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야야. "

" 하지 마라. "

" 야ㅋㅋㅋ 야야ㅋㅋㅋㅋ "

" 아 하지 말라고 시벌 새끼가 진짜. "

가녀린 팔로 툭툭 치는 부랄친구를 보며 옆에서 계속 쪼갠다.

이 놈은 맨날 여자가 되서 따먹히고 싶다는 소리만 하던 놈인데, 진짜로 오늘 여자가 되어서 왔다.

자기도 예상치 못해서 당황스러워 하는 게 웃겨서 계속 놀리고 있는 중이다.


" 여자가 된 소감이 어떠냐. "

" 씨발… 내 쥬지가…. "

" 있었는데요? "

" 나 슬프게 자꾸 그런 소리 할래? "

부랄친구여서 드립도 서로 잘 알고 주고 받는 편인데 역시 지금은 받아주기 힘든가 보다.

내 알 바야. 이 재밌는 순간을 놀리지 않을 수가 있나.


" 어디 ――이 부랄 잘 달려있나 볼까~ "

" 이 씨발놈아!! 만지지 마라…. "

그냥저냥이던 이전 외모에서 귀여워진 얼굴로 울상을 지으니까 놀리는 맛이 더 잘 산다.

그래도 갑자기 지 꼬추가 사라졌다는데 그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놀리는 거지만.


" 뭐… 아무튼 옷은 어쩔 거냐? 당분간 입을 건 있어야지 않겠냐. "

" 옷? 엄마 걸로 입으면 되지 않을까. "

" 진짜냐? 엄마 옷을 입을 수 있다고? "

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부랄친구.

내 친구 새끼라지만 정말 멍청한 거 같다.


" 역시 사긴 해야겠다. "

" 그래. 일단 간단하게라도 차려 입어라. "

" 니가 사오면 안 되냐. "

" 치수를 어떻게 알고. "

아. 또다시 멍청한 소리를 내는 친구. 대책 없는 것도 유분수지.

지금 친구 놈은 후줄근한 티셔츠에 헐렁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다.

침대에 걸터 앉은 걸 내려다보는 형태라서 목 부분 사이로 보이는 골짜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둔한 자식이라 내가 보는 걸 눈치 채지도 못한 것 같지만, 애초에 꼬추였던 놈의 가슴인데 시발 왜 처다보게 되지.

남자라는 생물은 역시 본능에 잠식되는 건가.


" 입으라고 해도… 맞는 옷이 없는데? "

" 어릴 때 입었던 옷 같은 것도 없냐? "

" 그런 게 남아있겠… 아. "

" 그냥 해본 말인데 진짜 있나보네. "

엉, 잠시만. 하고서 옷장 구석을 뒤적거리는 친구. 옷들이 여기저기 휘날리면서 겨우 꺼낸 옷은――


" ……초딩 때 옷이 왜 있어. "

" 글쎄다…? 엄마가 추억이라고 남기긴 했는데. "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입어야지 뭐. 라며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하는데―…

" 아니 갈아입을 거면 적어도 얘기는 하던가. "

" 왜? 꼬추 끼리 무슨…. "

뒤늦게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가 깨달았는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파삭- 몸을 가리는 친구.

" 너 시발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냐 씹 변태 새끼야! "

하이톤으로 빼액 소리지른다. 아이고 귀청이야.


" 하이고 지랄… 니 새끼 남자인 거 아는데. "

" 아무튼 나가! "

예이~ 방을 나가고서 잠시 뒤에 들어오라는 말에 방문을 열었다.

" 어엌ㅋㅋㅋㅋㅋㅋ "

" 웃지 마 시발…. "

친구는 그 작은 옷을 억지로 입겠다고 쑤셔넣었다가 가슴이 꽉 눌린 채 배꼽이 보이는 배꼽 티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 가슴은 또… 아니 왜 자꾸 눈이 가냐고.

바지는… 음, 벗어던진 모습을 보아하니 엉덩이가 걸려서 포기했나 보다.

결국 바지는 그나마 1년 전에 버려야지 하고서 구석에 내버려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가 그걸 왜 기억하는 건지.


