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믹. 그것은 던전 속 보물상자나 벽에 기생해 보물을 탐하려든 모험가를 집어 삼키는 마물.

부정형의 어둠속성 마물이지만, 생명체인 이상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미믹은 특성상 오래동안 제자리를 지켜야 해서 필요한 경우에만 신진대사가 활성화되는 식이라,

가만히만 있는다면 장기간 먹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는 있는 편이다.


그러나 생태계란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르는 것. 모험가들은 점점 발전하여 상자나 벽을 한 번씩,

메이스로 후려갈기거나 신성기적을 쏘거나 색적 마법을 쓰거나 폭탄을 쓰는 등 파훼하기 시작한다.


갈수록 살아남는 미믹의 개체수가 줄고, 모험가를 잡아먹는 미믹 보다 연구대상으로 포획되었거나

관상용으로서 소형의 개체가 잡혀가는 등 호전적인 미믹 보단 조련 가능하고 무해한 미믹만이

선택적 생존유지에 성공한다.


늑대에서 개로 넘어가듯, 이러한 미믹들이 살아남아 현재는.

금고 마냥 물건을 안전히 보관해주는 요정 같은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 …그래서 이렇게 내 서랍에 자리 잡았다고? "


나는 긴 긴 마물역사를 들은 끝에 내린 결론은, 웬 놈이 내 서랍 한 칸을 차지했다는 불쾌함이었다.



" 놀라지 마시라! 잠금 장치가 없어도 물건을 안전히 보관해주는

  유일한 생체형 안전금고, 미믹쨩이 여기에 왔단 말씀! "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거멓게 물든 공간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채 없는 가슴을 뽐내며,

자랑스레 자신을 소개하는 지금은 요정이라 칭하지만 본래는 마물인 미믹이란 존재.


" 나는 애완동물 안 키워. "

" 애완동물 아니라니까요? 미믹이에요 미믹! 요즘 얼마나 핫한데! "

" 핫하고 나발이고, 내 물건 꺼내야 하니까 나와. "

" 으아앗! 잠깐, 잠깐…! "


덜컹덜컹,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한 불청객을 쫓아내기 위해 서랍을 들어내려 한다.

제길. 뭐가 이리 무거워?


" 아무리 급하시다지만, 마음의 준비라는 게 있잖아요…! 벌써 부터 그렇고 그런 걸…

  정 하셔야만 한다면… 상냥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 하긴 뭘 해 미친년아. 빨리 나오라고. "

" 가아아악! 허리! 내 허리가아아!! "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정신나간 마물을 끄집어내려 해도,

강력 접착제로 붙인 것 마냥 떨어지질 않아 도로 내려놓았다.


" 하아… 하아… 첫 날 부터 이런 허리가 빠질 정도의 격렬한 플레이라니…

  저는 굉장한 분의 집에 오고야 만 것일까요…. "

" 아 제발 닥쳐. "


어째 하는 말투가 야시꾸리한데, 미믹이 아니라 음마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도…


" 하필이면 다른 서랍 놔두고 여기냐고…. "


중요한 물건 넣어두는 곳을, 이 괴상한 녀석이 차지한 바람에 못 쓰게 됐다.


" 네? 여기가 가장 중요해 보여서 여기에 자리잡았는데. 아니에요? "

" 그게 무슨 소리야 시발. "

" 보자… 『그녀를 희롱하는 36가지 최면…』 "

" 어 맞어. 맞으니까 닥쳐. "


이 새끼 알고서 이랬구나.

자기가 제대로 둥지를 틀었다는 걸 이해했는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쿡쿡대는 미믹.


" 으흥~? 꽤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계시네요~?

  수비범위가 넓다는 수준이 아닌데요~? "

" 적어도 너는 아니니까 걱정 마라. "

" 그거 굉장히 쇼크인데요…. "


시무룩한 채 어깨를 늘어트리는 그녀.


" 생체형 금고고 나발이고 소유주가 못 쓰면 뭐가 지키미야.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당장 나가. "

" 에이~ 그리 성급하게 굴지 마시고~ 조금 들어봐요. 손해보는 거 아니니까. "

" 팔이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지. "

" 자꾸 그러시면 책들 갈갈이 찢을 거에요? "

" 비겁한 녀석, 그녀를 놔줘! "

" 우와아…. "


대화가 잠시동안의 평행선을 달린 뒤, 진정하여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그러니까, 저를 쓰시면 말이죠? 보관만 아니라 외적도 막아주고, 수납 공간도 넓어져요! "

" 애초에 많이 안 넣고 열쇠로 잠금도 걸려있는데, 뭐하러 굳이? "

" 게다가! 열리더라도 내용물을 속일 수도 있어요! 보시라! "


슈바밧. 그녀의 형체가 무너지는가 하니, 어느새 평범한 서랍으로 돌아왔다.


" 이거… 윗단이나 아랫단에 있던 거네. "

" 이렇게 바꿔치기 해서 모르게 할 수도 있단 말씀! 저의 굉장함을 아시겠나요? "

" 확실히 좋아보이긴 한데, 우리 집에 내 서랍을 구태여 열어볼 사람이라곤…. "


해봐야 엄마 뿐이다. 그마저도 사춘기 지나서는 청소할 때 말곤 안 들어오신다.


