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를 꿈꾸며 대모험을 펼쳤던 한 사나이가 벽을 느끼고 힘에 부치던 와중에 던전에서 우연히 얻은 불사조의 알을 소중히 품에 안고 모험가를 은퇴했어.


불사조의 깃털 같은 아이템을 통해 전설로만 알았던 불사조의 흔적을 쫓고 쫓아서 기어코 알을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부화방법이나 태어났을 때 키울 수단 같은 건 생각치 못했던 거야.


어찌저찌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알을 따뜻하게 만들고(적정온도가 300도) 알이 꿈틀 거리는 걸 한 달 남짓 지켜보자 새끼 불사조가 깨어났지.



깨어나서는 300도 같은 미친 짓거리를 안 해도 되었으나 덩치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병아리가 계속 추워하니 뽀송한 털로 이루어진 천을 둘둘 말아서 가슴 주머니에 넣고 사니까 그나마 괜찮아 보이더라고.


덩치가 작고 체온도 그리 안 높았을 즈음에는 몸에 달고 다닐만 했으나 얘가 수박만한 사이즈로 커졌을 때는 몸이 그냥 걸어다니는 불덩이여서 생활이 곤란한 거야.


그래서 그 비싼 인챈트 주문서를 사서 집 구석구석에 화염 내성 스크롤을 붙이고 바르는 등 재산의 일부가 뭉텅이로 날아가기도 했어.


그래도 먹거리는 잡식성인 덕에 아무거나 먹여도 문제 없었고, 몸이 뜨거워도 이상하게 달라붙으면 또 그리 덥진 않은 신기한 불을 내뿜는 소녀를 아버지 같은 미소로 바라보는 아저씨.


불사조는 쑥쑥 자라서 요조숙녀 같은 나잇대가 되었는데 얘가 아저씨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행동이 예전과는 달라졌지 뭐야.


분명히 틈만 나면 앵기려 들고 덥다고 하는데도 볼을 비비는 등 아기새 같던 애가 눈만 마주쳐도 볼을 붉히면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설마 싶다가도 가족인데 설마 그렇겠어 하며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사춘기 시절을 무난히 넘기나 싶을 즈음에, 사건이 터져.


불사조인 딸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거였는데, 당연하게도 불사조의 특성을 가진 그녀가 밖을 돌아다니면 눈에 띄지 않겠어?


여태 살아오면서 모험가 시절의 명성이 있던 덕에 건드리는 놈들은 없었지만 그것도 옛날 일.


아저씨는 복귀할 때가 왔다며 창고에 고이 묵혀두었던 장비들을 꺼냈어.


괴한들이 흘리고 간 흔적들을 추적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지.


썩어도 준치라고, 눈이 있는 자라면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질 물건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고인물 아저씨는 괴한들의 아지트 까지 추적하는 데에는 성공해 투명화의 물약을 마시며 상황을 살폈어.


생각보다 괴한들은 그리 많진 않아. 불사조를 잡아서 팔면 얼마일까 계산하며 낄낄거리고 있었지.


불사조 소녀는 화염 저항 스크롤이 부착된 밧줄에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고.


그런데 저런 소수의 인원이 납치를 하기엔 좀 이상했어, 불사조 소녀는 적대적인 사람에게는 닿기만 해도 녹아내릴 고온의 열을 뿜어낼텐데.


저 괴한들의 장비는 후줄근 한 것이 값비싼 인챈트 스크롤과 포획용 아이템을 살 돈은 없어 보였거든.



은신을 하던 아저씨에게 갑자기 화살 하나가 날아와. 노련한 아저씨는 한 손으로 그걸 붙잡지만, 화살이 갑자기 날아왔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들켰다는 걸 의미했어.


그럼 누가 쏜 거지?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갑옷으로 중무장한 고위기사 즈음 되는 병정들이 줄지어있었던 거야.


알고보니 궁정에서 포획 및 납치를 계획하고 괴한들에게 자금을 주는 대신 납치해서 데려오라는 거래를 했던 거였어.


설마 여기 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다며 건들거리는 귀족 돼지 하나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사람과 싸우는 일도 자주 겪었던 아저씨는 전투 자세를 취했지.



긴 말은 필요 없이 고위 기사단, 궁정 마법사들을 상대로 무위를 펼치는 아저씨는 그야말로 일당백의 실력자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으나.


아무리 실력있는 모험가던 아저씨라도 발 밑에 계속해서 깔리는 포박술식의 마법함정은 피하기 어려웠고, 적군 사이를 종횡무진 하다가 아군마저 희생하는 폭발 함정에 걸려 결국 쓰러지고 말았어.


그러한 과정을 보고있을 수 밖에 없던 불사조 소녀가 아저씨를 불러보아도, 의식을 잃은 아저씨는 답이 없었지.


아저씨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병정들 사이에 귀족 돼지가 비릿한 웃음을 흘릴 때였어.


아저씨는 갑자기 의식을 차리고 칼을 쳐내며 무리에서 빠져나와, 불사조를 향해 단검을 던져.


전투를 하면서 쓰러질 경우를 대비해 입 안에 비약과 각성제를 물고 충격으로 쓰러지면 자동적으로 깨물게끔 해서 각성한 상태였지.



던져진 단검을 불사조의 밧줄을 끊는 데에 성공하고, 불사조는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아저씨의 죽음이었어.


무리하게 움직이느라 피할 자세를 취하지 못한 아저씨는 병정의 칼에 복부가 꿰뚫리며 쓰러진 거야.


그걸 눈으로 지켜본 불사보는 광란에 휩싸이게 되고, 사춘기에 겪는 감정의 불안정함이 그대로 불꽃으로 변하면서, 순간적으로 20대 여성의 모습이 되어 완전한 형태로 각성해.


분노로 가득찬 눈은 악인들마저 뒷걸음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저항 스크롤마저 무용지물인 고온의 불길로 적들을 불태워버려.



그렇게 탐욕스러운 타락한 악인들을 휩쓸어버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저씨를 품에 들었어.


피를 잔뜩 흘린 아저씨가 아직 몸에 남아있는 각성 효과로 정신만은 유지한 채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지.


어렸을 때는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네가 지금은 나를 안을 수 있게 됐구나 라며 작게 웃고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고.


그녀는 아저씨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죽지 말아달라고 그 손을 꼬옥 마주잡아.


아저씨는 씁쓸한 미소로 건강하라는 말만을 남긴 채 손을 떨구었어.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된 아저씨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그녀의 울음 소리가 동굴 벽을 메아리 쳤지.



그런 슬픈 이야기가 보고 싶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자기 깃털 뽑아 아저씨한테 꽂으니까 뿅하고 되살아난 해피엔딩 까지 에필로그로 보고 싶으니까 누가 좀 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