" 그 옷 입고 나갈 거냐? "

" 맞는 옷이 없는데 어째. "

" 아니 그게 아니고…. "

그럼 뭐. 라는 친구놈에게 이걸 말해야 하나,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 너 꼭지 보인다. "

" 헉? "

자기 가슴을 내려다 보는 친구. 옷이 안 맞아서 가슴이 꽉 눌리는 바람에, 노 브라 상태인 이 녀석의 꼭지가 유감없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나 꼭지는 옷에 스치면서 쓸리기만 해도 서는 거라… 정말로 빨딱 솟아있다.


" 으아아아아―――!!! "

한동안 정신차리지 못하고 가슴을 가리며 나를 방에서 쫓아낸 그 녀석이 겨우 진정하면서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 일단 속옷을 먼저 사야겠네. "

" 이러고 못 나가…. "

" 그냥 잠바 하나 입어서 가리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쓰냐. "

" 어 그러네. "

에휴 븅신. 이 친구쉑을 몇 년이나 데리고 다닌 내가 용하다.


그렇게 친구를 옷가게로 끌고 가 속옷 매장으로 돌격했다.

사실 나도 들어가는 건 존나 쪽팔리긴 한데, 일단 이 놈은 겉보기엔 여자니까 수상하진 않을 거고, 뭣보다 마네킹이 속옷 입고 있는 걸 빤히 처다볼 기회가 지금 뿐이라 용기를 낸 것도 있다.

" 어서오세요~ 어떤 종류 찾으세요? "

" 조, 종류? "

내 쪽을 돌아보면서 도와달라는 표정을 짓는 친구. 아니 나한테 물어도….

" 어… 일단 사이즈 부터 재 주세요. "

" 사이즈요? "

본인도 아니고 아마도 남친으로 취급될 내가 사이즈를 재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점원이, 구태여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그(녀)를 데려갔다.

사이즈를 재는 사이에 벗어달라는 요구에 히에엑 거리는 아옹다옹한 장면이 펼쳐진 것은 꽤나 장관이었다.


" 네, B컵이네요. "

생각 보다 사이즈가 좀 된다 싶더라니.

" B, B컵 브라… 주세요. "

" B 사이즈는 웬만하면 있으니까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주세요. "

" 고, 골라!? "

그럼 아무거나 주겠냐 점원이. 안 그래도 허둥댈 거 같아서 미리 봐둔 디자인을 가져왔다.


" 이거 있습니까? "

" 네, 있습니다. "

창고로 가서 물건을 가져오는 동안 친구에게 아래 거는 어쩔 거냐고 물었다.

그냥 스판 입으면 안 되냐고 해서, 맘대로 하라 했다. 참고로 얘 한테 스판 추천한 것은 나다.

잠시 후에 맞는 사이즈를 들고 온 점원이 착용해보라고 권해왔다.

그러더니 친구놈은 브라를 착용할 줄 몰라서, 나 보고 입혀달라고 탈의실로 끌고 왔다.

그런 우리를 쳐다보는 점원의 눈빛이 어머머 거리고 있었으나, 나는 이젠 다 내려놓았다.


" 부탁해…. "

의기소침하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볼을 빨갛게 물들인다. 으 징그럽게.

" 일단 뒤돌아 봐. "

" 응…. "

친구가 뒤돌자 나는 옷의 아래부분을 잡고 들어올렸다.

팔을 위로 올려서 하얀 속살이 드러난 친구가 거울에 비친 자기 알몸을 보고 가슴을 샥 가린다.


" 가리면 못 입히는데. "

" 크윽…. "

내가 등을 두들기며 재촉하자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얹은 손을 풀며 스윽- 봉긋한 유방을 드러내었다.

갓 여물기 시작한 봉긋한 가슴은 이 녀석의 평평했던 그 빨래판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어여쁜 구형의 윤곽을 하고 있었다.


" ……뭐해? "

아.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눈을 흘기며 브래지어를 들었다.

이 녀석이 살짝 도끼눈을 뜨는 듯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흉부에 가져다 대어 위치를 잡고, 밑가슴 부터 눌러서 들어올린다.

