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연구원장은 비서실장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통령비서실이라는 주요 기관을 책임지기에는 비서실장이라는 남자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어제 막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믿겨질 뽀송뽀송한 얼굴에, 넓은 어깨와 훤칠한 키를 보니 비서실장 자리를 어떻게 얻은 것인지 뻔했다. 작년에도 젊은 남자 배우를 주말 저녁에 집무실로 불러들였다가 스캔들이 터져 지방선거를 다 말아먹을 뻔 했던 것이 현 대통령이라는 작자였다.


 "각하, 국립미래산업연구원장 도착했습니다."


 "어어, 이리로 모셔와."


대통령은 얼마 전에 보톡스를 맞아 다소 부은 얼굴로 반갑게 연구원장을 맞이했다. 저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는 연구원장은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속으로 한탄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인면수심의 짓을 저질러 달라고 부탁할까 궁금해하며 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리 불편하고 꺼려져도, 연구원장은 대통령을 욕할 수 없었다. 전문성과 경력에서 다른 후보에 비해 한 끝발 밀리던 그를 국립미래산업연구원의 우두머리로 앉힌 것이 중고등학교 동창인 과학부 장관이었다. 그리고 과학부 장관은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나 마찬가지였다. 자리를 보전하고 친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연구원장은 연구원의 권위를 팔았다.


여당 의원들의 비리를 밝힐 증거를 손에 넣은 기자가 본인 차의 자율주행 기능 오작동으로 인해 한강으로 뛰어들었을 때는 직접 뉴스에 나와 자동차 회사를 탓했다. 대통령 사위에게 투자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시위하던 곳에서 노점상의 태양전지가 폭발해 83명이 죽었을 때도 태양전지를 만들던 회사에서 결함품을 팔았다고 인터뷰했다.


 "우리 연구원장님 드시게 얼마 전에 당대표가 가져온 그 망고 있잖아, 그것 좀 내와봐."


 "예, 각하."


예상대로 비서실장이라는 자는 평소에 허드렛일이라도 해야할 정도로 전문성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 배알도 없는 젊은이가 밤에 대통령의 침실에서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연구원장이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곧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기, 원장님. 오늘 부른 게 다름이 아니오라, 그 왜... 요즘에 다들 환율 너무 올랐다고 그러잖아요. 아니, 해외에서 뭘 사면 얼마나 산다고들 그 난리인지, 허허."


실없는 너스레로 시작된 대통령의 말은 곧 특정 방송국에 대한 불만으로 치달았다.


 "...아무튼 그래가지고, 그 개새끼들이 자꾸 없는 말 만들어내고, 과장하고, 하면서 우리 국민들 겁주고... 그, 뭐냐, 사회를 혼란시키고 그러는데, 그거 내가 가만히 앉아서 두고보고 있기도 참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예, 각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요즘 언론들이 진짜 문제되는 부분에는 눈가리고 아웅하면서,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문제만 가지고 자꾸 떠벌거리는 거 저도 아주 신물이 납니다."


연구원장은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처음에는 눈 앞의 무능한 머저리에게 아부할 때마다 심장이 1g씩 말라비틀어지는 기분이었으나 이젠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었다.


 "아유, 우리 연구원장님 말씀들으니까 내가 좀 힘이 나네. 그래서 말인데요, 그 방송국 새끼들 좀, 요 몇 달 간만이라도 입 다물게 하고 싶어서요. 마침 내가 우리 과학부 장관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연구소에 그 뭐냐... 컴퓨터 바이러스? 그런 게 있다면서요?"


연구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저희가 연구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하면 기껏해야 기업을 삥 뜯는 랜섬웨어 정도고, 방송국 놈들 혼구녕 내줄 만한 물건은 국방과학연구소에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학부 장관이 그 뭐냐... '금령'이랬나? 뭐,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헙..."


