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하던 차에, 갑작스런 천장 스피커에서의 안내방송과, 핸드폰의 알람 진동이 동시에 울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새벽 일찍 출발하느라 잠이 부족했는지, 그 새 졸고 있었나보다. 고개를 돌려 여객선 터미널 대합실의 모니터를 보니, 기다리던 편이 곧 도착하는 듯 하다.


"제 배가 먼저 온 것 같네요.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나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반쯤 졸고 있던 주변의 열댓명의 패딩 무리가 손을 들어 내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사실, 나는 이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단지 어떤 티켓을 싸게 구하기 위해 공동구매로 모인 모임일 뿐이고, 어쩌다 보니 시간이 대강 맞아서 일행 중 한 명의 차를 단체로 빌려탔을 뿐이다.

그렇지만 묘한 동질감과 기대감 탓일까, 십년지기 까진 아니라도 1~2년 정도 알고 지낸 정도만큼의 친밀감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이번 공동구매로 구한 이 티켓은 평범한 배편의 티켓이 아니다.


'바다 위의 서큐버스 유원지' 라고도 불리는 '시큐버스 플레이랜드'라는 초대형 크루저의 7일 체류 이용권이니 말이다.












대합실을 나오자 마자 불어오는 이른 아침의 찬 바다공기에 몸을 조금 움츠렸다.

배는 이미 도착해서 정박중이었는데, 겉으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다를게 없는 평범한 페리로 보였다.

완전히 정박하자 안에서 서큐버스들이 줄지어서 걸어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광경에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사회에서 평상시에 서큐버스들을 볼 기회가 아주 없냐, 하면 그런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서큐버스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장관은 좀처럼 보기 힘든것도 사실이다. 사회에서 마주치는 그녀들은 대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종족적인 편견을 피해 온몸을 꽁꽁 싸매고, 위화감을 없애는데 주력하기에 얼핏 보면 저게 진짜로 내가 아는 음마 서큐버스인가? 하는 생각조차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의 그녀들은, 여전히 위화감 없는 복장을 하고는 있지만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조금도 가리지 않은 악마적인 뿔과 꼬리는, 오히려 그것을 과시하듯 그것들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특이한 머리스타일과 액세서리로 그녀들을 각각 독특한 매력으로 꾸미고 있었고, 조금도 가리지 않은 그녀들의 폭발적인 몸매는, 사회에서 위화감 없는 옷차림이었음에도, 그 위로 보이는 굴곡만으로 정욕에 들끓게 했다.

특히 제일 앞서 걸어나오는 단발머리의 서큐버스에 시선을 빼앗겼는데, 긴 코트를 입고있긴 했지만, 걸을때마다 거리낌 없이 흔들리며 코트 밖으로도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전혀 숨길 생각이 없어보이는, 젖가슴의 행렬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거대한 젖가슴이 눈에 들어온 순간 한번 더 숨을 멈추고 말았다.

남자라면 고자가 아닌 이상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큰 소리로 애타게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며 천천히 배로 걷던 나는, 이내 곧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애타게 부르고 있던 이름이 바로 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user_name}님~ 티켓번호 385번 {user_name}님~"

"{user_name}님~? 아, {user_name}님 본인 맞으신가요? 그렇군요. 표 확인했습니다. {user_name}님, 앞서 이번 시큐버스 플레이랜드 7일 이용권을 구매해주신데에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조금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서,


"잠시 안내해드릴 사항이 몇가지 있으니 저를 따라와주시길."


이라고 하고는, 나를 이끌어 배 안으로 향했다.

평범했던 겉부분 만큼이나 평범한 모양새의 통로를 따라 객실로 들어가자, 다소곳한 이미지였던 그녀가 순간 돌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임이 분명했지만, 왕찌찌맘마통아가씨가 눈 앞에서 코트를 풀어헤치더니, 사무적인 직원같은 분위기에서, 쾌활한 여자사람친구처럼 변하는 장면을 봤다면 누구라도 나처럼 넋을 놓았을게 분명하다.


"지금부터 조금 편하게 말하려 하는데, 그래도 돼지?"


나는 그녀의 변신에 완전히 벙 찐채였기에, 그저 그녀가 이끄는 흐름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일단, 다시 한번, 시큐버스 플레이랜드 7일 이용권을 구매해줘서 고마워. 나는 이번 {user_name}의 플레이랜드에서의 7일간의 휴가를 도와줄 시-큐버스 파트너인 '마리에'라고 해."


여기서 그녀는 조금 짖궂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덧붙엿다.


