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아이들아. 저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메던 신일지어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 나는 그걸 알아내기 위해 15년을 바쳤다. 이건 그런 나의 일기이다.



47세가 된 지 석달하고도 여드레가 지났다. 서른 두살의 내게 남아있던 열정은 모두 식은지 오래다. 남아있는것은 광기에 가까운 집착 뿐. 그마저도 허무함으로 범벅되어, 삶의 이유이자 삶을 끝낼 이유가 되었으니, 모순덩어리이자 불안한, 정신병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깃덩어리. 그게 지금의 나다.


“박사님, 김 박사님.”


“어.”


“제발 여기서 담배피우지 마시라구요. 하다못해 전자담배같은걸로 바꾸시던가. 담배냄새때문에 숨을 못쉬겠어요, 숨을.“


반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선,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했다. 커피를 한모금 삼키며 듣는 둥 마는 둥 하자, 그녀가 한숨을 쉬고서는 재떨이를 비운다.


”전에 말한 프로젝트는 다 준비됐지?“


”네, 지금 출발하시면 돼요.“


”그래.”


일어나니 허리, 목, 무릎... 안 쑤신데가 없다. 며칠 째 밤샘 작업이더라. 사흘인가, 나흘인가. 그녀와 함께 문을 열고 실험실로 들어간다.


“검은 우주 프로젝트, 1042번째 실험 시작합니다.”


실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고, 버튼을 누른다. 에너지 장치가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가 퍼지면 나는 방음 헤드폰을 지긋이 누른다. 심장박동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그렇게 생각한게 벌써 1042번째다. 15년동안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녀를 찾지 못했다. 하다 못해 그때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라도 한다면, 그녀가 어떻게 되었을지 추측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텐데.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채 입에서는 토사물 같은 맛이 난다. 채 소화되지 못한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에너지 바가 섞인 쓰라린 위액이리라.


”출력 좀 더 높여봐. 현실 계수를 순차적으로 더 낮춰서, 이번에는 0.5를 목표로 해보자.“


”확인했습니다.“


천천히 포탈을 구성하는 물질이 바뀌어간다. 천번을 넘는 실험을 할 수 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윗선에서는 이걸 이득 볼 수 있는 꿀통 정도로 생각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주는게 편하다. 어쨌든 그들이 원할 만한 성과는 냈으니까. 마지막으로 발견했던게, 1027회차의 A-77번 물질이던가. 좋아 죽더군, 아주. 다방면으로 이용 가능한 에너지 덩어리를 그렇게 가져다 줬으니.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박사님, 현실계수가 0.7인데, 벌써 에너지 제어에 문제가 있습니다.“


”중력 계수를 높이고, 시간 계수를 더 낮춰. 에너지가 더 필요할테니 A-77번 물질 블럭 세개 더 투여해. 오늘은 0.5까지 내린다.”


“확인했습니다.”


방음 헤드셋을 뚫을 정도로 위잉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계기판 경고음이 미친듯이 발작하며 소리지른다. 이대로 더 내버려두면 터질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포탈 출력 장치를 꾹 눌렀다. 그러자 천천히 포탈이 열리기 시작했다. 현실을 찢는 저 차원문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아주 느렸고, 이 순간이 매번 내 심장을 천천히 찢어발긴다.


“계기판 확인 후 보고해.”


“현실 계수 0.62입니다. 온도가 조금 과열되긴 했지만 크게 문제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쉰다. 0.5의 벽을 뚫지 못한 날들이 길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은퇴할때까지 현실 계수 0은 재현하지 못할거라는 절망감이 나를 덮친다. 대체 왜, 대체 왜 안 되는거지. 그때는 도대체...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스물 일곱살이던 젊은날의 나는 명문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한 뒤, 인정받는 논문을 여럿 내며 박사 학위를 취득, 학회에 불려다니며 강연과 논문 집필, 우주에 관한 연구를 하다 이 시설에 불려왔지. 처음 들었을때엔 어이가 없었다. 대뜸 ‘우리랑 같이 우주적 존재들, 세계의 뒷면을 연구할래요? 아니면 기억이 지워질래요?’ 라니. 반쯤 협박이잖냐, 그거. 기억이 지워지는것도 싫고,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싶어 그녀를 따라갔다. 해봐야 정신병자거나 수상한 기업 정도지 싶었는데, 내 예상이 틀렸다.


