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은편 아파트의 관찰 일지 >





날짜 : 3월 16일


오늘부터 나는 이 관찰일지를 작성할 것이다.


이것을 누군가가 본다면 필시 나를 스토커나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혹여라도 이 글을 볼 누군가가 있다면, 이는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 아님을 알린다.


시작은 내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로 생활패턴이 꼬이게 된 시점부터였다.


내 직업 특성상 일하는 시간을 자유로이 조절 가능했고 이에 생활패턴이 남들과는 다르게 변했다.


그 당시 나는 오후 중에 잠을 자고 ( 대략 오후 4시 - 밤 12시 )


새벽부터 눈을 뜨곤 일을 시작한 뒤 해가 지기 전에 취침을 하게 되었다.


주로 새벽 3~5시 사이 나는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그러던 중 내 시선이 맞은편 아파트로 향하였을 때였다.


상대편 아파트의 모든 불이 꺼진 상황에서 그 집의 불이 딱 켜졌다.


14층의 푸른색 조명


처음에는 이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위 상황은 한두 번만 지속되지 않았다.


몇 번까지는 그저 단순한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창밖을 내다볼 때면, 어김없이 그 타이밍에 맞춰서 불빛은 켜졌다.


시간대를 바꾸어봐도, 어느 상황에서 건 끊임없이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저쪽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의심이 싹터 나는 이 관찰일지를 작성한다.


오늘도 역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날짜 : 3월 18일


아무래도 상대방이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오늘 시험 삼아 거실의 전등을 세 번 정도 깜박여보았다.


그에 호응하듯 저쪽에서도 조명이 세 번 꺼졌다 켜진다.


두 번일 때는 두 번


다섯 번 일 때는 다섯 번


네 번일 때는 네 번


나를 의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로써 저쪽에서 오래전부터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게 거의 확실시되었다.





날짜 : 3월 19일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왜?


단순한 장난이라기엔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야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확인하고 따진다면 해결될 일이지만 걸리는 것이 있다.


만약 이 상황이 의도 된 것이라면?


가령 상대가 여자일 경우 설사 저쪽에서 먼저 스토킹을 시작했더라 하더라도


내가 찾아가는 순간 나를 스토커나 범죄자 따위로 몰아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내가 스토킹을 먼저 당했다는 마땅한 증거 또한 없지 않은가?


그렇다. 단순히 상대 편 아파트의 불빛이 내가 창밖을 내다보는 시점에서 깜박거린단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가 먼저 스토킹을 시작했다는 것을 경찰이 받아 줄 리가 없다.


CCTV를 설치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CCTV를 설치할 경우 내가 범죄자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노린 신종 범죄 수법일지도 모르겠다.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직접 찾아가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한동안 생각해 봤고, 맞은편 아파트에서 완전한 관심을 끄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단순한 장난인지, 무언가를 노리고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반응해 주지 않는다면 저쪽도 흥미를 잃고 포기하겠지.





날짜 : 3월 23일


관심을 주지 않으려 했건만, 결국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눈길이 돌아가고 말았다.


거기에는 커튼 너머로 넘실거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것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옷걸이 따위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의식하듯이 말이다.


이제는 정말 내가 피해의식이라도 있는 건가 생각이 든다.


관심을, 관심을 끄자.


별거 아닌 일에 내가 너무 피곤하고 예민하게 군 것 같다.


일지도 앞으로 작성하지 말자.


설사 진짜 스토킹일지라도 이런 소극적인 장난을 벌이는 상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날짜 : 3월 27일


일지를 계속 써야만 한다. 심각한 상황이 일어났다.


내 집문 앞에 고양이 시체가 놓여있었다.


범인은 14층이라 확신하고 있다.


확인해 보기 위해 경비실에 연락하여 CCTV 자료를 요청하였지만, 우연인지 그 시간대에 CCTV가 일시적으로 고장이 나있었다.


아마 이마저도 노리고 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이는 분명히 나를 향한 경고이자 어떤 신호라고 생각한다.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날짜 : 3월 28일


커튼 너머 실루엣이 보인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로 보아 내 생각대로 여자가 맞는 것 같다.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어제의 선물을 잘 받았냐는 뜻이겠지.


더 이상은 피하지 않는다.


발뺌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잡을 것이다.


지금도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을 알기에, 나도 저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녹음기와 CCTV, 호신용품을 주문해두었다.


정면 승부를 할 것이다.


저쪽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어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게 할 생각이다.






날짜 : 3월 29일


아직 내 신변에 이상은 없으며 저쪽 역시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오늘 새벽에도 내가 창밖을 내다보자 불이 켜지고 그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자 저쪽도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일단 내 집안과 우리 집 현관 쪽 소화기에 각각 CCTV를 설치해두었다.


혹여라도 저쪽에서 어떠한 행동을 해온다면 증거를 잡을 수 있겠지.


마음 같아선 확실히 증거를 잡을 수 있도록 우리 집에 한번 침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녹음기와 전기 충격기는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다.


이 정도 준비를 해놓았다면 저쪽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해도, 설사 무기를 들고 온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할 것이다.





