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분 모음 ◇





"인간, 여긴 왜 계속 오는거냐?"


"음... 그냥."




공터를 둘러보는 내 행동에 대한 바퀴 녀석의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이곳 원룸으로 이사해 오기 전.

우리 둘은 세 달간 반지하방에 살면서 거의 매일같이 외출을 즐겼다.

우린 외출 때마다 최대한 다양한 일을 하려 노력했지만 그 마무리는 언제나 똑같았는데, 바로 당시 우리가 살던 반지하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 공터를 들리는 것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그마한 동네 공터.

그곳 구석에는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 온 골판지 상자와 스티로폼, 낡은 담요 등으로 만들어진 작은 은신처가 숨겨져 있었다.



그 작은 곳은 이제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매일같이 들려보았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다.

반지하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매일 아무런 부담 없이 살펴 볼 수 있었으나, 아무 변화도 없는 그곳을 매일같이 살피는 내 행동을 바퀴 녀석은 몹시 의아해 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외출 때마다 매번 이곳을 들려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니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마침내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인간, 혹시 여기에 뭐 숨겨 놨어? 나도 같이 찾아줄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왜 매일같이 여길 뒤적거리는 거냐?"


"...아니야.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아."


"우응? 그럼 내일부터는 외출해도 여기 안 들릴 거냐?"


"응. 이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공터를 떠나는 내 행동을 보고 녀석은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실 녀석에게 설명해 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진 못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내가 예전, 몸 아프고 돈도 없어서 고된 삶을 살아가던 시절에 우연히 알게 된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숨겨 기르던 곳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녀석을 여기에 숨겨 기를 수 있었다.



왜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내가 예전에 살던 그 비좁은 반지하방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몰래 길렀다간 집에서 쫓겨났을테니, 그런 변변치 못한 잠자리조차도 귀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밖에서 돌봐줄 수밖에 없었다.



내 과거 쓸쓸하고 아픈 기억 밖에 없던 때에 유일하게 기쁨을 주던 그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

귀 끝이 검고 눈이 예쁘던 그 조그마한 녀석을 나는 몹시 아꼈고 또 녀석도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만 보면 웅냥냥냥 소리를 내며 강아지마냥 달려와서는 배를 드러내보이며 애교를 떠는 녀석을 나는 정말 좋아했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첫번째 죽음.

그 때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봐주던 것도 녀석이었다.



트럭 바퀴에 깔려 몸이 두 동강 난 채로 천천히 죽어가던 나를 슬프게 울면서 햝아주던 녀석을 기억한다.

그 울음소리와 햝짝임을 느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던 것도...



그 때 죽어가던 나는 몹시 걱정했다.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은 누가 돌봐줄까?

나를 정말 좋아하던 녀석인데, 혹시나 나쁜 사람이 접근해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그래서 처음 여신님을 만났을 때, 소원 중 하나로 녀석의 무사평안을 기원했다.

나 없이도 녀석 혼자서 잘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으로 여신님이 주신 네 가지 소원 중 하나를 사용했던 것이다.



여신님께 말씀드린 소원은 전부 다 이루어졌다.



난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잊어버렸던 부모님의 얼굴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사진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매일 밤 사랑을 서로에게 속삭일 수 있는 아내까지 생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이루어졌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소원은 단 하나 뿐이었다.



과연 내가 야옹이라고 이름붙인, 그 고양이 녀석은 무사할까?

아무리 공터를 찾아가 봐도 그 답은 얻어낼 수 없었다.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여신님이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말도 안되는 소원들을 간단히 이루어주신 여신님이었다.

그런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내지 못할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나보다 형편이 훨씬 좋고 동물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녀석을 주워가게 된 것이라고 믿었다.

여신님이 그렇게 의도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녀석이 그곳에서 행복하길 비는 수밖에.



나는 녀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이 동네를 완전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녀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굳이 이 근방의 원룸이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의 원룸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좋은 조건의 원룸을 알게 된 데다가 돈이 충분히 모인 나는 바퀴 녀석을 데리고 이곳 원룸으로 이사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세상에나.

이사 온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냐아아... 우냥냥... 냐아..."


"하하하... 그래그래... 우쭈쭈..."




난 내 품 안에 안겨서 몸을 뒤집고 열심히 애교를 부리는 녀석의 배를 살살 문질러 주었다.

고양이들은 배 만지는 걸 싫어한다던데, 이 녀석을 보면 아닌 것 같다.

내가 만지면 이리도 좋아하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냐아... 냐아..."


"옳지... 기분 좋아?"


"우냐앙...."




턱 밑을 살살 긁어주니 내 품 속에서 천천히 퍼져서 이내 우스꽝스러운 큰대자로 벌러덩 드러눕고 만 녀석.

자동으로 웃음이 나온다.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안심되기도 했고.




"와아... 그런데 설마 여신님이 이 녀석을 데려갔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흐응, 당신 소원은 녀석이 잘 살길 바란다는 거였잖아요."




여신님은 손을 가슴에 턱 하고 얹으면서 잘난척하듯 고개를 까딱여보였다.




"다른 누구보다도 여신과 함께 살 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겠나요? 그래서 제가 데려 온 거랍니다."




예전에도 본 적 있는 재수없는 표정과 한 대 치고 싶은 포즈였다.

