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한테도 폐 안 끼치고 조용히 죽고 싶어서 산에 올라와서 독버섯 먹음. 근데 안 죽음. 아무렇지도 않음.



 

통신 먹통. 다행히 아직 해는 쨍쨍함.



 

하늘이 한 번 더 기회를 준 건가 싶다. 나 원래 무신론자인데 오만 생각이 다 드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휴대전화 비밀먼호 풀어둠. 



 

등산로 따라 계속 걷는 중. 사람 아무도 없음.



 

진짜 특이한 나무 봤음. 가만히 서서 넋놓고 보는데 모긴지 벼룩인지 벌레가 자꾸 물어서 사진 몇 장 찍고 자리 뜸.



 

몇 시간 걸은 것 같은데 해질 기미 없음. 오히려 너무 눈부심.



 

내려가면 어떻게 살지. 빚은 어떻게 갚지. 뭐해먹고 살지.



 

다시 죽을 용기는 없다.



 

아니 그 나무가 저렇게 컸었나? 왜 여기서도 보이냐?



 

물 거의 다 마심. 큰일났음.



 

등산로 끊김. 다행히 경사 완만하고 내려갈만한듯.



 

나무 보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냐. 너무 아름답다.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경사 점점 급해지는데? 이러다 진짜 유언장 되겠다.



 

하늘이 너무 눈부심. 



 

경사 다시 완만해짐.



 

너른 들판에 이름모를 꽃들이 만개해있다.



 

와 하늘 진짜 미쳤다.



 

나무 뿌리가 따뜻하다. 나무는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가는데.



 

꽃들이 나에게 살아가라고 노래한다. 난 정말로 미련했구나. 나약했구나.



 

나무는 땀흘려 일하시던 부모님처럼 꿋꿋하고 흙은 첫사랑의 품처럼 포근하다.



 

그리고 하늘. 저 하늘만큼은 잊지 말자. 앞으로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 인생을 살게 되든, 여기 이 들판에 누워 저 찬란한 하늘을 보았던 사실만큼은 잊지 말자.



 

들판의 꽃들이 내 얼굴, 내 온몸에서도 피어난다.



 

보인다.



 

정말이었구나.



 

진짜 계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