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인터넷을 통해 게임기를 하나 구매했다.

무려, VR 게임 기기를 말이다.


그 VR 기기는 사용자가 원하는 게임을 구매하여 다운로드 한 뒤, 자유롭게 플레이가 가능한 기기였다.

하지만 처음 VR을 구매해서 그런지, 무슨 게임을 다운로드할지 고민되었다.

때마침, 그 날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왔던 날이다.




"너, VR기기 샀다며? 그거 엄청 비쌀텐데!"

"맞아, 이거 내가 네 달치 용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서 샀어. 그래도 비싼 만큼 값어치는 하겠지."

"그럼 안에 뭐깔려있어?"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엥? 뭐야, VR 살 돈은 있고, 게임 살 돈은 없냐?"


"그게 아니라,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그래. 스토어에 있는 게임들은 손이 잘 안 가더라고."

"그러면, 이 게임 해볼래? 내가 다운로드 해 줄게."


"이게 뭔데?"

"내가 직접 만든 VR게임인데, 그냥 살아남으면 이기는 게임이야. 24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리얼타임이니까 참고해."

"누가 VR게임을 24시간이나 해?"

"일단 해 봐, 재밌을거야?"

"수상한데..."


게임 미리보기 표지로 봤을 때는, 현실이라고 착각할 만한 엄청난 그래픽으로 그려진 큰 도시가 있었다.

하지만 게임 설명에는 다른 말 없이, 오직 '24시간동안 살아남기' 만이 적혀 있었다.


수상쩍은 부분이 한 두 군데는 아니었지만, 딱히 흠잡을 데는 없었고 무엇보다 생존 게임에는 자신 있었다.


게임 다운로드가 끝난 후, 실행했다.




...




로딩 완료

"오, 와 그래픽 미쳤다. 이거 진짜 니가 혼자만든 게임 맞지?"


...


"야, 이거 그래픽 누구 게임꺼 베낀 거 아냐? 너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

"대답 안하냐?"


...


"응? 안 들리나? 어디 갔지?"

게임을 시작한 직후, 난 현실같은 그래픽 속의 도시 한가운데, 도로변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측 상단에는 아직 작동하지 않은 [24:00:00] 라고 적힌, 즉 24시간 타이머가 있었다.

그런데 그 타이머 밑에는 [00:05:00] 이라고 적힌 타이머가 하나 더 있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5분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멈춰 있던 하늘의 그래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중천 위에 멈춰 떠 있던 해가 빠른 속도로 지기 시작했다.


24시간동안 살아남기 전, 마지막으로 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자각했고, 나는 잽싸게 도로변가를 빠져나와 주변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고층 건물로 향했다.


딱 느낌이 누군가와 쫒고 쫒기는 술래잡기인 셈이었다. 이런 숨바꼭질 느낌의 생존 게임, 질리도록 해 봐서 알 수 있었다.

그 건물의 최고층인 20층에 도달한 후, 옥상에 올라가서 옥상문을 닫자 마자 5분 타이머가 멈추고 24시간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큰 도시에 건물이 얼마나 많은데, 날 찾는게 가능하긴 할까? 그래봤자 24시간만 버티면 끝나는건데, 딱히 어렵진 않겠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근데 나는 누구에게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거지?"


술래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등 처음 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뭔가, 이 현실적인 그래픽 때문인지, 누군가가 나를 추적한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와닿아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그 때, 화면 정중앙에 의미심장한 특수 효과음과 함께 이 메시지가 등장했다.


< 누군가가 당신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

< 주어진 24시간동안 살아남으십시오. >


직감이 와 닿는 대로, 나는 옥상에서 내가 맨 처음 있었던 도로변가를 바라보았다.

역시, 술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술래는 인간 형태가 아니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냥 잡히면 죽겠구나 싶은 핏덩어리가 이리저리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딱히 누군가를 찾는 것 같지 않았고, 내가 있었던 근처를 서성이기만 하면서 지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저게 어딜 봐서 나를 추적한다고 하는거지?"

"저래서 날 잡을 수 있긴 한가?"


1시간이 경과했다.

"저건....?"


아까 전에 봤던 그 핏덩어리가 하나 또 생겼다. 그리고, 점점 그것들이 내 주변 지역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게임, 난이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무지성이었던 괴물이 지성을 가지게 되고, 점점 수도 늘어나는 전형적인 게임의 시스템이었다.


4시간이 지나고, 5시간이 지나며 그것들의 포위망이 점점 더 좁아졌다.

이새끼들, 내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아니, 아까 전에도 그냥 거리를 활보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 흔적을 찾으며 추적하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8시간 후, 도시 내의 건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그 핏덩이들이 마침내 내 건물에도 진입했다.

결국, 소리를 들키고 말았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괴성을 질렀고, 현실과 흡사한 그래픽의 괴물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니 진짜같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붙잡혔고, 그것들의 입속을 구경하기 직전, 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임 오버인가?"

"야, 너 이게임 진짜 잘 만들었다. 괴물도 너가 직접 디자인한거야?"

"근데 아까는 왜 옆에서 대답을 안 해준거야? 나 진짜 무서웠다고"


...


나는 게임을 극찬하며 VR기기를 벗어던졌다.


"...어..?"


VR기기는 전원이 나가 다시 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내 옆에 있던 친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있는 지금, 어디서 많이 본 옥상 위에 홀로 서 있었다.

해가 져 어둑어둑한 하늘과 매서운 바람이 나를 감쌌다.


...


"참 여러모로 잘 만든 게임이네"

"리얼한 그래픽, 24시간 리얼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