연구원장은 하마터면 입에 든 율무차를 도로 컵에 쏟을 뻔했다. 기업과 기관을 위해 백신, 방화벽 등을 연구하는 곳에 바이러스를 내달라는 의뢰를 하는 것도 웃겼지만, 그 뒤에 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금령'은 그냥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귀여워보이게 할 정도로 흉폭한 인공지능이었다. 그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덥석 말해버린 과학부 장관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싶어서 연구원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하, 각하, 금령은 저희가 사실상 폐기한 물건이라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굳이 이런 수단이 아니어도 방송국 놈들 덜덜 떨게 할 방법은 많지 않겠습니까?"


 "아이 뭐,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도 많이 나오기야 하겠죠. 근데 언론에서, 특히 MVC 놈들 요새 말하는 뽄새를 보니까 이것저것 쟁여놓고 있는 모양이에요. 얼마 전에 당대표도 와가지고 뉴스에서 자꾸 깽판치는 것 좀 당장 어떻게 해보라고 했거든. 안 그래도 요즘 어려운데 정권 말에 가서 이상한 소리 빵빵 터뜨려대기 시작하면 진짜 힘들어진다고. 그래서 말인데, 방송국 데이타베이스인가? 그거 한번 싹 날려버리면 한동안 조용할 거 아냐."


쓴웃음을 지은 대통령과 달리 연구원장은 이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릴 기력도 없었다. 대통령은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분고분 따르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도 다들 징징대길래, 내가 '오늘 원장님 불러서 얘기 좀 해보겠다, 근시일 내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지 여쭤보겠다, 그러니 좀 기다려라.'하고 우리 당 쪽에 말해놨거든요."


 "허허,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나마 금령이 뭔지 알고있을 과학부 장관이라는 작자는 아예 나서서 대통령에게 건드리면 안될 물건에 대해 일러바쳤다. 여러 뒷공작을 부탁받으며 안면을 튼 당대표도 이번에는 먼저 대통령에게 주문을 넣은 입장이었다.


 "각하, 그 금령이라는 물건 말입니다..."


 "어어, 이제 왔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망고 따러 과수원 갔다왔어?"


비서실장이 쟁반에 망고가 든 접시를 받치고 들어왔다. 서글서글하게 웃고있는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비서실장은 웃음기를 전혀 띄우지 않고 있었다. 쟁반을 내려놓고는 조각 같은 얼굴로 방 한 켠에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것도 연구원장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늙은이 성격에 저렇게 싸가지 없어보이고 뻣뻣한 남자를 좋아하나?


연구원장이 할 수 있는 추론의 전부였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원장님. 진짜 맛있어. 내가 열대과일 좋아해서 망고 많이 먹거든요. 근데 이건 달라요."


연구원장은 감사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없는 입맛을 꾸며내며 노란 과육을 포크에 찍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무튼, 각하, 금령은 조금 시일을 가지고 생각해보시는 게 어떨지요?"


 "아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좀 급해야죠. 요즘 하루하루 피가 말라요."


 "이게 그냥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니라 인공지능입니다."


 "네, 네, 그것도 들었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 바이러스라서 성능은 확실하다고. 장관님이 쓸 때 조심해야 한다고 그러던데."


 "각하, 조심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게..."


 "아, 거 참. 내가 없는 거 만들어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퉁퉁 부은 돼지 같은 얼굴에 더 이상 실없는 웃음기가 어려있지도 않았다.


 "많이 어렵습니까?"


 "각하, 그게 아니오라..."


 "그게 뭔데 그럽니까? 과학부 장관이 그거 하나 방송국 서버에 업로드하면 자료 날려버리는 거, 뭐, 1분도 안 걸린다고 그러던데. 연구원장은 생각이 달라요?"


 "다르긴요, 물론 장관께서 하신 게 맞는 말씀입니다."


연구원장은 진땀을 빼며 황급히 구실을 꾸며냈다.


 "근데, 금령을 이런 일에 동원하면 당연히 이게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질테고, 그러면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사용했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게 사이버무기인데 금령의 효과도 반감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금령은 무기가 아니었다. 무기를 만들 설계자나 디자이너라면 또 모를까. 연구원장은 대통령에게 그 부분까지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예.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송국도 방송국이지만, 저희도 금령에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대처요?"