" 으응―…. "

" 이상한 소리 내지 마라. "

거울을 통해 심통한 표정을 짓는 친구. 오리주둥이를 내는 버릇은 없었는데.


" 들고 있어. "

내 말에 따라 자기 가슴을 드는 것을 보고 브래지어의 가로 끈을 잡아 당겨서 고리를 걸었다.

" 갑갑해? "

" 응? 아, 아니. "

고리는 중단 고리가 적당하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세로 측 끈을 어깨 너머로 당겨서 고리에 걸면 끝.

" 너 왜 이렇게 능숙하냐? "

설마 몰래 여친 만나기라도 했나, 라면서 수상쩍은 표정으로 바라보길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 엄마가 등 가렵다고 머리카락 빼주다가. "

" 흐응~ "

" 나한테 여친이 있을라고. "

" 하긴, 니랑 사귈 애가 존재 할까. "

이 새끼가?


" 다 됐으니 옷 입고 나와. "

" …야. "

" 엉? 왜. "

갑자기 불러서 돌아보니, 한쪽 팔로 반대쪽 팔을 붙잡은 채 가슴을 살짝 들어보였다.

" ……어때? "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내리깔고 얼굴은 붉게 물들였으나. 가슴은 용기있게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 ――――. "

나는 그저 조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런 친구의 모습을 멍하니 처다보았다.

얘는 그럴 놈이 아닌데.

아니지, 평소에 여자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자식이니, 오히려 이러는 게 당연한 건가?


" 별로…야? "

답이 없는 것이 불안했는지 눈을 치켜 뜨면서 내 눈을 마주 본다.

동공이 흔들린다. 걔도. 나도.

무슨 말을 해야하지? 평소처럼 놀려야 하나? 격려? 칭찬?

그 무엇도 나는 입에 담을 수 없었다.

" …미안. 괜한 거 물어서. "

" 아, 아니. "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려는 것을 보고 먼저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오자 나도 모르게 머리에 피가 쏠렸는지 더워서 손 부채질을 한다.

어쩐지 점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어서 모르는 척 등을 돌려 나오기를 기다렸다.

" 감사합니다. 또 들러주세요. "

거북한 마음에 도망치듯이 계산을 마치고 친구와 같이 자리를 뜬다.


이후 옷 가게에서는 아까의 분위기도 잊고서 여자의 패션을 심도 깊게 연구하며 옷들을 골랐다.

여자의 옷을 입게 되어서 신난 그 녀석과, 인형옷을 갈아입히는 기분이라 나름 재미를 붙인 내가 있었다.

중간중간 그 녀석이 거북해 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옆모습을 보아도 크게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길래 나 또한 굳이 티 내지는 않았다.

신경쓰이는 게 있으면, 주저없이 말하고 치고받는 싸움을 하는 것이 우리였는데.

하늘하늘하게 팔랑 거리는 옷을 고르는 친구의 해맑은 얼굴은, 내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그 미소가―― 이상하게 계속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하~ 즐거웠다. "

" 좋았냐. "

"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

피식, 코웃음을 흘리자 친구놈은 볼을 부풀리며 뾰루퉁하게 도끼눈을 뜬다.

" 이 새끼 여자 됐다고 귀척 떠는 거 봐라. "

" 아 좀. 지금은 즐기게 냅둬. "

양 손에 한가득 옷가방을 짊어진 채 서로 주먹을 주고 받는다.

얘가 남자였을 때는 팔뚝도 아프게 때렸는데, 가냘픈 팔은 아무래도 세게 칠 수는 없었다.

걔도 톡 톡 하는 힘조절 하는 느낌으로 치는 것이 나름의 배려 같았다.


" 내일 애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 "

" 적어도 니가 귀척하는 건 아무도 안 받아줄 걸. "

" 그건 그렇겠지. "

아무래도 좋다는 듯 팔을 붕붕 돌려가며 기쁨을 만끽한다.

" 그렇게 좋냐? "

" 당근 빳다죠 쒸이발. 끝내준다야. "

" …―남자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해도? "

멈칫.

