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화:https://arca.live/b/monmusu/87298148

"오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아....하... 기록은?"


"계속 짧아지고 있어! 너만 괜찮다면 이렇게 빨라져도 괜찮을 것 같아!"


"하아....난 좋아. 해낸 것 같아서 기뻐."


파랑이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



...웃었다? 그 파랑이가?



콧노래를 부르거나, 짧게 감탄사를 내는 정도가 파랑이의 최대 기쁨 표현인 줄 알았던 나의 메모리가 업데이트되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열망하는 걸 얻게 되었을 때, 파랑이는 가장 기뻐하는 구나. 라는 것들로 말이다. 그리고 이 녀석이 의외로 욕심이 많다는 것도.



지쳐서 녹아내릴 것 같은 파랑이를 잘 붙잡고, 나는 그녀를 무사히 집에 잘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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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체육 대회. 이름은 그저 학교 내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스포츠 이벤트 겠지만, 여러 종족들이 섞여있 이 학교는 많이 다르다. 초월적인 근력, 각력, 체력등을 지닌 각 종족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그런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학교에서 극소수라, 인간들이 모조리 응원석 신세를 지게 되는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하등종족이라 놀림받는 슬라임은 다르다. 특히나 스피드 면에서는 더욱 더 상황이 나쁘다. 그렇기에 당연히, 계주 출전 대표로 파랑이를 내보낸 우리 반은 다른 팀에게는 조롱을 당했고, 같은 팀에게는 분노를 샀다.


"저쪽 팀은 슬라임을 내보내다니, 게임을 버릴 셈인가?"


"너희 반에서 마지막 주자를 뽑으려 했던 건데, 저런 걸 내보내면 어떡해?!"


"꽁승이겠네."


"이 트롤 자식들!"


물론 파랑이와 나를 비롯한 우리 반은 딱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들 하더라고.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와."


"응, 작전대로."


그것이 출전 전 마지막 우리의 대화였다.



...



계주가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슬슬 마지막 주자의 차례가 다가왔다. 다들 몸을 풀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파랑이는 혼자 명상하는 듯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었다.


"저기 쟤는 뭐하냐?"


"저렇게 하면 바통 넘기기도, 달려 나가기도 힘들잖아."


"진짜 저 팀은 계주를 버릴라고 저러나?"


관중석에서 계속해서 술렁이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떠들 테면 실컷 떠들어라. 그럴 수록 더욱 더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길 테니!



하나 둘씩 마지막 주자의 출발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이라 그런가 주자들은 이번 계주에서 가장 빠른 켄타우로스, 치타 수인 등이 배치되었던 모양이다. 



파랑이는 자신의 몸을 더욱 더 꾹꾹 눌렀다. 바톤이 도착하기 전까지. 보통 슬라임이 저렇게까지 몸을 압축할 수 있었던가? 하고 누군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보통은 바통을 넘겨주기 전부터 뒷 주자가 달리기 시작하지만, 파랑이는 미리 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앞 주자는 투덜거리며 미리 속도를 낮추어 바톤을 전해주었다.



피유우우우웅!



바톤을 손에 넣자마자, 파랑이는 몸의 탄성을 이용해 앞으로 날아갔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그저 공중에 총알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파랑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앞서간 주자들을 제친 파랑이는, 다시 한 번 몸을 꾹 눌렀다가 튀어나갔다.



일종의 편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엄연히 파랑이가 수십 번 반복 연습해서 극한까지 빨라지게 한, 꼼꼼대왕 파랑이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면에서 1m 떨어지지 않으면서 빠르게 튀어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조정해준 나의 소소한 도움도 더해서 말이다.



몸을 한계까지 압축시키는 것 역시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기에, 파랑이는 금세 지쳐갔지만, 조롱은 감탄으로, 분노는 응원으로 바뀐 것을 느끼자, 다시 한번 힘을 낸다. 



그렇게, 파랑이는 압도적인 1등으로 골인선을 넘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곧이어 우리 팀에서 환호소리가 울려퍼지고, 몇몇은 파랑이를 에워싸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파랑이는,


"몬붕아!"


 

파랑이는 지친 것도 잊고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곧장 내게 달려왔다. 역시 '가장 기뻐하는 표정'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달려온 파랑이는 바로 내 몸을 꼬옥 안았다.

운동의 후유증으로 끓어오르는 파랑이의 증기가 내 얼굴을 덮었 켘켘켘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잠...깐...마 콜록콜록콜록"


"몬붕아..."


"이것 좀 콜록콜록켁켁"


파랑이가 내 몸을 껴안자, 다들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붉히며 바라볼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어머어머. 드디어 갈 때까지 가는 구나 저 커플..."


"우리가 경솔했네."


"무시한 거에 대한 사과는 이따가 하자."



잠깐만! 나 얘는 좀 풀어주고 가! 나만 이렇게 두고 가지마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