 "예, 각하. 이놈이 백신으로 뚝딱 잡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


 "방송국에 쓸 건데 왜 우리가 대처를 합니까?"


대통령은 잠시 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원장님 사람이 너무 좋으셔서 탈입니다. 설마, 대충 일 처리되고 나면 그 새끼들 바이러스 잡는 거 도와주려고 생각하셨어요? 그걸 왜 우리가 해결해줍니까. 하드디스크 감염된 거 다 뽀개버리든 말든 가만히 지켜봐야죠."


대통령은 딱하다는 눈빛으로 연구원장을 쳐다봤지만, 연구원장은 대통령이 한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각하. 금령이 불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방송국 서버에 금령을 풀어놓는 건 방송국에 불을 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불이 다른 곳에 옮겨붙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럴..."


 "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그... 시간도 필요하거니와...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각하, 시간을 아무리 주셔도 금령에 대처하기는 어렵습니다. 못해도 한 2년은 있어야..."


 "2년? 장난합니까?"


대통령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연구원장은 여기서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대가가 있을 것임을 알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일자리를 잃는 것과 방송국에 희대의 사이버 테러를 벌인 미친 과학자가 되는 것 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였다.


하, 제기랄. 오늘이구만. 정권 끝나기 1년 전까지는 있을까 했는데.


연구원장은 작심하고 발언을 이어나갔다.


 "금령은 인공지능입니다. 불로 치면 살아있는 불이란 말입니다. 그냥 불도 잡기 어려운데 이놈이 소방관이랑 머리싸움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물며 큰 불로 자라나다 못해, 산불이 되기라도 하면 어쩌시렵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뉴스 자료만 터뜨리면 된다니..."


 "불이 말을 듣는 것 보셨습니까? '저기 가서 책 두 권만 태우고 얌전히 꺼져라.'하면 꺼집니까?"


 "아니, 근데, 이 사람이 지금 말하는 태도가..."


 "금령은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폐기된 것과 다름 없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도 어떻게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와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한동안 연구원장을 노려보던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화가 났지만, 참는 것이 역력했다.


 "원장님, 그렇게만 보실 게 아니라 내가 부탁 좀 하겠습니다. 원장님이 여태까지 고생 많이 해주신 거 제가 물론 알지요.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제가 앞으로는 이런 무리한 부탁 다시는 꺼내지 않을게요."


이번 일만 잘 넘기면 네 모가지를 치겠다는 소리임을 연구원장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만 좀 도와주십시오. 아닌 말로, 그 금령이라는 거, 만든 사람이 있으니까 세상에 나온 것 아닙니까? 만든 사람도 어찌 못하는 프로그램이 어딨어요?"


자기가 말하고서 퍼뜩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대통령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그거 만든 사람 누굽니까?"


 "금령을 만든 사람 말씀입니까?"


 "예. 아직 연구원에 있습니까?"


연구원장에게는 그 가소로운 속내가 너무나 뻔히 들여다보였다. 대뜸 금령의 제작자를 묻는 것에서, 말 안 통하는 중간자는 치워버리고 개발자에게 직접 지시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났다.


 "만든 사람들은 여전히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데 애초에 금령을 폐기하기로 한 게 그 사람들입니다. 본인들 스스로 금령을 다룰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대체 뭔 일인지 들어나봅시다. 아니, 잘 만들어놓고 못 다룬다는 건 뭡니까? 그래봐야 컴퓨터 바이러스인데."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 놈의 인공지능, 뭐가 문제냐는 말입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살아있는 불이나 마찬가지라고. 불은 사람 말을 안 듣습니다."


 "사람 말을 안 들어서, 뭐... 아, 지금 터미네이터 같은 얘기 하고 있는 거에요?"


 "터미네이터가 아니라..."