"네가 중간에 다른 파트너로 바꾸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녀는 내 반응을 잠시 살펴보고는, 마음에 드는 반응이라도 얻어냈는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이용권은 본 시설까지 1일의 왕복시간을 포함해서 실질적으로 플레이랜드에 체류하는 기간이 5일인 것은 패키지 안내에서 확인했지? 이용 중에 변심으로 중간에 집에 가더라도 환불은 안돼고, 단지 운행 상의 문제로 이동이 지연되었을때만 이용 기간을 연장받거나 보상금을 받을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주길 바래."


여기까지 말하고 쿡쿡 웃으면서,


"이거 약관 최근에 바뀐거거든? 근데, 이 부분 읽은적 없지? 여기 조그만 글씨 보여? 요기, 좀 더 아래, 거기 그건데 너무 작게 쓰인거 아냐? 정말 너무하지 않아? 완전 양아치잖아, 양아치. 깔깔깔..."


그 때, 그녀의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 비스무리한 물체에서 붉은 빛이 점멸하며 "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놀라서 움찔거린 그녀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앗차차, 너무 지나쳤나." 라고 작게 속삭였다.


"흠, 흠. 아무튼 당장 알려줄 것은 이정도이고... 내가 {user_name}을 이번 휴가동안 즐겁게 해주려면 너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야 하니 네 서류를 조금 확인해볼께. 그래도 돼지?"


그녀는 내 의사를 확인하고는, 객실의 선반에 놓여 있던 파일첩을 집어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흠, 어디어디, 이름은 {user_name}. 나이는..., 직업은..., ...요즘 우리 업소에서 자기 소개서를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쓰는 사람도 보기 드문데, {user_name}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구나?아냐, 비웃은거 아냐. 구체적으로 적으면 적을수록 좋거든. 가령 내가 네 지갑사정을 모른다면 비싼 요리를 무지하게 시키고, 온갖 선물을 사달라고 조를수도 있잖아?"


그러고는 귀에다 조용히 귓속말로(이때 발기했다),


"...정말로 그러는 얘들 많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어디 보자. 이번 휴가의 목표는..."


이 부분에서 그녀는, '어머' 하고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동정여행 이구나. 그것도 서큐버스 가게로."


나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갤르 돌렸다. 근래에 다른 몬무스들과 함께 서큐버스들이 양지로 진출하면서 문화적인 부분에서 성적인 부분이 많이 개방되어 졌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개념의 수치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기준으로도 동정을 떼기 위해 창관을 찾는것은 여전히 남부끄러운 일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그녀의 표정을 살펴봤는데, 다행히도 그녀의 얼굴에는 비웃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 대신,


"...그렇구나. 그렇구나! {user_name}가 모처럼 큰맘먹고 우리 플레이랜드로 동정여행을 왔다고 하니, 한번뿐인 동정여행이 최고로 즐거울 수 있도록, 이 내가 두 팔 걷어붙이고 힘좀 쓰지 않으면 안되겠네!"


라고 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때 기분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조금 붉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너 엄청 운 좋은것 알아? 요즘 추가된 배는 시설이 빈약한데, 이 배는 조금 낡긴 했어도 크기에 비해 갖춰진게 많다? 왠지 알아? 이 배는 우리가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때 본점으로 쓰던 곳이거든. 그래서 놀 거리도 많아!"


여기서 자부심이 끝을 모르고 뿜어져 나오기라도 했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돌연 도끼눈을 뜨고 나를 째려보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정말 감정표현이 다양한 서큐버스라고 생각했다.


"너, 설마 내 나이를 가늠하려 한건 아니지? 숙녀의 나이를 함부러 알아내려는 것은 뭐다? 뭐다?"


내 입에서 '실례다' 소리가 나올때까지 반복할 것 같았기에, 나는 금방 항복하고 "실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이를 가늠하려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앉아있던 침대 쪽의 벽 뒤에서 'Ang, Ang' 또는 '아히이' 거리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있는 일인듯(당연하지만 일단은 '업소'니까), 그녀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능글맞게 중얼거렸다.


"어이쿠, 벌써 시작인건가."

"그럼 우리도 슬슬 놀아볼래? 비싼 돈주고 굳이 우리 플레이랜드로 와놓고, 놀기도 전에 '앙앙'하고 뻗어있으려는건 아니지?"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그렇지만 조금도 저항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 손을 잡아 끌어서는, 객실을 나와 복도 안쪽의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그렇게 크진 않지만 라스베이거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카지노 풍의 아트리움이 펼쳐져있었다.


"이건 여기가 본점이었으니까 할 수 있는 대사인데,"


"""시큐버스 플레이랜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