언제 봤더라.

나보고 모솔아다새끼라고 하면서 바퀴 녀석과의 사이에 훈수질 할 때였나?



하지만 좀 꼴받더라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님의 말을 긍정했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이 누워 자고 있던 쿠션은 내가 평생을 덮고 살았던 낡은 이불보다 훨씬 좋아 보였으니까.

쿠션 옆에 있는 밥그릇과 물통도 몹시 비싸 보였고.



다만 한가지 의문점은... 어째 녀석이 예전보다 좀 마르고 털빛도 안좋아 보인다는 것.

집고양이가 되었는데 길거리에 살 때보다 마르다니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 그거요?"




내 질문에 여신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뭘 줘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계속 누워서 잠만 자더라고요.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는다고 해야 하나?"


"에엥? 이 녀석이요?"


"네. 당신이 기를 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기를 때는 아무리 맛있는 걸 사다줘도 먹질 않더라고요."




여신님은 살짝 뾰로통해져서 내 품에서 애교를 잔뜩 부리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한테는 저렇게 애교 부린 적도 없고요. 쓰다듬어주면 피하진 않았지만... 저렇게까지 무방비하고 귀엽게 군 적은 없었는데."


"하핫... 턱 밑을 쓰다듬어주셨어야죠. 이것 봐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냐옹... 냥냐아..."


"쳇, 제가 쓰다듬어줄때는 턱 밑을 긁어줘도 별 반응 없던데요."




엥? 그럴리가.

내가 만져주면 이렇게 좋아 죽는 녀석이 별 반응을 안 보인다고?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거 봐라. 내가 손에 턱만 가져다댔는데 좋아 죽으려고 하는 거.

이런데 아무 반응 없다는게 말이 되나?

아마 여신님은 고양이 만지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다.




"흥. 아무튼 이제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제가 굳이 그 아이를 데리고 있을 필요도 없겠네요."


"네?"


"이 아이는 역시 저보다는 원래 정을 들였던 당신이 훨씬 좋은 모양이니까요. 게다가 이제 당신이 여기로 이사오기까지 했으니 굳이 제가 데리고 있을 이유는 없죠."


"그렇다는 말은...?"




여신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데려가서 기르고 싶다면, 데려가셔도 좋아요. 제가 물품도 다 드릴 테니까요."


"와...!!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예? 뭐가요?"


"집에 이미 동거인이 있잖아요?"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내 아내인 바퀴벌레 녀석.

그 녀석은 야옹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 "뭐냐 이 털짐승은!! 저리 가!! 슈슉!! 슉!!" )

( "하아아아아악!!" )

( "히익!! 인간!! 저게 나보고 소리질렀어!!" )




...

에이, 설마.

그렇게 되진 않겠지.



녀석은 호기심이 많은 편이니 의외로 야옹이에게 호의적으로 굴 수도 있다.

거기다 내가 애완동물의 개념도 설명해주면 둘이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아직 좀 어설프긴 해도 어쨌거나 이젠 거의 인간이나 다름없는 바퀴 녀석이다.

이제 철없는 벌레 시절은 졸업한 지 한창이다.



야옹이도 내가 바퀴 녀석과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마 똑같이 주인으로 여기고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좋겠지. 음. 아마 그럴 것이다.



남편과 아내, 아이. 그리고 애완동물 하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내 꿈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흐음... 그 녀석도 싫어하진 않을 거에요. 그냥 고양이 한 마리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관없죠."




여신님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허락받았다!!



나는 내 품에서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마구 부비부비대고있는 야옹이를 향해 신이 나서 말했다.




"야옹아!! 이제 우리 같이 살자. 우리 집으로 가자!!"




내 말을 들은 야옹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주인님?"


"응!! 당연하지!!"




난 신나서 대답했다.





어?

잠깐.

뭐야 시발.





"어어?"


"어머?"


"냐아?"




갑자기 만화스러운 펑 소리와 함께 시야가 분홍색 안개로 뒤덮였다.

품 속에서 야옹이의 푹신말랑한 감촉이 느껴졌으나 그 크기와 모양은 더는 고양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안개가 천천히 걷히면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녀석의 하얀 털빛을 그대로 따온 듯한 하얀 머리칼.

그리고 끝부분만 검던 그 귀를 그대로 따온 듯한 새까만 고양이 귀.

그리고 어째선지 새빨간 눈.

작은 몸집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흉부.




"...냐아아아?"




녀석은 내 품 안에 안긴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자신의 바뀐 몸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방실방실 웃더니 자연스럽게 내게 달려들어서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주인님!! 주인니이이임!! 냐헤헤헤..."




나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아담한 체구의 알몸미인에게 격한 스킨십을 받는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퀴 녀석이 인간이 되었을 때도 이렇게 당황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동물을 사람으로 바꾸는 것.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이 여신님 뿐이었다.

하지만 여신님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뭔가 알고는 있는데 그게 자기가 의도한 그것은 아닌 듯한 눈치였다.



여신님의 실눈이 전에 없이 크게 띄여졌다.

그 안에서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마구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씨발...?"




여신님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본능적으로 좆됨을 감지한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냐헤헤헤헤... 주인님... 주인니이임... 냐하..."




야옹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내게 안겨서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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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