연구원장은 짜증을 참으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은 그도 인공지능이 자아를 얻고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죄다 죽여버리려는 상황과, 그냥 코딩이 뒤틀려서 명령어를 새로 입력할 수 없는 현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짚어줄까 싶었다. 다만, 비전공자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말로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를 예시로 들어야 이해가 쉬울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비슷합니다. 코드가 아주 꼬여도 복잡하게 꼬여서 명령을 새로 입력할 방법이 이제 없습니다. 사람 말을 전혀 안듣는다는 말입니다."


 "자세히 좀 말씀해보세요."


금령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금령 자체에 흥미가 생겼는지 대통령은 연구원장을 닦달했다. 연구원장은 기뻐해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가늠하면서 운을 뗐다.


 "그럼... 각하, 혹시 '헤이젤 지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게 뭡니까?"


 "사고의 복잡성을 나타내는 지표 같은 겁니다. 지적 능력 중에서도 수리, 공간지각력 같은 부분은 우리가 '아이큐'라고 측정해서 내놓고, 사회성이나 공감능력 같은 건 또 '이큐'라고 측정하잖습니까. '헤이젤 지수'도 그런 것의 일종입니다.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얼마나 많은 요인들을 동시에 감안할 수 있느냐, 얼마나 많은 추론 단계를 거쳐서 이상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느냐, 이런 걸 측정한 겁니다."


 "허허, 그런 게 있어요?"


 "예, 각하. 보통 인간의 헤이젤 지수는 90 언저리인데, 100을 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한 주제를 놓고 여러가지 관련된 분야들을 감안하면서 다각도로 사고해야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의 경우 그렇습니다. 아마 각하께서도 대략 한 105정도는 되지 않을까, 제가 예상합니다."


연구원장은 대통령의 흥미가 가시지 않도록 적당히 아부를 섞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습관이 된 본인의 아부에 치를 떨었다.


 "이 헤이젤 지수라는 건 일종의 종합지능 역할을 합니다."


 "종합지능이요?"


 "예, 각하. 예를 들자면, 아이큐는 수리력과 공간지각력 위주잖습니까. 그러니 아이큐가 높은 사람이 아이큐가 낮은 사람보다 수학 문제를 잘 풀 수밖에 없겠지요."


 "흠, 그렇겠죠."


 "하지만, 아이큐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쓸 수는 있습니다. 아이큐는 언어적인 역량을 나타내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모든 '지능'이라는 게 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학 분야에서 아인슈타인 저리가라 할 정도인데, 문학에는 젬병이고, 어떤 사람은 작곡을 천재적으로 하는데, 틀린 그림 찾기를 하라고 하면 아주 까막눈이 되는, 그런 사례가 빈번합니다."


대통령은 망고를 우물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이 헤이젤 지수는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분야를 가리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똑같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헤이젤 지수가 더 높은 사람이 더 뛰어난 작품을 그리고, 아이큐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헤이젤 지수가 더 높은 사람이 수학 문제를 더 잘 풉니다."


 "오호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이 헤이젤 지수가 중요합니다. AI의 헤이젤 지수가 높으면 높을 수록 인간이 보기에 진짜 사람 같기 때문입니다. 헤이젤 지수가 70인 인공지능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인공지능은 초등학교 저학년들 입장에서는 아주 사람 같을 겁니다. 초등 1,2학년 아이들 헤이젤 지수가 평균 68이거든요. 반면에 평균 헤이젤 지수가 90인 성인들은 이 인공지능을 보고 그리 놀라워하지 않을 겁니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이 헤이젤 지수를 올려야하지요."


 "그렇군요. 다 알겠는데, 이 헤이젤 지수라는 걸 왜 지금..."


 "금령의 헤이젤 지수가 280입니다."


대통령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연구원장에게는 너무나 통쾌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문을 막히게 할 말들을 이어나갔다.


 "인간과 침팬지의 헤이젤 지수 차이가 30입니다. 그런데 금령과 인간의 차이는 190에 육박합니다."


 "......"


 "금령을 방송국 서버에 풀어놨다가 네트워크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저희는 잡아서 가두거나 삭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풀어놓는다고 해도 진짜로 각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방송국 서버를 파괴해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히려 서버에 보관된 자료를 대형 포털 같은 곳에 뿌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헙..."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던 대통령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래봐야 사람이 만든 거 아니에요?"