방금 까지만 해도 신나서 힘차게 돌리던 팔도, 팔랑거리며 휘날리던 치마도, 기운을 잃은 듯이 추욱 늘어진다.


" …그거 말인데. "

앞서가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아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들리는 어조로는 무언가 꾹 눌러 담은 듯 무거운 목소리였다.

" 꼭 돌아가야 할까? "

" 뭐? "

" 남자여도 좋은데, 나 말이지… 항상 고민했었어. "

뭐를? 이라고 물으려다가 망설인다. 이럴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다.


" 나는 남자인 걸까 하고.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하고. "

슥- 고개를 들어 땅거미 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노을에 비친 친구의 뒷모습이, 어두운 그늘보다도 더 어두워 보였다.

" …그랬었냐. "

나는. 이 녀석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으면서 이 녀석의 마음은 잘 몰랐다.

변덕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한 번 꽂힌 건 끝까지 파고든다는 것 말고는.


지금 이 고민을 들어주는 게 친구로서 당연하다고 보지만, 얘가 말하는 고민은 느껴지는 무게가 다르다.

나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지내왔으니까. 이러한 것은 잘 모른다.

" 후회는 없어? "

" 후회는… 없어. "

고추가 없는 건 좀 미련이 남으려나- 같은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걸 보아하니 아주 없지만은 않은 듯하다.


" 너는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어? "

" 엉? "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뒤도는 친구. 내게 질문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 글쎄다… 여태껏 부랄친구로 지내왔는데. 남자인 쪽이 익숙하지 않겠냐. "

" 그래…. "

눈을 내리깔며 무언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남자? 여자?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급작스럽다.


" 니가 남자건 여자건.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은 단순했다. 어차피 너는 내 친구다. 부랄친구가 괜히 부랄친구겠냐, 남자에서 여자가 되었다고 싫어할 일은 없다고 답했다.

"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 "

걔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다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집 까지 배웅해주고나서 그제서야 내 집에 들어갔다.

침대에 털썩 눕고는 친구 녀석의 고민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이상하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빠르다 싶더니, 애초에 여자가 되고 싶었다고.






다음날 아침, 학교로 간 친구는 역시 반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여자가 되어서 온 남자라는 건… 별로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친했던 친구들도 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심지어 여자들은 벌레를 쳐다보듯 경멸스런 눈빛으로 쏘아봤다.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가 문제였다.

여자가 되어서 여자들과 갈아입어야할지, 남자들과 입어야할지였다.

여자들은 혐오스럽다며 전원이 거절했다. 남자들은 벗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결국 나는 더는 볼 수 없다 생각해 보건실로 데려갔다.


" 오늘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빠진다고 해. "

" …미안. "

" 니가 사과를 왜 해. "

움츠러든 어깨, 잠긴 목소리. 충격이 조금 컸던 모양이다.

반에서 인기인이 되는 것은 만화에서나 일어날 이야기다. 그거는 얘가 제일 잘 알 텐데.

답답한 마음에 나도 얘를 노려보려다가―… 슬픈 눈망울이 빛에 반사되는 것을 보고 맥이 풀린다.

학교가 마칠 때 즈음에는, 이 녀석의 책상에 '창녀', '게이' 등의 욕들이 쓰여있었다.

유성 매직으로 쓰여서 보건실에 알코올을 빌려와 지웠다.

쓴 녀석들은, 언제 잡히면 코를 분질러 버릴 것이다.


………
……


" 미안해, 나 때문에. "

" 그러니까 사과하지 말래도. "

하교하는 길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사과하는 친구.

묘하게 웬만한 일에도 대수롭지 않게 털털한 느낌으로 대하던 녀석이, 이러고 있으니 짜증이 난다.

" 그래도…. "

" 야. "

결국 참다 못해 터지고 만다.


" 너 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언제 까지 그럴 셈이야? "

" 어? "

" 어릴 때 부터 너 데리고 사고 치면 뒷수습은 내가 해왔는데 신경이나 쓸 거 같아? "

" 아, 아니 그게…. "

감정이 격해지면서, 점점 말투가 험악해진다.


