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됐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고!!!"



"그래, 그래. 나도 알아. 뭔가 이상하다는거! 알겠으니까 이 멱살 좀 놔 봐! 내가 잘못했냐?!"


 


 


청년이 수도로 떠난 지 3개월하고도 몆 주가 지났다.


원래 지금쯤이면 시험이 끝나고 갔던 길을 따라 되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길목을 지키고 있을 구미호들로부터 들려와야 할 텐데,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래, 네가 말했던 그 구미호들 좀 보자! 내가 직접 얼굴 좀 보고 이야기해야겠어!"



"아니... 쫌... 알았어. 지금 불러 올 테니까 이것 좀 놓으라고!!"


 


 


신령은 눈을 희번뜩거리며 미쳐 날뛰었다.


청년에 대한 걱정으로 이성이 반쯤 나가버린 신령은 지난 몆 달간 청년이 사주었던 다홍 머리끈을 꼭 껴안고

내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청년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반쯤 맛이 가버렸다.


 


 


"그 구미호들, 그이가 가는 길 자세히 지킨 거 확실해? 그냥 삥땅쳐놓고 잘 호위했다고 거짓말 하는 거 아냐?"



"개네가 교활하긴 해도 나한테 거짓말 할 놈들은 아니다. 좀 기다려 봐. 한 놈 불러 올테니."


 


 


호랑이 여인은 다람쥐 하나를 시켜서 구미호들 중 하나를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그 와중에도 신령은 불안해서 미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녀의 관할인 계곡은 바다라도 된 것 마냥 미친듯이 출렁였다.


 


 


"야, 좀 진정해. 지금 뭐 걱정한다고 뭐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 아마 수도에서 놀고 있겠지 뭐...

어쩌면 너 줄 선물 사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예이 예. 부르셨음까 누님?"


 



갈색 털의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바위 뒤에서 폴짝폴짝 튀어나와 호랑이 여인에게 도도도 달려왔다.


 



"어, 그래. 엄청 빨리 왔네. 여기 애가 너랑 이야기 좀..."


 



신령은 여우를 보자마자 빛의 속도로 여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캐앵?!"



"야!!! 너!!! 너가 그이의 마지막까지 쫒아갔다고?? 그이가 수도로 들어가는 것 까지 봤어?! 확실해?! 확실하냐고!!"



"저, 저기. 아씨! 아가씨! 이것 좀 놓아주십쇼! 숨 막힙니다!! 캥캥!!"


 



흥분한 신령이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구미호는 인간 모습으로 변신해서 직접 멱살을 잡은 손을 떼어내야 했다.


그마저도 힘이 부족해서 호랑이 여인이 도와준 후에야 겨우 신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신령이 계속 미친듯이 날뛰자 구미호는 여우구슬로 신령의 머리통을 내리쳐야 했다.


 



"자, 아가씨. 이제 좀 진정됬슴까? 진정 주술을 썼으니 이제 좀 기분이 나아질 검다. 자, 숨 내쉬고, 들이마시고, 옳지..."


 


 


머리를 맞은 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령에게 구미호가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신령을 마저 진정시켰다.


 


 


"...그거 직접 내리쳐야 주술 걸 수 있는 거였냐?"



"아뇨, 누님. 그래도 이게 직빵임다. 그래서, 왜 부른 검까?

일단은 말씀하신 위치에 계속 대기중이였었슴다."



"애가 내가 말한 그 신령이다. 그... 인간이랑 사랑에 빠진..."



"앗..."



"그래. 완전 미쳤지. 근데 애가 너한테 할 말이 있대."



"어음... 네. 그래서 뭡니까? 좀 진정됐으면 말씀하십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령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왜그러심까? 좀 진정하십쇼... 왜 우시는 검까?"


 


 


"그... 그이가... 지금쯤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그... 너가 그이 오는 골목을 지키고 있었지?? 그이가 돌아오면... 너가 봤어야 하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거지...?? 너가 거짓말 한 거야??


너가 못 본거 아니지..?? 아님 너가 거짓말... 흐으윽..."


 


 


"지... 진정 좀 하십쇼! 일단 저는 거짓말 안했슴다!

저는 누님이 말씀하신 위치에서 계속 대기중이였다구요.


 


그 인간이 수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숲 길목을 지켜보고 있던 것도 저였고, 그 인간이 수도에서 나와 돌아올 때의 골목도 지켜보고 있을 구미호도 저였단 말임다!