정말로 있었다. 단순히 사람을 찢어죽이는데에 혈안이 된 괴물들부터, 지성을 갖추고 교류가 가능한 외계인,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건, 기존의 과학 상식들을 무너트리는 이 수많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말단 연구원 자리인 연구 보조원부터 시작해서 5년이 되던 해에 공로를 인정받아 선임 연구원 자리를 꿰찼다. 내가 천재라서 그랬냐고? 스펙으로 따지면, 나정도는 그냥 중하위권 정도였다.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인데, 나조차도 멍청해보이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었으니.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았다. B-72번 물질의 화학식을 조금 건드려서 B-72-1번 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했거든. 에너지 효율이 두배 이상 높아졌고, 그런걸 딱 윗분들이 원했다. 사람 찢어 죽이는 괴물들 관리하는거, 그것도 중요시 하기는 했지만 그닥 큰 관심은 없었고, 일종의 군사력, 돈... 그런것들을 윗분들은 원했으니까.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선임 연구원이 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랑 같이 일 할래요, 아니면 그만둘래요?”


“네?”


무슨 개소리냐는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김 박사님은 여전히 반응이 한결같으시네.”


“그러는 최 수석님은 여전히 협박을 질문처럼 하시구요.”


“제가 언제 협박을 했어요? 그냥 질문인데.“


짧게 한숨을 쉬며 이마를 손끝으로 꾹꾹 누르며 문질렀다.


”그냥 질문이 아니잖아요.“


”그럼 그만 두던지. 그건 싫죠? 5년전만 해도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무릎꿇고 애걸했으면서.“ 


”하... 진짜 왜 이러시는거에요?“


”마음에 들어서요.“


”...네?“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일까. 좋아해서 괴롭힌다 뭐 그정도로 넘어갈게 아니잖아.


”제가 무슨 일 하는지 아세요?“


”스카우트랑 인력관리 아니에요?”


“대외적으로는 그렇죠. 근데, 저는 포-”


“어어어어, 잠깐만.”


“왜요?”


“대외적으로요? 그럼 지금 말하려는거 기밀이죠? 듣게 해놓고 이제 진짜 선택지도 없으니 따라와요, 뭐 이딴 소리 하려고 그러죠, 지금?”


“이야, 김 박사님 못본새에 정말 달라지셨다. 맞아요. 저는 포탈 연구를 하고 있어요. F-9번 부서 알죠? 거기, 인력관리 부서가 아니라 정확히는 대 우주 미확인 영역 탐사 부서거든요.“


”아니, 아, 씨이발...“


”여기, 많이들 그만 두는거 알죠?“


”예.“


”김 박사님이랑 같은 호봉 동료들중에 몇 분이나 남아계신지도 아시구요.“


”네.“


”원래 이쪽 업계가 그래요. 사망율도 높고. 그런데, 고작 5년만에 유의미한 성과도 거뒀지, 선임 연구원 자리에도 올랐지. 이런 사람 많이 없어요. 그리고. B-72-1번 물질덕분에 우리 부서도 꽤 전망이 좋거든요. 그래서 김박사님이 와줬으면 해요. 내가 직접 스카우트한 인재기도 하구요.”


“하아... 아니, 갑자기 무슨 우주 미확인 영역 탐사입니까. 저는 지금 에너지 개발 부서에 있는데요.“


말을 마치자 그녀가 하핫, 하고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두번밖에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고, 5년간 드문드문 오며가며 마주친 정도였지만, 언제나 살며시 미소짓는것 밖에 못봤으니.


“김박사님.”


“네.”


“당신은 물리학, 화학, 우주, 에너지... 그런걸 좋아하는게 아니야. 모르는걸 배우고 알아가는게 너무 좋은 미친 사람이지.”


