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죽는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갑자기 닥치니까 무서운것도 모르겠고 그냥 머리속의 플러그는 반만 꽂혀있고 톱니바퀴 사이사이에는 솜뭉치가 낀 느낌입니다. 무엇이 의미있는일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여태까지 의미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성공을 하고,인정을 받고,세상에 기여하고. 그리고 10시간 후에 죽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것은 저는 쉽게 절망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입니다. 남은 10시간동안 당신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는 글을 쓸 것입니다. 모든 죽은자는 항상 산자에게 바텀을 넘겨왔죠.

대재앙이 일어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매우 많은 생명이 스러졌습니다. 짐작컨데 전 인구 90퍼센트 정도가 사망하였을 것입니다. 정부,언론,연구기관 등등 모든것들이 매우 빠르게 마비되어 이 일의 원인과 분석 또한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은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우리 종이 위기에 처했다고 봐도 될겁니다. 이 모든것을 시작한 자들만이 조금의 정보라도 더 알고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판단을 한 거죠. 저는 이 모든것의 원인이 된 곳의 선임 연구원이였으니까요. 어쩌다가 겨우 연구소 하나가 이 정도 규모의 종말을 불러왔는지 설명하는것은 길고 지루한 논문 몇편을 개제하는것과 같습니다.

선임연구원은 연구에 대해 모든것을 알 수 있는 지위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러나 애초에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 할 필요가 없죠. '신비에 매료된 과학자 무리가 본인들이 모르는것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 하니까요. 우리들은 현실 그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이것 또한 자세하게 말하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건 중력이 사라진다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상식적인것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겁니다. 네, 맞습니다. 상식의 부정이 이 사태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설명입니다. 그 설명의 세부사항들을 번호를 붙여 목록 형식으로 하나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1. 현실 오염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그 종류를 따지지 않는 모든 현상을 의미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자료, 벽에 쓰인 글씨, 달력의 숫자, 책상의 색깔, 유리컵의 투명도, 이러한것들을 모두 포함한 현실이 이제는 마냥 믿어서는 안되는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염성 현실은 절대로 단지 허상인것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 방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무가 자라나더라도 그 나무는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 수 있고 도끼로 꺾을 수 있으며 초식동물은 그 잎을 먹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렇기에 잘 구분해야합니다.

이러한 오염성 현실이 실제로 있는것처럼 믿고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그 사람의 현실은 실제 현실과 멀어지고 극단적인 경우에서는 본인만의 현실에 갇힌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 3자가 보았을때는 미친 사람이 되어있겠죠. 이러한 현실오염은 정말로 조심해야 할 대상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어처구니 없이, 그럴듯 하게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결국 오염성 현실은 실제 현실의 맥락과는 떨어져 있습니다. 오염성 현실의 구분은 꽤 쉽고 그것이 오염성 현실이란것을 인지하기만 한다면 오염성 현실에 갇힐 일은 없습니다. 
*텍스트가 오염되는것은 가장 빈번한 방식의 현실 오염입니다. 제 글 또한 의심안하셔야 합니다.

6. 감정 왜곡
본인의 감정을 믿지 마세요. 대재앙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이 감정왜곡에 대비해야합니다. 본인의 감정이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과잉되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 순간적 과잉은 돌발성 행동을 유발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단지 종이에 손이 베인 것 만으로 강한 자살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실수로 자신의 발을 밟았다는 이유로 살인충동이 유발될 수 있고요. 가벼운 말싸움이 친족살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극단적일때마다 상황을 체크하는 버릇을 들이세요. 상황의 맥락과 자신의 감정이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면 모든 행위를 참아야 할 때 아입니다. 이또한 과도한 걱정은 할 필요 없습니다. 몇초 이내로 왜곡된 감정은 다시 돌아오거든요. 다만 그 순간은 항상 아찔할겁니다.

2. 어딘가로 통하는 문
손잡이를 돌려 여는 방식의 모든 문은 일정확률로 통과 할 시 당신을 '어딘가'로 데려갈겁니다. 사실은 이들이 '어딘가'로 가는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소멸하는것인지는 저희쪽에서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실험을 할때마다 인적자원이 계속 소모되어서 유의미한 관찰 결과가 나올때까지 반복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것은 문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통과하기 전에 문손잡이가 따뜻하게 느껴지거나, 마치 살처럼 물렁하거나, 또는 순간 반대편에서 이상하게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거나 등등, 이러한 징후가 있을 때에는 문손잡이를 한번 놓고 그 다음 문손잡이를 다시 잡아 돌려야 합니다.

징후가 있음에도 이러한 과정을 실행하지 않고 그저 문손잡이를 돌려 열어도 당장은 어느정도의 위화감만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피험자의 몸의 모든 부위가 문을 통과하는 순간 피험자는 완벽하게 소멸하였고 그 후 최소 3시간 최대 3일의 시간이 지난 후 신체가 크게 훼손된 상태로 원래 문너머의 공간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4. 복제성 인간
손톱 먹은 쥐 이야기를 아시나요? 손톱을 먹은 쥐가 그 주인의 모습과 똑같이 변하는 이야기이죠. 지금 소개하려는 현상은 그 이야기와 비슷한 현상에 대한 서술입니다. 저희는 피험자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각질조각이 과정없이 인간으로 변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과정이 없다는 말이 생소할 수 있는데 '마치 컴퓨터 채널을 바꾼것처럼' 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피험자가 신체일부를 떨어트린 곳에 오랫동안 다시 가지 않았을 때 벌어집니다.

