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公州)의 김서겸(金序謙)이라는 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주 옛날, 풀들이 말도 하고 숨도 쉬던 시절에 여기로부터 남쪽으로 이백 리를 걸어가면 곤제(昆)라 하는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땅이 매우 기름지고 인심이 후하여 살기에 좋아 큰 잔치가 열릴 적에는 길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가난한 자들은 마을의 아무에게나 부탁하여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그 누구도 이를 꺼리지 않아 굶어 죽는 자가 없었는지라.


그런 곤제 사람들도 유일하게 화를 내는 때가 있는데, 외지 사람이 독경(徑)에 대해 묻는 때에는 불같이 노하며 망설임 하나 없이 그를 마을에서 내쫓고는 했다.


독경은 그 이름대로 홀로 나 있는 길이며, 글을 배우지 못한 자들은 속된 말로 '짝길'이라 불렀다.


본래 길은 홀로 날 수 없는지라. 천하의 어떤 길도 앞과 뒤가 있으며 좌우로 능히 오갈 수 있을진대, 날개가 한 짝인 새가 하늘을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허나 짝길은 앞으로 가는 길만 있지 뒤로 가는 길은 없어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어 길도 보통 길이 아닌 짝길인 것이다.


양난 이후,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짝길을 입에 담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흑지(黑只)라는 자가 있었다. 정묘(丁卯)년 봄에 목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을에서 사랑받는 자였다.


덕망이 높고 입담이 좋은 덕에 주변 마을에서도 흑지라는 이름이 알려져 저자 한가운데서 흑지라는 이름을 말하면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알은체를 하는지라.


세상에 난 지 스무 해가 되던 때에 흑지는 나무를 하러 고개를 넘는 중이었다. 곤제는 마을을 둘러싼 여러 산맥을 끼고 있는데, 흑지가 크고 작은 고개 중 계령(界嶺)을 넘던 때였다.


언덕의 꼭대기로부터 동쪽으로 석 리쯤 되는 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개가 솟아나자 흑지는 매우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내다보았으나, 나무가 몹시 무성하여 안을 살필 수 없었다.


흑지는 호기심이 동하여 지게를 내려놓고 행색을 가벼이 한 채 그 고개로 향하고자 하였다. 그때 들풀이 말하기를, "흑지야 가지 마라. 전하께서 밟은 길을 너도 밟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흑지 말하기를, "들풀아 걱정 마라. 나는 천성이 목수라 나무를 하는 사람인지라. 오늘 장작을 구하지 않으면 내일 해야 하거늘, 괜한 걱정 말고 안심하여라." 하였다.


곁에 있던 민들레 말하기를, "흑지야 가지 마라. 저 자리는 대문 난 자리라 네가 허튼짓을 하게 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였다.


흑지 말하기를, "민들레야 걱정 마라. 이보다 더 위험한 일도 겪었는데 왜 그리 걱정하느뇨?" 하며, 발을 재촉하며 고개를 내려갔다.




그 무성한 나무 아래는 아주 그늘져 도저히 사람이 지나다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흑지는 어디 길이라도 없나 주위를 돌아다니다 잘 다져진 흙길을 하나 찾아내었다.


입구의 양옆에는 어림잡아 흑지의 키 만한 돌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석상은 무인의 형태를 하고 있어, 가슴께에 석 자로 이름이 무어라 새겨져 있었으나 흑지는 천한 신분이라 읽을 수 없었다.


흙길은 그 입구서부터 무척이나 복잡하게 꼬여있어 길을 잃기에 쉬웠다. 더군다나 볕 하나 들지 않게 촘촘히 자라난 나무 탓인지 길은 나아갈수록 계속해서 어두워졌다. 일각쯤 걷자 흑지는 지척에 있는 돌덩이도 감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자 할미꽃이 말하기를, "흑지야 돌아가라. 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으니 너는 내 말을 들어 목숨을 보전하라." 하였다.


진달래 거들기를, "흑지야 돌아가라. 영감 말을 귀담아들으면 탈이 없을진대, 너는 어째서 앞으로 가느뇨?" 하였다.


그러자 흑지 말하기를, "너희는 이 길의 끝에 가본 적이 있느냐. 나는 가야만 하니 막지 마라." 하였다.


할미꽃 말하기를, "나는 네가 처음 울 때부터 보아 왔거늘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네 마음을 십분 이해하나 이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니 어서 돌아가거라. 너는 고집 말고 곤제 사람을 용서하라."


흑지는 말없이 할미꽃과 진달래를 떠나 재차 걸었다. 민들레가 무어라 말하였지만 흑지는 괜히 무시하였다. 어찌 세상이 이리도 야속하리오.




흑지는 걷는 내내 일광(日光)도 못 보고 월광(月光)도 못 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저 나무에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덤불 앞에서 왼쪽으로 반 바퀴, 풀 무더기 사이로 이리저리 길을 따라 걸어가자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허나 숲 속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향취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진해지는지라.







흑지는 문득, 숲 속이 매우 고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주위에서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니, 꽃들의 말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더라. 흑지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 역시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허나 앞으로 걷는 소리는 여전한 것이, 그는 이제 뒤로 갈 수 없음을 뜻하는지라.









흑지의 길은 높이가 여덟 척인 거대한 대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상천문(鎟天門)이요, 언덕을 가득 채우는 향취 또한 이 대문에서 나는 것이다. 사백 년 전에 하늘 도련님이 그 문을 열어 하계에 내려오셨다더라.


도련님이 세상에 내려오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었으며, 짓는 농사마다 풍년이요, 어딜 가도 곡하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조선의 작은 마을인 곤제라는 곳에서 ■■■ ■■■ ■■■■ ■■■■ ■■■.


그러자 곤제의 사람들은 그 길을 신성시하여 입에 올리는 것을 금하였고, 마을 바깥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도련님은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이후로 마을의 그 누구도 짝길의 끝에 있는 대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며 언제부터 그 길이 났었는지조차 아는 자가 없었다.




흑지는 사람이 손이 닿지 않아 무너지기 직전인 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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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곧 통하지 않는 길인지라.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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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간 사라진 흑지가 마을에서 다시 나타났다. 사람들은 흑지를 반겼으나 흑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토록 말이 많던 흑지가 어디서 무슨 일이 겪었는지 수없이 질문하였으나, 침묵할 뿐이더라.


들풀, 개나리, 할미꽃, 진달래, 그리고 다른 풀들마저 흑지를 위해 침묵하였다.


흑지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자신이 이전에 살던 낡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흑지는 아사하였다.


식물이 말하지도 않고 숨 쉬지도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





ㅡ 『화담징록』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