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토눌라의 난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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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트릴랑의 결심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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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제자와 답답한 스승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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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녀복으로 제 마음의 사악함을 감추고 다니던 늙은 마녀 폰다우레아는, 부하 수녀들이 자기 방 앞에 모이자 잠시 성물을 방 한 켠에 고이 모셔 둔 다음, 다시 옷을 입고 그들을 안에 들인 다음 작은 소리로 선언했다.


"이 성물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이에게 다음 수도원장 자리를 주겠다. 무슨 짓을 생각하든 상관없다."


도둑질은 십계명에도 금하는 중죄인데, 아무리 탐이 나는 물건이 있대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런 짓을 시키는 게 명색이 수녀인 자가 할 짓인가? 저승에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변명을 위해 한 음절 뱉는 것도 못할 악행이로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자리에 모인 젊은 수녀들이 수도원장 자리를 노리고 폰다우레아의 말을 따라 음모에 가담하기로 한 것이었다.


"청소를 핑계로 방을 바꿔 밖에서 잠그는 곳에 모신 뒤, 겉옷을 주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할까요?"


"안 됩니다. 그자는 내일 아침까지만 묵고 가겠다고 했으니 굳이 방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실력 행사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푹 쉬어서 몸이 가뿐한 사람이 백 명이 넘고 저쪽은 둘뿐이니, 쪽수로 몰아붙이면 성물이고 뭐고 도망치기 바쁘겠죠."


"글쎄요. 스승 쪽은 그렇다 쳐도 헐벗은 제자 쪽은 말투나 행동거지를 보니 싸움에 익숙한 것 같은데, 함부로 덤비다 우리가 짓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인 건, 그자들이 도망치면서 우리가 한 짓을 떠벌리고 다니면 방문객이 끊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사실이에요."


수도원장으로서 모시는 자가 탐욕해서인지 이 젊은 여자들도 거리낌없이 입 밖에 나쁜 생각을 내뱉으며 열띤 토론을 했다. 수도자란 것들이 위아래 할 것 없이 도적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데, 의견이 모인 끝에 드디어 주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잘못된 방안이 나왔다.


"불을 지릅시다."


사람들이 묘안을 뱉은 자를 보니, 평소에 책략을 잘 짜서 손님의 고민을 해결해 주며 답례로 종종 선물을 받던 젊은 수녀 트라폴라르가(Trappolarga)였다. 늙은 악녀는 그 간악한 여자를 불러 정확한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그가 입을 열었다.


"저들이 자는 틈에 불을 지르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무기를 들고 저 흉포한 제자 년을 상대할 필요도 없고, 도망치는 자들 입 막을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되지요. 게다가 요즘 건조하고 바람 적은 날씨가 계속되어 어디서든 불이 잘 붙을 테고, 그들이 지금 자고 있는 오두막은 나무에 기름을 발라 지은 것인데다가, 주변의 다른 건물과 좀 떨어져 있어서 혹시나 불이 옮겨붙을까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불이 붙은 뒤에 우리가 할 일은, 저들의 숨통이 끊어질 즈음에 천천히 불을 끄고, 동네 사람들한테 손님들이 부주의해서 불을 냈다고 발뺌한 뒤 새 오두막을 짓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겉옷은 이 동정녀 수도원의 새로운 보물이 되고, 원장님께서 그것을 걸치신 자태를 구경하려는 자들이 우리를 더욱 부유하게 하겠지요. 어떻습니까?"


아아, 끝내 도둑질보다 더 나쁜 죄가 그들의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 늙은 여자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당장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니, 멀쩡한 사람이 그 꼴을 보면 쭈글쭈글한 그 면상에 발길질을 날리려 했을 것이다. 폰다우레아의 지시에 수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기름 먹이고 엮은 풀에 밧줄을 묶고는 불을 붙여 사방팔방에서 던질 준비를 하니,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도적들이 미처 경계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들이 죽이려는 이들 중 흉포한 제자 쪽이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재주가 많았다는 것이다. 베르토눌라는 폰다우레아가 면포를 돌려줄 마음이 없음을 진작 알아차리고, 스승이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틈에 머리털을 약간 끊어 날벌레로 바꾼 다음 요술을 써서 정신을 그 날벌레로 옮겨 수녀원장의 방에 들어가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겉옷에 온몸을 비비는 꼴을 보니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덕분에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그들이 진짜로 오두막에 불을 지를 생각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베르토눌라는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게 선뜻 목을 들이밀어 줄 얼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좋다. 저 나쁜 년들과 답답한 스승년을 다함께 골탕을 먹여 줘야지.'