“...”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잠시 벙쪄서 가만히 쳐다보자, 그녀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따라올거죠?”


“...그럽시다.”


손을 잡고 일어나서, 나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F-9번 부서로 향했다.





”김박사님! 포탈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비현실 계수 0.62에서 0.63, 0.64... 천천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곧 1번대에서 안정화 될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정화 되면 탐사 시작해. 무인선 출항대기.“


”확인했습니다.“


”달토끼 팀은 전원 문제 없나?“


”문제 없습니다.“


”좋아. 이대로 대기한다.“


”확인했습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팩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0.62번대를 제대로 탐사하기는 커녕 이대로면 또다시 1번대에서 별 성과 없이 에너지 자원이나 좀 캐올테다. 자원이야 늘 부족하다지만서도, 1번대에서 캐오는 자원은 솔직히 별 쓸데도 없는데.


“하아... 좆같네.”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은은하게 입 안을 견과류 향이 감싼다. 그녀에게서 나던 냄새. 그녀의 담배. 잠시나마 추억에 젖어있던걸 조수가 팔꿈치로 쿡 찔러 현실로 되돌린다.


“박사님... 진짜 맞을래요?“


”야, 여기선 좀 봐줘. 위에서 또 한소리 들을거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다.“


”하... 재떨이는 뭘로 쓰실건데요.“


”마침 잘됐네. 가서 달토끼 팀에게 오늘은 최소한으로 자원 채굴하고, 좀더 탐사 영역을 넓혀보라고 그래. 현실 계수 증폭기 두배로 실으라 그러고. 그리고... 기억제 F-2번 인당 두개, F-99약물 세개랑 사탕 하나 챙기라고 그래. 좆됐다 싶으면 꼭 사탕으로 자살하라고 그러고. 얼마전에 옆 연구소에서 탐사대가 A-90번한테 오염당해서 싹 다 죽은거 알지?“


”아오, 진짜 누굴 종으로 아나 그냥... 하, 기억제 F번대는 소장님 허락 있어야 하잖아요.”


“내가 말씀 드릴게. 소장님도 윗선에서 깨지는거 보단 후보고를 더 좋아하실걸.“


”하... 전 모르는 일입니다?“


”바닥 청소도 할 거 아니면 빨리 가. 커피 말고 그냥 종이컵에 물좀 담아줘. 속 쓰리다.“


그녀가 투덜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떠나자, 담배를 한모금 더 삼켰다. 느릿하게 연기를 뱉어내면서 포탈이 안정화 되는것을 바라본다.




F-9번 부서에 들어오자마자 본 것은 화원이었다. 장미가 가득 핀 작은 화원.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일까, 나는 무심코 물었다.


“저건 뭡니까?”


“화원이요. 제 취미죠.”


“화원을, 왜...”


“보기 좋잖아요. 우리는 포탈을 열고, 저 우주를 탐사하죠. 거기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잖아요. 에너지 물질이나, 뭔가 유용하게 쓸만한 것들을 발견하면 좋죠. 지성이 있는 외계인들을 만나면 다행인 수준이구요. 적어도 교섭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신에 간섭하는 계열의 괴물들, 정신체라던지,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류의 것들... 그런 걸 만나면 다 죽어요. 우리 뿐만 아니라 이 별의 모든 생명이. 그래서 매번 노심초사하죠.“


”...“


”뭐, 그렇게 매번 스트레스 받으니, 스트레스를 풀 만한 게 필요하더라구요. 보기도 좋고. 혹시 알아요? 여기 침략하러 왔다 이거 보고 감동받아서 넘어갈지.”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 김박사님, 그게 어떻게 돼요. 벌써 정신 나가면 어떡해. 연구해야지.“


미친년.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사람. 나는 그녀와 함께 F-9번 부서에서, 내가 개발한 B-72-1번 물질을 이용해 포털을 안정화시키며 계속해서 우주를 탐사했다. 탐사가 계속되며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물질을 발견했고, 적대적인 외계인들로부터 탐사대원들을 살리느라 며칠 밤을 지새우며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9회차 탐험의 순간에 우리에겐 사고가 일어났다.


