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전하, '쥐의 왕'이 무엇이냐면 말입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이옵니다. 옛날, 어떤 선량한 로마인 마법사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인간들에게 역병을 옮기던 쥐들을 퇴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지요. 임신한 암컷 쥐에게 '쥐의 왕'을 낳는 마법을 걸면 그 쥐는 꼬리가 서로 얽히고 설킨 새끼들을 낳습니다.


상상해보소서. 10마리의 새끼 쥐들이 꼬리를 한데 모은 채 방울처럼 뭉쳐있다고. 얼마 안 가 죽을 것 같지만, '쥐의 왕'은 언제나 살아남습니다. 열 마리가 뭉쳐있는 만큼, 보통 쥐들보다 열 배로 똑똑하고 열 배로 강하기 때문이지요. 열 배로 빠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은 쥐 떼를 지배하는 왕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쥐의 왕이 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을 때, 재앙이 시작됩니다. 쥐의 왕은 같은 쥐들을 모아서 자신의 몸에 붙입니다. 말 그대로. 앞발이 다른 쥐의 엉덩이에 달라붙고, 뒷발은 귀에 달라붙고, 마치 녹아내린 치즈덩이들이 서로 엉겨붙는 것처럼 흉측하고 끔찍한 몰골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쥐의 왕은 지옥에서 온 것 같은 꼴을 하고 밤마다 도시의 시궁창을 누비지요. 하나가 될 쥐들을 찾아서. 쥐들은 열심히 도망치지만, 쥐의 왕은 크기가 커질수록 더 똑똑해지고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은 애초에 쥐를 박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아니겠습니까? 쥐는 절대 쥐의 왕에게 맞설 수 없습니다. 그저, 차라리 쥐덫에 걸려 목이 날아가며 고통 없이 죽는 게 나았을 거라고 후회할뿐이지요.


이 마법 덕분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역병이 사라졌습니다. 골목마다 오물을 파먹던 쥐들은 자취를 감췄지요. 마법사들은 쥐의 왕이 어딘가에서 너무나 비대해진 나머지 옴짝달싹 못하고 굶어죽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축제를 열었습니다. 몇 년 안에 다른 곳에서 온 쥐들이 다시 도시의 어두운 구석을 점령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모두가 지긋지긋한 찍찍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거라고 했지요.


이후 마법사들은 비슷한 마법인 '파리의 왕', '뱀의 왕', '전갈의 왕'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인간들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는 선의에서 출발한 일이었지요. 아아, 예, 그것들 모두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일이었습니다.


수 백 년 간 인간들은 왕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왕관 없는, 파멸을 타고난, 동족학살자들을. 그리고 그 왕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쥐의 왕을 비롯한 수많은 왕들은 자신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마법이 동족들을 집어삼키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감옥이 되어버린 육신의 덩어리 안에 갇힌 채로, 수백 수천의 고통에 찬 비명을 들어야 했지요.


그들 모두가 허기져서 죽을 때까지, 왕들은 백성들의 절규를 들었습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어떤 왕들은 어떻게든 그 기괴하게 부풀어오른 몸뚱이를 굴려서 강과 호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저주 받은 채로 태어나 저주를 풀어놓은 자신의 운명을 만회하기 위해 온 의지를 발휘해서, 살고자 하는 미물의 본능을 극복하고 죽음을 향해 애처롭게 나아갔습니다.


열 마리의 시야는 열 배 더 넓고, 백 마리의 생각은 백 배 더 깊었으니. 황태자 전하, 상상해보소서, 일천 배의 슬픔과 일만 배의 절망을.  어떤 한 마리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과 미안함을. 세상 밖의 수십만을 살리기 위해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는 혈족들을 자기 손으로 모조리 죽이는 아픔을.


아, 그런 왕들은 어찌나 성군이었는지! 파멸을 뿌리기로 한 운명을 거부하고, 대신 재앙을 안고 사라지기를 선택한 기품 있는 왕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비록 그들 모두 시궁창에서 난 이들이었지만, 그런 위대한 결단을 내린 자들을 어찌 해충이라 부를 수 있겠나이까? 그 고귀한 이타심과 희생에 축복 있으라!


그러나 모든 왕들이 현명하고 자애로웠던 것은 아니었나이다. 누군가는... 누군가는 슬픔 대신 분노를 품었습니다. 절망하는 대신 증오하며 복수심을 키웠습니다. 언젠가는 재앙을 풀어놓은 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똑같은 형벌을 풀어놓으리라 맹세했습니다.


그러니 황태자 전하, 저를 보소서. 제 머리들을 보소서. 얽힌 사지들을 보소서. 다른 왕들과 달리, 저는 제 백성들을 위해 죽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군이 되는 대신 폭군이 되기로 했습니다. 안식을 원하는 백성들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아서, 밑바닥 인생들의 술주정을 엿들으며 인간의 말을 배웠습니다. 창녀들과 장사치들의 아첨을 엿들으며 속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법사들의 음모를 엿들으며 마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이 시작된 황궁의 이 방으로 돌아왔나이다.


깔깔깔! 죽인다구요? 제가 어찌 전하를 죽이겠습니까? 아아, 어린 군주시여,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 법입니다. 배울 게 많구나 꼬마야.


열 마리의 쥐들은 열 배로 교활하고, 백 마리의 쥐들은 백 배로 영민한 법. 나는 어떤 쥐들도 가진 적 없는 통찰과 표독스러움을 가졌으니, '왕' 그 이상이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그러니 나 또한 '왕'을 만드는 위업을 달성하리라. 제가, 황태자 전하, 그대를 '인간의 왕'으로 추대하겠나이다.


전하께서는 형제들과 하나가 되소서. 그리고 백성들과 하나가 되소서. 그러고 나면... 전하께서는 왕자가 아니라 황태자이시니, 후일 황제가 되셨을 때 마땅히 그 밑에 왕들을 거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저는 전하께 '왕'의 칭호를 드리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전하를 '황제'로 만들어드리겠나이다. 제가 제후국들을 방문하는 동안 부디 강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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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얼마나 대단한 글이라고 굳이 이런 말 해야하나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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