누님이 저한테 말씀하셨슴다. 그 인간이 수도로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봐서 소식을 전하라고...


 


근데 전 내내 거기에 있었다고요. 그리고 그 인간이 나오는 건 못봤슴다. 들어가는 것만 봤지... 들어갔다는 소식은 제대로 전했다구요?

아마 그 인간은 아직도 수도 내에 있을 검다."


 


 


"왜...?? 시험 보고 나면 바로 돌아온다고 했단 말야... 너가 거짓말 하는거지... 그이가... 그이가 거짓말 할 리 없어... 왜..."


 


"그... 남자잖슴까? 저도 일단은 숫놈이지만 인간 수컷들은 여자를 잘 탐하잖아요? 아마 수도에서 예쁜 기생 하나 끼고 놀고 있는 게 아닌... 헙...!!"


 


 


구미호는 나불대다가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듯 스스로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말을 튀어나와 버린지 오래였고,


호랑이 여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스스로의 이마를 탁 치며 신령을 진정시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신령은 여우의 말을 듣고 날뛰지 않았다.


 



오히려 석상이 된 것 마냥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계곡의 물도 얼음이라도 쩡 하고 얼어붙어버린 것 마냥 무섭도록 잠잠해져버렸다.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무서운 정적이였다.


 


 


"그럴리가... 없어... 그이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나와 함께 산다고 했는데... 나한테... 이것도 주고 갔단 말이야..."


 


 


신령은 자신의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주홍색 머리끈을 더욱 꼬옥 끌어안았다.


 


 


"...내가 직접 봐야겠어."


 


 


"...네?"


 


 


"날... 날 수도로 데려가 줘... 그이가 뭘 하고 있는지 봐야겠어..."


 


 


"야, 너... 설마 이 계곡을 떠날 셈이냐?"


 


 


"아니, 걱정 마. 그 이가 뭘 하고 있는지... 보고싶을 뿐이야.

그냥 거기서 놀고있는거면 괜찮아. 그럼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그래... 내가 너무 과민 반응했나봐.


그냥... 직접 볼래. 날 수도로 데려가줘."


 


 



구미호는 호랑이 여인의 눈치를 살폈다.

호랑이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표시를 내리자, 구미호는 한숨을 내쉬고 여우구슬을 다시 꺼내들었다.


 


 


"따라오십쇼. 축지법을 쓸 검다. 몆 시간만 걸으면 바로 수도에 도착할 검다."


 


 


신령과 여우는 앞으로 몆 발자국을 떼는가 싶더니,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은 호랑이 여인은 짜증스럽게 으르렁대며 머리칼을 양 손으로 흐뜨러트렸다.



예전에 들었던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분명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신령 녀석...


그 다혈질 말괄량이이던 녀석이 그 인간을 만나 조숙하게 변했었다.


그런데 인간이 떠나고 나자 며칠동안은 잠잠하더니 이내 불안감에 못 이겨 발광하기 시작했고, 아까는 겨우 진정하더니 갑자기 울고...


 



그러다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워져버렸다.


그 얼음처럼 차가워진 부분이 문제다.



저건 냉정해진 게 아니다.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수 있는 살얼음같은 상태란 말이다.

신령과 함께 살다시피 했던 호랑이 여인은 알 수 있었다.



저 연약한 얼음장이 깨져버린다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깨져버린다면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임을 호랑이 여인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아무일도 없기를...

저 아이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


 


 


 



"보십쇼. 여기가 수도임다."



"...엄청 크네."



"네, 그렇죠 뭐. 여기서 아가씨가 좋아하는 그 사람을 찾으려면 고생 꽤나 할 겁니다만..."



"빠른 방법은 없어?"



"이제 막 이야기를 꺼내려는 참이였슴다. 그... 인간이 주고 간 붉은 머리끈좀 잠시 주시겠슴까?"



"....."



"걱정 마십쇼. 머리끈에는 아무 해도 안 갈 검다."


 


 


신령이 마지못해 내민 머리끈을 받은 여우는 여우구슬에다 대고 뭐라고 주문을 외우더니, 머리끈을 허공으로 던져올렸다.


머리끈은 허공에서 빙빙 돌더니, 허공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자, 저 머리끈을 따라가면 됨다. 마을의 인간들에겐 머리끈이 보이지 않게 주술을 썼으니 안심하시고 따라가십쇼."



"... 저걸 따라가면, 그이가 있는거야?"



"예이. 추적 주술임다. 빨리 가자고요. 까딱하단 놓칩니다."