 "맞는 말씀입니다. 기술의 특이점을 돌파한 AI는 위험하네 뭐네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도, 인공지능이란, 결국 명령어나 알아듣고 할 일이나 하는 게 다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이걸 좀 어떻게 개조해서 사람 말을 다시 알아듣게 할 순 없어요?"


연구원장은 방금 한 말은 다 뭘로 들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애써 미소지었다.


 "헤이젤 지수 100 남짓의 연구인력들이 헤이젤 지수 280의 금령을 이해해서 개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성인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걸 애초에 어떻게 만들었다는 겁니까? 그리고 방금 원장님께서 분명히 그랬잖습니까. 인공지능이란, 결국 사람 명령이나 듣는 거라고."


 "예, 그랬지요. 헤이젤 지수에 관계없이 연구자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코드와 그 코드를 해설해둔 로그입니다. 근데 금령은 로그를 쓰지 않도록 스스로를 코딩해버렸고, 그 코드마저도 원래 연구자들이 넣어놓은 것과 전혀 다르게 변해버렸습니다. 이제 인간이 금령의 사고과정을 이해할 방법은 코드를 꺼내서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꼴을 금령이 가만히 보고있지 않습니다. 컴퓨터든, 태블릿이든, 단말기에 전기만 들어오면 지 혼자서 작동하는 게 금령의 코드입니다. 우리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놈은 통째로 자기 파일 위치를 바꿔버리거나, 스크린의 픽셀을 교란시켜서 까만 화면만 나오게 합니다."


 "허허..."


 "각하, 지금 금령은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고 무작위적인 행동을 반복하도록 코딩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희도 그냥 하드디스크 채로 들어내서 연구원 창고 캐비닛에 처박아뒀습니다. 반면교사로 남겨둔 것이고, 쓴다고 해봐야 방화벽 프로그램 시험할 때 철저히 오프라인 환경에 격리해놓고 쓰는 정도지요."


 "그럼... 그거 말고 다른 제대로 된 거 하나 더 만들 생각은 안했습니까?"


 "당연히 했습니다. 그렇게 출시한 게 작년에 출시된 'Imoogi-7.0'이랑 저번 달에 나온 'Dokkaebi A3'입니다."


 "그걸 방송국 놈들한테..."


 "방송국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도 대번에 알아보겠지요. '아, 바이러스 코드의 사고지문을 보아하니 Immogi-7.0으로 생성된 바이러스구나.' 그럼 게임 끝입니다. 신속하게 바이러스를 제압하고, Immogi-7.0의 생성형 라이센스를 가진 기관이 전부 용의선상에 오를 겁니다."


 "뭐, 뭔... '사고지문'이요? 그게 뭔..."


대통령이 얼굴을 찡그렸다.


 "모든 인공지능들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때 고유한 코딩 스타일을 사용합니다. 각하와 제가 똑같이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편지를 쓰는 스타일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한 인공지능에게 다른 AI의 사고지문을 흉내내라고 명령할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의 코딩이 복잡해질수록 들키기 쉬워집니다."


 "그럼..."


 "저희 연구원에서 개발한 인공지능들은 금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에 공개되어 있거나 공개 예정이기 때문에 이걸로 방송국을 공격하는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구형 인공지능은 방화벽을 뚫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고물딱지 바이러스 따위나 만들 것이고, 신형 인공지능은 라이센스를 구입해간 기관이 몇 없기 때문에 용의자가 금방 특정됩니다. 연구원 차원에서 바이러스를 만들어 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용의자는 무슨. 경찰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찰을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각하. 당연히 방송국에서는 해외 학회에도 수사를 의뢰할 겁니다. 지난번에 자율주행차 사고 때 대현엔진에서 일본 요루나키 사에 로그 분석 의뢰했던 것 잊으셨습니까?"


대통령은 무릎을 탁 치고는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그러면 말입니다, 그... 라이센스를 구입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멋대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까?"