“최 수석님, 현실 계수기 제어 불능입니다! 현실 계수 90, 85, 72, 64...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중력 계수 최대치로 올려! 이대로 가면 다 죽어. 폭발이라도 시켜서 멈춰!“


”당장 본대에 연락해서 코드 레드 발령한다. 최우선 대피사항들부터 대피시켜. 뭐해, 김박사!!!“


나는 그때 얼어붙어 있었다. 뺨을 세대 얻어 맞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고, 멱살 잡힌 채 통제석에 던져지듯 앉혀졌다.


”현실 계수 10번대입니다. 0번대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중력 계수 70입니다. 엔진 과열되었습니다!“


“달토끼팀 뭐해! 인솔해서 당장 빠져나가!!!”


사태는 심각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댔으며,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력 계수였음에도 포탈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커져갔다. 미친듯이 서류가 날아다니고, 전화기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으며, 새빨간 사이렌이 시야를 뒤덮는다. 현실 계수 10번대라. 우리가 연구하던 현실 계수는 고작 95였다. 


그리고, 마침내 포탈이 열렸다. 나는 그걸 흘깃 바라본 뒤에, 그녀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그러자 마지막인걸 직감한듯, 그녀는 전화기를 손에서 떨구고 나를 바라보았다.


“최수석님. 저길 보십시오.”


“...아아..“


포탈이 열렸다. 그녀는 그리고 그걸 한참 바라보았고.


”보아라, 아이들아. 저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메던 신일지어니.“


”...네?“


”준열ㅇ-“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암전이 되듯 정신이 꺼졌고, 깨어났을때는 다른 연구소의 병원이었다. 



”자요, 물.“


”...아, 고마워.“


어느새 다가온 조수에게 나는 물을 받아, 반컵을 마신 뒤에 담뱃재를 떨구었다.


”그러고보니까, 내가 여기 온지도 벌써 15년이네.“


”갑자기 왜요?“


”아니, 그냥... 하, 이번엔 정말 0.5까진 내려갈 줄 알았는데, 또 위에서 깨질 거 생각하면 좆같아서.“


”..근데, 박사님. 왜 그렇게 현실계수 0에 집착하시는거에요? 차라리 탐사 영역을 넓혀보는게 더 성과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게 있어.”


“뭐에요, 그게. 저는 사실 별로에요. 박사님이니까 쭉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 현실 계수가 낮다는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도 전부 뒤집힐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잖아요? 뭐가 있을지도 모르고. 지긋지긋한 정신체라던지, 뇌를 파먹는 괴물이라던지 저는 질색이에요. 하, 중력이 반대로 되어먹었을지도 모르고.”


“...뭐?!”


“네? 아니... 괴물들 싫다구요. 왜요, 죽는게 무서운게 그렇게 잘못됐..“


”그거 말고, 그 뒤에.“


”...중력 반전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우리는 근본부터 잘못되었다. 현실 계수가 0이 된다는건, 우리가 알고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고작 중력으로 묶어둔다고? 약물과 기타 계수들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그게 아니었어! 하하...눈물이 주륵 흐른다. 15년, 15년을 내다버렸어. 대체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집착에 가까운 연구가 가장 간단한 해결책에서 눈을 돌리게 했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어디 가냐는 조수의 말을 뒤로 하고 당장 연구실로 뛰어갔다. 이번 탐사는 취소시키라는 말과 함께. 엄청나게 깨지겠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우선 중력 계수를 0으로 맞춘다. 그리고, 모든것을 통제 밖으로 내던져야 해. 그렇게 된다면, 현실 계수는 0에 수렴할 수 있다. 왜 지금까지 이걸 모르는 척 했는지, 혹은 떠올리지 못했는지 알것같다.


우리가 그토록 중력을 이용해 비현실을 잡아놓았던 이유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려면 그래선 안되었다. 재현할 수 있다. 반드시.


그리고 모두가 죽던지, 다시 그녀를 만나던지 하겠지.




