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어.


그 날은 특히나 일하고 나서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기에,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기껏 챙긴 우산을 써봤자 별반 다를 거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쓸까 말까 고민하던 그때, 톡톡 떨어지는 비를 맞는 네가 있었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지. 뭐하나 싶어가지고.


너는 거기서 30분이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멍하니 있더라.


그걸 또 30분이나 보던 나도 이상한 놈이긴 한데, 너도 만만찮았어.


그동안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거든.


바뀌는 표정 이래 봤자 대부분은 우는 얼굴이었지만.



뭐 슬픈 일이라도 있었겠거니― 그리 생각하고 있다가 슬슬 비가 거세지는 거 같아서 우산을 썼지.


자리를 뜨려고 주섬주섬 챙기는 동안에도 너는 그 자리에 서 있더라.


해도 어둑어둑 져가는 마당에 여자애가 그러고 있는 것도 영 찜찜해서, 말을 걸었어.



얘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그러다 감기 걸리겠다.


정말 상투적이고 투박한 말투였다고 생각해. 그땐 꼬실 생각도 없었거든.


옆에서 말을 걸리니까 그제서야 고개를 내리더라.


눈가는 조금 붉고 촉촉했는데, 눈물인지 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머리도 젖어서 완전 귀신 같았지.


아니 왜, 전신이 거무튀튀 했으니 솔직히 좀 무서웠다구.



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어.


아저씨도 제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될 지는 모르겠는데, 그 말만 들어도 얘가 실연을 했구나- 라는 건 알겠더라.


그래서 뭐라도 위로의 말을 건넬까 했다만, 너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고개를 숙이더라고.


아… 내가 바로 얘기하지 못해서 실망한 건가 하는 마음에 조금 당황했지.



근데 더 당황스러운 게 있더라. 니가 거기서 울기 시작한 거야.


이걸 어쩌냐, 내가 울린 것도 아닌데 내 앞에서 애가 울고 있으니. 경찰이 지나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누가 볼 세라 일단은 달래줘야겠다 싶어서 근처의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데려갔어.


기억나? 거기 다리 아래 하천가. 가끔 추억 삼아 들리곤 했잖아, 만남의 장소라고.



흐르는 냇물을 보니 좀 진정이 됐는가 우는 건 멈췄는데… 딱히 할 얘기가 없는 거야. 너도 말이 없질 않나.


그렇게 우린 또 30분을 거기에 있었지.


참 바보지 않냐? 모르는 사이인데 그러고 있는 게.



그러다가 네가 기어코 입을 열더라. 나쁜 놈… 그리 말하니까 궁금해졌지, 뭐 때문에 그러는 건가.


너는 말했어, 이별이란 건 원래 이렇게 아픈 거냐고.


나는 말했지, 아프다는 건 네가 사랑을 알아서라고.


무슨 말이냐고 묻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고서야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 했지.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네게 나는, 아까 물었던 너의 매력에 대해 얘기했지.


그때도 성심성의껏 답해준 거긴 하다만, 다시 한 번 짚어줄게.


솔직히 말할게. 너 예뻐. 나 같은 아저씨 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 그런지 덥다야.



아무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해주더라.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어.


그 어떤 미인 보다도 아름다운 건, 사랑에 빠진 여자라고.


그를 사랑하는 너는 그에 준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말했지.


그런 말을 들은 너는 눈을 꿈뻑거리면서 나보고 글 쓰냐고 묻는 거야.


난 그냥 노가다 뛰는 아재인데.


내가 어떻게 그리 술술 말할 수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좀 쪽 팔리네.


웃지마.



하여간, 비도 점점 거세지기도 해서 그만 가봐야겠다 싶어 툭툭 털고 일어났어.


네게 우산 살 돈 있냐고 물으니까, 없다고 하대.


어차피 난 이미 젖어있는 상태기도 하고, 쓰기도 귀찮아서 너 한테 줬지.


너는 괜찮다고 손사래쳤지만 들고가기도 피곤한 상태여서 그냥 거기 두고 가버렸어.


떠나기 전에 달리아의 꽃말을 알아보라는 말을 남기면서.






그 일 이후로 일자리 근처에 자꾸 서성이는 여자가 있더라고.


우산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비도 안 내리는 날에 웬 우산인가 했더니 내 거더라.


허리를 숙이면서 긴장된 말투로 우산 잘 썼다고 하는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었어.