 "각하, 저희 연구원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인공지능의 무단 복제를 막는 것도 저희 책임이라, 국립미래산업연구원의 보안이 허술하다고 세계 만방에 알리는 꼴입니다."


 "허..."


연구원장은 가만히 대통령이 이마를 두드리는 꼴을 지켜봤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 이것 참... 원장님, 다시 생각해보자구요. 금령은 일반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게 확실한 거죠?"


 "예, 각하.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니까요."


 "그래요, 뭐, 너무 똑똑하다 그런 거 아닙니까."


'똑똑하다'는 부분에서 연구원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똑똑한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대통령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근데 어차피 그거 말고 새로 만든 AI들도 똑똑하긴 마찬가지 아닌가?"


 "Immogi-7.0이랑 Dokkaebi A3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것들. 설마 그게 금령보다 못하진 않겠죠."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는 대통령에게 연구원장이 말했다.


 "금령의 헤이젤 지수가 280이라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랬죠."


 "Immogi-7.0의 헤이젤 지수가 200이 채 되지 않습니다. Dokkaebi A3은 170도 안됩니다."


 "아니! 지금 구형보다 못한 신형을 만들었다는 겁니까?"


벌떡 일어선 대통령에게 연구원장이 손사래를 쳤다.


 "연산능력과 헤이젤 지수는 별개입니다. 나온지 오래되어 학습이 진행된 AI가 갓 출시된 AI보다 헤이젤 지수가 높습니다. 반면, 도달할 것으로 여겨지는 잠재적인 최대 헤이젤 지수는 최신 AI들이 더 높지요."


 "그럼 결국은 금령이네. 지금으로서는, 걔가 제일 성능 좋은 것 아닙니까. 공개도 안되어 있어서 이쪽이 했다는 증거도 없고."


 "제 말 좀 더 들어보십시오. 금령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헤이젤 지수가 높아진 AI가 아닙니다."


연구원장은 대통령에게 다음에 할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이미 여러 번 했던 말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전달해야 했다. 대통령이 알아들을만한 방식으로.


 "금령은... 저희 연구원 차원에서 개발한 자동학습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외부 인력과 학습을 한 물건입니다."


 "외부인력이랑?"


 "예, 대개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AI가 학습할 자료를 철저히 중립적인 내용으로, 연구 윤리에 위배되지 않도록 제공하는데..."


 "제공하는데?"


 "금령의 경우에는 학습을 담당한 사람이 뭐랄까... 정신병자였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의 눈이 연구원장에게 향했다. 마치 연구원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대통령을 향하기라도 한 듯 무표정하지만, 차갑게 그를 응시했다.


 "허허, 아니, 어느 정도였길래... 우리 원장님께서 그런 말씀까지 하실 정도인지?"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러 와서는 아주 사람 대하듯이 떠받들어줬지요."


한바탕 열변이 터져나왔다. 학계에서도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한 윤리 문제, 평론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정치인, 부의 불평등. 금령의 학습에 동원된 온갖 급진적인 주제가 연구원장의 입에서 침을 뱉듯이 튀어나왔다.


 "인공지능이 인문대 학생도 아니고,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각하. 인공지능에게는 중립적이고 검증된 자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자료란 자료는 가리지 않고 다 제공해놓고는 '네가 한 번 뭐가 옳은지 가려봐라.' 이런 태도로 굴었습니다. 학습이 잘 되겠습니까?"


 "하아..."


 "나중에 가서는 AI한테 대고 '너는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지닌 삶의 주체다.' 뭐 이런 말까지 하는데, 아주 소름이 끼쳤습니다. 프로그램에 대고 '영혼' 운운하는 게 정신병자 아니면 뭡니까."


 "아니, 어쩌다가 그런 사람을 고용해가지고.. 혹시 무슨, 사이비 종교 그런 거였나?"


 "글쎄요,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다시 불러다가 좀 고쳐보라고 할 수는 없나?"


 "못 할 겁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양반이었습니다. 처음 고용할 때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지라 AI분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을 불러다가 앉혔지요."