" …정말 눈치 못 채신 건가요? "

" ? 뭐가? "


내가 심드렁하게 보고 있자 미믹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 여기 잠금 장치 말이에요. 흠집이 많이 나 있는데…. "

" 어라? 진짜네. 열쇠 넣다 생긴 거 아냐? "

" 열쇠로 이런 흠집이 생기겠어요? 이건 락피킹의 흔적이에요. "

" 뭐? 누가 고작 이걸 열어보겠다고…. "


잠금을 따서 보겠어. 라고 하려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심각한 일이다.


" 내 취향이 다 까발려지잖아…! "

" 뭐, 이 정도로 넓으면 오히려 불가능을 찾는 편이 더 빠르겠지만요. "

" 아까부터 넓다고 하는데, 나는 최면 하나 밖에 안 팠거든? "

" 네…? 그럼…? "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짓다가 사색이 되었다.

어…?


" ……혹시나 해서 묻는데. 몇 개의 장르가 있는 거야? "

" 대충 세어도 12개 이상…. "

" ………. "


소름이 돋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체 뭐가 왔다간 거야…?


" 어머님… 은 아니시겠죠? "

" 한 번 걸린 이후론 조용히 덮으셔서 아닐 거야. "

" 어머님 장르도 없었으니 그렇겠네요. "

" 그걸로 추리하는 거 그만둬. "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정말로 안전한 거 맞지…? "

" 제 종족의 명예를 걸고 그렇다니까요!

  …다만 작아서 강하진 않으니까, 걸리면 얄짤 없어요. "

" 먹이는? "

" 애완동물 취급 마세요. 소시지 하나로 하루, 최대 사흘은 버텨요.

  가끔 특식으로 주인님의 소시지여도 좋구요♥ "

" 그런 거 관심 없고, 유지비는 합리적이군. 콜. "

" 쳇, 아무튼 이걸로 계약은 완료― 읏…! "


홱, 미믹이 내 손에 있던 책을 덥석 집고는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드르륵- 소리가 울리며 내 방 문이 열린다.


" 뭐야? 누구랑 대화하는 줄 알았더니. "

" 혼잣말이야. 그보다 내 방에 들어올 땐 노크 정도는 하라 했잖아. "

" 흐음~? 수상한데~? 좋은 시간을 방해해버렸나? "


느닷없이 들어온 여동생이 수상쩍다는 눈으로 나를 스캔한다.


" 뭐, 아무튼 햄버거 사왔으니까 먹으라고. "

" 어. 좀 있다 내려갈게. "

" 그럼~ "


그 말만 하고선 문을 닫고 떠나가는 동생.


" …장르 중에는 여동생물도 있어요. "

" 알고 싶지 않아 그런 거… 아니다, 뭐뭐 있는지 들어나 보자. "

" 음~ 누님, 여동생, 소꿉친구, 츤데레, 음침녀, 흑발, 갸루, 운동계, 외눈, 오니,

  용족, 뱀, 고양이, 서큐 등등…. "

" 이렇게 많아서야 누구인지 특정하기도 쉽지 않은데. "

" 하나가 아닐 수도 있어요. "

" 설마.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한다고.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


미믹은 흐응― 콧소리를 내며 쳐다보고는, 말을 덧붙였다.


" 개중에는… 책 말고도 다른 것도 있어요. "

" 어떤? "

" 머리카락. "

" ………. "


뭐야 그거, 무서워.


" 많은 것 중에, 유일하게 없는 게 얀데레물이에요. "

" 진짜로 무서우니까 말하지 말아줄래? "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거 같잖아.


" 진지하게 걱정되니까, 되도록 빨리 범인을 찾아내는 걸 권장해요. "

" 무슨 수로…? "

" 이 만큼 단서를 남겨놨으니, 참고로 해보시는 게 어때요? "

" 장르에 해당하는 애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제정신이야? "

" 누가 그렇게 들이대래요. 친하게 지내서 반응을 살피라는 거지. "


그러니까 다시말해, 여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위험해보이는 애를 특정하라 이거네.

너무 하드한 거 아니냐고.


" 모르는 사이에 납치감금되거나 찔리는 것 보단 낫지 않겠어요? "

" 크윽…. "


어찌됐든 하는 수 밖에 없다.


" 저도 전력으로 서포트 해드릴 테니 힘내봐요! "

" 서포트라고 해도 너는 여기서 못 움직이는 거 아냐? "

" 에헴, 그 쯤이야. "


미믹은 서랍에서 다리를 빼내더니 탁, 바닥으로 착지한다.

잘만 나오네 이 자식.


" 서랍은 어쩌고? "

" 평범하게는 안 열리게 해놨고, 열리더라도 의태해놓은 상태라서 모를 거에요. "

" 데리고 다니기엔 좀 큰데…. "


그랬더니 슈슈슉 작아져서 물방울 만한 검은 슬라임으로 변했다.


" 이게 본체야? 귀엽네. "

" 꺅! 변태! 숙녀의 알몸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시죠! "

" 귀엽단 말 취소. "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자 미믹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 귀 뒷편에 숨어서 상황을 살펴볼게요. 이러면 같이 다녀도 문제 없겠죠? "

" 그래. 잘 부탁한다. "


그렇게 나는 갑작스레 내 방 서랍에 자리잡은 불청객 같은 녀석과 함께, 얀데레 기질이 있는

수상한 진짜 불청객을 색출해내기 위한 태그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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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서랍에 미믹이 자리잡는 거 생각하고 썼는데 어째 얀데레 찾기 서스펜스 추리물이 되어버림.

과연 몬붕이는 누가 몬붕이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병적이게 사랑하는지, 구분할 수 있을까?

알고 싶으니까 너희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