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멎을 듯한 침묵이 발표장을 둘러쌌다.

비유가 아니었다.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싸그리 입에 빗장이라도 건 것마냥 닫고 있었다. 최소한, UoJ의 대학원생 알렉산더 버뮬란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술이 말라비틀어져가는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 해 입을 쩝쩝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말을 먼저 꺼낼 생각이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뼈를 썰고 지나갔다. 그도 입술을 핥았다. 그의 옆에 선 동기 대학원생도 그러했다. 교수님은,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가린 후 핥았다. 버뮬란도 다시 한 번 입술을 핥았다. 매우 건조했다.

그의 뒤쪽에 널자락하게 놓인 슬라이드에서는 하나의 문장만이 써져 있었다. “유령에 대한 천문학 & 물리학적 관측 : 유령의 존재운동역학의 분석” 몇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 문장이 주변 물리학 컨퍼런스 회원들의 관심을 끌 것임은 자명했다. 나쁜 쪽이던 좋은 쪽이던, 보통 과학자들은 판타지와 현실의 결합에 큰 관심을 보이니까 말이다. 어찌됐던, 그에게는 이제 일생일대의 과제가 생긴 셈이었다: 첫째, 이 발표를 완수하기. 둘째, 살아남기.

잠시동안 회의장이 마치 미로같다는 생각이 그를 집어삼켰다. 교수는 벽이고, 대학원생들은 골목이다. 그곳에서 시선이라는 벌레와 경청이라는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 모두 자신을 찢어발기려는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은 간신히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열었다.

"우선 이번 발표에 초청해주신 점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발표가 시작되기 전, 혼란스러운 점 이해합니다. 그러니 이번 논문 발표가 시작되기 전 우선 먼저 제 이론의 기조부터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우주에 귀신들이 있습니다."



버뮬란은 인생 첫 구토 봉투를 폈다. 유치원 시절 랭리로 가던 가족여행의 기억이 생생하다. 첫 여행에서 그의 아버지는, 그 소중한 외동아들이 차멀미라도 할까 조심하며 파란 구토봉투 몇 개를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 버뮬란은 한 번도 구토 봉투를 써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운전 자체에 신경을 쓴 적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늘 어두컴컴한 두메산골을 헤쳐나갈 때 컨버터블 (카브리오? 카우치? 아무래도 "C"로 시작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만.) 을 열곤 했다. 자그마한 돔이 열리면 그 이후로는 오직 나만의 천문대였다. 하늘에서는 북두칠성이 반짝였고, 까마귀자리가 예이예이 하며 물을 떠왔고, 바다뱀자리가 나머지 별들을 물여죽였다. 버뮬란은 밤하늘이 어쩌면 그림자극같다고도 생각했다. 별똥별이 사람, 검은 하늘이 암막, 달이 조명인...

그리고 대략 18년이 지나서, 여기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앞둔, 자신의 삶을 별보기에 바친 청년이 있다. 세월에도 불구하고 별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가치있었으며, 특기할만한 것들이었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유령이 그저... 서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전설부터 민족신화, 심지어는 수많은 미디어까지, 전부 유령을 지구의 어떠한 영역 내에 한정된 무언가로 그려왔지요. 유령들이 자기 머리를 자르던, 사람 몸을 통과하던 개의치 않았습니다. 일종의 제한... 중력 따위의 것들에 한정될 거라고 생각했던거죠. 지구의 공전속도는 무려 시간당 107,000 키로미터를 육박하는데요."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만약 사람 몸을 통과하고 자기 머리를 자르는 것들이 그냥... 물리법칙도 따르지 않는 것들이었다면요?"

"그놈에 지평좌표계던 중력이던, 어떤 것에던 고정되지 않는 것들이라면요?"

"만약 유령이라는 것이- 그냥 말입니다- 슝 날아갔다면요? 세상에 나타나자마자, 초당 29 키로미터의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날아갔다면요?"



