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일 야간이지만 주말 야간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급한 사정이 생겨 대타로 토요일 하루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주말 오후 근무자와는 처음 만나봤는데, 점장한테 들었던것 보다는 정상적인 사람 같았다.


그는 인수인계를 하며 내게 A4용지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건 뭐예요?"


"그...주말엔 진상 손님이나 '특이한' 분들도 많이 오시거든요. 대부분 단골들이셔서 할아버지가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 밖에 주의 할것도 적혀져있구요."


참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그나저나 따로 매뉴얼을 만들 정도라니. 


심각한 진상들이 많나?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어떤 사람들인데요?"


"제 시간대에는 안오시는 분들이라 자세한건 저도 모르겠네요. 여기 나온대로만 하시면 큰 문제는 없을거라고 하셨습니다."


뭔가 꺼림직했지만 알겠다고 한 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오후 근무자는 퇴근했다.



[세븐일레븐 ○○모아점 주말 야간 근무 매뉴얼]


1. 주말 야간에는 취객들이 많이 와 숙취해소제가 금방 금방 떨어집니다. 수시로 확인하고 재고 채워 놓으세요.


2. 이 매뉴얼은 점장에게만 맡겨놓고 있으니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받았다면 지금 당장 앞문과 뒷문을 모두 잠그고 화장실 변기칸으로 가 30분동안 대기하세요. 누군가 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신경쓰지 말고 꼭 30분 동안 대기 한뒤 나와 문을 여세요. 


3. 새벽 1시쯤 밀리터리 잠바를 입고 있는 노인이 담배를 달라고 하면 '에쎄 프라임' 한갑을 드리세요. 그외에 담배는 드려선 안됩니다. 추가로 그림을 잘 살펴보고 드리세요. 그림이 마음에 안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장기가 그려져있는 담배는 되도록 피하세요.


4. 가끔 공병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중에 알수 없는 글자가 적힌 빨간 유리병을 가지고 오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편의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병이니 받지 마세요. 그냥 놔두고 가버리는 경우엔 절대 손대지 마시고 

포스기에 '쿠폰' 키를 누르세요. 5분안에 경찰이 와서 수거해 갈것입니다. 


5. 폐기음식은 가급적 드시지 마세요.  


6. 진열되어있는 튀김이나 꼬치류는 일반 손님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게 아닙니다. 평범한 손님들이 달라고 하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둘러대고 판매하지 마세요. 인근에 거주하는 중국인 무리들이 와서 한번에 사갈것입니다. 소스를 달라고 요구하면 포스기에 '쿠폰'키를 누르고 최대한 시간을 끄세요. 


7. 새벽 3시가 되면 포스기가 재부팅을 할것입니다. 그 시간에 청소를 하면 됩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꼭 배워주세요.


8. 머리가 길고 행색이 지저분한 남자가 불특정한 시간대에 야외 테이블에 쓰레기를 수거해 갈것입니다. 아무 문제 없으니 말을 걸지 마세요. 쓰레기를 다 수거한 뒤 일을 했으니 먹을걸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때 폐기 음식을 주세요. 폐기 음식이 없다면 진열되어있는 튀김을 아무거나 주세요. 


9. 까만 치마를 입은 여성 손님이 와서 '혹시 어린 여자애 한명이 오지 않았었나요?' 라고 묻는 다면 즉시 온 적 없다고 대답하세요. 7년째 근무했지만 이 시간대에 여자애 혼자 온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고 

그 여자가 울더라도 절대 위로하지 마세요.

그리고 여자가 나갈 때까지 최대한 눈을 감지 마세요.


10. 주말 오후 근무자는 여자입니다. 혹여나 남자와 근무교대를 했다면 그가 한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인수 인계받은 사항은 전부 잊으세요. 그리고 최대한 남자의 인상착의를 잊으려고 노력하세요. 


11. 10번에 상황에서 남자의 생김새가 뚜렷하게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포스기에 '기타결제' 키를 누르세요. '잘못된 포스기 조작입니다.' 라는 문구가 떠도 당황치 마시고 몇초간 기다리세요. 그 후에 포스기에 나오는 매뉴얼을 따르세요.



나는 잠시 읽는것을 중단했다.


손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매뉴얼은 12번 문단이 마지막이었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에 어서 읽어야 할것 같았다.


12. 근무 교대 후 첫 손님은 일반 손님이 아닙니다.

절대 인사를 건네선 안되며 혹여나 인사를 건넸다면 그 즉시 '쿠폰'키를 누르고 편의점 밖으로 도망치세요. 최대한 먼곳으로 달아나세요.


"ㄱ●ㅅ ㅏㄴ 해 주^#요"


나는 고개를 들었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몇일전부터 나폴리탄에 빠져서 하루종일 념글 정독하다가 알바하는 와중에 한번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