혹시 그 애 언니가 대신 전해주러 온 건가 싶어 동생은 잘 지내냐 물었지.


엣? 아? 예?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 꽤나 재밌었어.


뒤늦게 내가 한 말을 이해하고는 아 네… 그, 그럼요- 하며 눈을 굴리는 것이 수상쩍긴 했어도, 난 우산만 받으면 됐으니까.



가볍게 인사하고 갈 길 가려니 나를 불러 세우고는 커피 한 잔 하자고 하더라.


난 커피 안 좋아한다 했지.


엣, 앗, 에? 또 당황하면서 허둥대는 너는 정말 웃겼어.


어떻게든 나랑 있을 건덕지를 찾는 꼴이 안쓰럽길래, 스무디가 마시고 싶다 했고.


그제서야 너는 해맑게 웃으면서 자기가 한 턱 낼 테니 카페로 가자는 거야.


어지간히 사례가 하고 싶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따라갔다.



시원한 스무디를 마시면서 하는 대화는 즐겁더라, 내가 좋아하는 취미며 취향이 같았거든.


마치 완벽한 이상형인 것 같았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게 좋지 않냐고? 글쎄….


왠지 그때 네 생각이 나더라.



적당히 얘기도 나눴겠다 이제 가보겠다며 일어서니 연락처를 주지 뭐야.


받기는 받았는데 연락한 적은 없다.


알잖아, 내가 먼저 뭔가를 하는 사람 아니란 거.


결국 너는 매일 같이 일자리에서 내가 퇴근할 때 까지 기다렸지.


너도 참 지극정성이다.



아무리 나라도 미인이 이렇게 까지 해주는데 거절하기도 뭐하고 해서 몇 번 데이트도 했다마는.


그럴 수록 네 생각만 나더라.


간간히 네 안부를 물어봐도, 얼굴만 붉히고 말은 안 하는 게 사이가 나쁜건가 싶었다.


단지 잠깐 본 사이일 뿐인데 신경쓰는 나도 참 이상하지 않아?


그래도 보통 감사인사를 할 거면 본인이 올 텐데 다른 사람이 왔다는 게 난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왜 이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친절한가라는 점도.



한 번은 너와 무슨 사이냐고 물었어. 너는 당황하며 어째서 묻느냐 했지.


그러게. 왜 물었지.


아, 친구인지 언니인지 모를 사람이 자기 얘기나 네 얘기는 일절 안 하니까.


안 할 수도 있지만 내 취향은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취향이라던가 그런 말은 안 꺼내더라.


뭔가… 나 한테 맞춰주려는 것 처럼.



실은,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느껴졌어. 얘는 가면을 쓰고 나를 속이고 있다고.


그게 좋은 의도로 그랬다는 건 알아.


단지… 마음에 안 들었을 뿐.


우, 울지마. 싫었다는 게 아니라 아쉬웠다는 거지.


난 서로 알아가는 것이 연인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 내가 알고 싶던 건 너야.


아니, 울지 말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사라졌지.


처음 만난 날 이후로 한시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하던 네가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날이.


그나저나, 그 날 처럼 비가 내리네.


그때도 넌 이렇게 비를 맞고 있었고, 나는 널 바라보고 있고 말야.



그러고보니 그거 기억해? 달리아의 꽃말.


맞아, '당신의 사랑이 나를 아름답게 해요.'


내가 말했지. 사랑하는 여자는 아름답다고.


정확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


너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여자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늘에서 나와.


손, 잡아줘?




근데 나 사실 너 변장하고 있다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랑 만날 때마다 그걸 몸에 달고 오는데 눈치 못 채겠냐 바보야.


나 같은 아저씨가 뭐가 좋다고.



아야, 발 밟지 마. 아퍼.




" ……아저씨. "


왜?


" 아까 그 말… 다시 해줘요. "


어… 나 같은 아저씨?



" 그거 말구요. "


……….



…사랑하는 여자는 예뻐.


" 그리고요? "


아, 몰라.


" 아저씨…. "


아, 알았어. 울지 마.



한 번만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달리아 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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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플갱어 싶다글 쓰고 짤 올린 거 보면서 아 써야지 하고 썼던 글.

독백형식의 문체를 썼던 남의 글 보고 첫시도 해봤다.

아 부끄러워서 내 손 퇴행한다아아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