버뮬란은 천체관측소에 앉아있었다. 조금의 운과, 용기, 그리고 지도교수 요청을 통하여 오늘 하루에 한하여 학부의 천체관측망원경 중 하나를 몇 시간 정도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서류절차라는 괴물이 그를 압박했지만, 결론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버뮬란이었다. 이제 고대하던 유성우 관측 과정만 끝내면 되는 것이었다.

유성우, 다른 말로 "별똥별" 은 흔한 천문학적 현상이다. 작은 소천체, 소행성들이 지구 공전 궤도에 잡힌다면, 이들은 점점 움직이면서 잔해를 남기게 된다. 공전 궤도에 몰리는 극심한 물리력은 소천체를 조각내놓기 충분하다. 가끔은, 태양풍이라고도 불리는 고속의 플라즈마 이온들이 소천체를 직격해서 분쇄해놓기도 한다. 이런 조각난 잔해들을 지구가 지나가면서, 대기권 마찰을 통하여 조각들이 불타버리는 것이다. 평균자유이동경로를 벗어날 정도면 램 압력과 유체역학에 따라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 남는 것들은 먼지꼬리와 기체꼬리- 우리가 흔히 흠모하곤 하는 빛, "유성의 꼬리" 인 것이다.

최근에, 버뮬란은 조금 기괴한 소문을 들었다. 아니, '도시전설' 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묘하게 궁금증을 일으키던 그 소문은, 정확히는 기묘한 유성군에 대한 소문이었다. 평균적인 유성우 그 이상, 물리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길이의 먼지꼬리를 남기며 지나가는 유성군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그게 소천체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인 것마냥 말이다.

"별 거 아니겠지." 버뮬란은 생각했다. "옆 교수 조교가 좀 또라이긴 하니깐 말이야."

시계는 이미 열두 시를 가름켰다. 미리 계산해놨던 천구 모델링에 따르면 이 때쯤 사분의유성우가 보일 시기이다. 버뮬란은 얼굴을 잠시 찌뿌리고, 두 눈을 렌즈에 가까히 붙였다. 찌그러진 얼굴이 마치 넙치를 그대로 따다 붙여놓은 듯 했다. 그러나 버뮬란의 바람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완전한 암흑,





그리고 또 암흑,


암흑,


그리고, 백색.





강렬한 백색이 그의 시신경을 덮쳤다. 지속적이고, 영구한, 무서울 정도의 백색이었다.

버뮬란은 망원경의 궤도를 상승시켰다, 백색. 좌측 15도, 백색. 하단으로 다시 한 번 15도, 백색. 모든 곳, 백색. 하양. 하양. 하양. 하양. 갑자기,

틈.

약간 어두운, 회색 틈이 보였다.

그리고 더 많은 틈.

조금 더 세밀한 틈.

조금 더 오밀조밀한 틈.

찌그러진, 넙치같이 생긴 .

그리고 사이.

늘어난, 가변된 백색과 흑생의 융합체가, 장대한 먼지꼬리를 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저런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아니, 불가능한 유성우였다. 상식적으로 저리 긴 먼지꼬리나 기체꼬리는 생겨날 수 없었다. 우리 행성이 몇십 배 정도는 커야 가능할 정도의 크기,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리고,








































"만약, 아까 말한 것처럼, 중력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쳐봅시다."

"그렇다면 사람이 말입니다. 사람이, 음, 지구공전속도와 유사한 물리력으로 우주에 던져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십만 킬로미터 이상, 초당 이십구 키로미터의 속도로 우리 하늘을 가로지르는겁니다. 유사한 물체가 몇 개 정도 더 겹친다고 생각해보자고요. 예를 들어서, 오십 개 정도. 색있는 꼬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 아니겠습니까? 마치 유성의 먼지꼬리나- 기체꼬리마냥 말입니다. 유성우처럼요."

"그럼 다시 생각해봅시다.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요? 지금까지 관측된, 그리고 관측될 유성군 목록에 얼마나 많은 항이 추가되었을까요?"



아무래도 천문학적 숫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