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 없이 길을 걷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버린 그녀의 옆모습이 어쩐지 눈에 밟혀 흘깃 쳐다보게 되고, 그대로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싶다.


평소 넓은 보폭으로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도 그 순간 만큼은 느림보 거북이마냥 느긋한 스텝을 밟더니 우뚝 멈춰서선, 그녀의 뒷모습을 향한 시선을 따라 어느새 몸을 돌려 그녀를 쫓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녀는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지도 모르고 여유로이 나비의 날개 처럼 팔랑이는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앞을 향해 걸어갈 거야.



이윽고 그녀를 따라잡은 내가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과 우선 걷는 걸 멈추게 해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무심코 어깨에 손을 얹어서, 무슨일인가 싶어 뒤돌아보는 맑은 눈동자에 당황해 굳어버리곤 '당신을 좋아합니다' 같은 미친 소리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아… 아는 사람이랑 착각했네요' 따위의 미적지근한 말을 내뱉겠지.


별 일 아니라 여긴 그녀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시 제 갈길 가는 걸 억지로 붙잡고자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며, 학창시절 가방끈을 강가에 흘려보낸 뇌로 어떻게든 대화의 여지를 잡을 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려 팽팽 페달을 밟아대는 거야.


조금 곤란한 얼굴을 하는 그녀에게 딱히 생각나는 주제가 없었던 난 그나마 실낱같은 내 특기를 떠올려서 '혹시… 그림, 좋아하세요?' 라는 뜬금없는 말을 하고말아,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얘기로 구슬려, 카페에서 간단히 그녀의 얼굴 특징을 잡아 이쁘게 그려주고 싶어.



완성된 그림을 집어든 그녀가 흡족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선물로 주는 걸 계기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모델 처럼 사진을 찍거나 다양한 포즈를 취해주지 않겠냐며 다음을 기약하겠지. 혹여나 거절하지 않을까 모델비를 지불하겠다는 언약도 남기고서.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내 요청을 수락해주고, 다음 만남에 가슴이 도드라져보이는 어여쁜 투피스와 꽃모양 머리장식을 단 그녀가 꽃밭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걸 사진으로 남기어 그녀가 하는 SNS에 올리도록 보내준 다음 특히 마음에드는 몇 장은 그림으로 리터칭을 해보겠지.


예쁜 외모에 사진과 그림이 섞여 동화 같은 느낌이 인기를 타 그녀가 SNS의 인기인이 된 걸 기점으로 둘이서 스튜디오 마냥 여러 작품을 내는 활동을 하는 등 약간 비즈니스 느낌으로 만남을 이어갈 거야.



그러다 그녀에게 언젠가 고백해서, 연인다운 알콩달콩한 대화를 주고 받고 싶다.


어제는 뭐했니, 오늘은 뭘 할까, 내일은 뭐 하자. 저번에 봤던 영화 재미있었어, 노을이 질 때 햇빛에 비친 너의 옆 모습이 좋아, 가끔씩 너랑 다툴 때가 있지만 그래도 널 사랑해,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네 마음씨가 기뻐, 다음에 놀이공원을 가자 등. 평소 해보고 싶던 걸 해보는 거야.


한 번은 특별한 날이나 소원을 들어주는 걸 이용해서 다른 종족 코스프레 하는 것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웃음을 참으며 어색한 연기를 하는 그녀가 참으로 귀엽고도 사랑스럽지 않을까.


단 둘이 있을 땐 손을 마주 잡고 깍지를 껴 볼살이 밀리도록 얼굴을 부벼 깨소금 날리는 커플의 꽁냥거림을 즐기는 시간이 더할나위 없이 기쁠 거 같아.


공원 벤치에 걸터 앉아 노트북이나 태블릿에 이어폰을 꽂아 각자 한 귀에 연결해 노래와 영화를 감상하며 어깨를 맞대어 노곤노곤한 햇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싶어.


그냥. 그런 달달한 일상적 순애가 보고 싶다.


=======

아이디어 떠오를 땐 재깍재깍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분명 다듬으면 괜찮은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쁜 일이랑 겹치면 나프탈렌마냥 기화해서 사라져버리네.


평소에도 구멍난 장독대마냥 생각한 소재들이 흘러내려가듯 자주 까먹고 한다마는, 요즘은 좀 심하다.


몬챈에 순애의 바람은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