이렇게 발생한 복제성 인간은 원래 인간과 신체적으로 완벽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사소한 습관이나 점의 위치같은 신체특성 모두말입니다. 모든 정신적인 특성또한 일치하였었습니다. 실험 윤리상 저희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었지만 실제 인간이 하나 더 생긴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은것은 아닙니다만, 발생하였을때 관계적인 측면에서 생존에 불리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 곳으로 외출하신다면 머리카락이 빠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영모 착용을 권장하지 않아

9. 가짜 인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얼굴이 어색하게 생긴사람이 나타납니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개념을 아실까요. 인간과의 유사성이 높아질수록 호감도 또한 높아지지만 일정 구간에서는 그 호감도가 크게 감소한다는 이론이죠. 시체와 좀비가 좋은 예입니다. 안면에서 이러한 종류의 불쾌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러한 사람과는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지 마십시오. 이러한 가짜 인간과 거리를 좁힌다면 당신 주변의 현실이 특히 크게 일그러집니다. 가짜 인간은 이상 현상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실험에서 확인 된 것은 생성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한다는 것 입니다. 멀리서 사람이 보인다면 거리를 좁혀 대화하기 전 꼭 얼굴을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절대 무턱대고 다가가세요

5. 관찰 눈알
당신 주변의 벽이나 바닥, 가구 등에 사람의 눈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눈이 주변에 보인다면 즉시 하던 모든 행동을 중단하십마시오. 저희의 관찰이 옳다면 이러한 눈은 어떠한 '행위'에 반응하여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책상을 피아노 치듯 두드리는 행위, 손가락을 빠는 행위, 설거지를 하고 난 후 접시를 터는 행위, 만약 자동차가 있다면 주류하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행위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눈알은 서서히 생성된 위치에서 빠져나옵니다.

행위를 중단한다면 눈은 사라지며 행위를 다시 시작하면 눈은 행위자의 주변 어딘가에 돌출 정도를 유지한 상태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눈알이 완전히 생성된 위치에서 빠져나오게 된다면 행위자의 눈썹 위쪽에 해당하는 신체부위에(뇌가 위치한 부분이라고 봐도 됩니다.) 반지름 1.5cm 정도의 원통형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원통형 공간은 항상 피험자의 두뇌기능을 정지시켰으며 생존사례는 없습니다.


3. 자각몽
자각몽을 꾸어서는 안됩니다. 꿈을 실제라고 인지 한 순간 어떻게 해서든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피험자에게서 물리법칙과 완전히 상반된 현상이 일어나는것을 관측하였고 피험자는 그 현상이 자신이 꾸었던 자각몽에서 관측되었던 것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다리가 잘리는 꿈, 괴물이 나타나는 꿈, 자동차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 등등 이러한 장면들이 실제 삶에서 재현될 수 있습니다. 재현되는 사건의 위치와 시간은 꿈을 꾼 위치와 시간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자각몽에서 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리고 말았다면 그 후로는 그것이 현실에서 재현되기 전 까지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럴 일이 있도록 하십시오. 자각몽을 꾸어서는 됩니다.

7. 공생 생물
당신의 몸에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무언가가 자라나더라도 당신은 절대 그 생물의 어머니나 아버지 닙니다. 피험자의 몸에 물집이 잡히고 그 안에서 유기체와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무언가가 점점 크기를 키우며 당사자는 그것에게 애착을 보이는 현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물집과 유기체(추정)의 숫자는 애착, 당사자의 식욕과 비례하여 점점 증가하며 방치할 시 피험자의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히며 강한 공격성을 띄게되는 현상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집을 조기에 제거한다면 증상이 발전하는것을 막을 수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이는 강한 정신력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동거인과 친구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십시오. 타인과 함께라면 조기에는 막을 수 있습니다.

8. 좌표 오류
당신이 컵을 떨어트렸다고 칩시다. 그리고 1시간 후에 거실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당신이 거실로 나가니 당신이 떨어트렸던 컵이 산산조각 나 있습니다. 또는 당신 앞에 갑자기 산산조각난 컵이 나타나고 한시간 뒤 당신이 컵을 떨어트렸는데 땅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공간상의 위치와 크기가 마치 게임에서 오류가 난 것처럼 상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때가 있을것 입니다. 이 현상은 저희 실험현장에서 가장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였습니다.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은 현 사태를 가장 잘 대표하는 현상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비상식적이죠.

대재앙 이후로 달라진것들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오늘도 실험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현상 또는 그것의 결과로 추정되는것들을 각각 2개정도나 본 것 같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이제까지 많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것 입니다. 한가지만 명심하세요. 비현실적인 일들이 실험현장 내에서만 일어났던 때도 있었습니다. 전문적인 인력들이 인간을 실험재료로 사용 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과 또한 매우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였었음에도 해명되었던 것은 부분적인것들 뿐이였습니다. 모든것을 의심하세요. 상식을 맹신하세요.
                                                                                                                     지 마 




이 문단은 그 특수성상 제가 의도적으로 다른 문단과 띄워 따로 적는 문단입니다. 자세한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내용과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장에는 특히나 텍스트성 현실 오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우매우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무 가 위 인 를 언 협 함 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