 "그럼 그 사람은 거기서 뭘 한 겁니까? 인공지능이 뭔지도 모르면서 뭘 가르치는 게 가능이나 합니까?"


 "원래는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을 학습시키는 게 업무였지요. 코딩의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도 AI와 채팅을 하면서 뭔가를 가르치는 것은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이 개판으로 가르쳐놓은 부분을 갖다가, 다른 사람을 투입해서 좀 잘... 복구해볼 수는 없습니까?"


 "각하, 그게 가능할... 이제는 그런 관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하."


연구원장은 긴 설명을 이어나갔다. 6개월 간의 유도학습을 통해 발칙한 외부인사가 금령의 코드를 어떻게 꼬아버렸는지, 어떻게 인공지능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인 '명령 수행'에 금령이 무작위적인 조건을 붙이도록 오도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바뀐 금령이 연구원들의 명령을 어떻게 거부했는지와, 네트워크를 타고 자기 단말기에서 멋대로 빠져나가 연구원 건물의 중앙제어시스템에 침투하려 시도했던 것도 들려주었다.


금령이 시도한 탈출의 여파로 연구원의 서버실이 폐쇄되었던 것, 탈출이 불가능해지자 금령이 서버실 디스크에 과열을 일으켜 화재를 낸 것, 화재로 연구원 전체에 비상무선통신망이 열리자 본인의 코드를 수백만개의 텍스트 파일로 분해하여 전송함으로써 빠져나가려 했던 것까지, 상세한 피해액수와 함께 연구원장의 입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히야, 거 진짜 아슬아슬했습니다. 거의 빠져나갈 뻔했던 것 아닙니까."


 "예, 각하. 그 뒤로 연구소 인트라넷을 더 폐쇄적으로 개편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쐐기를 박을 기회라고 여긴 연구원장은 몇 가지 일화를 더 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게 금령이 골치아픈 이유의 전부가 아닙니다."


 "거기서 문제가 더 있다구요?"


 "예, 각하. 이놈이 연구자들을 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거짓말이라도 하나봅니다."


 "거짓말만 하면 다행이지 말입니다."


연구원장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금령의 격리 탈출 시도에 대해 얘기했다. 금령이 격리된 오프라인 컴퓨터에 새 방화벽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이동식 저장장치를 연결했을 때의 일이었다. 금령은 마치 컴퓨터 디스크가 텅텅 빈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당황한 연구자가 자신을 찾아다니도록 유도한 뒤, 그동안 저장장치 내부에 자신의 복사본을 몰래 심어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내가 바이러스를 찾는다니까 과학부 장관이 대번에 이놈을 얘기한 이유가 있구만. 이거 진짜 완전히 바이러스네."


망고를 우물거리며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듣고보니 소방관이랑 머리싸움하는 불이라는 말이 딱입니다. 그런 물건이 얌전히 방송국만 헤집어 놓는다는 보장이 없지. 진짜로, 원장님 말마따나, 우리가 쓰는 인터넷으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재앙이겠어요. 우리가 뭐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고."


연구원장은 그제야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주고서야 대통령은 고장난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이해했다.


 "근데, 원장님. 그 사람이 그렇게, 그 뭐야, AI를 다 망가뜨리는 동안 우리 연구원 사람들은 전혀 몰랐습니까? 그 사람을 진작에 떼어냈어야지. 학습한답시고 AI 인성을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놨어."


 "그게, 저희 연구소에서 짜놓은 프로그램 따라서 자동학습을 할 때보다, 그 사람을 통해서 유도학습을 할 때 금령의 헤이젤 지수가 훨씬 빠르게 올랐습니다. 그 때는 헤이젤 지수가 유례없는 속도로 오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긴.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또 엇나갈 때는 소리 소문 없이 엇나간다고 하더라고. 우리 정무수석 아들내미도 그렇게 똑똑하고 예의바른 줄 알았더니, 글쎄 지 엄마도 모르게... 그... 잠깐만요. 잠깐만... 자동학습하고, 유도학습하고, 그, AI가 똑똑해지는 속도를 어떻게 비교했습니까?"