 



둘은 머리끈을 쫒아 산길에서 사람들이 가득한, 시끄럽고 북작거리는 수도로 뛰어내려왔다.


 


 


"머리끈... 머리끈은 어딨지...??"



"저쪽임다. 제가 봤슴다. 따라오십쇼."


 



머리끈은 마치 물고기와 같이 공중을 헤엄치며 점점 수도의 중심부로 향했다.


외곽의 시장터를 지나고, 중인들이 물건을 만드는 곳을 지나고 나니, 이윽고 홍등가가 나타났다.


예쁘장한 기생들이 아름답게 꾸미고선 여러 집들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령은 지금 쫒는 머리끈이 제발 저 홍등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도 머리끈은 홍등가를 그냥 지나쳐 갔고,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신령은 계속해서 머리끈을 뒤쫒아 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신령을 안내하는 구미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여길 지나서 수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부잣집들이 가득 늘어서 있을 텐데?



시골에서 올라온 인간이 부자 동네에서 뭘 하고 있는거야?


 



...그런 것 까지 알 턱이 없는 신령은 그저 머리끈이 홍등가에 들어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계속 머리끈을 쫒을 뿐이였다.


 


 


머리끈은 이윽고 부자 동네에 들어섰다.


사방에 높게 세워진 기와집이 가득한 곳에서, 머리끈은 잠시 주춤주춤하더니, 가장 커다랗게 세워진 기와집으로 향했다.


큰 기와집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무슨 잔치라도 벌어지는 듯 했다.


 



"머리끈이 왜 저런 곳으로..??"



"... 저야 모르죠..."


 



신령과 구미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기와집 입구로 달려갔다.


 



"뭐야. 누구십니까? 초대 못 받은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기와집 입구에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서서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막고 하고 있었다.


 


 

"지, 지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검까?"


 


"뭐야, 당신 이 동네 사람 아니오?

하긴... 옷차림이랑 말투 보니 외곽에서 오는 모양이긴 한데...

오늘은 이 주인집 경삿날이오. 이 집 따님이 드디어 결혼을 한다지. 그것도 이번에 장원급제한 인재와 말이오.

혼기가 한참 넘고도 결혼을 안 해 동네에서도 소문이 다 났었는데, 이제야 결혼을 한다니 다들 축하하러 모였지.


그런데 당신들은 초대를 못 받았으니 못 들어가오. 돌아가슈."


 


 


"결혼이라고...???"


 


 


신령은 멍하게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신령이 홀린 듯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남자는 신령을 막으려 했다.


 


 


"이보슈, 아가씨. 안 들려요? 초대 못 받으면 못 들..."


 


 


구미호가 남자의 뒤통수를 여우구슬로 후렸고, 남자는 주술에 걸려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아가씨! 신령 아가씨! 얼른 들어가보세요...!! 머리끈이 집 안쪽까지 들어가잖슴까...!!"


 


 


구미호가 잠든 남자의 몸을 억지로 세워놓느라 낑낑대며 말했다.


 


 


"아... 아아... 응..."


 


 


그러나 신령이 기왓집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문간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나 신령의 앞을 가로막아버렸다.


 


 


가택신이였다.


 



"바깥 귀신은 들어올 수 없다. 나가라."



"...넌 뭐야..."



"경고했다.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쫒아내겠다."



"당장 안 비켜..?? 안 비키면..."


 



그 때, 신령은 집 안 마당에서 성대하게 벌어지는 잔치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고 말았다.



너무도 사랑하는 그이가,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고는,

처음 보는 여인과 마주 보고 웃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식을 보는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를 했고, 이윽고 그이와 여자가 마주 보고 절을 했다.



신령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발을 앞으로 내딛으려 했다.


 


그러나 그 앞에는 가택신이 있었다.


가택신은 경고한 대로, 신령을 집 밖으로 멀리 튕겨내 버렸다.



신령은 멀리 떨어져 나가 담벼락에 머리가 쳐박혔다.


 


 


"이런 미친...! 아가씨?! 아씨!!! 괜찮으심까???"


 


 


경악한 구미호가 달려가 신령을 일으켰다.



신령의 몸은 멀쩡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이의 이름을 크게 소리쳐 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 안쪽에서만 먹먹하게 울릴 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저 계속 울기만 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구미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절부절했다.


가택신은 여전히 저 앞에서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식은 곧 끝났다.

기왓집 안에서는 새로운 한 쌍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