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실에서 조용히 책만 읽던 한 여자아이가, 어느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제목을 읽고 있는 몬붕이를 발견하지.


그 책은 워낙 마이너한 장르인 탓에,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가 없었던 여자아이는 그날부터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멀리서 책을 읽는 척 흘긋흘긋 몬붕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흘겨봤어.


몬붕이가 읽던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그녀는 몬붕이가 지금 어디쯤 읽고 있는지 넘겨진 페이지의 두께만 봐도 알 수 있었지.


그 부분은 마침 여주와 남주가 만나서 로맨스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한창 재미있어지는 파트인데, 그때 둘이서 나눈 대화나 그 후에 있을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고, 그리고 그걸 볼 그의 반응도 궁금해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몬붕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 싶어 고개를 든 몬붕이에게 놀라, 팍 하고 고개를 돌리고는 책으로 얼굴을 가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는가, 그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싶어서 속으로 온갖 고뇌와 상상을 펼치고 있을 때 몬붕이는 다시 책을 읽었어.



스윽- 책을 내려 몬붕이가 집중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설의 내용을 되새김질 해.


여주가 하는 의미심장한 중의적 말들은 그를 향한 관심 표현이고, 그걸 받는 남주는 눈치가 떨어져서 오해를 사는 일이 잦아 티격태격하는 러브 코메디 같은 일상을 보내는 챕터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지.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소심한 성격인데다 외모를 가꾸지 못해서 앞머리가 눈을 가릴 정도고, 또 말주변이 없어서 대화할 사람은 커녕 친구 조차 없는 음침한 그녀였기에. 선뜻 다가가질 못했어.


계속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다가, 결국 그가 읽던 책을 덮으면서 도서관을 떠나. 재미가 없었던 걸까? 그녀는 속으로 침울해 했지.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 그가 다시 도서관을 들렸어. 전에 읽던 책을 꺼내어 읽는 모습을 보아하니, 책갈피를 걸고 간 모양이더라고.


그녀는 기뻐했어.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점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지.


그와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읽는 그의 표정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찬 그녀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는 거야. 그리고 실행에 옮겼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 것을.


그게 그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어.



도서관 책상은 넓어서 맞은편에 앉는다해도 거리가 꽤 멀어서 크게 신경쓸 정돈 아닌지라 몬붕이는 신경쓰지 않은 채 책을 읽고.


그녀는 책을 읽는 척 눈만 굴려 몬붕이의 얼굴과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만 말 없이 쳐다봤지.


누가 지나가면서 그녀가 하는 기이한 행동에 눈치챌 법도 하지만, 앞머리와 안경이 눈을 가려주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


그렇게 며칠간 그 자리는 그녀만의 특등석이 되어 몬붕이를 관찰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거야.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아. 그가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지.


책을 덮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리던 그녀는, 결국 소심한 성격 탓에 그를 붙잡지 못해 놓치고 말아.


취미를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 슬픈 그녀가, 그가 두고 떠난 책의 표지를 쓸으며 무심결에 내용을 읽기 시작하지.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해. 그가 책을 읽을 때 쓰던 책갈피였어.


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다음날 책갈피를 손에 꼭 쥔 채 그를 찾아 복도를 계속 걸어다녀.


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무작정 지나가다 발견하면 건네주려고 한 거야. 소심한 성격인데 단지 건네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차서 그렇게 행동한 거고.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어. 책갈피 두고 가지 않았냐고.


다행히 그의 책갈피가 맞았어. 문제는. 그녀가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


어떻게 답을 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우물쭈물 쪼그라 들어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려. 책을 읽는 걸 봤다고.


몬붕이는 책이라길래 뭔가 했다가, 도서관에서 읽던 책의 제목을 말하자 그녀는 긴장한 걸 무마하고자 크게 네! 하더니 책에 대한 내용이나 잡다한 정보들을 물 흐르듯이 나열하며 떠벌떠벌 거리다가 자신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게 물들여.


몬붕이는 당황하긴 했지만, 일단 책갈피를 받았으니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다시 갈 길 가려했지.


그때, 여기서 그를 놓치면 두 번 다시 말을 걸 기회가 없다고 여긴 그녀는 일생일대의 생사를 거는 급의 용기를 쥐어 짜내, 그의 소매 끄트머리를 꼬옥 잡았어.


혹시… 책, 좋아하세요?



그 후로 둘은 도서관에서 옆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내용이나 전개, 등장인물들의 속내 등을 주제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


주로 그녀가 좋아하는 책을 들고와서 그에게 읽게하는 편이었지만. 단지 그것만이라도 좋았어.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그녀 입장에서는 단순히 취미만 나눌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신경쓰지 않으려 했으나, 가슴을 후벼파듯 따끔한 느낌과 먹먹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지.


결국 그와 책을 읽는 다음 시간을 마지막으로 끝을 내자. 그렇게 다짐하여 그녀의 애독서를 선물로 몇 개 포장하고 쿠키를 구웠어.



책을 읽던 몬붕이는 그녀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여태껏 어울려줘서 고맙다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듯 떠나가는 뒷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가,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가.


한동안 추격전을 벌이다 끝내 붙잡힌 그녀는,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왜 따라왔냐고 물었어.


몬붕이는 그게 무슨소리냐고 되물었지. 나는 여지껏 솔로로 살았는데.


엥? 그럼 맨날 집에갈 때 같이 가자면서 어깨동무하던 그 사람은?


엥? 걔는 우리 누난데?


엥?


엥?



아무튼 서로 오해가 풀리면서 그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앞머리를 젖히고 눈물을 닦아줬어.


그러다가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지.


너, 눈 예쁘다. 라고.



다음날 눈이 잘 보이도록 앞머리를 치고 관리를 받은 흔적이 역력한 그녀가 쑥쓰럽다는 듯이 머리를 매만지며 어떻냐고 하는데, 별로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는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기껏 관리 받은 머리가 헝클어지는데도, 그녀는 에헤헤…♥ 마음 속 깊이 우러러 나오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사귀게 된 후론 데이트 하는 날엔 안경을 콘택트 렌즈로 바꿔서 그를 맞이하러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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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 안경 좋은데 왜 라는 한 줄만 쓰려고 했는데... 어째서 3100자인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