그는 정신을 본래 육체로 다시 옮긴 뒤, 오두막에 설치된 벽난로에 마법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불이 창문처럼 열리고, 그 너머에 헤스티아의 얼굴이 비쳤다. 그러자 베르토눌라가 예를 갖추고, 아까 술을 대접받았을 때 챙겨 두었던 세 개를 바치며 헤스티아에게 청하였다.


"자애로우신 불의 어머니시여! 당신의 종인 불이 만방의 평화를 위해 순례를 떠난 저희를 괴롭힙니다. 간절히 비오니, 그가 저희와 저희의 성물을 해치지 못하도록 한 마디 말씀만을 내려 주시옵소서."


헤스티아는 그의 속셈을 간파하고는, 쓴웃음을 지은 채 작은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좋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지는 마라."


그 뒤 여신은 손을 뻗고 힘을 실은 목소리로 "Μην τους πληγώσεις!(그들을 해하지 마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바깥에서 수녀복 입은 도적들이 기름 먹이고 불을 붙인 건초 뭉치를 잔뜩 던져 불길이 하늘을 찌르도록 높게 솟는데도 오두막의 목재가 타오르기는커녕 불이 붙지도 않았다. 그 도적들이 이상한 점을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베르토눌라는 몸을 바람의 형상으로 바꾸고는 밖으로 나가 오두막 주변의 불을 싣고 수도원 곳곳으로 쏘다녔다. 그러자 그곳의 수도자들 방, 기도실, 휴게실, 작업장, 방어용 탑, 정원, 술 창고 등 온갖 시설에 화재가 옮겨붙어 거기 있던 모든 가재도구와 식량과 식물과 재보를 태워버렸고, 수녀들은 놀라서 넋이 나간 채 도망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산트릴랑이 묵은 오두막과 성물이 있는 수도원장 방 한 켠만이 불타지 않았다.



베르토눌라는 감히 자신들을 해하려 했던 자들이 역으로 당해 울부짖는 것을 보고 통쾌하게 웃으며 더욱 맹렬하게 불을 싣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장난질에 정신이 팔려 성모의 겉옷이 불의 광채를 반사해 휘황찬란하게 빛나 수도원 방벽 너머까지 비추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3리그(약 9.75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안에서 바람이 솔솔 나오는 시커먼 동굴에서 괴물이 나와 다가오는 것을 미처 발견하여 막지 못했다. 


그 동굴은 아네모멜라이니(Anemomelaini, 검은 바람) 동굴이라 불렸고, 거기 사는 괴물은 아르카스엘리사의 암곰 중 더 일찍 나온 쪽이 짝을 지어 태어난 검은 암곰 괴물로서 사람들에게는 아르카나 아네모멜라이나(Arkana Anemomelaina)라 불리었다. 그는 평소에 동정녀 수도원에 들러 일손을 돕고 음식과 술을 얻어먹거나 수도원장과 라트룬쿨리를 하며 놀곤 했는데, 잠결에 웬 광채가 비쳐서 일어나 보니 그동안 자기가 일하고 놀던 곳이 불타고 있었기에 수녀들을 구하러 왔다가, 수도원장 방 쪽에서 불빛과 다른 신비로운 빛이 나는 것을 발견하고 성스러운 면포를 찾아내서는 수녀들 도울 마음이 사라지고 탐욕이 빈자리를 채워 그것을 챙겨 아네모멜라이니 동굴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베르토눌라는 해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장난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날이 밝을 무렵이 되니, 동정녀 수도원이 있던 곳에는 산트릴랑이 묵는 오두막과 수도원장의 방이 있는 숙소 한구석만이 남고, 그 주변은 온통 불타고 무너진 건물 파편과 조각나나 지붕, 그리고 정원과 밭이 있던 자리에 쌓인 잿더미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곳의 수녀들과 수녀원장은 이를 보고 모두 같은 생각을 품었다.


'저 프랑크 수녀는 참으로 주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업을 행하는 이로서, 그분의 보호를 받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저분을 방해하며 죽이려 한 우리는 천국에 가지 못하겠구나!'


그들이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보고, 말썽쟁이 베르토눌라는 탐지 못하여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먼 곳으로 가서는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었다. 겨우 폭소가 진정되자, 그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불타지 않고 남은 오두막에 마련된 자기 몫의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