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일이다.


그때는 스마트폰조차 없던 때였고, 집안에서의 컴퓨터 게임은 부모님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랜선을 뽑아놓아서 불가능했다.


결국 놀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돌아다녔고, 나와 친구들은 주로 pc방을 가거나 돈이 없어서 그마저도 못하면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


그중에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을 탐험해 보는 놀이가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는 항상 기이한 건물들이 존재했다.


보통 종교와 관련된 건물들이거나 혹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그런 곳이었다.


그러던 와중 우리는 텅 빈 집 한곳을 발견하였다.


우린 그날 보물이라도 찾은 것 마냥 그곳에서 경찰과 도둑이나 얼음 땡 등을 하고 재밌게 놀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부모님이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야 했고, 학원이 끝나면 이미 해가져내렸다.


그 당시 나는 그런 상황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반항심에 일탈을 결정하고 발걸음을 집이 아닌 pc방 쪽으로 향하던 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예전에 내가 친구들이랑 놀던 그 버려진 집.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텅 비어있어야 할 우체통에는 검은색 봉투가 꽂혀있었고 집 안쪽에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나는 우체통에 손을 넣어 그것을 챙기고는 안으로 들어가 봤다.


폐가 안쪽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손에 만년필을 들고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분명 사람이 없어야 할 곳인데도 사람들이 가득 있는 걸 본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재빠르게 도망치려고 뒤도는 순간, 문 앞을 어떤 남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고 앞에서 강의를 하던 아저씨는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위압감에 얼어붙은 나는 가방과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은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한국말인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박동 쳐 오고, 두려움과 후회에 뒤섞여 눈물이 흘러내렸다.


별일 아닐 거라고, 그냥 이상한 종교 모임 같은 거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켜도 보았다.


그럼에도 내 직감이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가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지만 문을 지키고 있던 남자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바닥에 내려놓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다시금 말소리가 멈추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응시한다.


앞에서 강의를 하던 사람한테 걸어가 봉투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저는 이거 전해주라고 심부름 온 건데요."


그는 조용히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문쪽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문 앞에 있던 사람이 길을 비켜주었고, 나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온 뒤 집을 향해 전력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한 뒤에는 울면서 부모님한테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했다.


우리 부모님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건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나를 앞장세워 그곳으로 향했었다.


어른들과 함께 문 앞에 도착한 나는 몸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안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여오지 않았다.


바닥에 난 발자국이라곤 어린아이의 신발 자국, 그러니까 내 발자국 밖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있던 방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경찰들에게 사과를 한 후, 내게 불같이 성화를 내셨다.


나는 졸지에 학원 가기 싫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 아이가 되었지만 그딴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분명히 내가 이곳에 두고 왔던 가방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내가 앉아있던 곳만 먼지가 움푹 파여져 있었다.


그 남자가 강의를 할 때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이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날 본 것들이 결코 거짓이 아님임을 확신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그때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