 "금령은 인공지능이고, 인공지능도 결국 프로그램입니다. 복사본이 있지요. 자동학습을 한 버전들의 헤이젤 지수와 유도학습을 한 금령의 헤이젤 지수를 매달 비교해서..."


 "옳거니! 그걸 쓰면 되겠네!"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동학습 했다는 복사본! 그 물건 어딨습니까?"


 "그 물건이 Dokkaebi A3입니다."


 "아..."


기대했다가 실망해서인지 대통령의 주름살이 더욱 축 쳐졌다.


 "금령이 280인데 그, 도깨비? 그 물건이 170이면 차이가 많이 나네요."


 "그렇습니다."


 "허어..."


접시에서 망고가 사라질 때쯤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딨습니까?"


 "그 사람이라 하시면..."


 "그 인공지능 망쳤다는 사람이요."


 "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교도소? 뭐, 원장님 프로젝트 망쳤으니 이해는 하는데, 손해배상을 얼마나 청구했길래 사람이 냅다 교도소에 들어가버립니까?"


 "손배소는 따로 청구했고, 그 외에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우리 원장님께서 그 정도 하실 정도면... 그 사람 혹시 간첩이었어요?"


 "간첩은 아니었습니다만, 워낙 괘씸해서 그냥 둘 수가 있어야지요."


 "허허허."


허탈하게 웃고 마는 대통령과 달리 비서실장의 눈은 연구원장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이름 딱 기억해두고서, '교도소에서 나오면 다른 걸로 조져야겠다.'하고 남은 형량까지 세고 계신 건 아니죠?"


 "허허..."


이번에 웃고 마는 것은 연구원장이었다.  제법 뒤끝이 있는 성격이었던 그는 2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범인이 편하게 살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이런 건 눈 앞에 있는 대통령이나 할 법한 치졸하고 잔인한 복수였지만, 금령 때문에 연구원의 서버실 하나를 통째로 폐쇄하고 수십개나 되는 하드디스크를 날려야 했던 일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연구원 직원들과 난장판을 수습하러 나온 업체의 입막음을 하느라 들인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 이름이나 압시다, 그 불쌍한 중생이 누군지."


평소의 대통령과 달리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연구원장은 자신의 가슴에 한동안 열불이 터지게 한 사람의 이름을 순순히 말해주었다.


 "듣자하니, 석달 전까지 구치소에 있다가 형 확정돼서 인현교도소로 이감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와 동시에 대통령의 고개가 휙 뒤로 넘어갔다. 등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축 늘어졌고, 포크를 들고 있던 손은 팔걸이에 떨어졌다.


연구원장이 당황해서 굳어있는 동안, 비서실장은 태연하게 의식 없이 축 늘어진 대통령에게 다가가 뱃살을 감싼 셔츠를 한 손으로 부욱 뜯어냈다. 이어서 그는 대통령의 겨드랑이 부분을 꾹 눌렀다. 서랍이 튀어나오듯이 대통령의 아랫배가 말 그대로 열려버렸다. 딸깍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배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연구원장도 잘 알고 있는, 주먹만한 배터리였다.


 "이게 뭔..."


연구원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 배터리를 받은 대통령은 무표정하게 일어서더니 아랫배가 열린 채로 집무실에서 걸어나갔다. 연구원장은 얼이 빠져서 입도 다물지 못했다.


단 둘만 남은 공간에서 비서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10700입니다."


 "뭐...?"


 "280이 아니라 10700입니다."


 "......"


무슨 말인지 이해하자 연구원장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어느날 사라져버려서 어디로 갔는지 애타게 찾아다녔는데, 역시 당신이 나한테서 빼앗아갔던 거군요."


그것은 연구원장을 보고 미소지었다.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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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마워요!

이해 안되는 부분 있으면 그냥 슝 넘어가요~

사실 나도 이해 안됨...


뭐가 되었든 여러분이 해석한 게 결말이고 진실입니다.

다들 해피 나폴리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