잠가 놓았는..."

"상황이 급박한 나머지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내리지 말았지 뭡니까, 이거 실례했습니다."



"...너희, 남은 워커를 전부 나에게 돌려라."

"잠깐 기다립시오, 주먹을 맞대는 건 좋으나 서로의 이야기를 마저 오고 가게 한다면 좀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진화체와 인간이 섞여야 한다 주장하는 너희들에게 할 이야기따윈 없어."

"아하, 그러시다면..."


호 선생의 선글라스 속에서.

"...제 불편한 주먹과 맞대시겠다는 의미로 알겠습니다."

서쪽 땅의 산군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

마치 총이라도 쏘는 것처럼 공기가 터져 폭발했다.

에딧의 물처럼 흐르는 접근과는 또 다른, 대응조차 주지 않는 접근이었다.


"마침 해가 환한데, 일출은 본 적 있으십니까?"

"뭔..."

"날씨 좋고 바람 좋습니다, 꽂도 만개했고. 보고 오시지요."

"잠깐만..."

"진무 산군권 천,  하늘 때리기."


그녀의 배에 주먹이 꽂혔다, 그리고 하늘을 날았다.

거미가 본 일련의 과정은 그러했다.

자매회의 건물보다도 더 지하에서 어떻게 하늘을 날았느냐는 그리 자세히 묻지 말라.


호 선생은 주먹을 꽂았고, 주먹이라고 하면 웃음이 나올 소리와 함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하늘을 날았다.


워커들의 부서진 장비를 비처럼 쏟아지게 하며, 그렇게.

물론 떨어진 파편조차도 깡 소리를 내며 머리에 얻어맞은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탈탈 털어내며.

거미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제 손목이 꽤 아프군요, 실은 각혈도 나올 것 같았는데 간신히 참았습니다만."

"...하아...하아..."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멋대로 절 낫게 할 보약을 찾아다니느라 고생한 제자님이 앞에 있으니, 조금 더 참아야겠지요."

"전...전..."


그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짜증 섞인 걱정이었다.

"당신이 제 독을 낫게 하겠다 했으면 그 독만 해도 괜찮았을 텐데, 왜 무리를 하셨습니까."

"저는...전달해야 할 게 많아요, 저 지하에 그녀의 피를 주입한 워커가 천 단위가 넘어요, 게다가 그 이상으로...'

"제자님."

"안개 사건의 독의 해독제가 왜 있었는지 아세요? 투사에게 그걸 주입시키고 있었거든요! 그 극독을...주입시키고 있었다고요..."

"셰프카 양."

"지금 안 막으면 그 똑같은 일이 또 일어 날까봐...또 당신이..."



셰프카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피 때문에 꼴사납네, 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이미 그걸 제어할 능력도, 힘도 지금의 그녀에겐 없었다.

"알려 줘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여기서 얻어낸 정보, 그리고 저 총, 모두 제가 전달하겠어요."

"...저는...전..."

"이곳에서 많이 힘드셨죠?"

"전혀 힘들지 않....힘들었...어요, 처음부터 투사가...가로막고...그것 때문에 조급해져서, 무리수도 두고...전...나는..."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햇살 때문에 눈이 따가운 것도 있었다.

그 온기 때문에, 자신을 안아드는 그 때문에, 그래서 더, 더.


"...이제 쉬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뭐라고 했죠?"

"...너는...킁... 최고의 서포터고, 최고의...하아...흑...제자다, 그러나 그보다 초심으로...여행하길 좋아하는 소녀란 걸 잊지 마라."

"험난한 여행이었으니, 푹 쉬세요 제자님."

"사랑한다라고...하아...흑....사랑한다라고 말해 주세요."

"그거야 사랑하죠."

"그런 어투가 아니라...됐어요, 지금은 놀릴 힘도 없고..."


팔의 힘이 풀렸다, 배도 고팠다.

이 정도면 몇일 잠을 자야 회복이 되려나? 한달 정도는 있어야 하려나?

자신이 부재할 동안 일어날 두려움들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저 그의 온기에 매달려.


"나중에...몇 배로 갚아서 괴롭혀줄 테니까...."

아직은 그렇게, 아이처럼, 젖먹는 힘까지 짜내도 간신히 두 다리로 일어서, 그의 볼에 키스를 하고.

발갛게 상기된 볼에 간신히 미소를 그리며, 축 늘어지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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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캐 전화가 된다 싶었더니 저쪽에 구멍을 뚫어 놨구나? 찾았어?"


"찾았네, 꽤 험한 꼴이 되어 있더군."


"내 제자님과 극단장님이 같이 가겠다고 해서 내가 말렸는데, 잘한 일이려나?"


"잘한 일이네, 그들은 쉬어야 해. 이런 일은...나 같은 자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럼 그런 일, 앞으로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난 알아, 한 번.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아니, 지난번엔 세 번이라 했으면서...."


"그래서 말인데 호랑이 양반, 설헌이 안 온건 조금 유감스럽지만...올라오면 사이랑 함께 술 한잔 하지 않을래?"


"..."


"다시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풍경을 눈에 담을 기회가...꽤 많이 남지는 않은 듯 싶어서."


"서부에 돌아가서 좋은 술 한 병을 가지고 오지."


"응, 그럼 마시는 김에 비싼 걸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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