서류철로 맞아본게 얼마만이더라. 일주일 철야하고 그때의 악몽때문에 계기판을 잘못봐서 코드 레드 발령시켰을때 이후던가? 그때 이후로는 철야도 나흘까지만으로 정해놨었지.


“야, 김박사. 너 정신 나갔지? 이걸 나더러 승인하라고?”


“예.”


“왜그러냐, 대체. 내가 너 편의를 얼마나 봐줬어. 담배 피우는것도 짬 있으니까 내가 눈감아줬지. 현실계수 0에 집착하는것도 성과 내니까 눈감아줬지. 너 시발, 임마, 어? 에너지바에 에너지드링크로 끼니 때우면서 철야하는것도 딱해서 새끼야! 내가 시발 니 먹으라고 니 연구소에 식당까지 차려줬어!”


“예.“


”그러고 너 씻지도 못하고 아주 몸에서 담배쩐내에 그냥 홀애비 냄새에 그냥 어? 그래서 내가 니 연구소에 사우나까지 달아줬어! 이새끼 철야하고 코드 레드 잘못 발령해서 대가리 박으러 갔을때, 그때도 내가 같이 가줬고!!!“


”네.“


”너때문에 이제 F-9번부서 어? 애들이 뭐라그러는줄 알아? 아주 개꿀부서래. 식당도 있고 사우나도 있고 시발거, 화단까지 있대, 이새끼야. 윗선에서 존나 뭐라하고 밑에서 수근거리는거 내가 다 카바쳐줬어. 그리고 어? 연봉 협상도 안해서 윗선에서 옳다꾸나 하는거 내가 얘기해서 너 연봉도 인상시켜줬어, 이 씨발럼아. 근데 그런 내 등에 칼을 꽂겠다고? 아니아니, 그냥 니 손에 칼도 쥐어주고 내 등도 내주고, 친히 어우 찌르십쇼 하면서 내 손으로 니 손 붙잡고 임마! 칼로 등 찌르라고?“


”네.“


”아, 아, 혈압 아...“


연구소장이 털썩,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뒷목을 부여잡는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소장에게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이 새끼야, 또 왜! 한대 더 치라고? 그럼 제정신 찾을거야? 이새끼 아주 단단히 미쳤어... 너 정신체 검사시설에 처넣어줄까? 뭘 잘했다고 얼굴을 들이밀어!!!”


“소장님.”


“아, 시발 왜 진짜...”


“생각해보십시오. 현실 계수 0이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완전한 비현실.“


”그렇습니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아십니까?”


“뭔데?“


”저도 모릅니다.“


”아오, 이 ㅆ-“


”소장님도 모르구요. 윗분들도 모르고.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인간도, 우리가 여태까지 대면해온 그 어떤 외계인들도 모릅니다. 정신체도 모를걸요?“


”....계속 지껄여봐.“


”소장님. 솔직히 아시죠? 우리 윗선에서 살인 괴물들, 정신체들, 그런 복잡한거 별로 안좋아하는거. 뭐 좋아하는지 아시잖아요. 돈 되는거. 군사력 되는거. 기술 연구할수 있는거. 힘, 돈, 명예, 그런거. 저기에 그 모든 해답의 열쇠가 될 수 있는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모르는 곳이라구요.“


”그래. 우리 다 좆될지도 모르고. 중력 계수 0으로 만든다며. 그게 가능하기나 해?”


“할겁니다.”


“그러다 이 우주 전체가 비현실이 되면? 난 감당 못해.“


”적어도 윗선에서 깨지진 않겠죠. 어차피 다 뒤질테니. 소장님, 이대로 계속 쪼들리면서 위에서도 지랄, 아래에서도 지랄하는거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실겁니까? 윗선으로 가셔야죠. 저 챙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온전히 소장님 공로로 해드릴테니까... 한번만, 딱 한번만 허락해주십쇼. 좆됐다 싶으면 정말 무르겠습니다.”


“하아... 준열아, 불좀 줘봐라.”


팀장에게 담배를 물려주며 불을 붙여주었다. 나도 담배를 입에 물었고.


