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때는 갑자기 찾아오지.


평소처럼 홍차를 타며 다과를 예쁘게 담은 접시를 들고서 주인의 방으로 간 키키는 우아한 행동가짐으로 주인을 모시던 중이었어.


늘 하던 대로 작업에 열중하실 수 있도록 필요한 것만 딱 하고 물러서는, 메이드로서의 올곧은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지.


마음에 든 남성에게 찾아가 고용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들이기에 당연히 이 키키도 주인을 사모하는 편이었어.


하지만 그녀들은 완벽한 메이드. 먼저 주인에게 함부로 다가서지 않고, 주인이 원할 때 언제든 받아들이고 내어줄 수 있는 수동적 복종 사상을 선망하기에 금단의 사랑을 꿈꾸며 애욕이 차오르는 것도 꿋꿋이 참아내었다.


'먼저 다가서지 않는다'라는 것은, 반대로 주인이 원한다면 거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주인이 보는 중 업무를 하면서 부주의한 척, 치맛자락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거나 옷매무새를 다듬는 척 가슴을 만지거나하는 등. 주인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순간을 연출한다.


십중팔구, 그녀들은 그러한 연기에 능통해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이나 비단, 그렇게 하더라도 눈치를 못 채는 둔감한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키키가 모시고 있는 주인 또한 그러한 부류였다. 상대의 감정파악에 능한 키키모라는 주인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단지 '일 잘하는 메이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일한지는 어언 6개월, 지금 즈음이면 슬슬 메이드와의 두근두근 이벤트를 참지못한 주인에게 덮쳐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터인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키키는 주눅이 들었다. 자신이 매력이 없는 걸까? 그리 생각하며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열심히 가꾸고 정돈해왔다. 주인께서 내 얼굴을 보실 때의 반응을 보아하면 아주 없지만은 않은 듯 했다.


그렇다면 시간만이 답이리라. 그녀들에게 시간에 대한 관념은 널널하다. 메이드로서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킬지어도, 마물로서는 얼마든지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때는 갑자기 찾아온다.



주인의 책상 위로 다과를 담은 접시를 내려놓을 때였다.


보통은 책상 너머로 내려서 내미는 식으로 건네주었을 테지만, 둔감한 주인 특성상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을 유도하는 것이 빠른 길이라고 판단한 키키는 일부러 책상을 빙 둘러, 주인 곁에서 상체를 숙이며 내려놓는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결실을 맺었는지, 요즘 주인은 키키모라를 의식하기 시작했으며, 감이 좋은 키키는 주인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이대로만 간다면, 꿈에 그리던 주인과의 금지된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그렇게 여겼다.



그러다 문득, 주인의 아랫도리에 시선이 갔다.


키키 자신 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레 눈길이 간 것이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바지에 위화감이 있다. 그 정도로 무심결하게 쳐다본, 단지 사소한 계기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로켓, 아니면 버섯. 무엇이든.


그녀 자신 조차 그것을 몇 초간 무심코 계속 쳐다보게 만들 무언가 마성의 마력이 담겨있었다.


처음으로 주인의 현물을 겉으로나마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맛있겠다.


키키는 눈치 채지 못했으나, 그것을 본 순간 그녀의 아래는 축축히 젖어갔다.


그녀가 잘 기억하던 사실이 하나, 발정기가 찾아와서 한동안 성욕을 억누르고 스스로 해결하는 등 주인의 방해가 되지 않게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한 일이 며칠이고 이어져서, 최근의 키키는 욕구불만이었다. 해소가 필요했다. 좀 더, 여러가지로.


그러다가.


눈 앞에 주인의 물건이 단단히 발기한 것을 보고.


자신의 안에 있던 팽팽히 당겨진 사슬이 끊어졌다.



" …키키? "


" …아. "


주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키키의 정신이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다. 어쩌다 이리 오래동안 쳐다봤지? 혹시 들켰나?


" 이건, 그, 오해야. "


들킨 것 같다.


주인이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보인다.


무언가 변명을 하시는데… 메이드로서 이런 주인의 실태는, 못 본 척 해주는 게 맞겠지?


" 당황하실 것 없어요. 이것은 당연한 생리현상이니까요. "


침착해지자. 냉정히 생각하면 이건 단순히 남성에게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자연현상.


나는 스윽 일어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문 까지 걸어갔다.


