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우리 동네 바보로 유명한 그린 웜이 있는데, 워낙 바보여서 방금 전에 한 일이나 말하려던 걸 잊어 맨날 레후거리기만하는 그런 애였다.


그런 주제에 종족 특성인지 먹거리는 참 좋아하는 먹보였고, 나는 동네 애들과 같이 그런 그녀를 놀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오늘도 학교 마치고 집에가는 길, 친구들은 부모님이 공휴일에 연달아 며칠간 휴일을 얻은 기념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다 했다. 그래서 다들 일찍 집으로 가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휴일에 늘어지게 누워있는 걸 좋아해서 여행갈 일이 없고, 나 또한 구태여 멀리 가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공원 그네에서 홀로 따분함을 죽이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내 옆 그네에 상반신을 걸쳐 레후 거리는 아이가 앉았다.


" 여기서 머해? "


동네 바보 아이인 그린 웜이었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우물거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식사거나 간식인듯 보였다.


" 오지 마 바보야. 바보 옮는다. "


" 바, 바보 아니거든! 바보라는 사람이 바보랬어! "


" 네 다음 바보~ "


으으…! 볼을 부풀리며 뾰로통하게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는 그린 웜. 하지만 달리 내뱉을 말이 없어서 그저 씩씩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그녀지만, 친구와 놀 생각이 가득했던 마음이 식어 가슴 한켠에 구멍이 뚫린 듯한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피식 웃었던 얼굴이 다시금 거무죽죽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 무슨 일 있어? "


서있는 듯이 폈던 허리를 숙여 그네에 엎드린 자서로 내게 말을 거는 아이. 누군가가 신경 써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어린 마음에는 단지 바보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 신경 꺼. 바보는 몰라도 돼. "


사실 별 일 아닌 건데도 있어보이는 말투를 쓰고 마는 나. 그녀는 삐진 건지 오리주둥이를 내밀면서 심통스런 얼굴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바보라고 놀린 것에 대한 부정을 하는 말이겠거니 했으나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 혹시나 힘든 일 있으면 말해. 힘이 되어줄게. "


" 뭐어? "


네가 무슨 수로? 라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려 고개를 들 때,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그녀의 눈을 홀린 듯이 쳐다봤다.


눈은 상시 풀려있던 흐리멍텅한 눈이 아닌, 그녀 나름대로 진지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 …니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


" 나, 나도 도움될 때 있다 뭐. "


" 거짓말 마. 그 가시발이나 네 머리로는 도움 주긴 커녕 도움만 받다가 일이 해결되어 있을 걸. "


으윽… 아니야아… 의기소침하게 주눅이 드는 것이 하찮게 여겨져서 놀리고 싶었는지 그때의 나는 조금 장난을 치고 말았다.


" 그렇게 자신있다면… 이 수학 숙제, 니가 풀어볼래? "


" 수, 수학? "


머뭇거리는 모양새가 머리쓰는 건 자신 없어보였다. 얘는 바보니까 당연하다.


" 숙제는… 자기가 해야 된댔어! "


" 꼭 스스로 하란 법은 없잖아? 도움 받는 것 정돈 괜찮아. 니가 도움 될 거라며. "


" 그, 그런가? "


이런 궤변에 놀아나서 수긍하는 그녀. 참으로 바보다.


" 하지만 나… 수학할 줄 몰라. "


" 하아… 덧셈, 뺄셈, 곱셈, 나누기는? "


" ??? 뭐야 그게? "


" 아니다…. 처음부터 가르쳐 줄게. "


그렇게 초등부 일일 수학교사가 되어 바보를 가르치게 되었다.



" 그게 아니지 바보야! 3*4는 3을 4번 더하는 거라고! 3333이 아니라! 그리고 사과가 총 몇 개냐고 물었는데 '맛있겠다'가 뭐야!? "


" 으아아앙━ 모르게써어어━ "


선생님이면 모를까 어린애가 어린애를 가르칠 때 화를 주체할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결국 나는 거하게 화를 내며 그린 웜을 쏘아붙여댔다.


" 역시 너는 도움이라곤 되는 게 없는 바보야! 바보 중의 왕 바보! "


" 히익… 흐끅, 흑…. "


아차, 너무 심하게 놀렸나.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 보다 그녀가 정말 터무니 없이 바보라는 점에 눈이 팔려, 해선 안 되는 말 까지 해버렸다.