“준열아... 진짜 이러다가 다 나가리야... 너, 자신 있어?”


“네, 자신 있습니다.“


”하.... 나는 모르는거다. 좆되면 너 혼자 독박이야. 매정하다고 지랄하지 말아라. 어차피 기억 제거되면 너랑 나랑은 모르는 사이일테니.“


”네.“




“견우 팀, 준비 되었나?“


”이상 없다고 알림. 귀측은 준비 완벽한지?“


”이상 없다고 알림. 직녀 팀 준비 되었나?“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중력 계수부터 천천히 낮춘다. 검은 우주 프로젝트, 1043번째 실험 시작.“


직접 달토끼 팀과 함께 탐사에 나서기로 했을 때, 다들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담배 쩐내가 나는, 이상하게도 현실 계수 0에 집착하는 47세의 아저씨. 곧 반백살, 오십인 아재가 갑자기 왜? 돈도 많고 성과도 많다. 명예도 충분히 있으며 슬슬 연구소장 자리를 꿰차도 모자를 사람이 왜일까. 내 조수는 심지어 나를 정신체 검사 시설에 넣으려고 했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괜찮다. 누구에게 이해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의 짧은 그 순간을 알고 싶었다. 그녀는 과연 무엇을 본 것일까.


"중력 계수, 80, 75, 70... 50 돌파. 45, 40, 35..."


"현실 계수 낮춰."


"현실 계수 100, 95, 90... 50 돌파. 비현실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45, 40, 35..."


포탈 장치가 새빨갛게 물들며 굉음을 지른다. 방음 헤드셋 너머로도 굉음이 족히 들릴 지경이니.


"김 박사님, 이러다 폭발할지도 모릅니다. 실험 중단 요청합니다."


"계속 해. 중력 계수와 현실 계수 모두 0으로 만든다."


"김박사님, 이러다 진짜 다 죽습니다!!"


"낮춰!!!"


그리고, 그때.


굉음을 지르던 현실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시선 끝에, 우리는 포탈이 열렸음을 직감했다.


"...직녀 팀, 들리는가?"


"확인했습니다. 견우 팀, 들리십니까?"


"현재 상황 보고하도록."


"현실 계수 0, 중력 계수 0... 포탈,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탐사실은 이제 완전한 비현실 영역입니다."


"좋아. 까치 호, 출항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행 우주선인 까치 호를 타고, 새하얀 비현실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하아, 하아... 씨이발, 김 박사, 우리 다 좆된거 알고 있냐?"


그게, 달토끼 팀 대장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육체였고, 영혼이었고, 정신체였다.

대원이 그것을 실수로 밟았다. 어쩌면 그것이 대원을 밟았을 수도 있겠지. 대원은 한 순간에 산산조각났고, 기체가 되어 흩어지나 싶더니 곧 조각조각 큐브로 변해 떨어지다 사라졌다. 대장은 정신을 차려보니 삼켜졌고.


'전진해야 한다. 이 비현실 속에서 나만이 유일한 현실이다. 의심을 가져서는 안돼. 내가 전진한다고 믿는다면... 전진할 수 있다.'


하얀색, 보라색. 그리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색. 나는 이곳에서 그림이었고, 문자였으며, 생각이었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나는, 마침내 어떤 기분을 느꼈다.


공포. 그 근원, 그 뿌리를 나는 이해했다. 당장 미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다다른 그 곳은 불경한 자궁이었으며 그것의 뱃속이었다. 알 수 없는 식물과 기괴한 동물들, 저주받은 하늘과 썩은 땅이 자리잡은 그 화원에 그것이 있었다. 아니, 나는 이미 그것의 머릿 속에 삼켜져 있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 그 압도적인 공포가 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똑똑히 보았다.


죽는다. 아니, 죽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지금 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분명히 유쾌하지 않으리라. 그런 확신.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에, 누군가로부터 떠밀려졌다.


"준열아."


"진경아."


내 이름을 똑똑히 부른, 그것과는 다른 누군가에게서는, 은은하게 감도는 견과류의 향이 났다.