" 항상 그랬지 넌. 사고치고 내가 뒷정리할 때나 사과하고. 사고를 쳤으면 반성을 해야하는데 말야. "

" ………. "

그래서는 안 되는데. 얘는 잘못이 없는데. 입이 거침이 없다.

" 고민이 있다면 말이라도 하지 느닷없이 변해오질 않나. 이번에 옷 사면서 나간 옷값은 어떻고. "

걔 혼자서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내가 반절을 부담했었다.

어차피 용돈은 가끔씩 간식 사먹는 정도여서 굳이 상관없는 것을.


" 부탁이니까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지 마. "

못을 박았다. 그 말은 분명히 친구의 가슴에도 박혔겠지.

" ……응. "

울먹이는 소리.

더는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뒤돌아서 먼저 귀가한다.

멀어져가는 내 모습에 손을 뻗으려다가, 머뭇거리며 손을 거두는 친구의 모습을. 나는 볼 수 없었다.



………
……



" 야. "

" …? "

" 너 게이냐? 아니지, 지금은 창녀 새낀가? "

낄낄거리며 다가오는 한 무리. 학교의 양아치들이었다.

" 시비 털지 말고 꺼져라. "

" 오~ 꼴에 존심은 있어가지고. "

탈색을 해서 누렇게 변한 머리, 태닝샵에서 태운 듯한 피부.

전형적인 양아치의 표본이자 뇌가 아파 보이는 껄떡쇠들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 아구창 날려지기 싫으면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

" 지-랄ㅋㅋ 어디 한 번 해보던가. "

빠-악!

턱을 날렸다. 키가 작아서 어퍼컷 형태가 되었지만, 선빵인 만큼 아프겠지.

" 이 씨발… 더럽게 아프네. "

아. 몸이 변해서 힘이 약해졌구나. 원래 같았으면 한 방에 보내는 건데.


뻐-억!

" 컥! "

" 이 씹년이 진짜. "

배를 맞았다. 여자가 되어서인지 또 하나의 장기가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야, 얘 잡아. 라는 명령을 따라 양아치들이 내 몸을 결박한다.


" 이거 놔! "

" 또 얻어맞고 싶냐? "

" 큭…. "

아픈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팔도 붙잡힌 상태에서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나를 끌고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간다.

드르륵- 커터칼이 날을 내빼는 소리.

" 무슨… "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말을 잇기도 전에 옷을 주욱 찢어발긴다.

아, 걔가 사준 옷이….


" 이야~ 이 새끼 봐라. 여자 됐다고 벌써 브라찼네. "

" 남자 가슴 보고 흥분되냐 변태 새끼야. "

" 거 아가리 존나 시끄럽네. "

짜악- 양아치가 내 뺨을 후려갈겼다.

" ………. "

" 어딜 눈을 부릅 뜨고 앉았어? 이게 뒤질라고. "

역겨움을 담아 경멸의 시선을 보내자 양아치는 계속해서 내 뺨을 후려친다.


얻어맞는 거에 지친 나는 고개를 떨궜다.

이제는 피곤했다.

" 야, 나머지도 벗겨. "

커터칼이 옷 여기저기에 들이대져서 갈가리 찢어진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 올- 벗기니까 좀 봐줄만 하네. "

결국 넝마가 된 옷 쪼가리만 걸친 나는 거의 알몸 상태가 되었다.

반쯤 체념한 상태긴 해도, 이래서야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바닥에 흩어진 옷 조각들을 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어? 야 얘 운다ㅋㅋㅋ 우냐? 울어? 남자 새끼가. "

스윽- 양아치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 울지마… 그러면 더 따먹고 싶으니까. "

" ……! ! "

지금, 뭐라고?

그가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 하, 하지 마…!! "

" 와 존꼴. 역시 이런 말이 나와야지. "

지저분하게 발기한 물건을 손으로 비비면서 내 고간에 들이민다.

발로 불알을 걷어차려 했으나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막고는 두 다리마저 들어올려졌다.


