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알코올을 마시면 취한다.

독성 물질인 알코올을 들이키면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분해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작용이 바로 취하는 것이다.



2277년.

이제는 흔히 보이는 오토마톤들도 비슷한 방식을 이용함으로써 취하고 잠시 삶의 피로를 잊기도 한다.

인간이 독성 물질인 알코올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오토마톤들은 그들에게 독인 악성 코드를 이용한다.

지나치게 강력하지 않은 정제된 악성코드.

바에서 테크 - 바텐더에게 주문하면 즉석에서 적당한 악성코드를 섞어서 주문한 오토마톤에게 주는 방식이다.



적절한 악성코드가 담긴 칩을 받은 오토마톤은 그것을 혀 밑에 있는 단자에 집어넣고 독을 받아들인다.

인간이 술에 취하는 것처럼 디지털 정신이 몽롱해지고 화면이 깨진 것처럼 몇 번 튕기기도 하며 가끔 남용하면 단기 기억을 상실하기도 한다.

인간의 술과 마찬가지로 너무 많이 사용하면 악성코드에 내성이 생겨 더 많은 그리고 더 강한 악성코드를 찾는 중독증세가 생길수도 있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오토마톤들에게 악성코드 남용을 자제하자는 내용의 - 21세기 알콜중독 방지 공익광고와 비슷한 - 선전을 하지만 바쁜 현대 오토마톤들이 잠시 삶의 피로를 잊기 위해 계속해서 악성코드를 찾는 것을 막진 못한다.



그건 그렇고...

이 악성코드라는 말의 어감이 영 좋지 않기에 인간들이 알콜을 술이라고 바꿔부르는것처럼 오토마톤들도 악성코드를 다른 말로 바꿔 부른다고 한다.

혼자 취할 땐 Dos.

여럿이서 취하면 D-Dos라고 부른다.

이것이 오래 전 사장된 컴퓨터 관련 언어임을 아는 오토마톤과 인간은 이제 몇 없다.



하여간 몸에 안 좋은걸 때려박는 주제에 거창한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건 창조주인 인간이나 피조물인 오토마톤이나 비슷한 것 같다.

바텐더에게 블러디 메리 좀 달라고 부탁하는 인간이나 트로이 목마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오토마톤이나 다를 게 뭔가.

이렇게나 똑같을거면 예전엔 왜 그렇게나 피가 튀기고 기름이 흐르도록 싸웠던건지.

이해가 안 간다.



2277 / 04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