정신을 차린 나는 조수의 품에 안겨져 있었다. 포탈 밖으로 유일하게 빠져나온건 나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탐사복을 입고, 생명줄을 몸에 두른 채였다. 나를 구하려고 뛰어들기 직전이었다고 하던가.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고, 나는 그 체온을 잃으며 다시금 정신을 잃었다. 




3일이 지났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난,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연구소장에게 따귀를 맞았고, 의료진들이 제지했으나 팀장은 분이 안 풀린듯 한동안 소리를 질렀다. 조금 잠잠해지자, 퇴원하자마자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소장은 떠나갔다. 아무래도 된통 깨진 모양이고, 나도 좆된것 같았다. 하핫, 나는 웃음이 나왔다. 겨우 그런 문제로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떠나던 팀장을 불렀고, 그대로 퇴원하며 팀장의 사무실에 다다랐다.


"야, 김박사. 너, 지금부터 어떻게 된 건지 낱낱이 설명..."


"소장님."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장은 이럴 것을 생각하지 못한듯 벙찐채로 눈을 가만히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다 좆됐습니다."


"당연히-"


"소장님!!! 씨발, 그게, 저를 봤단 말입니다. 소장님, 그게 저를 봤다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적막이 감돈다. 소장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진다.


"뭐가... 너를 봤는데?"


"그건... 그건 신입니다. 정신체 따위가 아니라구요. 인간의 언어와 지혜로는 표현할 수 없는곳에, 우리가 있었습니다. 놈의 뱃속이든 머릿속이든, 그 안에요. 그거에 눈깔이 달려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씨발, 소장님... 거긴 완전한 비현실의 영역이었다구요. 거기에 눈깔 달린게 왜 있어요. 그건 현실인데."


"..."


"근데, 그게 저를 봤어요. 분명히 두 눈이 마주쳤다구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그 뒤에 그게, 웃었어요. 아무것도 없고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우리 차원 바깥의 그게, 웃었다구요. 점점 작아져서... 마치 제가 되려고 하듯이. 그건 호기심을 가졌어요."


"그래요, 나, 진경이 찾으려고 15년동안 지랄했습니다. 그리고 찾았어요. 그 비현실의 영역에 진경이가 있었고, 그건 더이상 진경이가 아니었어요. 삼켜졌든, 동화됐든, 아니면 비현실이 됐든. 그리고 거기에 또 뭐가 있었는지 알아요?"


"..."


"비현실의 영역에, 우리 현실의 영역을 구축하려던 시도가 있었습니다. 식물, 땅, 하늘, 동물, 그리고 나의 형태를 뜨려고 하던 그 기괴한... 그것이.... 있었다구요. 분명히, 그건 이쪽으로 올겁니다. 지금도 오고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방법을 통해서."


"그래서, 그게 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데."


"대비해야죠. 그게 뭐든, 뭘 어떻게 해야 하든, 전부 대비할겁니다."


팀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이마를 꾹꾹 누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적막이 다시금 우리를 감쌌고, 말 없이 담배를 두 대째 피우고 나서야 소장이 입을 열었다.


"준열아."


"네."


"니가 말했지. 윗선에서 살인 괴물 그런거 안좋아한다고. 우리는 외계 문명이랑 많이 접촉했어. 니가 말했잖아, 비현실의 영역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고. 그거...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


"그럼 직접 보십시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캐비넷에 의무로 비치된 현실 계수기를 꺼내어, 소장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현실 계수기는 90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100, 아무리 떨어져도 98인 그것이, 현저히 낮아져 있었다.


“...이거, 비현실에 다녀온 너한테 영향이 남아있는건 아니냐?”


“그럼 가고 나서 보십시오.”


말을 마치고 나가려던 차, 방문 손잡이를 잡자마자 그가 말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대비해야 하지?”


“모르는 공포로부터 대비해야 합니다. 저것이 무엇인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경계하듯이... 그것은 가장 비현실적인 것에서, 가장 현실적인 공포가 되었단 말입니다.”


나는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팀장은, 현실 계수기를 보면서... 웃어버렸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단 한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