" 방금 가르친 것도 잊어먹을 정돈데 숨은 대체 어떻게 쉬냐!! 어!! 그건 기억해!? "


" 흐윽… 흐엑… 어……? "


내가 하는 말을 곰곰히 되새기던 바보 그린 웜은, 그 순간부터 숨소리가 이상해지더니, 갈수록 꺽꺽대는 소리만 내댔다.


" 어, 어어…? 설마. 진짜로 까먹은 거 아니지? "


욱해서 한 농담인데… 그러나 그녀가 처한 상황은 농담이 아니라는 듯,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점점 호흡을 못해 목을 가시발로 감싸며 버둥거렸다.



" 끄으읍━!!! "


콰당.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던 그녀는 곧 쓰러졌고, 여전히 풀릴 기미가 안 보이는 발작증세가 당황스럽던 난. 이 상황의 주범이란 것과 바보라고 놀리던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패닉에 빠졌다.


어린 아이가 이럴 때를 위한 안전교육이라던가는 아직 받지 못했을 시절이기에 아이는 그저, 창백해진 그녀를 보며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다.


" 어어어어 어쩌지!? 내가 뭔갈 해야될 텐데…! "


동화나 만화에서는 이럴 때, 위기의 순간에 번득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위기를 극복하는 드라마틱한 연출이 자주 있다.


허나 현실은 현실. 그런 드라마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 아니지…. "


하지만 우연찮게도, 내게서 한 가지 번득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만 그게 동화나 소년만화다운 전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 으… 될대로 되라…! "


물놀이 차원으로 수영하기 전에 생명구조를 위해 잠깐 설명해주는 인공호흡과 심장 마사지가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그 인공호흡이었다. 보통 설렁설렁 들어도 그것만큼은 묘하게 뇌리에 남으니까, 시도는 해보자는 식이었다.


" 스━ 후웁. "


" ……! "


호흡곤란으로 입을 벌리고 있던 그린 웜에게 입을 맞춘 뒤, 내 폐에 담긴 공기를 불어넣었다.


" 응… 응웁. "


자신이 공기를 마시는 게 아니고 남이 주입해줄 경우 기묘한 압박감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살리려면 억지로라도 불어넣고 내뱉고를 반복해야한다.


" 응늣… 흥읍. "


호흡 조절을 어떻게 해야될 지 몰라 일단 가슴이 빵빵해지도록 불어넣고, 그녀가 내뱉는 걸 확인하면 다시금 주입하는 식으로 반복했다.


버둥거리는 그녀가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안색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서 안심했다. 또 공기를 주입한다.


" 응우우우웅━! "


쉴 틈을 주지 않아서 그런건지 괴로워하는 그린 웜. 이쯤하면 됐지 싶어 입을 떼고 얼굴을 쳐다본다.



" 하아… 하아…. "


거칠지만 안정된 숨소리. 균일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는 가슴. 녹초가 되어 이슬방울이 망울져 맺힌 일렁이는 눈. 타액이 늘어져 입가에 흐른 침. 사과의 단내가 풍기는 향기. 땀방울이 말랑한 피부를 타고 흐르며, 두 사람 분의 거친 호흡이 시끄러운 침묵을 자아낸다.


" ………. "


" ………. "


그녀는 말이 없다. 나도 말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매우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듯 했다. 내 얼굴을,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흔들리는 동공이 그것을 증명했다.


" 헤헤… 나 정말 바본가 봐…. "


멍한 눈으로 보던 그녀가 실 없이 웃었다. 그 후에 한 말들은 미안하다느니, 고맙다느니, 무어라 말한 거 같은데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 앞으로는 바보라 놀려도 뭐라 안 할… "


그 시끄러운 주둥이를 닫고자, 다시 입을 겹쳤다.


" ━━━━━!!!!! "


움찔. 눈을 크게 뜨며 몸에 힘을 주는 그녀의 양 팔을 잡아 바닥에 꾹 누른 채 입맞춤을 이어가자, 그녀의 팔에서 점차 힘이 빠지더니, 스르르 눈을 감아 가만히 내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어찌보면, 솔직하지 못한 바보는 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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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분명 숨 쉬는 걸 잊어 호흡곤란 온 그린 웜 인공호흡하는 몬붕이 보고 싶다만 쓰려했는데…?


아무튼 이런 이야기가 보고 싶으니 누가 써와.

나그가 싼 글 모음집


-20.12.15 추가

인생 첫 팬아트라니

급박한 상황이 잘 묘사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