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진 것은 소의 머리)

(양동이에 가득 찬 애벌레)

(선반에는 눈알이 담긴 유리병)

(애처로운 눈길로 자비를 구하는 희생양)

(바닥에는 붉은색 육각별)

(서 있는 것은 검은 옷의 여자)

(묶인 채 노래하는 아이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불경함)

(눈에 익은 가죽 표지의 주술 묶음)

(저주하는 것은 입이 찢어진 여자)

(무심한 듯 쳐다보는 두 눈 짐승)

(한 방울씩 떨어지는 흙탕물)

(주인이 없는 심장 소리)

(구석에는 이미 늦어버린 몸뚱아리)

(벌레도 아닌 것들이 기어다니는 빗자루)

(색색깔의 유리용기)

(정돈된 동물의 내장)

(깔끔히 닦인 누군가의 책상)

(쥐구멍에는 기계장치와 그 외 하나)

(무의식의 작은 신음)

...!

불결히 기도하는 여자는 눈을 뜬다.

관찰자를 향해 주저없이 돌아서 검은 손을 뻗는다.

기도를 염탐한 죄는 같은 양의 순금보다 무겁다.

은둔자를 흉내내던 몸뚱아리는 이윽고 부속품을 잃는다.

붉은 무대는 곧 자비의 물로 다시 쓰인다.

기계장치는 눈을 잊고 여전히 돌아간다.


다시, 기도는 시작되고 합창은 타오른다.

(열망하던 후렴에 다다른 가곡)

(번쩍이는 것은 안광, 혹은 무대)

(누구의 것도 아닌 웃음소리)

(남겨진 것은)

(비명을 지르는 기계장치)

(빛이 들지 않는 창문)

(검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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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상이 무서워지면

도망을 쳐요.


일상을 버틸 수 없어진다면

도망을 쳐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도망을 쳐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도망을 쳐요.


달빛에도 비치지 않게

나뭇가지도 밟지 않고


술래가 포기할 때까지

도망을 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