" 스스로 다리 벌려주니까 좋네. 사실은 이렇게 따먹히고 싶었던 거 아냐? "

그 놈의 물건이 점점 다가온다.

" 시… 싫어! 그만 둬! "

" 아이 씨, 뭐하냐 새끼들아. 다리 안 잡고. "

다리를 흔들며 저항해서 중심이 흐트러지자 양 옆의 양아치들이 다리를 잡아당겨, 활짝 벌어졌다.


" 자- 그럼 들어갑니다잉~ "

" 싫어어―!!! "

그 자식의 더러운 물건이, 내 그곳 까지 닿았다.

소름이 끼친다.

이럴 거면, 적어도……!


그때였다.

터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양아치의 머리가 벽에 박힌 것은.

" 커억…! "

갑작스레 당하는 바람에 당황하는 양아치들의 코들이 하나 둘 씩 뭉개지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씨발! "

" ――아. "

" 미안. 내가 좀 늦었다. "

분노가 가득찬 얼굴.

나랑 싸울 때도 그런 얼굴은 안 했는데.

내 친구의 얼굴이,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무서우면서도 듬직해보였다.


" 내가 안 그래도 오늘 기분이 안 좋았거든. "

목과 어깨를 풀면서 자세를 잡는 그 녀석.

" 뭐라는 거냐 십새끼가. 다구리 까! "

양아치들은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보통은 다 대 일은 위험하기 마련인데, 나는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다.

" 니들 오체 만족하고 돌아갈 생각은 마라. "

왜냐면 내 친구는―… 프로 격투 지망생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별 거 없었다.

들어오는 순서대로 턱이 날려지고, 못 이긴다는 걸 알아서 도망간 둘 빼고는 죄다 바닥에 드러누워있다.

그리고 그 드러누운 애들은 하나같이 코가 깨져서 코를 부여잡고 한 손은 걷어 차인 불알을 가리고 있었다.

" 일어설 수 있냐. "

" 아, 응…. "

친구가 내밀어 준 손을 잡고 일어서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진다.

포옥. 넘어지려는 나를 받아주는 친구.


" 애가 아주 그냥 깔대 인형이 됐네. "

" 아하하…. "

머쓱해서 그저 웃었다.

그러다 문득. 신경쓰이는 점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왔어? "

" 그야 집에만 처박혀 살던 니가 전화도 없이 집에 안 들어왔다길래. "

" 아차. "

휴대폰 울리는 게 귀찮아서 무음모드로 하고 살았더니.


" 우선은 옷 부터 어찌 해야겠네. "

그렇게 말하고는 친구가 상의를 벗었다.

" 아…. "

외투와 티셔츠까지 벗은 친구의 몸은 상당히 다부진 근육이 보였다.

남자일 때는 크게 신경쓰진 않았는데.

그… 복근이… 응.

좋네.


" …? 뭐하냐. 옷 입어. "

" 앗, 으응. "

건네주는 티를 입었다. 헐렁하다.

친구에게서 건네받은 외투로 아래를 감쌌다. 바지가 찢어져서 훤히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

뒤는 어떻게 가리지 하다가 친구가 나를 보고는 외투를 뒤로 가게 돌렸다.

그리고 내 앞에서 등을 돌린 채 무릎 꿇고 앉았다.


" 업혀. "

" 어? ……어어? "

" 가릴라면 이거 밖에 없어. 옷 사러 가기엔 돈도 없고. "

얘네 일어나기 전에 뜨자. 나를 재촉하는 말에 엉거주춤 친구의 등에 업힌다.

무게가 실리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내 허벅지를 잡고 번쩍 일어선다.

" …이 나이 되어서 어부바를 당할 줄이야. "

" 내가 할 말이다. "


인파를 피해 되도록 사람이 덜 지나가는 장소를 거쳐서 집 까지 간다.

위쪽이 반라인 친구가 나를 업고 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치로 봤지만, 등에 업힌 내 꼴을 보고 어느정도 이해한 듯 금세 관심을 끊는다.