날짜 : 3월 30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29일과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날짜 : 3월 31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위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날짜 : 4월 1일


저쪽의 조명이 바뀌었다.


분명히 은은한 푸른빛의 조명이었는데 붉은빛의 조명으로 바뀌었다.


이것 또한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겠지.


그 외에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위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날짜 : 4월 2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위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날짜 : 4월 3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위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날짜 : 4월 4일






날짜 : 4월 5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으며 위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저쪽도 무언가 큰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설마 내가 계속 반응해 주기 때문인가?


나는 저쪽을 보다 크게 자극하려 한 행동이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만족감을 안겨주었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무관심하게 넘겨버린다면 나를 향해 어떠한 액션을 취할지도 모른다.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이전처럼 나는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지 않을 것이다.





날짜 : 4월 6일


대응 방식을 무시하는 것으로 바꿨다.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날짜 : 4월 7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날짜 : 4월 8일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날짜 : 4월 9일


저쪽에서 반응이 왔다.


문을 열고 나가자 우리 집 앞에 놓인 참새의 시체가 보여왔다.


아, 드디어 입질이 왔구나 하고 처음엔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소화기 앞에는 이웃집에서 온 커다란 택배 박스가 막고 있어서 그 어느 것도 찍히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의 CCTV는 어제 점검 중이었다고 한다.


절망적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귀신이 아닌 이상에야 어떻게 이 모든 상황을 이토록 치밀하게 맞춰 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나를 향한 경고다.


나는 언제라도 증거를 안 남기고 너를 죽일 수 있다는 경고.


그러니 당장 창문으로 나와서 내게 반응하라는 무언의 압박


이렇게 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날짜 : 4월 10일


이사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에는 돈이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억울했다.


가슴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토록 시달려야 하는가?


이곳은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내 집이다. 여태껏 잘 살아왔단 말이다.


어떤 미친것 하나 때문에 내가 왜 이래야 하냔 말이다.


당장에라도 가서 따지고 싶지만 감성적으로 나가면 내가 불리하다.


오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나는 반응해 주지 않았다.





날짜 : 4월 11일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곳을 쳐다만 볼 뿐, 저쪽에 어떠한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불이 꺼졌다. 내가 시선을 떼기 전 불이 꺼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뒤 맞은편 아파트의 복도 계단 창문 쪽에 모든 불이 일시적으로 다 켜졌다.


14층 여자라 추정되는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층 내려갈 때마다 계단 창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굴은 뿌옇게 보여서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긴 생머리를 보아 그녀가 맞다.


나는 일단 현관으로 달려가 문단속을 한 후 잠금장치까지 걸어두었다.


1층과 2층 사이 창문에서 마지막 모습을 비춘 뒤로 계단의 모든 불이 꺼젔다.


한참 동안 응시했지만 아파트 현관에서 나오는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마 엘리베이터로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불안했다.


나를 향한 메시지인가...?


차라리 내가 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나을까?


두렵다. 어디까지 나를 몰아붙일 생각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대로 가다간 내가 정말 미처 버릴지도 모르겠다.





날짜 : 4월 12일


현관 앞에 강아지 시체가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소화기 쪽 CCTV로 시선을 향했고 이번엔 택배 상자 따윈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왔다 생각하며 나는 CCTV를 확인한다.


CCTV는 정상작동했다. 들뜬 마음으로 확인해 보았지만 그곳에 찍힌 것은 터무니없는 결과였다.


계단 쪽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우리 집 앞에서 픽 하고 쓰러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시체들이 14층의 소행이 아니란 말인가?


그럴 리 없다. 나는 창밖에서 보내져오는 메시지들을 보았다.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도 나는 이 모든 상황이 14층이 벌인 짓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담판을 곧 지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커튼 너머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여온다.





날짜 : 4월 13일


나는 오늘 새벽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서는 것을 보았다.


그제와 마찬가지로 계단 복도의 모든 불이 켜지며 그것은 아파트 옥상으로 향해올라갔다.


얼굴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었건만 컴컴한 어둠 속에 휩싸여 보여오지 않았다.


옥상에서 뻔뻔스럽게도 나를 향해 양 팔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이었다.


옥상 아래로 몸을 내던진 것은.


무엇이지?


순간 몸이 굳었지만 금세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


나한테 해코지하는 게 목적이 아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 주길 원해서였나?


다급히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 후, 나는 경찰서로 가서 진술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허위 신고.


그날 맞은편 아파트 아래로 떨어져 내린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확인해 본 결과 맞은편 아파트 14층은 현재 공실 상태로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어찌어찌 일을 해결하고 돌아왔건만,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 내가 그곳으로 직접 가서 확인해 볼 것이다.





날짜 : 4월 14일


정말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14층은 현재 비어진 곳이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내가 정말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인가?


더 이상 그곳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맞은편 아파트의 모든 불빛이 꺼져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집 안에 있는데 계속해서 시선과 한기가 느껴진다.


해가 뜨면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


내게 어떤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일지는 계속 작성할 것이다.


이제는 관찰 일지가 아니게 되어버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