" 저희 키키모라족은 주인님께 수치를 드리지 않습니다. "


그렇다. 우리는 주인님에게 항상 수치스럽지 않게 완벽을 기하고,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조용히 뒤에서 조력하는 존재.


조용히 방을 나서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다.


" 주인님은 혈기왕성한 나이대이시므로, 남성으로서 건강하시다는 증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


문고리를 잡은 손을 돌린다. 돌린다.



돌리려다가, 잠근다.


어라? 내가 왜 이랬지.


순간적인 행동에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스윽 뒤돌아서 방 한가운데로 간다.


" 주인님은 멋진 남성이시므로, 자신의 건강함을 좀 더 뽐낼 수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


머리에 안개가 낀 것 처럼 흐릿하다. 사고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해야한다. 모래알 같은 사고회로를 모아, 그 위에 생각이란 깃발을 세워야한다.


주인님은 발기하셨다. 그것도 단단하게.


그렇게 훌륭한 물건이 훌륭히 발기하셨으니, 튼튼한 바지 속에 갇혀있는 것은 답답하고, 괴로울 것이다.


옷깃의 리본 넥타이를 푼다.


" 키…키키? "


" 주인님은 정말 멋진 분이세요. 제가 갑작스레 찾아와서 고용해달라고 한 것을, 별 말 없이 받아주셨으니요. "


그래, 주인님께선 좋은 분이시다. 메이드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배려심이 깊으시다.


메이드는 그런 주인에게 충성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보필해야 한다.


스커트 안 쪽으로 손을 뻗어 속옷을 집는다.


그렇다. 불편함. 지금 주인님께선 생리현상이라는 불편함을 겪고 계신다.


메이드의 본분은 봉사. 봉사라 함은 주인님이 할 일을 대신하는 것.


" 제가 주인님께 받은 은혜를, 지금 갚아야할 때… "


그렇다면, 주인님의 욕구불만을. 내가 해소해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입고있던 팬티를 천천히 내린다.



…어라, 그런데 이러면 내가 먼저 덮치는 꼴 아닌가?


무릎 위 지점까지 팬티를 내리다가, 급 손이 멈춘다.


핫, 허파에 바람이 들고 갑자기 머리 속에 안개가 개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 키키…? "


멍하니 있다 주인님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주인 께선 무척이나 당황스런 표정이셨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 앞에 있는 하녀를 어떻게 봐야할 지 몰라 고개를 돌렸음에도 흘끔흘끔 시선을 옮기고 있다.


지금 여기엔, 방 문을 잠그고 아랫 속살이 훤히 보이도록 팬티를 반 쯤 내린 채 주인을 덮치려는 변태 메이드가 하나.


상황은 보나마나였다.



" ――힉. "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넘어 해일처럼 밀려오는 부끄러움의 파도가 나를 덮친다.


콰―앙!!!


팬티를 확 끌어올리고 잠겨진 문짝을 부수어 쏜살같이 자리를 뜬다.


' 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 '


다다다 복도를 내달리며 스스로를 질책한다.


오늘의 일을, 주인님께선 평생 잊지 않으시겠지.


부끄러운 짓도 정도가 있지,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제아무리 고민해봐야 방금 전의 행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주인님이 나를 변태로 보고 경멸하진 않으시겠지…?


아무래도 오늘은, 잠들지 못할 것 같다.






" ………무슨 일이래. "


키키가 갑작스레 문을 잠그더니, 속옷을 내리다가, 얼굴이 붉어지곤, 문짝을 부수고 뛰쳐나갔다.


" 오늘 뭐 잘못 먹기라도 했나…? "


요즘 작업에 집중하느라 가사일을 전부 맡겼더니 피곤해진 모양이다. 나중에 휴가라도 줘야지.


" 그건 그렇고…… 안 들켰겠지? "


나는 책상 위에서 끄적이던 종이를 집어들었다.


< 고백멘트 목록 >


그것은, 언젠가 키키에게 할 프로포즈에 쓸 고백멘트를 정하려고 쓰던 글이었다.


" 키키가 이걸 먼저 봤다면 역시 좀 뻘줌하겠지? 하하, 왠지 키키라면 모른 척 해줄 거 같지만. "


그는 몰랐다. 키키가 본 것은 그 보다 아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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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발정기 때문에 주인 앞에서 속옷 내리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어서 부끄러워진 키키가 보고 싶다고만 하면 끝나는 것을!!

왜 3800자를 쓰게 되는지ㅣㅣㅣㅣ

키키 귀여워 키키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