그 사이에 친구의 등은 땀으로 젖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 …나 안 무거워? "

" 더럽게 무겁다. "

" 내일 치킨 사줄 테니까 힘내. "

" 오냐. "

치킨이 좋은 건지 우리만의 농담이 재밌는 건지 친구는 킥 웃으며 힘차게 걸었다.


등에 업힌 상태에서 보이는 친구의 옆 모습은… 묘하게 심장이 뛴다.

아니,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등에 몸을 밀착시켰다.

오늘따라 친구의 등이 넓은 것 같다.



………
……



아무리 운동을 한다지만 사람 하나를 등에 매고 집 까지 걷는 건 힘들다.

늦은 밤 동안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그 새끼들 한테 덮쳐질 뻔하기나 하고.

이 놈은 역시 내가 없으면 어디 가서 살 수는 있을까.

내가 걱정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지.


그것 보다 얘가 등에 몸을 밀착시켜서 눌리는 부분이 자꾸만 신경쓰인다.

알맹이는 부랄친구인데 말야.

게다가 얘 평소 하던 행동도 묘하게 여자다워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여자로 살 생각인가.


서로 아무 말 없이 이렇게 있는 것도 심심해서 무언가 얘기할 거리라도 없나 머리를 굴린다.

" 아. "

" 응? "

" 갑자기 떠오른 게 있는데. "

친구가 맨날 여자가 되서 따먹히고 싶다는 이상한 소릴 당당히 해대던 중에, 뭐가 그리 좋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충 만화처럼 여자가 되면 행복할 거 같다는 얘기였지만, 중요한 점은 왜 남자에게 박히고 싶느냐였다.

똥꼬충이냐고 했더니 아, 아니거든― 이러면서 시선을 피했다.

싸늘하게 쳐다보다가 한숨 쉬고 그 화제는 대충 넘겼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나 보다.


또 한 번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남자 거시기를 빨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걔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모르겠다고 답했다.

' 따먹히는 건 되는데 그건 안 되는 건 뭐야. '

' 뭔가 당하는 건 체념하는 느낌이라 그러려니 넘길 수 있는데, 스스로 하는 건 쪽 팔려. '

' 줏대 없는 게이쉑. '

' 아 아니라고~ '


한동안 그 녀석을 놀리다가, 그 자식이 악에 받쳤는지 이상한 소리를 했다.

' 너는 시발 내가 여자 되면 제일 먼저 너 따먹는다. '

' 징그러운 개쌉소리 하지 마라 미친 새끼야. 어오 이딴 게 내 친구라고. '

그 후로도 가끔씩 부랄친구 뭐뭐 하기 VS 친구부랄 뭐뭐 하기 같은 게 인터넷에 올라오면 그걸로 또 싸우기도 했다.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농담 삼아 하는 얘기였다.


" 그래서 여자 되면 제일 먼저 할 거라며. "

" 아… 그건…. "

" 그때도 넌 참 이상한 새끼긴 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한 새끼야 정말. "

" 뭔 개소리야 갑자기. "

화제 전환이 너무 빠른 나머지 대화의 갈피를 못 잡는다.


" 여자가 되서 따먹히고 싶다질 않나, 정작 여자 되니까 따먹히기 싫다질 않나. "

" ………. "

" 아, 미안. "

아무리 그래도 강간당할 뻔 한 놈에게 이런 말은 좀 심했나.

" 아니… 거짓말은 아니야. "

" 그래? "

거 참 이상한 취향일세― 하고 넘겼다.

친구는 뒤에서 으으… 거리다 조용해졌다.


" 내일 주말이지. "

" 어, 토요일. "

느닷없이 꺼낸 말에 즉답했다. 얘는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는 게 일상이라 익숙해졌다.

친구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내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 …내일 내 방으로 와. "

멈칫.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낀다.


" …안 가면? "

" 뒤질 줄 알어. "

하… 하하…. 어색한 웃음만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얘는 작정했다고.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친구는 내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프진 않다.

단지, 살짝 떨리고 있을 뿐.


" ……갈게. "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겨우 입에서 내뱉었다.

정말 이게 맞나? 우린 부랄친구 사이인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 …기다릴게. "

그저, 저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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